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 속풀이에서는 당대의 거물 정치인들이 삼청동 송병준의 별채에서 다나베를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으며 주 종목은 가곡과 궁중무용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자리에 참석자로 송병준, 이완용, 박영효 등이 거명되는데, 송병준은 일진회를 이끌며 고종의 퇴위와 한일 강제병합에 앞장섰던 인물이고, 이완용은 을사조약의 체결을 지지하는 등, 민족을 배반하는 일을 자행한 인물이며 박영효도 일제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친일파들이었다. 또한 그 자리에서 연주된 음악은 가곡과 궁중의 무용이었는데, 가곡을 선정한 배경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노래로 조선조의 지식인들이 즐기던 점잖은 노래였기에 일본인에게 음악적 수준을 과시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이며, 가곡의 특징으로 형식이 세련되고 정제되어 있다는 점, 16박과 10박형 장단 그 어느 것도 일체의 즉흥성이나 변형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 춘앵전(문화재청) 이처럼 가곡의 형식이나 장단은 매우 엄격한 편이다. 가곡은 5장 형식인데 이것은 시조시의 3형식을 확대한 것이다. 가곡은 세피리나 대금, 거문고, 가야금 등의 관현악 반주를 동반하기 때문에 노래가 시작되기 전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한국에는 남의 눈에 들보보다 내 손톱 밑에 가시가 더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상대에게 닥친 큰일이라 하더라도 내 손톱 밑에 가시가 더 긴급하다는 얘기 일 것이다. 나는 왠지 일본의 두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겐자부로 (大江健三, 1935~)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소설가 오에겐자부로는 23살의 나이로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다카와상(第39回芥川賞) 수상을 시작으로 숱한 상을 받고 이어 1993년 일본인으로는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유명한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게 지적장애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손톱 밑에 가시인 아들을 둔 뼈저린 체험이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개인적 체험을 낳게 하고 훗날 그 가시는 작가 자신은 물론이고 아들의 삶도 바뀌게 했으니 본인에게는 고통스러웠겠지만 그 가시야말로 작가로 하여금 평범한 사람이 넘볼 수없는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 아니었나 싶다. ▲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겐자부로(왼쪽), 지적장애를 극복하고 작곡가가 된 아들 히카리의 음반 표지 오에겐자부로의 아들 히카리(大江光, 1963~)는 지적장애를 안고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극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다나베의 기행문 중 1921년 4월 11일에는 그가 총독부에 보관되어 있던 국악 관련 악서들을 살펴 본 다음, 삼청동에 있던 송병준의 별저에 초대되어 전통가곡과 궁중무용 등을 감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난주에는 그가 살펴본 관련 자료들 중에서 《세조실록『(世祖實錄)》 악보를 비롯하여 성종때 편찬된 음악총서 《악학궤범(樂學軌範)》이나 《악통(樂通)》, 정약용의 《악서고존(樂書孤存)》, 《악장등록(樂掌騰錄)》 등과 그 외 각종 《의궤(儀軌)》 등 한국음악의 역사를 알게 하는 귀중한 자료 등을 소개하였다. 다나베는 그 날 오후, 삼청동 송병준의 별저에 초대되었고, 그곳에서 초수대엽이나 소용 등 가곡 여러 곡과 춘앵전을 비롯하여 장생보연지무, 검무, 사고무 등과 같은 악무(樂舞)로 그를 위한 최고의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 1876년(고종 13) 박효관(朴孝寬)과 안민영(安玟英)이 펴낸 가곡원류(歌曲源流) 다나베는 그 날 오후, 삼청동 송병준의 별저에 초대되었고, 그곳에서 초수대엽이나 소용 등 가곡 여러 곡과 춘앵전을 비롯하여 장생보연지무, 검무, 사고무 등과 같은 악무(樂舞)로 그를 위한 최고의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소아마비 소녀 미나코(美奈子)는 태평양전쟁으로 미군의 동경 대폭격이 시작되자 오사카로 내려갔다가 다시 산골마을 나가노 지방으로 피난을 하게 된다. 