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어둠을 불평하기보다는 차라리 한 자루의 촛불을 켜라 -펄 벅(Pearl S. Buck, 1892∼ 1973)- 지금은 자신의 조국이 사라지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지만, 언젠가 민족정기가 어둠에서 깨어나면 잠은 비록 죽음의 가상(假像)이기는 하나 죽음 그 자체는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게 될 한국인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 《PASSING OF KOREA(대한제국멸망사)》- 포식자의 느닷없는 기습공격을 찌르레기떼가 현란하고 아름다운 군무(群舞)로 물리치는 모습은 경이롭다. 우리는 그 숨 막히는 광경을 하늘이 아닌 지상에서 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대한민국의 거리와 광장에서 펼쳐지는 빛의 무혈 혁명이다. 73살을 넘긴 나도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광장에 나가곤 한다. 이 순간도 포식자들은 발톱을 숨긴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조류학자들은 찌르레기떼가 포식자의 공격을 받으면 절묘한 공중 곡예(aerial acrobatics)를 연출함으로써 적을 혼란에 빠뜨려 안전을 도모한다고 한다. 흉맹한 포식자가 쪼그마한 찌르레기를 표적 삼아 거듭 기습공격을 시도하지만, 그때마다 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잉카의 신전(神殿) 물샐 틈 없는 정교한 석벽들 (돌) 숨 쉴 틈 없이 갈아 붙였으리 (빛) 저 석벽이 돌자갈 될 때까지 (달) 신은 늘 말 없는 돌에 깃들리 (심) ... 25.5.6. 불한시사 합작시 중남미 인디오의 문명들로 마야와 아즈텍 그리고 잉카가 유명한데, 이번에 페루의 잉카문화 유적지를 답사하고 왔다.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는 안데스산맥의 3,400m 고원지대에 있었다. 남미 인디오 신앙의 메카였던 쿠스코의 왕궁과 태양의 신전은 1533년의 스페인 침략으로 대부분 파괴되었다. 신전 자리에는 그 돌들로 재건축한 대형 성당이 여러 채 지어져 있었다. 옛 시가지의 정교한 건축물인 돌벽, 인도, 수로는 그대 남아 있었다. 4,500~4,800m의 산 위에 조성된 거석의 삭사이와망 성곽과 네모와 둥근(方圓) 제사공간은 물론 축제공간도 찾아볼 수 있었다. 침략자의 무자비한 파괴에도, 미라를 안치했던 자연석굴에 조성한 지하 널방(현실)을 비롯하여 봉화대, 세관, 검문소, 임금의 은신처 등 다양한 건축물이 남아 있었다. 왕궁이 있는 제1의 도시국가 쿠스코에서 제7의 도시국가 마추픽츄까지 연결되는 루트(옛 산길 110km)를 답사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472년, 888권. 《조선왕조실록》과 관련된 숫자다. ‘실록’은 말 그대로 실제 있었던 일을 사실 그대로 기록한 책이라는 뜻이다. 조선의 첫 임금인 태조가 즉위한 1392년부터 스물다섯 번째 임금인 철종이 승하한 1863년까지 472년 동안의 일이 기록된 888권의 역사책, 그것이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처럼 이렇게 방대한 기록을 남긴 왕조도 드물 것이다. 후대 사람들이 역사책을 거울삼아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바라는 뜻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일거수일투족이 역사에 남는 지도자가 자연스레 스스로 삼가는 태도를 보이게 하기 위함이었다. 역사학자인 강명관이 쓴 이 책, 《왕의 기록, 나라의 일기 조선왕조실록》은 실록의 이모저모를 재미있게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잘 알려진 사실과 많은 이들이 몰랐을 사실들이 적절히 섞여 있어 실록의 다양한 면을 새롭게 알아갈 수 있다. 실록을 ‘일기’라 하는 까닭은 날짜별로 사건이 일어난 순서에 따라 적혀 있기 때문이다. 첫머리에는 임금과 신하들의 인물 정보를 기록하고, 날짜 표시는 연도, 계절, 달, 날의 차례로 썼으며, 날짜가 넘어가거나 기사의 내용이 바뀌는 경우 ‘ㅇ’을 넣어 구분했다. 실록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K 교수가 이사 온 화성군 봉담면 수기리는 작은 농촌 마을이다. 마을 앞에는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상당히 큰 저수지가 있다. 마을과 호수 사이는 모두 논이고, 마을 옆으로 작은 개울이 흐른다. 마을 가운데에는 젖소 목장도 있고, 마을 안쪽 야산 아래에는 작은 절이 있다. 마을 앞을 지나는 작은 도로는 경운기가 다니는 길인데, 승용차 한 대가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좁다. 논과 야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는 약 20가구가 산다. 수기리는 작고 아름다운 전원 마을이었다. 