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가을이 되면 뫼와 들에 푸나무(풀과 나무)들이 겨울맞이에 바쁘다. 봄부터 키워 온 씨와 열매를 떨어뜨려 내보내고, 뿌리와 몸통에다 힘을 갈무리하느라 안간힘을 다한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봄여름 내내 쉬지 않고 일한 잎은 몫을 다했다고 기꺼이 시들어 떨어지고, 덕분에 사람들은 푸짐한 먹거리를 얻고 아름다운 단풍 구경에 마냥 즐겁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풀은 땅속에서 뿌리만으로, 나무는 땅 위에서 꾀벗은 몸통으로 추위와 싸우며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봄이 오면 푸나무는 또다시 ‘움’을 틔우고 ‘싹’을 내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게 마련이다. · 움 : 풀이나 나무에 새로 돋아 나오는 싹. · 싹 : 씨, 줄기, 뿌리 따위에서 처음 돋아나는 어린잎이나 줄기. ... 《표준국어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움’과 ‘싹’을 거의 같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움’과 ‘싹’은 말이 다르듯이 서로 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그들 둘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비슷해서 마음을 꼼꼼히 지니고 바라보지 않으면 가려내기 어려울 뿐이다. 푸나무의 목숨이 처음 나타날 적에는 씨앗에서 거나 뿌리에서 거나 줄기에서 거나 ‘눈’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조선조 임금의 정치에서 어떤 논제가 올라오면 논의를 통해 신중히 처리되겠지만 세종 때 기록을 보면 ‘반복사지’의 표현이 눈에 띈다. ‘반복사지(反復思之)’는 ⟪조선실록⟫에 모두 129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세종 때 51건, 다음은 성종 19건이고 나머지 임금에서는 한두 건이다. 여기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어떤 과제를 신중히 처리한 것인지 아니면 실록의 해당 기사 기록 표현상 ‘신중히 처리했다’라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답은 실록 기사 세종조에서 찾을 수 있다. 한결같이 이런 ‘반복사지’의 표현이 쓰인 기록은 일반 사건보다는 신중을 요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사람의 범죄 유무, 민생과 직결되는 답험손실법에 관련된 문제, 세자의 남면(南面) 문제, 불교의 폐단, 저화 사용문제 등 당시 정치 현안으로서는 변화나 변혁과 관계되는 신중한 토론을 요 하는 과제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를 숙고 처리했다는 실증이다. 그 예들의 기사를 보자. (삼성에서 이종무의 공신권을 걷어 들이도록 상소하다.) 삼성(3개의 최고의 의정 기관)에서 상소하기를, "이종무는 용서할 수 없는 죄를 범하였는데, 낮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가면 안 쓴 처용(處容)이 바로 심소(心韶)”라는 이야기와 5주기 추모문화제 관련하여 전시회와 세미나, 그리고 처용랑(處容郞)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처용은 본래 용왕의 아들이었으나 인간으로 화신(化身)하여 경주에서 왕정을 돕고 있었는데, 부인의 예쁜 미모를 탐하는 역신(疫神)이 인간으로 화신하여 동침(同寢)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태연하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이에, 역신이 감동하여 사과하고 물러갔으며 이후에는 나라 사람들이 처용의 화상을 대문 앞에 붙여 놓았는데, 역신들이 얼씬거리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심소 선생을 일러 <가면 안 쓴 처용>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것도, 어찌 보면 항상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는 처용의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이리라. 이번 주에는 생전의 심소 선생과 교분을 나누었던 많은 지인과 제자들이 선생의 삶과 예술을 회고하며 보내온 추억담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 일부를 이 난에 소개해 보기로 한다. 먼저 문화예술평론가 구희서의 <소중한 궁중무용의 생명줄>이라는 글의 한 대목이다. “전승계보가 뚜렷하면서도 정작 살아있는 춤의 숫자는 귀한 분야다.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울도 담도 없는 집에 시집 삼 년을 살고 나니……” 이렇게 비롯하는 <진주 난봉가>는 지난 시절 우리 아낙네들의 서럽고도 애달픈 삶을 그림처럼 이야기하는 노래다. ‘울’이나 ‘담’이나 모두 삶의 터전을 지켜 주고 막아 주는 노릇을 한다. 