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940년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이용준에 의해 기적적으로 발견되었다. 1446년(세종 28년)에 세종대왕이 직접 펴낸 《훈민정음》 해례본 목판본은 오랜 세월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발견 당시 표지를 포함 두 장, 모두 네 쪽이 찢겨 있었다. 그것을 간송 전형필 선생이 큰돈으로 사서 지금은 간송미술문화재단(서울시 성북구)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책은 1962년에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고,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올랐다. 이 책을 통해 훈민정음 창제 원리와 훈민정음 반포의 참뜻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 책은 2015년에 간송미술문화재단과 교보문고에 의해 처음 복간되었다. --------------------------------------------------------------------------------------------------- Discovery of the “Hunminjeongeum” Haerye in Andong, Gyeongbuk [Illustrated History of Hangeul 28] Professor Kim Sle-ong In 1940, a mi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변진심이 부른, 계면조 <이수대엽>의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계면조-界面調>란“ 그 소리를 듣고, 슬프거나 비애를 느끼게 되어 얼굴에 경계(境界)가 생긴다”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란 점, 그가 시조창을 배우다가 월하 스승과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 서울지방의 무형 유산, <경제(京制)시조>의 예능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가 말하는 월하 명인의 매력은 꿋꿋하면서도 꽉 찬 성음(聲音)과 무대에 오르면 꽉 차는 듯한 무게감 등을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 변진심 명창은 앞으로 <여창가곡>과 <경제(京制)시조>의 확산을 위해, 더더욱 열(熱)과 성(誠)을 다하겠다는 의욕을 보인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 이야기는 당일 발표무대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젊은 김윤서 가객의 <계면, 중거-中擧>이야기로 이어간다. <우조, 중거>는 앞에서 이미 얘기한 바 있는 것처럼, 이번 주에 소개할 <계면-중거>도 이삭대엽(貳數大葉), 또는 <이수대엽>에서 파생되어 나온 악곡의 이름이다. 이 곡을 <중거>라 부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926년, 한글 반포 480주년을 맞아 한글날 기념식 ‘가갸날’이 열렸다. 민족주의 국어학자들의 단체인 조선어연구회가 주최한 기념식에서 처음으로 가갸날을 선포했으며, 가갸날은 오늘날의 한글날이 되었다. 한글은 ‘가갸거겨, 나냐너녀’ 하는 식으로 배울 때라 언문, 가갸글 등으로 불려왔다. 그러다 1910년대 조선어 연구회에서 ‘으뜸가는 글, 하나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으로 지어서 쓰게 되었다. 가갸날은 1928년부터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었다. ------------------------------------------------------------------------------------------------------------------ The “Gagya Day” Celebration for Hangeul Day [Illustrated History of Hangeul 27] Professor Kim Sle-ong In 1926, marking the 480th anniversary of the invention of Hangeul, the first official celebration of Hangeul Day,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변진심이 부른, 계면 <이수대엽>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이 곡은 <우조>를 끝내고 <계면조> 악곡으로 이어가는 첫 곡이란 점, 가곡에서 말하는 <계면조-界面調>란 “그 소리를 듣고, 슬프거나 비애를 느끼게 되어 얼굴에 경계(境界)가 생긴다”라는 뜻에서 생겨난 이름이란 점, 이 곡에는 다섯 바탕이 전해오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그는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 <언약이 늦어가니 -->를 불러 시(詩)의 문학성과 성(聲)의 음악성을 조화롭게 구사하였다는 점, 그의 노래에서는 농음(弄音)을 비롯한 추성(推聲)이나 퇴성(退聲)의 표현이 자연스러웠고, 음과 음, 장단과 장단 사이에 스며있는 여백(餘白)의 미(美)를 잘 살려주었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그가 시조창과 만나, 해당 분야에서 활동해 온 이야기, 스승 월하 명인을 만나게 된 당시의 관련 이야기들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변진심은 처음에 시조창을 즐겨 부르다가 월하 명인에게 여창 가곡을 배우게 되면서 가곡의 새로운 음악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907년(고종 44년),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주시경 선생이 남대문 시장 부근의 상동 교회에 있던 상동청년학원 안에 한글 강습소를 열었다. 주시경 선생은 1914년 운명할 때까지 한글 강습소에서 김두봉, 최현배 등 많은 제자를 길렀다. 제자들은 1921년 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 전신, 현 한글학회)를 조직하여 주시경의 뜻을 이어 한글 보급과 연구에 앞장섰다. 상동 교회는 지금도 같은 지역 새로나 빌딩에 남아 있어 그때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 Opening a Hangeul Education Center at Sangdong Youth Academy by Professor Ju Si-gyeong [Illustrated History of Hangeul 26] Professor Kim Sle-ong In 1907 (the 44th year of King Gojong’s reign), linguist and independence activist Ju Si-gyeo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반우반계(半羽半界)의 <반엽(半葉)>을 불러 분위기를 바꾸어 준, 강권순의 이야기를 하였다. 