수기리로 3월에 이사 오면서 호돌이는 수기분교 3학년으로 전학을 했다. 새로 전학한 학교는 전교생이 38명밖에 안 되는 분교였다. 정확한 이름은 봉담 초등학교 수기 분교다. 분교에는 선생님이 3명뿐이었다. 선생님 한 분이 교실 하나에서 2개 학년을 합반하여 수업을 진행하였다. 호돌이가 전학 와서 3학년은 모두 4명이 되었다. 전학하고서 학교에 다녀온 첫날 호돌이가 “엄마, 나 이제는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우리 반에서 4등이네”라고 말해서 온 가족이 함께 웃었다. 다행히도 담임 선생님은 남자였다. 시골 분교로 전학을 온 이후 호돌이는 학교에서 마음 놓고 장난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선 말 근대의 여명기에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위해 그 어떤 사람보다 여러 가지 이바지를 하고 자기를 희생한 외국인이 있었으니 바로 미국인 조지 포크(George Clayton Foulk, 1856-1893)였다. 그의 주선으로 1886년 조선에 온 헐버트만큼 그를 잘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헐버트의 말을 들어보자. “조선의 개방과 관련된 문제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고인이 된 조지 포크의 조선살이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1856년 펜실바니아에서 태어난 포크는 14살의 어린 나이에 아나폴리스의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너무 혈기방장하여 사관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지만 그건 기우였다. 4년 뒤 그는 선두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는 모든 분야를 기민하게 통달했으며 나이를 앞지르는 조숙성을 보였다. 그는 졸업한 뒤 곧 극동지역으로 발령받았다. 그의 명민함은 전문적인 학식과 기술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곧 상관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제독의 눈에 들어 부관이 되었다. 일상적인 근무와 별도로 그는 놀라운 속도로 일본어를 습득했다. 그는 타고난 언어학자였다. 나가사키에서 일본인 아가씨를 사귀게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돌도끼 들고 사슴 쫓던 시대에는 먹거리 해결이 가장 큰 문제였을 것입니다. 수렵과 채집이 여의찮으면 굶는 일도 다반사였을 것이고 저장이 쉽지 않았던 시절이니 다른 동물처럼 먹거리 해결이 큰일이었겠지요. ‘삼순구식(三旬九食)’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순(旬)은 열흘 ‘순’ 자로 10일 단위를 나타냅니다. 한성순보(漢城旬報)는 10일에 한 번씩 발행되는 신문이었고 한 달을 상순, 중순, 하순으로 구분하는 것도 열흘을 기준으로 합니다. 곧 삼순구식은 삼십 일 동안에 아홉 번 식사했다는 뜻으로 극심한 가난과 빈곤을 상징하며 그만큼 생활이 궁핍하고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가지로 뒤주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리면 가장은 식솔 먹일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풀뿌리 나무껍질로 연명해야 합니다. 송기도 그중의 하나인데 소나무 속껍질의 얇은 부분입니다. 이 식재료들은 섬유질이 지나치게 풍부하여 위나 소장에서 소화되지 않습니다. 결국 필연적으로 변비를 초래하게 되지요. 3박 4일 동안 변을 보려고 노력하다가 드디어 해산의 고통을 안고 성공했는데 거기가 찢어진 겁니다. 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탱고(TANGO) 흑인과 인디오의 혼을 담고 (심) 북미엔 재즈, 남미에는 탱고 (돌) 춤과 가락에 서린 웃픈 역사 (빛) 뜨거운 노래를 몸에 담노라 (달) ... 25.5.4. 불한시사 합작시 생애 처음으로 남아메리카 5개 나라를 다녀왔다. 브라질과 파라과이에 걸친 이따푸댐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양쪽 이구아수 폭포도 보고 잉카의 수도 쿠스코와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도 가보고 4,000m 환상의 볼리비아 소금사막도 가봤다. 100년 전 세계 경제 6위였던 아르헨티나의 수도, 화려했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탱고 발상지 라보카지구도 가봤다. 항구가 있는 곳으로 세계 이민자와 선원들이 도착한 곳이다. 알록달록한 페인트칠의 허름한 집들이 있는 거리였다. 기념품 가게 외벽에는 메시와 에바페론, 그리고 탱고의 아버지 카를로스 가르델의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었다. 