▲ 임진각에 전시된 철마 [그린경제=최우성 기자]멈춘지 어언 63년 분단된 한국의 상징으로 남아 임진각을 찾는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저 철마가 다시달릴 수는 없겠지만, 속히 통일되어 저 철마대신고속열차를 타고 대륙횡단도 할 날이 언젠가 올날을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저 유모차에 탄 아이가 어른이 되기 전에는 통일이 될까요?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
▲ 한울광장 ▲ 등나무 그늘아래 ▲ 호수주변 산책 ▲ 반려동물과 함께 ▲ 산책길 ▲ 메타세콰이어길 ▲ 애수교에서 [그린경제=최우성 기자] 수도권 주민들의 휴식처 고양시 일산호수공원은 휴일이면 가족나들이 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
▲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 원경 ▲ 당간지주의 규모비교 ▲ 사람의 크기와 비교해 볼때사람의 키보다 3배이상임. ▲ 다듬은 흔적이 별로 없어 더욱 힘차게 보이는 굴산사 당간지주 [그린경제=최우성 기자]굴산사지 당간지주 보물제86호 당간지주(幢竿支柱)는 큰 절의 들머리에 세워져 법회나 재일 등 절의 행사가 있을 때 그 행사가 무슨행사인지를 알려주는 당을당간의 꼭대기에걸었던 지주석이다. 당(幢)은 그날 행사성격을 말해주는 깃발로 먼 발치에서도 그 당의 깃발을 보면 오늘 무슨 일이 있을 것인지 주변 사람들은 다 알 수있도록 하였다. 굴산사는 없어졌지만 거대한 당간지주로 볼 때 그 당간의 높이는 적어도 40m 이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거대한 당간지주로만 보아도 신라말 굴산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지금은 주변이 모두 논이 되어 벼농사를 짓고 있는 저 들판은 굴산사의 경내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신라말기 선종의 번창으로 이루어진 구산선문의 하나인 굴산사의 옛 모습이 궁금하기만 하다. 굴산사는 강릉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구심체로서 그 규모는 당시강릉 호족의 중심에 있었던 강릉김씨의 위상을 나타내 보인다고도 볼 수있다. 그 중심인물은 굴산사를 개창
▲ 덕수궁 석어당 전경 ▲ 석어당 정면 ▲ 석어당 현판 [그린경제=최우성 기자]임진왜란 후에 선조가 환궁하여 임시거처로 쓰던 건물이었으나 1904년 화재로 불이난 후 다시 지어 지금에 이른다. 한옥으로는 특이하게 2층으로 지어져 있으며 건물의 형식은 기둥위에 장식은 1층은 몰익공(익공형식이나 끝이 소의 혀처럼 길게 나오지 않고둥글게 마감한 형식)이고 2층은 민도리집 형식이며단청도 없어 검소한 느낌이 든다. 덕수궁 중화전의 뒷편에 있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
▲ 중화문에서 본 중화전 ▲ 중화전 궁의 정전으로서는 특이하게 1층이다. ▲ 대각선 방향에서 본 중화전 ▲ 중화전의 향로 앞에서 [그린경제=최우성 기자] 조선시대 궁궐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이 있다. 덕수궁의 본래 명칭은 경운궁이었지만, 고종이 황제로 등극한 후 만수무강을 비는 뜻으로 덕수궁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이 덕수궁의 정전은 중화전(中和殿)이다. 그런데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이다른 궁궐의 정전이 2층인 것에견주어 1층으로 지어졌다. 그 연유는 본래 2층이었는데 화재로불타버린 뒤 복원비용을 줄이려고 1층으로 중건한 때문이다. 궁궐의 정전으로서의 건축적 위상을 맞추기 위해서는 2층이어야 할 것이지만, 돈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1층으로 중건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지어진 것을 다시 헐고 막대한 자금을 들이기 어려우니 그냥 그대로 1층이 본래 모습인양 서있다. 앞으로 덕수궁의 본래 영역을 되찾고 덕수궁의 전각들이 다시 중건하게 된다면 본래 2층이었던 중화전의 본 모습을 2층으로 중건하는 문제도 다시 거론될 수밖에 없다. 그 때까지 덕수궁은 1층인 채로 남아있을 것이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
