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453년(단종 원년) 궁녀들과 별감들이 서로 한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다 들키는 사건이 일어났다. 궁녀인 중비, 자금, 가지와 별감인 부귀, 수부이, 함로는 연애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싹틔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궁궐 안에 소문이 돌아 감찰 상궁에게 들통이 나고 말았다. 그들은 곧장 지금의 경찰서인 의금부에 끌려갔고, 의금부에서는 그들에게 ‘부대시(때를 가리지 않고 사형시킴)’라는 참형을 내렸다. 하지만 열한 살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된 단종은 그들의 죄를 감해 주었다. 참형을 면한 궁녀들은 곤장을 맞고 평안도 강계에서 관비로, 별감들 역시 곤장을 맞고 함길도 부령진에서 관노로 살았다. 이처럼 궁녀들과 별감들 사이에서도 한글이 주요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쓰일 만큼 궁궐 안에서도 일상생활에 한글이 친숙하게 쓰였음을 알 수 있다. A Court Lady and a Lower Official Exchange Love Letters in Hangeul In 1453 (the first year of King Danjong’s reign), an incident occurred where court ladies and lower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포근한 햇살이 건네는 기별, 마음의 기지개를 켜는 ‘갓밝이’ 오늘은 겨울 겉옷이 조금은 무겁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 기온도 여느때보다 높고, 낮에는 영상 10도 안팎까지 오르며 봄기운이 슬쩍 담장을 넘어오겠다고 하네요. 얼어붙었던 길들이 녹아 촉촉해지고, 공기 속에 묻어나는 흙내음이 정겨운 날이 될것입니다. 이렇게 포근한 기운이 세상을 깨울 때, 우리 마음까지 밝혀줄 토박이말 하나 떠올려 봅니다. 바로 ‘갓밝이’입니다. '여명'의 깊이와 '갓밝이'의 살가움 우리는 날이 밝아올 때 흔히 ‘여명(黎明)’이라는 말을 씁니다.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빛의 장엄함을 담고 있는 참 깊이 있는 낱말이지요. 하지만 때로는 조금 더 가깝고 살가운 느낌으로 이 순간을 부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 곁에는 ‘갓밝이’라는 예쁜 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막, 이제 겨우’를 뜻하는 ‘갓’과 ‘밝음’이 만난 이 말은,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저 멀리 산등성이 너머로 빛이 막 고개를 내밀어 세상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그 찰나를 그립니다. 여명의 빛이 우리를 짓누르는 느낌이라면, 갓밝이의 빛은 마치 아이의 발걸음처럼 조심스럽고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도의 산타령 가운데 유지숙이 제작한 음반을 중심으로 <사거리-앞산타령>과 중거리 <뒷산타령>을 소개하였다. 이 자료에는 과거 서도지방 곳곳에서 불러온 산타령도 일부 소개하고 있어서 당시 이 지역에서도 <산타령> 음악이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는 점을 알게 한다고 했다. 서도지역의 <놀량>은 경기에 견줘 속도가 빠르고, 입타령이 적어 초보자들이 배우기에 쉬운 점, 고음역(高音域)을 통성으로 질러대는 부분들이 많아 시원시원하고 통쾌한 남성 취향의 노래라는 점, <사거리>는 평양을 둘러싸고 있는 명산(名山)과 대동강의 풍광을 노래하는 지역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 중거리는 뒷대의 금강산으로부터 황해도, 평안도를 중심으로 하는 산들을 노래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이번 주에는 서도 입창의 마지막 구성곡 <경발림>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이 곡은 빠른 4박 장단의 구성이며 선창(先唱)자의 소리를 여러 사람이 받는 형식으로 이어지며 경기 입창 가운데 <도라지타령>에 나오는 사설과 유사한 구절도 나오는데, 경기 입창에서는 동해안의 관동팔경(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뿌연 하늘 아래, 당신에게 건네는 '한 모숨'의 숨결 봄으로 달려가는 들봄달 2월의 설렘을 시샘하듯 미세먼지가 하늘을 가득 채울 거라는 기별을 들었습니다. '대기 정체', '미세먼지 농도' 같은 딱딱한 한자어들이 가득하겠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 맑은 공기 한 자락입니다. 이런 날, 여러분의 답답한 가슴을 조금이나마 틔워줄 수 있는 소중한 우리말 하나를 꺼내 봅니다. 바로 '모숨'입니다. 손끝에 닿는 가장 따뜻한 하나치(단위) '모숨'은 한 줌 안에 들어올 만한 아주 적고 가느다란 뭉치를 뜻하는 말입니다. 