외로운 이민자들의 열정적인 춤과 음악이 탱고의 시작이었다. (라석) • 불한시사(弗寒詩社) 손말틀 합작시(合作詩) `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 ‘불한티산방’에 모이는 벗들 가운데서 시를 쓰는 벗으로 함께 한 시모임이다. 이들은 여러 해 전부터 손말틀(휴대폰)로 서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148) 선생이 사람을 가르칠 때는 각각 그 재능을 살펴서 그것을 도탑게 했다. 질문이 있으면 반드시 그를 위하여 의문 나는 뜻을 분석하여 말이 미세한 곳에까지 파고들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환하게 의문이 풀린 뒤에야 그만두었다. 1561년은 조선 교육계에 특별한 일이 일어난 해였다. 퇴계 이황이 이끄는 도산서당이 안동의 청량산 줄기에 세워졌고, 남명 조식이 이끄는 산천재가 산청의 지리산 자락에 세워졌다. 이 두 학교는 당대의 으뜸 사립대학으로 나라를 지킬 인재를 키워내는 산실이 되었다. 한국선비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인 김경수가 쓴 이 책, 《남명 선생의 삶과 가르침》은 조선 역사상 가장 성공한 교육자였던 남명 조식의 삶과 교육관을 조명한 책이다. 40년 가까이 남명학을 연구한 지은이는 사회에 남명 정신이 더 널리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간 공부한 내용을 쉽게 정리하여 책으로 펴냈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남명 조식(1501~1572)은 독보적인 학문적 경지를 이룩해냈다. 무엇보다 잘못된 정치를 비판하는 <단성소>, <무진봉사> 등의 상소를 올려 천지를 진동케 했고, 비록 벼슬에 직접 나아가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사실 K 교수가 시골로 이사 온 것은 둘째 아들인 호돌이의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 호돌이는 형보다 무려 10년 늦게 늦둥이로 태어났다. 호돌이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열리던 해에 태어났고, 당시 올림픽 대회의 마스코트가 풍물굿 모자 쓴 호돌이였는데, K 교수는 아들 이름을 호돌이라고 지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살던 K 교수는 호돌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마음이 편치 못했다. 일반적으로 둘째 아이는 원래 장난이 심하고 어리광을 부리는 편이지만 이 녀석은 장난이 심했다. 남자애들이 장난하는 것이야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 녀석은 도가 지나쳤는지 날마다 선생님에게서 벌을 받고 야단맞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이 남자면 또 모르겠는데,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는 여선생님이 대부분이다. 호돌이의 담임 선생님도 20대 후반의 여선생님이다. 담임 선생님은 호돌이 때문에 수업이 안 된다느니 집에서 주의를 좀 주라느니 등등 아내를 통해서 들어보니 문제가 심각하였다. 아내는 늦둥이로 낳은 호돌이에게 사랑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호돌이가 사고를 쳤다고 젊은 여선생님이 젊지 않은 아내를 학교로 호출하면, 아내는 기분이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지난 번에 이야기했듯이 미 해군 소위 조지 포크가 1883년 12월, 3명의 조선인과 함께 북대서양의 아조레스(Azores) 섬을 방문했다. 안타깝게도 조선인들는 이 희귀한 여행에 대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특명전권 대신 민영익(보빙사 대표)은 처음으로 서양 여행을 하면서도 유교 서적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조지 포크는 탄식을 삼켰다. 반면에 서광범과 변수는 열정적으로 서양에 대한 지식.정보를 수집하고 메모하였다고 조지 포크는 전한다. 하지만 아무 것도 전해오지 않는다. 서광범과 변수가 갑신정변의 실패로 역적으로 몰리면서 자료가 사라져버렸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조선인들의 첫 서양 방문에 대해 오직 조지 포크를 통해서 그 조각이나마 접할 수 있을 따름이다. 조지 포크의 부모님 전 상서에서 아조레스 방문에 대한 첫 부분을 지난 번에 실었다. 그 뒤의 이야기를 여기 잇는다. “(부모님께) 저야말로 좌중의 관심거리가 되었습니다. 노부인들이 꼬치꼬치 캐물어 시베리아 탐험이며 일본 여행이며 중국 사원 탐방이며 등등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또 조선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제가 독차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