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에는 죠카마치(城下町)라는 이름의 도시가 번성했는데 죠카마치란 말 그대로 성주가 살던 성(城)과 관련 있는 도시다. 아먀구치현 하기시나 기후현의 다카야마시 같은 곳이 죠카마치(城下町)의 대표적인 도시지만 현재 인구 10만 이상의 도시 절반이 죠카마치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죠카마치는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고장이다. 헤이안시대(794-1192) 이후 무사정권 시대의 긴 역사를 가진 일본의 성(城)은 성주를 중심으로 한 절대 권력의 중심지다. 하늘만큼 높이 쌓아 올린 성곽의 높이가 성주의 권력을 대변해주는 것이라도 되는 양 오늘날 남아 있는 성들은 그 규모가 매우 크다. ▲ 효고현의 다츠노성을 중심으로 한 죠카마치(城下町) 풍신수길의 오사카성도 규모면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큰 곳이다. 오사카 성은 성곽의 돌덩이 하나만도 사람 키의 몇 배에 달할 만큼 규모가 크다. 일본의 제2도시 오사카도 오사카성을 중심으로 죠카마치(城下町)의 하나로 출발 했던 것이다. 물론 에도성을 중심으로 했던 곳이 지금의 동경이다. 일본에서 조용한 역사의 고장을 찾고자 한다면 이 죠카마치를 중심으로 찾아 가보면 뜻밖에 좋은 곳을 만나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1930년대 일제의 찬탈이 극도에 달해 있을 때, 민족혼을 지키기 위해 비교적 활발하게 움직였던 조선가무연구회(朝鮮歌舞硏究會)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 연구회는 1930년대 중반, 최경식이나 박춘재 등 경-서도 음악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단체로 이름 그대로 경서도 지방의 가무(歌舞)를 연구하기 위해 만든 단체였다는 점, 당시 활동했던 회원들은 재담의 이순일, 양주 산대놀이의 정한규와 이건식, 12잡가의 대 명창이었던 원범산, 선소리 산타령의 명창들로 과천 모갑이 소완준, 왕십리패의 이명길이나 탁복만, 이명산, 김태봉, 고전무용의 이칠성, 잡가와 민요의 김태운이나 엄태영, 유태환 등의 이름이 보인다는 점을 얘기했다. 특히 조선권번의 잡가선생으로 금강산타령이나 풍등가를 작사 작곡한 최정식도 포함되어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금강산타령은 지금도 널리 불리고 있는 노래로 경기민요를 배우는 사람들은 반드시 익혀야 하는 필수 노래라는 점도 강조하였다. 이 노래는 모두 7절로 이루어진 것인데, 1~6절 까지는 6박의 도드리 장단으로 부르고, 마지막 7절은 노랫가락으로 맺는 형식이며 그 시작은 천하명산 어드메뇨, 천하명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사슴 뛰노는 절 천년고찰 동대사에 놀러가는 이웃들 오사카 나라 교토 묶어 3박4일 무얼 보고 올까? 동대사를 세운 백제 행기스님 초대 주지 백제 양변 스님 여기서 처음으로 일본 화엄종 강설을 한 신라 심상대덕 ... 우리가 미처 챙기지 못한 세월 속 고승들의 발자취는 지워지고 지금 사람들 단풍든 고찰에 뛰어노는 사슴 쫓아 사진 찍기 바쁘다 ▲ 동대사 사슴은 사람들에게 먹이를 달라고 아양을 부린다. 정말 그렇다. 동대사는 나라시대 일본 최고의 절이자 현재도 천년 고찰로 그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오사카, 교토, 나라 이렇게 3도시를 엮어 3박 4일 코스로 떠나는 여행 상품이 즐비하다. 오사카만 해도 비행기로 한 시간 반이다 보니 바로 이웃집 드나들듯이 훌쩍 다녀오는 사람도 늘고 있다. 동대사는 나라공원 안에 있어 사슴이 한가로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관광객이 다가서면 사슴이 달려와서 먹이를 달라고 아양을 부려 인기 만점의 절이기도 하다.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는 나라현 나라시 조우시쵸 (奈良市司町)에 있는 천년 고찰로 1300여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도 일본 불교의 원형을 지금껏 고이 간직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박춘재 명창의 30살 이후 활동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였다. 