이것들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은 그 안에서 마음 놓고 쉬고 놀고 일하며 살아갈 수가 있다. 울도 담도 없다는 것은 그만큼 믿고 기대고 숨을 데가 없이 내동댕이쳐진 신세라는 뜻이다. ‘울’은 집이나 논밭을 지키느라고 둘러막아 놓은 가리개의 하나로, ‘바자’로 만드는 것과 ‘타리’로 만드는 것의 두 가지가 있었다. ‘바자’는 대, 갈대, 수수깡, 싸리 따위를 길이가 가지런하도록 가다듬어 새끼줄로 엮거나 결어서 만든다. 드문드문 박아 둔 ‘울대’라고 부르는 말뚝에다 바자를 붙들어 매어 놓으면 ‘울바자’가 된다. ‘타리’는 나무를 심어 기르거나 다 자란 나무를 베어다 세워서 만든다. 탱자나무, 잔솔나무, 동백나무 같은 나무를 심어서 기르면 저절로 자라서 ‘생울타리’가 되고, 알맞게 자란 나무를 베거나 가지를 쳐서 세우고 울대 사이를 새끼줄로 엮어서 묶으면 그냥 ‘울타리’가 된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궁중(宮中)음악과 춤의 명인, 99살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심소, 김천흥 명인은 천진난만한 미소와 함께 유머와 재담(才談)으로 상대와 주위를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 특히 낮은 자세로 임하는 겸손의 미덕을 실천해 온 분이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나는 지금도 심소(心韶), 김천흥 선생을 떠 올리면 잊히지 않는 말과 함께 그 표정이 떠오르는 것이다. 바로 지그시 눈을 감은 선생이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고 생활해 왔다는 자체가 참으로 망극하다”라는 진심어린 표현이다. 얼핏 듣기엔 누구나 갖는 마음씨처럼 보이지만, 액수의 다과(多寡)를 떠나 선생의 순수하고 진심이 담긴 마음씨를 엿보게 만드는 말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선생이 장수할 수 있었고, 건강한 삶을 영위해 온 배경도 자세히 살펴보면 건강식이나 운동이 아니고. 바로 국가와 이웃에 감사하는 마음과 겸손의 미덕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왔다는 점이 주된 요인이 아닐까 한다. 벌써 10여 년 전이다. 심소 김천흥 선생의 5주기 추모문화제가 <국립국악원>과 <심소 김천무악예술보존회> 공동주최로 열린 바 있는데, 당시의 기억을 되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한 인물이 앉아 있습니다. 그는 붓을 잡고 있습니다. 두꺼운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데, 붓을 잡은 손을 보니 흔히들 쓰는 오른손이 아닌 왼손입니다. 이제 그는 갈아놓은 먹물이 담긴 벼루에 붓을 쿡 찍습니다. 곧이어 툭툭 찍듯이 획을 시작합니다. 달 ‘월(月)’ 자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금세 비슷할 ‘사(似)’ 자와 붉을 ‘단(丹’) 자, 그리고 팔을 튕기듯 움직여 빛 ‘광(光)’을 만듭니다. 그렇게 그 인물은 오직 왼손에 쥔 붓 하나로 칠언(七言) 연구(聯句) 하나를 써냈습니다. 달은 불그레한 빛을 띠며 높은 고개서 나오고 月似丹光出高嶺 학은 매화나무가 있기에 앞산에 머무르는구나 隺因梅樹住前山 청나라 때 대학자 완원(阮元, 1764~1849)이 항저우[杭州] 갈림선원(葛林禪院)에 써 붙였다는 구절입니다. 그러고는 작은 붓을 들어 다시금 먹을 묻히고, 큰 글자 옆에 작은 글씨로 낙관(落款)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갑니다. 이 일련(一聯)은 시의 경지가 매우 높아 마치 우아한 사람을 대하며 그림을 읽는 것만 같다. 마침 초우(艸禺) 선생이 글씨를 부탁하기로, 검여(劍如)가 이에 응한다. 此一聯 詩境極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우리’라는 낱말은 ‘나’를 싸잡아 여러 사람을 뜻하는 대이름씨다. ‘여러 사람’에는 듣는 사람이 싸잡힐 수도 있고 빠질 수도 있다. 이런 대이름씨는 다른 겨레들이 두루 쓰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우리’라는 대이름씨 낱말은 다른 대이름씨와 마찬가지로 매김씨로도 쓰인다. ‘우리 집, 우리 마을, 우리나라, 우리 회사, 우리 학교, 우리 아기, 우리 어머니……’ 이런 매김씨 또한 남다를 것이 별로 없는 쓰임새다. 그러나 외동도 서슴없이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라 하고, 마침내 ‘우리 아내’, ‘우리 남편’에 이르면 이런 매김씨야말로 참으로 남다르다. 그래서 안다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건 잘못 쓴 것이고 틀린 말이라는 사람까지 나왔다. 하지만 여기 쓰인 매김씨 ‘우리’는 나를 싸잡아 여러 사람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듣는 사람을 싸잡아 쓰는 것도 아니며, 다만 나와 대상을 싸잡아 쓰는 것이다. 