열 살의 나이로 신체장애자의 입장에서 겪은 전쟁의 참상은 어땠을까? 정상인도 아닌 소아마비 환자가 부모님과 떨어져 낯선 산골에 살면서 겪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전쟁에 대한 쓰라린 기억을 그린 《치쿠마가와 강변에서 (千曲川のほとりで)》라는 동화집이 지난해 나와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책을 감수(監修)한 다카모리(高林敏夫) 씨는 기자에게 동화책을 보내오면서 이 책이 일본에서 인권교육, 평화교육, 복지교육에 활용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책은 신문과 NHK방송 등 일본 언론에서 학동소개(學童疏開) 70주년이라는 주제로 다루고 있는데 소개(疏開)란 공습이나 화재 따위에 대비하여 한곳에 집중되어 있는 주민이나 시설물을 분산을 뜻하는 말로 일본에서는 태평양전쟁 시기에 미군의 집중 폭격을 피해 주민과 학생들의 소개가 자주 있었다. 열 살의 가녀린 소아마비 소녀 미나코는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헤어져 소개지(疏開地)였던 나가노현에서 동경의 장애자학교인 동경도립광명양호학교에 들어가 이 학교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1920년대 초, 조선의 음악관련 현상이나 사회정황 등을 일본인 다나베의 기행문을 통해 소개해 보고 있는 중이다. 경성(京城)에 하나밖에 없던 조선악기 제조 판매점은 안동상점(安洞商店으로 종로 견지동에 있었고, 거문고는 35엔, 장구가 15엔이었다. 현재 시세는 장구 10대 값으로도 거문고 1대를 구입하기 어려운 실정인 점을 감안하면 가격의 대비가 다르다. 또한 단성사에 가서 승무, 검무, 창극 춘향전, 판소리 심청가, 그리고 평양의 수심가와 경기 잡가 여러곡을 들었는데, 특히 나이 어린 소녀가 승무를 잘 추어 갈채를 받았다는 점으로 당시에도 승무는 인기를 끌었다는 점, 성악에는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창극이 또한 대중들의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밖에도 평양의 수심가라든가 경기잡가 여러 곡을 춤과 율동을 곁들여 부르도록 연출되었다는 점에서 이들 노래도 일반 대중들이 좋아했던 분야로 보인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 음악에 관한 내용과 악보가 실려 있는 《세조실록(世祖實錄)》 단성사에서 일반인들이 즐기는 춤이나 노래를 감상한 그가, 다음날에는 고관대작의 초대를 받아 상류층이 즐기는 음악과 춤을 접하기도 한다.
[한국문화신문 = 최기호 한국몽골학회 명예회장] 전라북도 남원에는등가타령이라는 민요가 있다. 남원산성에 올라가 바라보는 풍경과 새색시의 일화, 노총각 짝사랑으로 엮어진 가사인데 남원산성이라고도 부르는 민요이다. 남원산성 올라가 이화문전 바라보니 /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 떴다 봐라 저 종달새 / 석양은 늘어져 갈매기 울고 / 능수 버들가지 휘늘어진다. / 꾀꼬리는 짝을 지어 / 이 산으로 가면 꾀꼬리 수리루 이 민요에는 많은 새 이름이 나오는데 둘째 행에 나오는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는 무슨 새이며, 그 유래는 무엇인가? 수지니 날지니는 서로 짝을 이루는 말이다. 수지니는 한 살이 되지 아니한 매를 날지 못할 때에 잡아다가 길들인 매이다. 이에 반하여 날지니는 길들이지 아니한 야생 매를 말하는 것이다. 19세기의 학자 이규경이 쓴 백과사전 형식의 책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해동청(海東靑)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다. 황해도 해주목과 백령진에는 매가 매우 많이 나서 전국에서 제일이다. 이 매를 해동청이라고 하였다. 매가 그 해에 나서 길들여진 것을 보라매라 하는데, 보라라는 것은 사투리로 담홍이며 그 털빛이 얕음을 말한다. 매 중에서 가장 재주가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정월 명절로는 설과 대보름이 있다. 옛 풍속에는 대보름을 설처럼 여겼다. ≪동국세시기≫에 대보름에도 섣달 그믐날의 수세하는 풍속과 같이 온 집안에 등불을 켜놓고 밤을 지새운다는 기록이 보인다. 정월대보름 달은 한 해 가운데 달의 크기가 가장 크다. 가장 작은 때에 견주어 무려 14% 나 커 보인다는데, 그것은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깝게 다가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정월대보름의 달이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탓에 작은 달이 될 것이란 예상이다. ≪동국세시기≫에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맞이하는 것을 ‘망월(望月)’ 이라 하며, 먼저 달을 보는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라고 나와 있다. ▲ 정월대보름 초저녁에 뒷동산에 올라 달맞이를 한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우리나라는 농사를 기본으로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사회였다. 