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 흔히 슈퍼문이라 말하는 대보름달(최우성 기자) '추석 달' / 김정기 뉴욕에서 보는 추석 달 속에 코스모스 무리지어 핀 고향 철길 있네 장독대 뒤에 꽈리 한 타래 가을볕에 익어 있네 가난이 따뜻하고 아름답던 성묫길 소슬바람 송편 향기 마천루 달 속에서 물씬거리네 함지박에 가득 담긴 머루 다래 수수 차좁쌀 쪽머리에 이시고 흰 옥양목 적삼의 어머니 계시네 울음 때문에 바라볼 수 없는 어머니 모습이네 우리 겨레의 3대 명절 하면 설, 단오, 한가위를 꼽는다. 그 가운데서도 ‘한가위’는 가장 큰 명절이다. 1819년(순조 19) 김매순(金邁淳)이 지은 한양(漢陽)의 연중행사를 기록한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있는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는 말처럼 한가위는 햇곡식과 과일이 풍성한 절기로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이다. 한가위의 유래와 말밑(어원) 한가위는 음력 팔월 보름날(15일)로 추석, 가배절, 중추절, 가위, 가윗날 따위로 부른다. '한가위'라는 말은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8월 한가운데에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넷째 처서(處暑)다. 여름이 지나면 더위도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뜻으로, 더위가 그친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흔히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계절의 이치를 잘 보여주는 때다. 또 이즈음은 농사철 가운데 비교적 한가한 때여서 어정거리면서 칠월을 보내고 건들거리면서 팔월을 보낸다는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란 말도 한다. 옛 사람들은 처서 때를 3후(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중후(中候)에는 천지가 쓸쓸해지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논벼가 익는다고 하였다. 처서 무렵의 날씨는 한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비록 가을의 기운이 왔다고는 하지만 햇살은 여전히 따가워야 하고 날씨는 맑아야 만이 벼의 이삭이 패고, 잘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한꺼번에 성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처서에 장벼(이삭이 팰 정도로 다 자란 벼) 패듯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처서 무렵의 벼가 얼마나 잘 익어 가는지 보여주는 속담이다. 경남 통영에서는 처서에 비가 오면 십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셋째 입추(立秋)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인데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한다. ≪고려사≫ 권84「지(志)」38에 입추에는 관리에게 하루 휴가를 준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익어가는 때여서 조선시대에는 이때 비가 닷새 이상 계속되면 비를 멎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다. 그런데 입추는 가을이 들어서는 때지만 이후 말복이 들어 있어 더위는 아직 그대로다. 우리 조상은 왜 입추를 말복 전에 오게 했을까? 주역에서 보면 남자라고 해서 양기만을, 여자라고 해서 음기만 가지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조금씩 중첩되게 가지고 있다는 얘기인데 계절도 마찬가지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려면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야 하고, 이 역할을 입추와 말복이 하는 것이다. 또 여름에서 갑자기 가을로 넘어가면 사람이 감당할 수가 없기에 미리 예방주사를 놓아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려면 입추와 말복이 다리가 되어야 한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참고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입추(立錐)는 24절기 입추(立秋)와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장장채승(長長彩繩:오색의 비단실로 꼰 긴 동아줄) 그넷줄 휘늘어진 벽도(碧桃, 선경[仙境]에 있다는 전설상의 복숭아)까지 휘휘 칭칭 감어 매고 섬섬옥수(纖纖玉手) 번듯 들어 양 그넷줄을 갈라 잡고 선뜻 올라 발 굴러 한 번을 툭 구르니 앞이 번 듯 높았네. 두 번을 구르니 뒤가 점점 멀었다. 머리 위에 푸른 버들은 올을 따라서 흔들 발밑에 나는 티끌은 바람을 쫓아서 일어나고 해당화 그늘 속의 이리 가고 저리 갈제” ▲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 그네뛰기와 창포물에 머리감는 모습이 나온다. 이 구절은 판소리 <춘향가> 가운데서 춘향이가 그네 타는 장면인데, 그네뛰기는 단옷날의 대표적 민속놀이다. 우리 겨레는 예부터 설날, 한식, 한가위와 함께 단오를 4대 명절로 즐겼지만 이제 그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 단오의 이름들과 유래 단오는 단오절, 단옷날, 천중절(天中節), 포절(蒲節 : 창포의 날), 단양(端陽), 중오절(重午節, 重五節)이라 부르기도 하며, 우리말로는 수릿날이라 한다. 단오의 '단(端)'자는 첫 번째를, '오(午)'는 다섯으로 단오는 '초닷새'를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다섯째 청명(淸明)인데 한식의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생겼다. 이날 성묘를 간다. 옛날에는 한 해에 네 번, 곧 봄에는 청명, 여름에는 중원(中元, 음력 7월 15일), 가을에는 한가위, 겨울에는 동지에 성묘를 했다.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따르면 청명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친다. 임금은 이 불을 정승, 판서, 문무백관 3백60 고을 수령에게 나누어준다. 이를 사화(賜火)라 했다. 수령들은 한식(寒食)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寒食)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여 온 백성이 한 불을 씀으로써 같은 운명체로서 국가 의식을 다졌다. 꺼지기 쉬운 불이어서 습기나 바람에 강한 불씨통(藏火筒)에 담아 팔도로 불을 보냈는데 그 불씨통은 뱀이나 닭껍질로 만든 주머니로 보온력이 강한 은행이나 목화씨앗 태운 재에 묻어 운반했다. 농사력으로는 청명 무렵에 논밭의 흙을 고르는 가래질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특히 논농사의 준비 작업이다.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정월 명절로는 설과 대보름이 있다. 옛 풍속에는 대보름을 설처럼 여겼다. ≪동국세시기≫에 대보름에도 섣달 그믐날의 수세하는 풍속과 같이 온 집안에 등불을 켜놓고 밤을 지새운다는 기록이 보인다. 