나와 대상을 싸잡으면 둘이니까 ‘우리’가 되는 것이지만, 드러내는 뜻은 ‘둘’이 아니라 ‘서로 떨어질 수 없이 하나를 이루는 깊은 사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 땅에서 뿌리 깊게 얽혀 살아온 우리 겨레의 자랑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금 우리음악이야기는 궁중(宮中) 악무(樂舞)의 대가였던 심소(心韶) 김천흥(1909-2007) 명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선생은 1922년 14살 때, 5년 과정이었던 <이왕직 아악부원 양성소(李王職雅樂部員養成所)> 제2기생으로 입학하여 정규과정을 밟고 졸업하면서 악사 생활을 시작했다. 하규일(河圭一)에게 정가(正歌), 한성준(韓成俊)에게 민속무를 배웠으며, 1955년도에는 <김천흥 고전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하면서 ‘처용랑(處容郞)’, ‘만파식적(萬波息笛)’과 같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심소 선생에게 악기나 춤을 배운 제자들은 선생은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하였고, 유머가 풍부하였으며 항상 최선을 다하고 겸손하게 사셨다는 것이다. 앞에서 일부 글쓴이와의 대화를 소개하였거니와 심소 선생은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 졸업한 뒤, 곧바로 아악부에 취직을 했고 그로부터 정규직, 임시직을 가리지 않고 국록(國祿)을 받고 살아왔다는 자부심은 참으로 대단했던 것 같다. 특히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으로 받아왔다는 자체가 망극하다는 표현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고, 일하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이 뜨거운 여름 어제(23일) 내내 일본 열도를 달구는 뉴스가 있었으니 바로 '여름 고시엔'으로 불리는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이야기다. 여기서 최종 우승자는 다름아닌 재일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그 우승컵을 높이 치켜들었다. 교토국제고는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제106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에서 간토다이이치고를 연장 끝에 2:1로 꺾었다. 제대로 된 야구 구장 하나 없는 재일동포 고등학생들이 올린 쾌거는 그야말로 재일동포는 물론 고교 야구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에게도 감동을 주었다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본교는 1947년에 재일 한국인의 자녀를 위한 중학교로 설립되어 1963년에 고등학교를 증설하여 교토에서 재일 동포의 민족교육의 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2004년에 일본 정부가 인정하는 일조교(日朝校, 재일조선인과 일본인의 학교)가 되어, 교명을 교토국제중학교・고등학교로 바꾸었습니다. 건학 이래의 교육목표인 세 가지 정신 '자존', '연마', '공생'은 현재도 변함없이 인권존중과 공생사회의 실현을 짊어질 풍부한 국제성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는 것을 교육의 기본 목표로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옳은말’과 ‘그른말’은 국어사전에 오르지 못했다. 낱말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참말’과 ‘거짓말’이 국어사전에 오른 낱말인 것처럼, ‘옳은말’과 ‘그른말’도 국어사전에 올라야 마땅한 낱말이다. 우리 겨레가 이들 두 낱말을 두루 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옳은말’과 ‘그른말’은 서로 맞서, ‘옳은말’은 ‘그른말’이 아니고 ‘그른말’은 ‘옳은말’이 아니다. ‘옳은말’과 ‘그른말’이 가려지는 잣대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있어야 하는 것(이치, 당위)’이다. 있어야 하는 것과 맞으면 ‘옳은말’이고, 있어야 하는 것과 어긋나면 ‘그른말’이다. ‘있어야 하는 것’이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돌아가는 세상살이에 길을 밝혀 주는 잣대다. 사람들이 동아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곳에서는 언제나 어디서나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내려고 말잔치가 벌어지고 삿대질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자리에는 어김없이 ‘옳은말’과 ‘그른말’이 사람들의 입에서 뒤섞여 쏟아지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른말’은 하나둘 밀려나 꼬리를 감추고 마침내 가장 ‘옳은말’이 홀로 남아 말잔치를 끝낸다. 그리고 끝까지 남았던 ‘옳은말’은 드디어 삶의 터전으로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