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토요일(6월 26일), 윤동주를 사랑한 일본인 서예가 다나카 유운(1957~2018) 씨의 유품전 개막식을 통해 여러 좋은 분들을 만났다. 특히 허선주, 허봉희, 민아리 님과는 시낭독을 함께 했으며 개막식을 마치고 뒤풀이에 가서도 같은 테이블에 앉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친목을 다졌다. 이날 멀리 대전에서 올라온 남상숙 님도 좋은 벗으로 기억된다. 이분들은 '창작산맥' 회원들로 헤어지면서 내게 <창작산맥> 여름호(2022년, 제40호)를 선물했다. 집에 가지고 와서 읽다가 반가운 이름이 있어 눈이 번쩍 떠졌다. 마츠오카 미도리 (p158~164) 씨와 다음 쪽에 연이어 나오는 야나기하라 야스코 (p165~175) 씨가 그들이다. 오늘은 “어머니의 무언의 가르침”을 쓴 마츠오카 미도리 씨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마츠오카 미도리 씨를 가장 최근에 만난 것은 2018년 2월 18일, 윤동주 추모회 때 함께 시낭송을 했을 때다. 성우라는 직업을 가져서인지 당시 마츠오카 씨의 시낭송은 압도적인 분위기였다. 그런 마츠오카 씨의 부모님이 경성(서울)에서 출생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태어난 곳이 용산 철도병원이라는 사실도 놀랍다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시대의 인물을 살피고 있는데 하경복(1377~1438)을 통해 세종의 마음을 읽고 있다. 곧 상대가 절실히 걱정하는 마음을 함께 나누는 세종을 만나게 된다. 하경복과 그 형제가 걱정하는 바[마음]를 세종은 평소에 함께 나눈 것이다. 세종은 참된 신하를 얻기 위해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대목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임금으로서 통상적으로 해야 할 수준을 넘어 마음을 담지 않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행동들을 수행하고 있다. 일찍이 북방의 국경을 방비할 장군으로 점찍은 하경복에 대해서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장기간 근무를 시킨다. ∙ 세종 4년 5월 10일 : 태종이 승하한 뒤 세종 4년 윤12월 26일 하경복을 함길도 병마도절제사로 보낸다. 이후 여진족과의 교류며 관리를 맡기게 된다. ∙ 세종 5년 12월 11일 : 하경복으로 우군 도총제를 삼는다. 세종 17년 내직으로 들어올 때까지 북방에서 일하게 된다. 이런 와중에 세종은 하경복에게 위로와 격려의 편지를 보낸다. 세종의 편지 세종 6년 11월 29일: (함길도 도절제사 하경복에게 더 머물기를 바라는 유서를 보내다) 내시 한홍(韓弘)을 보내어 유서(諭書, 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출강>의 작곡자 김용실이 거문고 음악의 활성화를 위해 곡을 지었다는 이야기와 이민영이 25현 가야금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하고, 연주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거문고 원곡을 25현 가야금으로 편곡하면서 이민영은 가야금 <산조>에 보이는 연튀김 주법이라든가, 양손을 동시에 활용하는 수법 등을 다양하게 살려 보았다고 한다. 가야금은 신라시대 이래 현재까지 열두 줄을 지닌 현악기이다. 이를 법금(法琴)이라 부른다. 주로 정악(正樂)에 사용되어 오다가 19세기 중엽, 산조가 연주되면서 가야금의 체제가 변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래 산조(散調)라는 음악은 <헛튼가락>, 또는 <흐트러진 가락>이라고 했을 만큼, 연주자의 즉흥성이 강조되는 음악이다. 더욱이 가야금 산조의 경우에는 줄을 풀고 조이는 능력을 통해서 듣는 사람들을 긴장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이완시켜 주는 즉흥적 요소를 발휘하는 민속기악의 대표적인 음악이다. 산조의 음악형식은 만(慢)-중(中)-삭(數), 곧 느리게 시작해서 보통의 속도를 지나 더욱 빠르게 이어가는 틀을 지닌 음악이다. 이처럼 즉흥으로 진행되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인 형제,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와 아사카와 노리타카 노리타카(1884∼1964)는 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한 사람들이다. 고향인 일본 야마나시에서 떠나와 한국에서 산 형제는 누구보다도 조선문화에 매료되었고 조선인의 진정한 친구였다. 