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아름답다’는 그림씨 낱말이다. 그것을 국어사전들이 어떻게 풀이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자. 1) ① 사물이 보거나 듣기에 좋은 느낌을 가지게 할 만하다. ② 마음에 들게 갸륵하고 훌륭하다. 2) ① 사물, 현상의 상태나 모양이 조화를 이루어 마음에 만족한 느낌을 자아낼 만큼 이쁘고 곱다. ② 들리는 소리가 감정ㆍ정서에 맞게 조화를 이루어 마음에 만족한 느낌을 자아낼 만하다. ③ (사람들 사이의 관계 곧 언행, 소행, 덕행, 도덕, 동지애, 협조 정신 등이) 사람들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바르고 훌륭하다. 3) ①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 ②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 보다시피 1)《우리말큰사전》과 3)《표준국어대사전》은 두 몫으로 나누어 풀이하고, 2)《조선말대사전》은 세 몫으로 나누어 풀이해서 크게 다른 듯하다. 그러나 1)《우리말큰사전》과 3)《표준국어대사전》이 ‘보는 것(눈)’과 ‘듣는 것(귀)’을 하나로 묶어 풀이하고, 2)《조선말대사전》에서는 그것을 따로 몫을 나누어 풀이했을 뿐이기에 속내로는 다를 것이 없다.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상앗빛을 띠는 이 백자 대접은 입술이 밖으로 살짝 벌어지고 몸체의 옆면은 완만한 곡선을 그립니다. 대접 바깥 면에는 검은색의 가는 선으로 연꽃과 넝쿨무늬를 빙 둘러 장식했습니다. 대체로 만듦새와 다듬새가 좋고 굽 깎음도 단정하며, 형태와 장식 무늬에서 매우 세련된 품격을 보여주는 대접입니다. 이 대접은 중국 원(元)ㆍ명(明) 백자의 영향을 받은 경질(硬質) 백자와는 달리 고려백자의 흐름을 잇는 조선 초기 연질(軟質) 백자의 전형적인 사례로서, 상감(象嵌) 기법으로 무늬를 장식한 조선시대 상감백자(象嵌白磁)입니다. 청자의 시대였던 고려를 지나 조선시대가 되면 바야흐로 도자기는 청자에서 백자로 그 중심이 옮겨갑니다. 유교를 내세웠던 조선은 임금의 그릇으로 백자를 택하였고, 유교 이념과 순백의 백자는 너무나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순백자 말고도 상감백자, 청화백자(靑畵白磁), 철화백자(鐵畵白磁), 동화백자(銅畵白磁) 등 다양한 백자를 만들었습니다. 이 가운데 상감백자는 고려시대 상감 기법 전통을 이어받은 백자입니다. 이 연꽃 넝쿨무늬 대접이 만들어진 조선 초기에는 고려청자를 계승한 조선 분청사기가 전국에서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 때 사간원에서 성균관 학유 조득인의 직임을 거두기라는 상소를 두고 논의가 있었다. 사간원에서 상소하기를, 학정(學正)ㆍ학록(學錄)이란 벼슬은 유생(儒生)의 사표(師表)로서, 인재의 현능(賢能, 어질고도 재간이 있음) 여부와 풍속의 아름답고 고약한 것이 모두 이와 직접 관련되고 있으므로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 등이 이조에서의 각 품에 제수한 문서를 접해 보았는데, 새로 급제한 조득인(趙得仁)으로 성균관 학유(學諭)를 삼은 적이 있습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염치(廉恥)라는 것은 사풍(士風, 선비의 기풍)의 가장 큰 근간이옵고, 장리(贓吏, 뇌물받거나 횡령한 자)는 중인이 경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탐관오리와 불법한 인간은 비록 그 후손까지라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하께옵서 특별히 관대하옵신 도량과 어떤 추한 것도 다 포용하옵시는 덕으로 장리의 자손까지도 또한 다시 등용하시니, 이는 〈아름다운 덕은 길이 그 후손까지 뻗어가게 하시고, 악한 일은 그 자신에만 그치게 하옵시는〉 아름다운 뜻으로 아옵니다. 그러하오나, 조득인은 장리인 조진(趙瑨)의 손자입니다. 어찌 성균관 학정·학록의 직임에 합당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세상의 모든 영욕 다 내려놓고, 대나무로 만든 지팡이, 짚신. 그리고 물 담는 표주박 차고 강산풍경을 찾는 <죽장망혜>를 소개하였다. 장저와 걸익이 밭을 갈고 있는 모습과 바둑 두는 사호(四皓)선생, 그리고 기산(簊山) 넘어 영수(潁水)에서 허유(許由)가 귀를 씻는 모습이나, 소부(巢父)가 물을 마시려는 소의 고삐를 잡아끄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이야기와 “어화 벗님네야, 빈천(貧賤)을 한(恨)치 말고 자락(自樂)하며 지내보세.”