국어사전을 펼쳐보면 이 말이 얼마나 정겨운 풍경 속에 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세 가닥으로 모숨을 고르게 갈라 곱게 머리를 땋아 내려”가던 다정한 손길 속에 모숨이 있고, 고된 일을 마친 “일꾼들에게 담배 두어 모숨을 나누어주던” 넉넉한 인심 속에도 모숨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넘쳐나고 거창해야 대접받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공기가 탁해 숨쉬기조차 버거운 날엔, 그 어떤 말보다 내 코끝을 스치는 '한 모숨'의 싱그러운 풀 내음이 더 간절해집니다.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차가운 비난보다 따뜻한 품이 필요한 당신에게 갖가지 기별들을 보다보면 마음이 참 무거울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 작은 잘못이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날카로운 말로 상처를 주는 일들을 자주 봅니다. "내 말이 맞다"며 손가락질하는 소리에 정작 사람들의 아픈 마음은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메마른 세상 속에서 우리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줄 따뜻한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바로 '보듬다'입니다. 팔을 벌려 가슴으로 안아주는 마음 '보듬다'라는 말을 가만히 소리내어 말해 보세요. 왠지 포근하고 보들보들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이 말은 두 팔을 크게 벌려 무언가를 가슴 쪽으로 끌어당겨 안는 모습을 뜻합니다. 우리는 흔히 "감싸주다"나 "도와주다"라는 말을 씁니다. 하지만 '보듬다'는 그보다 훨씬 깊은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단순히 겉면만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슬픔과 아픔까지 내 가슴 안으로 쑥 끌어당겨 따뜻함으로 녹여주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 털어주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흙 묻은 아이를 꽉 안아주는 그 따뜻한 마음이 바로 '보듬다'입니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보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소조 불상은 흙으로 빚은 부처님의 형상입니다. 원오리(元五里) 절터에서 출토된 소조 불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고구려 불교문화를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소조 불상의 특징 부처님의 형상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재료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흙으로 만든 부처님은 소조(塑造) 불상, 나무로 만든 부처님은 목조(木造) 불상, 돌로 만든 부처님은 석조(石造) 불상이라고 합니다, 동으로 부처님의 형상을 만들고 표면에 도금한 금동(金銅) 불상, 그리고 흙으로 부처님을 만들어 삼베[麻]로 감싼 뒤 옻칠을 하고 칠이 굳으면 다시 흙을 제거하는 건칠(乾漆) 불상도 있습니다. 이 가운데 소조 불상은 조형 재료로 점토를 사용하는데 재료의 특성상 물기가 마르면 수축하여 변형과 균열이 생기고 결국에는 부서지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약점 탓에 지금까지 완성된 형태로 전하는 소조 불상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출토 사례가 적지 않은 점을 보면 부처님 형상을 만들 때 흙을 널리 이용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흙은 우리 주변에서 비교적 손쉽게 구하는 경제적인 재료였기 때문에 소조 불상은 값싸고 빠르게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소조 불상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요즘 어딜 가나 사람들 손에는 조그만 손말틀(휴대폰)이 들려 있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다들 고개를 푹 숙이고 그것만 들여다보지요. 곁에 사람이 있어도 없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몸은 가까이 있는데 마음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 참 쓸쓸한 풍경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 한쪽이 답답해집니다. 이럴 때 우리 마음의 빗장을 스르르 열어줄 수 있는 예쁜 우리 말이 있습니다. 바로 '어우렁더우렁'입니다. 서로 어울려 즐겁게 지내는 모습 '어우렁더우렁'은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서 다 같이 즐겁게 지내는 모양을 뜻합니다. "어울리다"라는 말에 흥겨운 가락이 붙은 것 같지요? 