[그린경제=최우성기자]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
▲ 대한제국시절 궁궐로 활용한 덕수궁 중화전 ▲ 황제가 타고 가는 가마 ▲황제가 탄 어가 ▲ 사직단으로 행하는 어가행렬 ▲ 경호부대의 행렬 ▲ 대취타대의 행렬 ▲ 북을 울리면서 ▲ 광화문을 돌아서 ▲ 황태자의 가마 ▲ 사직단에 도착한 황제 ▲ 신위를 모시고 사직단으로 ▲ 신위를 뒤따르는 제관행렬 ▲ 사직단 위로 오르는 모습 ▲ 제단 위로 ▲ 신위를 제단에 안치 ▲ 헌관들의 도열 ▲ 헌관들의 인사 ▲ 제례에 참여한 무용수들 ▲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사들 ▲ 제례의식 거행 ▲황제의 입장 ▲ 황제의 제례의식 ▲ 황제의 깃발 [그린경제=최우성 기자]사람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을 황제라 부르지만 아무리 황제라할지라도 그가 인간인 이상 황제도하늘에 미치지 못하는 존재이며, 그 또한 땅의 자손일 수밖에 없다는 철학이우리에게는고래로부터 있어왔다. 그리하여 하늘에도 제사를 지내고 땅에도 제사를 지냈다. 그런 의미에서 무형의 존재인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은 별도로 하고 사직대제는 유형의 존재인 땅과 그 땅에서 거두어 인간을 살수 있게 하는 곡식을 주관하는 신을
▲ 대관령 옛길 ▲ 대관령 앴길 ▲ 대관령 옛길의 절반지점 반정리 ▲ 반정리 이정표 [그린경제=최우성 기자] 높고 험한 대관령 고갯길을 괴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넘던 때가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도 그랬다. 백두대간 등줄기의 대관령에는 사나운 짐승들도 많이 있어 고개를 넘자면 적어도 10명은 모여야 고갯길을 넘었다. 대관령의 고갯길은 험하고 멀었기에 고갯길의 중간쯤에는 험한 길을 올라왔기에 쉬어갈 수 있고, 갈길에 대한 힘을 충전할 수 있는 주막도 있었다. 이곳을 반정리라고 한다. 이제는 반정리에 주막은 없지만 옛날을 알 수 있는 돌비석이 있어 옛날을 추억한다. 자동차로 넘는 것도 힘들다며 터널을 뚤어버린 지금에 와서 굽이굽이 돌고 돌아가는 대관령 옛길을 찾아보는 것은 한국인의 옛날 삶을 조금이나마 되돌아보는 아련한 추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 대관령 성황당 ▲ 성황당의 산신께 ▲ 산신님의 가호를 빌며 ▲ 성황당의 산신전 [그린경제=최우성 기자] 대관령은 백두대간의 등줄기이다. 호랑이 등줄기의 가운데에 대관령이 있고, 저 높고 험한 고개를 넘어야 강릉사람은 서울로 올 수가 있다. 높고 험한 산이지만 한국인은 그 산이 바로 사람을 보호해주는 신령스런 존재라고 보았다. 그래서 신성한 기운이 가득한 곳에 성황당을 짓고 성황신을 모셔서 특별한 날에는 신성물로 제사를 지냈다. 지금도 전국의 신내림을 받는 무당들은 이곳 대관령 성황당(서낭당)에서 신내림의 굿을 하고, 또 신기가 떨어지면 굿을 하여 신기를 보충한다. 대관령 성황당에는 산신전도 옆에 있다. 그런데 그 산신은 다른 산신각에 있는 호랑이를 거느린 후덕한 산신할아버지가 아니고 갑옷과 투구를 쓴신라명장 김유신이라고 얘기들을한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
▲ 비에 젖은 산사의 풍경차분한 분위기 마음도 고요해집니다. [그린경제=최우성 기자]비에 젖은 산사 가보셨나요? 어쩌면 속세의 찌든 때를 씻어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차분히 차분히 가슴을 쓸어내리며, 잊었던 옛 추억이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