로 끝맺는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에는 노랫말이 아름답거니와 그 가사 위에 얹힌 가락들이 친숙해서 비교적 널리 불려지고 있는 <운담풍경근오천(雲淡風輕近午天)>, 줄여서 <운담풍경>이라는 단가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이 노래 역시, 한문으로 짜인 부분이 많이 나타나고 있기는 해도, 그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기에, 천천히 읽어나가면서 멋진 풍경을 보는 듯한 친근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작 부분의 노랫말을 소개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풀이를 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운담풍경근오천(雲淡風輕近午天) 소거(小車)에 술을 싣고, (구름은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소갈머리’는 국어사전에 어엿하게 올라있는 낱말이다. 국어사전들이 뜻을 뭐라고 풀이해 놓았는지 알아보자. 1) ①‘마음속’의 낮은말. ②‘마음보’의 낮은말. 2) ‘마음이나 속생각’을 얕잡아 이르는 말. 3) ①마음이나 속생각을 낮잡아 이르는 말. ②‘마음보’를 낮잡아 이르는 말. 세 국어사전이 한결같이‘ 소갈머리’를 ‘마음, 마음속, 마음보, 속생각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 풀이해 놓았다. 그런데 이들 풀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 마음속, 마음보, 속생각’과 ‘낮잡아 이르는 말’의 두 덩이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또 ‘소갈머리’가 ‘소갈’과 ‘머리’라는 두 낱말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래서 드디어는 ‘소갈’이 곧 ‘마음, 마음속, 마음보, 속생각’이며 ‘머리’가 곧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것도 드러난다. 그러면 ‘소갈’이 어떻게 ‘마음, 마음속, 마음보, 속생각’인가? 이 물음은 연재 글을 처음부터 읽어 왔으면 벌써 풀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앞에서 이미 ‘소갈’은 곧 ‘속알’이며, ‘속알’은 또 ‘마음의 알’이고, ‘마음의 알’은 곧 ‘생각과 뜻’이라고 밝혀 놓았기 때문이다. 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삼월 스무하루 봄이라고는 하지만 바람이 차다 저 땅밑 어딘가에서 새싹들의 꿈틀대는 몸부림이 꽃샘추위에 멈칫 거린다 광화문 돌담 밑 어디선가 날라온 민들레 씨앗의 움트는 용트림 삼월이 가기 전 그 모습을 보고싶다. - 이 윤 옥 -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단가(短歌)>는 느리거나 빠르지도 않아, 긴소리를 하기 전, 목 상태를 점검하기 위한 적절한 노래다. 심리적, 신체적 조정과 나아가 고수(鼓手)와의 호흡, 객석의 호응과 분위기 조절을 위해 부르는데, 중심 내용은 자연 풍경이나 인생의 덧없는 삶을 노래한다. 그리고 맺는 부분은 놀아보자’, ‘놀고 가자’ 등으로 현실을 즐기며 살아가자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죽장망혜>라는 단가는 세상의 모든 영욕 다 내려놓고, 짚신과 지팡이, 물병 하나, 허리에 차고 이름난 강산(江山)의 풍경을 찾아다니며 옛 고사들을 떠올리는 노래인데, 시작 부분의 노랫말이 매우 친숙하다. “죽장망혜단표자(竹杖芒鞋單瓢子)로 천리강산 들어가니, 폭포도 장히 좋다마는 여산(廬山)이 여기로다.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은 엣말 삼아 들었더니, 의시은하낙구천(疑是銀河落九天)은 과연 허언(虛言)이 아니로다. 그 물에 유두(流頭)하여 진금(塵襟) 씻은 후로 석경의 좁은 길로 인도한 곳 내려가니, 저익(沮溺)은 밭을 갈고, 사호 선생 바둑을 둔다. 기산(簊山)을 넘어 들어 영수(潁水)로 내려가니, 허유(許由)는 어찌하여 팔 걷고 귀를 씻고,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서낭’은 사람에게로 와서 사람과 더불어 지내면서 사람이 도움을 청하면 슬프고 괴로운 삶을 어루만져 기쁘고 즐거운 삶으로 바꾸어 주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이다. 