마치 잔잔한 물결이 이쪽저쪽으로 부드럽게 넘실거리듯,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웃고 떠들며 하나가 되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모습을 보고 '화합'이라거나 '소통'이라는 어려운 한자어를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왠지 딱딱하고 공부를 많이 해야 쓸 수 있는 말처럼 느껴집니다. 그에 견주어 '어우렁더우렁'은 어떤가요? 말하는 소리만 들어도 입가에 웃음이 번지고,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지 않나요?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나라 곳곳에서 벌써 꽃망울이 터졌다는 기별을 전해오지만, 우리 뺨을 스치는 바람은 여전히 날이 서 있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땅속 깊은 곳에선 이미 봄이 숨을 고르며 몸을 뒤척이고 있지요. 이런 날, 여러분의 가슴 속에 깊이 심어드리고 싶은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바로 '움트다'입니다. 이치’를 아는 마음과 ‘결’을 느끼는 마음 우리는 흔히 무언가 싹이 나올 때 '발아하다'라는 말을 씁니다. ‘싹(芽)이 핀다(發)’는 뜻의 이 한자어는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을 아주 명료하고 정확하게 설명해 줍니다. 학술적인 정의나 현상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때 알맞은 낱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이성적인 설명에 토박이말 ‘움트다’를 곁들이면 비로소 봄의 풍경이 완성됩니다. '움'은 풀과 나무에서 갓 돋아나는 싹을, '트다'는 막혀 있던 것이 뚫리거나 갈라져 열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움트다'라고 말하는 순간,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흙을 비집고 연두색 새싹이 "영차!" 하며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생동감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시작하는 모든 것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응원 '움트다'는 비단 식물에게만 쓰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449년(세종 31년), 세종은 황희와 하연을 영의정 부사로 삼았다. 황희는 재상의 자리에 있는 동안 너그럽고 후덕했으며 백성들의 여론을 귀담아들어 사람들 사이에서 명재상으로 불렸다. 하지만 하연은 까다롭게 살피길 좋아하고 노쇠한 탓에 일을 할 때 실수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벽에다 한글로 ‘하 정승아, 또 공사를 망령되게 하지 마라.’라고 써 놓았다. 이 벽서를 쓴 사람은 하급 관리일 것이다. 세종이 가장 먼저 한글 교육을 시킨 대상이 하급 관리였으며, 잘못된 정책으로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사람도 하급 관리였기 때문이다. 이 벽서 사건은 백성 누구나 생각을 적어 알릴 수 있게 되었고, 백성과 관료, 백성과 백성 사이에 자기 생각을 소통시킬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Lower Officials Write a Notice in Hangeul In 1449 (the 31st year of Sejong’s reign), King Sejong appointed Hwang Hui and Ha Yeon as the Prime Minister and Vic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참 마음이 설레는 풍경을 보았습니다. 어느 아파트 현관문에 정갈하게 붙은 종이 위에 쓴 글귀였습니다. 흔히 보던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는 한자가 아니라, “봄이 오니, 기쁨이 피네”라는 쉬운 우리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글귀를 읽는 순간, 아직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제 마음에는 이미 따뜻한 봄기운이 스르르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풍경을 보며 떠올린 말이 있습니다. 바로 ‘들봄’입니다. '들봄'은 저희 모임에서 다듬은 말로 말집(사전)에 아직 오르지 않은 말입니다. 토박이말바라기에서 말하는 '들봄' 들봄 [이름씨(명사)] 스물네 철마디(절기) 중 첫 번째인 ‘입춘(立春)’을 갈음하여 부르는 토박이말. 봄이 우리 삶의 마당 안으로 들어온다는 뜻. 이를 오늘 우리가 맞이한 '입춘'과 엮어 좀 더 쉽게 풀이하면 ‘억지로 세우는 봄이 아니라, 우리 곁으로 살갑게 찾아 드는 첫 번째 봄손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월은 '들봄'이 드는 달이니 '들봄달'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입춘(立春)’이라고 쓰고, 이때 문에 붙이는 글을 ‘입춘축(立春祝)’이라 부릅니다. 저희 모임에서는 이를 ‘들봄글’ 혹은 ‘들봄빎’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