특히 동생 아사카와 다쿠미가 마흔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조선인들은 서로 그의 상여 메기를 자청했을 정도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지금 망우리공원 묘지에 잠들어 있으며 해마다 한국인들은 그의 ‘조선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그가 죽은 기일에 무덤에서 모여 추모제를 연다. 6월 18일 도쿄 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기사에 따르면 “주일한국문화원(원장 공형식)이 한일 우호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는 아사카와 형제 답사 행사를 형제의 고향인 일본 야마나시현에서 18일 열었는데 이를 위해 30명의 정원을 모집한바 있다. 그런데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412명(일본인 387명·재일 한국인 25명)이 신청해 추첨으로 참가자를 선정했다.”고 문화원 측의 발표를 토대로 보도했다. 아사카와 다쿠미 형제에 대한 한·일 간의 엄청난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정된 30명은 야마나시현 호쿠토시에 있는 아사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이민영의 25현금 독주회의 마지막 곡은 거문고 독주곡 <출강>이었다. 12명의 출연자가 이 곡을 위한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무대에 올라 가야금에 관한 이야기, 특히 우륵이라는 악사와 진흥왕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야금을 품고 신라에 투항한 우륵은 그곳에서 주지, 계고, 만덕 등 3인에게 가야금을 가르쳤고, 그 제자들이 임금 앞에서 연주하니 임금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나 신하들은 가야국은 망한 나라이고, 가야금은 망한 나라의 음악이라 이를 신라에서 취할 바 못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때 임금이 신하들에게 <악하죄호-樂何罪乎> 곧 가야왕이 음란해서 정치를 돌보지 않아 스스로 자멸한 것이지, <음악이 어찌 죄가 된다고 그러는가>라고 조용하게 타일렀다.” 이민영의 25현금 독주회에서 마지막으로 연주된 곡은 주인공 자신이 스스로 편곡한 12인의 중주곡 <출강>이었다. 실제 연주자들이 직접 작곡하거나 편곡을 하는 경우는 매우 흔한 일이고, 때로는 편곡을 통해 원곡보다도 더 유명해진 음악이 하나둘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만큼 연주자들이 다루고 있는…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시대의 인물을 살피고 있는데 이번 하경복(1377~1438)을 통해 세종의 마음을 읽는 경우다. 곧 상대가 절실히 걱정하는 마음을 함께 나누는 세종을 만나게 된다. 하경복과 그 형제들이 걱정하는 바[마음]를 세종은 평소에 함께 나눈 것이다. 하경복의 본관은 진주이며, 임오년 태종 2년 1402에 무거(武擧) 급제하여 여러 차례 벼슬을 옮겨 상호군(上護軍)에 이르고, 경인년 태종 10년(1410)에 다시 중시무거(重試武擧, 10년에 한 번 보던 무과 과거시험)에 합격 첨총제(僉摠制, 무과 정3품 벼슬)에 발탁되었으며, 얼마 안 되어 경원진(慶源鎭)으로 나갔다. 태종 14년(1414)에 동지총제로 승진, 이어 함길도 도절제사로 나갔다. 초기 하경복은 천성이 호탕한데 태종 10년 길주로 발령이 난다. 그동안은 한양에서 잘 지내고 있다가 4군 6진이 있는 한반도 최북단이며, 최전방 동북면에 발령이 난 것이다. 하지만 길주 발령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때부터 하경복의 최일선 인생이 시작되는데, 길주로 갔다가 경원으로 갔다가 한반도 맨 위 경성으로 발령이 난다. 그러다 아예 함길도병마절제사에 임명된다. 최전방 두메 전역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 이어 이민영의 25현금 독주회 관련 이야기로 이어간다.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으로 해서 초등학교 때 성악,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예술고에 진학했고, 대학을 거치며 김계옥 명인을 만날 수 있었던 배경이, 오늘의 25현금 독주회를 열 수 있는 바탕이 된 것이리라. 간단하게 연주소감을 남겨 보기로 한다. 첫 번째 곡, ‘꽃피는 이 봄날에’는 전반적으로 깔끔한 터치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선율처리가 돋보였고, ‘초소의 봄’은 특유의 음색과 빠른 장단형태가 봄의 정취를 충분히 느끼게 해 주었다. 세 번째 연주된, ‘달빛 밝은 이 밤에’라는 곡은 북한의 가극, ‘금강산의 노래’에 나오는 서정적인 노래곡인데, 이를 가야금을 위해 편곡한 곡이다. 달 밝은 밤의 아름다운 경관이 다소 애처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선율의 흐름이 단조(短調)의 느낌을 충분히 살려주면서 강약이나 음양(陰陽)의 대비, 그리고 다양한 주법이 가미된 점이 특징이다. 