아직도 온 나라 곳곳에 지난날 삶의 자취가 남은 마을에는 서낭의 자취도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조금씩 남아 있다. 우리 고향에도 여태 ‘당산’이 있는데, 거기에는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 베어 버릴 때까지 아름드리 ‘당나무’가 한 해 내내 왼새끼를 발목에 두르고 서 있었고, 당나무가 서 있는 동산 위에는 일제가 마지막 발악을 하며 헐어서 불태우던 날까지 ‘당집’이 있었다. ‘당집’은 서낭이 와서 머무는 집이라 ‘서낭당’이 본디 제 이름이고, ‘당나무’는 서낭이 하늘과 땅으로 오르내리도록 사다리 노릇을 하는 거룩한 나무이며, ‘당산’은 서낭당과 당나무가 있던 동산을 두루 싸잡아 서낭이 노닐던 거룩한 터전이었다. 서낭을 서낭당 바깥으로 모셔 내려면 마땅히 머물 자리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서낭대’다. 정월 초나흘부터 보름까지 마을에 지신밟기가 벌어지면 풍물패 맨 앞에는 언제나 서낭이 내린 서낭대가 앞장서서 이끌었다. 초나흘 새벽 그해 당산을 책임진 산주를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이 임금이 되면서 내세운 정치의 목표는 백성이 우선이라는 ‘시인발정(施仁發政)’이나 ‘민위방본(民爲邦本)’ 등으로 잘 나타나 있다. 그와 동시에 강조한 것은 정치를 같이 논하는 신료는 물론 일반 백성과의 소통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의 전제 조건으로 볼 수 있는 자연은 먼저 가까이 있는 신료들과 대화를 나눔은 물론 토론을 꺼리지 않는 태도와 성격이었다. 그 하나의 예로 토론을 하되 일이 풀리지 않으면 종일이라도 토론을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었다. (경연관을 합하여 한 번으로 하고 강한 후에는 경연청에서 토론하게 하다) 경연에 나아가니 동지경연(同知經筵) 탁신(卓愼)이 아뢰기를, "근래에 경연관(經筵官)이 번(番)을 나누어 나아와서 강(講) 하는데, 모두 다른 사무를 맡은 관계로 많은 글의 깊은 뜻을 강론(講論)할 여가가 없어서, 나아와서 강(講)할 즈음에 상세히 다하지 못하게 되오니, 바라건대 지금부터는 합하여 한 번(番)으로 하여, 나아와서 강한 후에는 경연청(經筵廳)에 물러가서 종일토록 토론(終日討論)하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 말을 좇고, 또 점심밥을 주도록 명하였다.(⟪세종실록⟫즉위년12/17) 어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은사모 동호인들의 판소리사랑 이야기를 하였다. 판소리를 배운다는 그 자체가 곧, 평생을 함께하는 친구를 만나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 판소리 배우러 가는 그 시간이 너무나 설레며, 기다려진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처럼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였다는 감상도 덧붙였다. 판소리 대중화를 위해 유튜브를 하는 노은주 명창의 구독자 수가 3,000여 명, 조회 수는 100만을 헤아린다는 이야기가 바로 오늘의 판소리를 보여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그들 회원이 즐겨 배우고 있는 판소리는 주로 <흥보가>고, 때로는 <춘향가>, <심청가>의 눈 대목, 소위 널리 알려진 대목들도 배운다고 했다. 현재까지 불리고 있는 <흥보가>는 너무도 잘 알려진 노래로, ‘박타령’이라고도 하는데.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착하게 살면 그 끝이 좋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이 교훈적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법한데, 그런데도 왜 놀부와 같은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그렇게 많아 보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각설하고. 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