그는 광복 이후 지방 순회공연을 떠나있던 도중에 전쟁을 만나 세상을 떴는데 그의 나이 67살 이었으며, 전쟁의 와중이어서 그의 죽음은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야기, 김은신이 쓴 박춘재의 일대기 《조선일류가객-박춘재》라는 이름의 소설은 불행한 시대에 태어난 한 명창을 밝게 널리 알리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이춘희 명창은 재담소리의 최고봉이 바로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명창 박춘재 선생인데, 그의 이력이 지금까지 국악계에 잘 알려지지 못했고 관련 자료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박춘재명창 기념사업회와 기념관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아울러 이러한 평전이 발행되어 기쁨을 감출 수 없다는 소감을 피력했다는 점, 또한 원로 희극인 송해 씨도 재치와 풍자, 웃음과 재미로 엮어져 전해지는 재담은 소리와 함께 한민족의 정서를 대변하는 우리의 정신문화라는 점을 강조하며 우리에게는 박춘재 명인이 있어 자존과 긍지 그리고 희망이 있다고 했다. 이어서 배연형과 손태도 역시 궁중과 시정을 넘나들고 경서도를 메주 밟듯 누비고 다닌 자유인이었다는 이야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천년고도 교토의 3대 마츠리라고 하면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 (葵祭), 7월 17일의 기온마츠리 (祇園祭), 10월 22일의 지다이마츠리(時代祭)를 꼽는다. 오래된 순서를 꼽으라면 아오이마츠리 (567년), 기온마츠리( 863년), 지다이마츠리(1895년) 순으로 꼽을 수 있다. 성격으로 따지자면 아오이마츠리는 궁정에서 시작한 마츠리(국가의 제사 형식)로 볼 수 있고 기온마츠리는 서민(전염병 퇴치의 제사)층에서 향수하던 마츠리다. 내일 10월 22일에 열리는 지다이마츠리는 명치정부가 교토 천도(헤이안 천도, 794년) 1100년째를 기념하여 명치28(1895)년에 새로 시작한 마츠리다. 명치정부는 교토 천도 당시의 환무왕(桓武天皇)을 모시기 위한 사당으로 헤이안신궁(平安神宮)을 만들고 그해 10월 22일부터 10월 24일에 걸쳐서 성대한 마츠리를 거행했는데 올해로 120년을 맞이한다. ▲ 10월 22일 열리는 지다이 마츠리의 한 장면 지다이마츠리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도구, 행렬 시간 등을 따지자면 7월의 기온마츠리(祇園祭)가 가장 성대하지만 5월의 아오이마츠리(葵祭)나 10월22일의 지다이마츠리(時代祭)도 꽤 볼만하다. 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박춘재 명창의 30세 이후 활동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였다. 음악인 8명과 함께 도일하여 100면의 레코드 중, 절반을 박춘재가 녹음하였으며 그 내용은 수심가를 비롯한 서도소리와 경기긴잡가, 휘모리잡가, 그리고 장대장타령과 같은 재담이라는 이야기, 2차때에는 재담 이외에도 동행했던 판소리 명창 송만갑의 소리를 반주했다는 이야기, 32세 되던 1915년 이후에 나온 《무쌍신구잡가》에는 조선제일류가객 박춘재군이라는 설명과 사진이 있고, 그 이후 《증보신구시행잡가》나 《신구현행잡가》에는 박춘재소리라는 부제가 달려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사람을 웃기는 재담이 주로 광무대와 단성사에서 열렸으며 박춘재 놀음이나 박춘재와 그의 일행으로 소개되었다는 이야기, 1942년에 조직된 조선음악협회 내에 조선가무단이 결성되었을 때, 이일선, 심상건, 박천복, 고준성 등과 줄타기의 명수 김봉엽, 신인 만담가 장소팔이 함께 하였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그뿐만 아니라 1944년, 61세 이후에는 신당동의 신부좌나 왕십리의 광무극장이 주 무대였는데, 이곳 왕십리는 서울소리 전문 재인들의 집합처가 되어 당시의 많은 명창들이 모여 살았다는 이야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0월 15일은 조선신궁 진좌제(신을 맞아들이는 행사)의 날이다. 내지인(일본인)도 조선인도 속속 돌계단을 오른다. 그러나 배전(신전)의 앞까지 가자 내지인은 모자를 벗고 절을 하고 조선인은 휙 발길을 돌려 돌아갔다. 단 한사람의 조선인도 참배하는 자는 없었다. 《해외신사사》, (1953, 小笠原省 지음) 그런데도 《조선과 건축, 1925.11》에는 조선인이 조선신궁의 건립을 매우 기뻐하며 반긴 듯이 적고 있다. 반도 1,700만 백성의 수호신인 조선신궁은 경치가 뛰어난 남산 허리에 신성한 땅을 골라 어진제가 감행된다. 