정월대보름 달은 한 해 가운데 달의 크기가 가장 크다. 가장 작은 때에 견주어 무려 14% 나 커 보인다는데, 그것은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깝게 다가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정월대보름의 달이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탓에 작은 달이 될 것이란 예상이다. ≪동국세시기≫에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맞이하는 것을 ‘망월(望月)’ 이라 하며, 먼저 달을 보는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라고 나와 있다. ▲ 정월대보름 초저녁에 뒷동산에 올라 달맞이를 한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우리나라는 농사를 기본으로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사회였다. 음양사상(陰陽思想)에 따르면 해를 '양(陽)'이라 하여 남성으로, 달은 '음(陰)'이라 하여 여성으로 본다. 달의 상징적 구조를 풀어 보면 달-여신-땅으로 표상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 출산하는 힘을 가진다고 한다. 따라서 달은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약밥, 오곡밥, 귀밝이술은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오늘은 을미년(乙未年) 양띠해가 시작되는 설날이다. 설날을 맞아 그 깊은 뜻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먼저 설날이란 말의 말밑(어원)부터 살펴보자. 먼저 조선 중기 실학자 이수광(李睟光, 1563 ~ 1628년)의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설날을 달도일(怛忉日)이라 했다. 곧 한 해가 지남으로써 점차 늙어 가는 처지를 서글퍼하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설은 사리다'(愼, 삼가다)'의 `살'이 변한 말이라며 설날은 신일(愼日) 곧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라 하여 몸과 마음을 바짝 죄어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를 시작하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 찬란하게 떠오르는 설날 아침 해돋이 또 설은 새해라는 정신적ㆍ문화적 의미의 낯 설은 날'을 뜻한다고 보기도 했다.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만나는 환경은 낯 설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밖에 연세설(年歲說)도 있는데 산스크리트어는 해가 바뀌는 연세(年歲)를 '살'이라 하는데 이 '살'이 '설'로 바뀌었다고 보기도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우리 겨레 명절 가운데 한가위는 가장 큰 명절이다. ≪열양세시기≫에 있는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는 말처럼 한가위는 햇곡식과 과일들이 풍성한 좋은 절기로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다. ▲ 한가위 명절은 뒷동산에 올라 토끼가 방아를 찧는 달맞이 하는 날(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가위의 유래와 말밑 한가위는 음력 팔월 보름날로 추석, 가배절, 중추절, 가위, 가윗날 등으로 불린다. '한가위'라는 말은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8월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또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베짜기)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라 유리왕 9년에 국내 6부의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갈라 두 왕녀로 하여금 그들을 이끌어 음력 열엿새 날인 7월 기망(旣望, 음력 16일)부터 길쌈을 해서 8월 보름까지 짜게 하였다. 그리고 짠 베의 품질과 양을 가늠하여 승부를 결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왔더니 가래떡, 올려놓고 웃기떡, 정들라 두텁떡, 수절과부 정절떡, 색시 속살 백설기, 오이 서리 기자떡, 주눅 드나 오그랑떡, 초승달이 달떡이지., 정월보름 달떡이오 이월한식 송편이오 삼월삼짇 쑥떡이로다 사월팔일 느티떡 오월단오에 수리치떡 유월유두에 밀전병이라 칠월칠석에 수단이오 팔월가위 오려송편 구월구일 국화떡이라 시월상달 무시루떡 동짓달 새알병요 섣달에 골무떡이라 이처럼 우리 겨레는 노래 속에도 떡을 불러들일 만큼 생활화했음을 엿볼 수 있다. 한가위 때는 햅쌀로 빚는다는 신도주(新稻酒, 햅쌀로 빚어먹는 술), 녹두나물, 박나물, 토란국, 송이국은 물론 고지국(호박, 박, 가지, 고구마 따위를 납작하거나 잘고 길게 썰어 말린 것들로 끓인 국) 같은 명절음식이 있었지만 한가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송편이다. 손바닥에 굴리고 굴려 새알을 빚더니 손가락 끝으로 낱낱이 조개 입술을 붙이네 금반 위에 오뚝오뚝 세워 놓으니 일천 봉우리가 깎은 듯하고 옥젓가락으로 달아올리니 반달이 둥글게 떠오르네. -김삿갓의 송편예찬 시- ▲ 송편 빚기(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시집가서 예쁜 딸을 낳는다.는 말이 있을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오늘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한식(寒食)으로 찬밥을 먹는 명절이다. 한식의 다른 이름으로 고초일(苦草日), 금연일(禁煙日), 숙식(熟食), 냉절(冷節)이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왜 명절에 찬밥을 먹게 되었을까? 그에는 다음 두 가지의 설이 전한다. 먼저 중국 춘추시대 개자추(介子推, 介之推)란 사람이야기다. 개자추는 진(晉)나라의 공자 중이(重耳)를 위해 헌신했다. 특히 중이가 망명생활을 할 때 그를 19년 동안이나 극진히 모셨는데 중이가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고기를 구할 수 없어 자신의 허벅지 살을 도려내 구워줄 정도였다. 뒷날 중이가 문공(晉文公: 재위 636~628)으로 즉위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벼슬을 주었으나 개자추는 등용하지 않았다. 이에 실망한 개자추가 산에 들어가 숨어 살았는데 문공이 나중에야 잘못을 깨닫고 불렀지만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문공이 개자추를 나오게 하려고 산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개자추는 이에 응하지 않고 산속에서 타죽었다. 그래서 문공은 이날만은 개자추를 추모해 불을 피우지 않고 찬밥을 먹었다는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고대 개화(改火) 의례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다. 원시 사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