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조선시대에는 ‘날틀’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일본 역사서인 《왜사기》에도 전라도 김제의 정평구라는 사람이 비거 곧 날틀을 발명하여 진주성 전투에서 썼는데 왜군들이 큰 곤욕을 치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날틀은 지금으로 말하면 무인기라고 생각되는데 포위된 진주성과 외부와의 연락을 담당한 이 ‘날틀’은 마치 해일처럼 밀려오는 10만의 왜적 앞에서 진주성 사람들에게 희망 그것이었을 것이라고 장편역사소설 《진주성전쟁기》를 쓴 박상하 작가는 말합니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뒤 으뜸 한글학자였던 외솔 최현배 선생은 비행기를 “날틀‘이라고 해서 국수주의라고 비판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전 솜틀, 재봉틀처럼 기계를 ’틀‘이라 했고, 조선시대 이미 ’날틀‘이란 말이 쓰였음을 생각할 때 최현배 선생이 꼭 국수주의로 비판을 받아야 했는지 의문입니다. 굳이 날틀 대신 비행기라는 한자말을 써야만 유식한 것일까요? 나라 밖에서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면 그 문물이 생긴 나라의 말을 쓰기보다는 우리에게 맞는 말을 만들어 써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문화신문>은 ’스마트폰‘을 ’슬기말틀‘이라고 부릅니다. 중국 북경대학에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선조 25년(1592년) 10월 왜군 2만이 침략해 오자 진주 목사 김시민이 3,800여 명의 군사와 백성이 힘을 합쳐 왜군을 물리쳤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 대첩입니다. 하지만 이듬해 6월 왜군 10만여 명이 다시 침략을 해왔고 이때 민ㆍ관ㆍ군이 왜군에 맞서 싸우다 모두 순국하는 비운을 겪었다는 기록이 《선조실록》 40권 선조 26년(1593) 7월 16일 기록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진주성 싸움에서는 “날틀”이 활약했었다고 합니다. 날틀은 한자말로 ‘비거(飛車)’라고 하여 하늘을 나는 차 곧 비행기의 하나입니다. 일본 쪽 역사서인 《왜사기》에도 전라도 김제의 정평구라는 사람이 비거를 발명하여 진주성 전투에서 썼는데 왜군들이 큰 곤욕을 치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날틀은 포위된 진주성과 외부와의 연락을 담당하였는데 마치 해일처럼 밀려오는 10만의 왜적 앞에서 진주성 사람들에게 이 ‘날틀’은 희망 그것이었을 것이라고 장편역사소설 《진주성전쟁기》를 쓴 박상하 작가는 말합니다. 18세기 후반에 쓴 신경준의 문집 《여암전서(旅菴全書)》와 19세기 중반 이규경이 쓴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