중간에 변조(變調)가 되는 이유는 분위기의 변화를 주기 위해서나, 또는 다음에 이어질 악곡을 자연스럽게 예비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강권순은 여창가곡 전곡을 「천뢰(天籟), 하늘의 소리」라는 이름으로 완창(完唱)하여 극찬받았고, 그의 주된 활동은 정가의 확산을 위해 타 장르와의 결합이나 협업(協業), 또는 대중화나 현대화 작업에 앞장서 왔다는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특히 그는 “개성(個性)을 살려, 네 노래를 불러야 된다”라는 월하 스승의 말씀을 생활화하며 살아온 여류가객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이번 주에는 가곡의 이수자이면서, 경제(京制)시조의 명인, 변진심의 소릿길 이야기로 이어간다. 월하의 이수자들이 준비한 발표 무대에서 변진심이 불러 준 노래는 ‘언약이 늦어가니’로 시작되는 우조계면조(羽調界面調)의 <이수대엽 二數大葉>이었다. 이 곡은 <우조> 음계, 또는 <평조> 음계라고도 칭하는 여창의 5곡을 부르고 난 뒤, <계면조> 악곡으로 이어가는 첫 악곡 이름이다.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열한째로 하지와 대서 사이에 든 소서(小暑)입니다. 하지 무렵까지 모내기를 끝낸 벼는 소서 때쯤이면 김매기가 한창이지요. “소서가 넘으면 새 각시도 모를 심는다.”, “7월의 늦은모는 행인도 달려들고, 지나는 원님도 말에서 내려 돕는다.”라는 속담이 전합니다. 소서가 되어도 모내기를 끝내지 못했다면 새색시건 원님이건 달려들어 도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요즈음은 농약을 치면서 농사를 지어 예전처럼 김매기, 피사리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지만, 여전히 예전 방식대로 농약 없이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허리가 휘고 땀범벅으로 온몸이 파김치가 되기도 합니다. 이때 솔개그늘은 농부들에게 참 고마운 존재이지요. 솔개그늘이란 날아가는 솔개가 드리운 그늘만큼 작은 그늘을 말합니다. 뙤약볕에서 논바닥을 헤매며 김을 매는 농부들에겐 비록 작은 솔개그늘이지만 여간 고마운 게 아닙니다. 거기에 실바람 한 오라기만 지나가도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힐 수 있지요.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소서, 남을 위한 솔개그늘이 되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이때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철이므로 푸성귀(채소)나 과일들이 풍성해집니다. 특히 초여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조선 광해조 때 문인 유몽인이 지은 《어유야담》에는 과거를 보러 한양에 왔던 한 선비가 인적이 끊긴 종가 곧 현재의 종로에서 장정 네 명에게 보쌈을 당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딘지도 모르게 끌려가 예쁜 여인과 동침할 수밖에 없었던 선비는 그 여인을 잊을 수가 없어 다시 과거를 보러 한양에 올 때 밤마다 그 종가를 서성였으나 그 장정들을 또 만날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때는 과부가 된 여인은 죽을 때까지 개가를 못 한다는 법이 있어 이런 일도 벌어질 수가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납치 형식을 띠었지만, 실제로는 과부의 친정 식구들과 미리 합의를 보고 진행하는 일종의 '기획 재혼'도 많았습니다. 가문의 체면을 구기지 않으면서 과부에게 새 삶을 열어주기 위한 사람들의 슬기로운 편법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난해서 장가를 가지 못하던 노총각들이 밤거리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보쌈 작전에 휩쓸려 혼인에 성공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산군 4년(1498년) 송헌동이라는 사람이 이 법을 폐하고 개가를 허락해달라고 임금께 청하였지만 대다수 대신이 반대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보쌈’에는 여자집에서 외간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904년(고종 41년), 충청도 노성군에 살던 ‘백조시’라는 여인이 여산 군수에게 자신의 집안 재산으로 있던 논밭을 가로챈 서 씨를 고소한 소장을 작성하는 일이 있었다. 백씨 여인은 자신의 동생이 약값 3냥 5돈을 갚지 못한 것 때문에 서 씨에게 논밭을 빼앗긴 일을 뒤늦게 알고, 집안 재산을 찾아 달라고 여산 군수에게 억울한 사연을 호소한 것이다. 그 뒤로 양측의 주장이 상반되어 여러 차례 소장이 오갔다. 1894년 고종이 한글을 국문으로 선언한 뒤에도 공문서는 한자로 작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글로 공식 문서가 소통되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더불어 세종대왕이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토로할 수 있도록 한글을 만들었는데, 이 문서 역시 그러한 정신이 구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Expressing an Injustice in Hangeul [The Illustrated History of Hangeul 25] In 1904 (the 41st year of King Gojong’s reign), a woman named Baek Jo-si, who lived in Nosoeng-gun, Chungcheong Pro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반우반계(半羽半界)로 이루어진 <반엽(半葉)>이란 노래를 불러 발표회의 분위기를 바꾸어 준 강권순의 이야기를 하였다. 한 곡 내에서 그가 부른 노래처럼 변조(變調)하는 까닭은 단조로운 분위기를 변화시키기 위함이나, 또는 이어갈 악곡을 자연스럽게 예비한다는 이유라 했다. 그는 <반엽>의 노랫말 가운데 「남하여 -」로 시작하는 가사를 골라, 깊은 발성과 특유의 호흡으로 역동미(力動美)를 느끼게 해 주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는 몇 해 전, 월하 명인에게 전수한 여창가곡 전곡을 「천뢰(天籟), 하늘의 소리」라는 이름으로 완창하고, 음반 출시를 한 바 있는데, 전문가들로부터 “여창가곡의 대(代)를 이을 보배로운 소리꾼”이라고 평가받았다고 전했다. 다음 이야기로 이어간다. 강권순은 여창가곡의 전통적인 계승에만 열심인 가객이 아니다. 오히려 타고난 성량과 후천적인 노력으로 남다른 소리 세계에 도전해 왔음을 알게 하는 창자(唱者)인데, 무엇보다도 정가의 전통적인 계승 작업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는 현대적 정가의 확장을 위해, 서양음악 등 다른 장르와의 결합이나 협업을 통해서 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