우리 반도 주민은 기뻐 춤추는 것을 그칠 수가 없으며 이것은 조선 병합의 뜻과 더불어 역사상 가장 고운 빛깔을 더하는 것이다. 설마 조선인이 일본의 신을 모시는 신사 건립에 두 손을 들어 환영했을까? 만일 그런 자가 있다면 그는 친일파거나 민족 반역자였을 것이다. 훗날 친일문학가로 전향한 김기진(19031985)조차도 지금 나의 불평과 울분의 궁극의 도착지는 다만 한곳 밖에는 없다. 모든 것이 밉다. 남산 위로 자동차가 다니게 되었다. 나는 남산이 밉다. 남산이 미워서 못 견디겠다. 고 했을 정도다. 그만큼 남산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박춘재 명창의 30세 전후까지의 활동상황을 이야기 하였다. 10세 전후에 홍필원, 홍진원 형제 명창에게 소리를 배우다가 당대 추, 조, 박으로 유명했던 박춘경 명창에게 본격적으로 경기소리를 배우기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선생의 소리를 한번 들으면 그대로 부를 정도로 받아드리는 감각이 남달랐다는 이야기, 15~6세에는 궁중 가무별감이 되었으며, 20세에 협률사에 초빙되어 서도소리와 재담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다년간 발성연습 속에 30세 전후에는 일본 축음기상회에서 주관하는 녹음작업에 참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때의 동행자들이 김홍도, 문영수, 심정순 등 8명이었는데, 특히 심정순(1873~1937)은 박팔괘와 함께 충청제 가야금 산조의 1세대로 알려진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이야기, 일본에서는 총 100면의 레코드를 녹음하였는데, 이중 거의 절반은 박춘재 명창이 녹음을 하였고, 나머지는 7명이 분담하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때 박춘재가 부른 곡들이 서도민요의 대표적인 수심가와 긴난봉가, 경기의 긴잡가인 제비가, 휘몰이잡가인 맹꽁이 타령 곰보타령, 민요의 무당노랫가락, 그리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입곱 째인 한로(寒露)로 찬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때다. 음력으로는 9월의 절기로서 공기가 차츰 선선해짐에 따라 이슬(한로)이 찬 공기를 만나 서리로 변하기 직전이다. 《고려사(高麗史)》 권50의 한로 관련 기록을 보면 “한로는 9월의 절기이다. (중간 줄임) 초후(한로 15일 동안을 5일씩 끊어서 첫째)에 기러기가 모여들고, 중후에 참새가 줄고 조개가 나오며, 말후에 국화꽃이 누렇게 핀다(寒露 九月節 兌九三 鴻鴈來賓 雀入大水化爲蛤 菊有黃華).”라고 했다. ▲ 한로 때 농촌은 오곡백과를 거두기 위해 타작이 한창이다. "김홍도의 <벼타작>" 한로 즈음은 찬이슬이 맺힐 시기여서 날씨가 더 차가워지기 전에 추수를 끝내야 하므로 농촌은 오곡백과를 거두기 위해 타작이 한창이다. 한편 여름철의 꽃보다 아름다운 가을 단풍이 짙어지며, 제비 같은 여름새가 가고 대신 기러기 같은 겨울새가 오는 때다. 한로와 상강(霜降) 무렵에 사람들은 시절음식으로 추어탕(鰍魚湯)을 즐겼다. 《본초강목(本草綱目, 중국 명나라 때 이시진이 쓴 의학서)》에는 미꾸라지가 양기(陽氣)를 돋우는 데 좋다고 하였다. 한방에서는 한로 때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철없이 떠나온 야마나시의 청년 조선땅에 첫발 디디던 날 흰 옷 입은 식민지 백성들 따뜻이 맞이했지 백자에 밥을 담아 먹고 백자에 김치를 담아 먹고 백자에 막걸리를 마시는 백자의 나라 제국주의 일본이 최고인줄 알던 스무살 청년 오천년 조선의 역사와 백자를 무시로 쓰는 높은 문화에 그만 빠져 든 세월 조선옷을 입고 조선의 문화를 사랑하다 조선에 묻힌 희고 맑은 영혼 망우리에서 영원히 잠들다 <이윤옥 시, ‘아사카와 타쿠미’> ▲ 아사카와 다쿠미 영화 <백자의 사람>, 다쿠미 생전 모습(오른쪽) 일본 야마나시현 출신으로 조선 문예운동에 힘썼던 아사카와 타쿠미(淺川巧, 1891∼1931)의 무덤이 깨끗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몇 해 전 찾은 망우리 무덤에는 잔디도 많이 벗겨져 안타까웠었는데 말이다. 서울시가 시립승화원을 통해 지난 9월부터 망우리공원묘지 안에 있는 아사카와 타쿠미의 무덤에 잔디를 새로 심고 계단석도 새로 정비했다니 모처럼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 야마나시현 호쿠토시 시라쿠라 마사시(白倉政司) 시장 등 '아사카와(淺川) 형제 추모회' 관계자 30여명이 지난 10월 2일 방한했다. 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