음양사상(陰陽思想)에 따르면 해를 '양(陽)'이라 하여 남성으로, 달은 '음(陰)'이라 하여 여성으로 본다. 달의 상징적 구조를 풀어 보면 달-여신-땅으로 표상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 출산하는 힘을 가진다고 한다. 따라서 달은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약밥, 오곡밥, 귀밝이술은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일본의 전통극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가부키이다. 가부키는 명치유신 이후에 발달했다고 일컬어지는데 여기서 발달이란 일반서민들의 볼거리에서 상류사회의 볼거리로 자리 잡은 것을 뜻한다. 가부키는 배우가 직접 대사를 말하면서 춤과 연기를 하는 연극이라면 죠루리(淨瑠璃)는 인형을 등장시키는 연극이다. 죠루리는 우리의 꼭두각시놀음처럼 사람이 인형을 조종하며 진행하는 연극으로 검은 옷을 입은 배우가 일본 전통옷을 입은 인형을 조종하면서 극을 이어가는 게 특징이다. 죠루리는 모두 남성이 연기하며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과 일본의 전통 악기인 샤미센을 연주하는 사람 그리고 연극의 대사를 말해주는 이른바 변사 역할을 맡은 세 가지 분업으로 연극이 이뤄진다 해서 이를 산교 (三業) 라고 부른다. ▲ 분라쿠인형(국립분라쿠극장 소장) 예전에는 하나의 인형을 한 사람이 조종했으나 1734년부터 세 사람이 하나의 인형을 조종하게 되었다. 유명한 인형극 작가로는 에도시대의 인물인 치카마츠몬자에몽(近松門左衛門, 1653~1725)이 있으며 그는 100작품 이상의 인형 극본을 쓴 것으로 알려졌고 이 가운데 20%는 세태를 나타내는 내용이고 나머지는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국악속풀이에서는 다나베가 쓴 《조선. 중국의 음악조사기행》 속에 나타난 당시의 음악관련 상황이나 사회 현상들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1921년 4월 1일, 다나베는 일본에서 배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게 되는데, 부산 선창에 모여 있는 조선인의 옷이 모두 새하얗고 깨끗한 것을 보고 인상이 깊었다고 술회하였다. 조선인들이 왜 흰 옷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모르는 채 말이다. 당시 부산역에서 출발한 급행열차가 서울까지 10시간 정도 걸렸다는 점이나, 일본의 철도는 협궤(挾軌)인 반면 조선의 철도는 광궤이고 객차 내부도 널찍하며 흔들림도 적어 승차감이 좋았다는 이야기, 거리와 주택의 모습에서는 조선인들의 거리는 대체로 낮 동안만 활기가 있고, 밤이 되면 갑자기 적적해져 버린다는 점, 일본인 거리의 가옥은 지붕부터 건축양식이 직선적이고 딱딱한데 반하여 조선의 가옥은 작기는 하나 모두가 곡선미를 나타내고 있다는 이야기, 창덕궁 앞의 소옥(小屋) <단성사>에서 기생춤, 즉 장고춤을 보았는데 몸을 구불거리고 발놀림이 자연스러워 재미있었다는 이야기, 이 당시에는 영화관을 활동소옥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 무대에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곧 3월이다, 한국은 3월하면 3.1절이 떠오르고 유관순 열사가 떠오른다는 사람이 많지만 일본의 3월은 히나마츠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히나마츠리(ひな祭り) 란 여자아이가 있는 집안에서 장차 딸에게 닥칠 나쁜 액운을 덜기 위해 시작한 인형 장식 풍습으로 이때 쓰는 인형을 히나인형(ひな人形)이라 한다. 히나마츠리를 다른 말로 모모노셋쿠(桃の節句) 곧 복숭아꽃 잔치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복숭아꽃이 필 무렵의 행사를 뜻하는 것으로 예전에는 히나마츠리를 음력 3월 3일날 치뤘다. 히나마츠리 열기가 얼마나 큰지 거리에는 붉은 색의 히나인형을 파는 곳이 많을뿐더러 크리스마스카드처럼 히나 카드도 인기다. 실제로 지난주에 일본 교토에 윤동주 순국 70주년 추도식에 참석하느라 잠시 다녀왔는데 나에게 커다란 히나인형 카드를 선물한 사람이 있을 정도다. 카드를 펼치면 5단짜리 히나인형이 새겨진 카드는 값도 제법 나갈 법하다. 히나인형은 3월 3일 이전에 집안에 장식해 두었다가 3월 3일을 넘기지 않고 치우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히나인형 판매의 절정은 2월 한 달이다. 이때 일본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일본 전국에 걸쳐 크고 작은 히나인형 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