네 번째 작품, ‘황금산의 백도라지 4중주’는 경기민요 ‘도라지’를 25현 금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새롭게 편곡하면서 음역을 확대했고, 또한 연주 기법에도 많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월세로 카페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꿈을 물어보면 하나같이 자신의 건물을 갖고 영업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예컨대 1층은 레스토랑 2층은 까페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3층에 수경채소를 기르는 농장(?)을 소유하고 있다면 어떨까? 수경농장에서 재배된 신선하고 청정한 채소를 레스토랑의 재료로 쓴다. 아울러 이러한 채소를 원료로 해서 만든 케잌이나 요리를 레스토랑에서 파는 방식이다. 말만 들어도 흥미롭고 왠지 장사가 잘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러한 멋진 생각을 실현하고 사람이 일본에 있어 화제다. 요코하마시의 기비카요(吉備カヨ) 사장(56)이 그 주인공이다. 기비카요 사장은 3층의 수경재배 농장에서 10종류 정도의 허브 등 잎채소를 키워 이를 재료로 한 케잌과 요리를 만들어 1층 카페 겸 레스토랑 아이코닉 스테이지에서 판다. 기비카요 사장은 5층 규모의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데 3층을 수경재배 농장(1차 산업)으로 개장하고 2층에서 요리나 과자 등으로 가공하여 (2차 산업) 1층의 매점이나 카페에서 판매(3차 산업)하고 있으며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이런 발상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엊그제 5월 28(토)일 저녁 5시, 남원 시내의 지리산 소극장에서는 가야금 연주자, 이민영의 25현금 독주회가 열려 가야금 음악의 애호가들에게 열띤 환호를 받았다. 25현금이란 기존의 12현 가야금을 개조, 개량하여 25줄로 확대 제작한 가야금을 말한다. 과거에는 오른손가락으로는 줄을 뜯거나 튕기고, 왼손으로는 울려진 줄을 흔드는 방법으로 연주를 해 왔으나, 25현은 양손을 이용하여 가락을 연주하는 등, 역할이나 음악 효과가 달라진 악기이다. 판소리 춘향전의 본향이고, 춘향제로 유명한 전통음악의 도시, 남원 골에서 25현금 독주회를 준비해 온 이민영은 어떤 연주자인가? 이민영은 어려서부터 가야금을 배웠으나, 국립전통예고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야금을 전공하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중앙대에서 학사, 단국대에서 석사, 이어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젊은 국악인이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국립 남도국악원의 비상임 단원을 지낸 것은 물론, 남원에 있는 국립 민속국악원에서 일반인 국악강좌 가야금 강사, 한국 전통문화고교 영재예술원의 가야금 강사, 구리여중, 남원중, 용성초와 그 밖에 여러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해 왔으며, 근래에는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김돈(1385-우왕11~1440-세종22)은 세종시대의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과학자다. 세종을 보필한 인물로는 행정의 달인 영의정 황희. 정계의 음유시인 맹사성, 예조 판서 유관, 병조판서 조말생 그리고 국방의 김종서, 학문의 주춧돌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등 당대의 개성 넘치는 석학들이 있었다. 이런 석학들 속에 여러 분야에서 말하자면 만능선수로 세종을 보좌한 인물로 김돈이 있다. 생애 및 활동사항 ∙태종 17년(1417) : 생원으로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직제학과 승지를 거쳐 벼슬이 참판ㆍ좌승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1418년 8월 세종이 왕위에 오르자 1년 전에 실시했던 식년시에서 김돈이 급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세종은 김돈을 불러 ‘내가 경을 보고자 했으나 경이 나를 피하더니 이제 나의 신하가 되었구나’라고 반가워하며 김돈을 집현전 박사에 중용하고 이후 성균관 사성, 종학박사 등에 제수하였다. 충녕대군 시절 어릴 적부터 김돈의 학문적 명성을 듣고 만나기를 기다렸는데 김돈이 거절했다고 한다. 당시의 정치 상황과 관계가 있을 때 권력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세종 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