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20년 주년 바로 오늘, 제 증조부모님인 라우레아노 리아스(이치원)와 마르타 페레즈(배 부인)는 네 자녀와 함께 부산을 떠났습니다. 큰아들은 여덟 살, 마리아(이갑녀)는 여섯 살, 호세 마리아(이광수)는 네 살, 후아나(이갑년)는 생후 6개월이었습니다. 여권 문제, 전염병 발생, 이민의 합법성 문제로 인해 출발이 두 달 동안 지연되었고, 혼란스러운 출항 당일 큰아들이 길을 잃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한국에 남겨졌습니다. 그 비극은 평생 가족들을 괴롭혔습니다. 증조모는 날마다 남겨두고 온 큰아들을 그리며 울었다고 했고 증조부는 슬픔을 달래기 위해 며칠씩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 고통은 자식을 잃은 슬픔뿐만 아니라 고향, 정체성, 그리고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잃은 데서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의 후손들을 찾고 있고, 어머니의 DNA 매치 결과를 기다리며 낯선 사람들에게 계속 연락을 취해볼 것입니다. 그들(잃어버린 큰아들과 후손들)에게 우리는 당신들을 잊지 않았고, 여전히 생각하며, 깊이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제(4일) 한국이민사박물관(관장 김상열)에서 있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지금 인천 월미도의 한국이민사박물관(관장 김상열)에서는 <역경을 딛고 우뚝 선 조선인, 자이니치, 다시 재일동포> 전이 열리고 있다. 재일동포, 재미동포, 재프랑스동포와 같은 낱말은 한국인이 해당 나라에 가서 둥지를 틀고 사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지만 ‘재(在)’ 자를 붙인다고 해서 다 같은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다. 특히 재일동포와 재중동포(조선족) 등은 오늘날 이민 형식으로 건너가 자리를 잡은 ‘재미동포’ 등과는 출발부터 다르다고 봐야 한다. “82만여 명의 재일동포(在日同胞)가 일본에 살고 있습니다. 재일동포의 궤적은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가운데 줄임) 해방 이후 일본에 남은 조선인은 제도적, 민족적 차별과 싸우며 스스로 ‘자이니치(在日)’라 부르며 일본 사회에 자리매김했습니다.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정상 국가를 꿈꾸는 모국에 무한한 사랑을 보냈던 이들을 우리는 ‘재일동포’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동포인 재일동포. 그들을 알고자 하지 않았던 우리. 이번 전시를 통해 모국과 함께 해왔던 이들이 누구보다도 가까운 동포임을 느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는 <역경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오늘 한민족 해외 이민 120주년을 맞아 축사를 하게 되어 기쁩니다. 쓰라린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딛고 일어났을 뿐 아니라 6.25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조국의 모습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훌륭한 이민사박물관을 통해 세계 여러나라로 뻗어나간 선조들의 고난에 찬 역사를 기억함으로써 앞으로 우리민족이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길 바랍니다.” 이는 어제(6일), 인천 월미도에 있는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열린 ‘한민족 공식 이민 120주년 <그날의 물결 제물포로 돌아오다> (이하 ‘이민 120주년 전’) 개막식에서 축사를 한 해리 김 (전 하와이 카운티시장 3선 역임) 선생의 축사 가운데 일부다. 어제 오후 4시 반부터 시작된 개막전 행사는 재외 동포 등 나라 안팎 초청인사와 시민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민 2세인 해리 김 선생은 올해 나이 여든셋이지만 정정한 모습으로 황량한 낯선땅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시작된 일가족의 고난에 찬 삶을, 마치 이웃집 할아버지가 말하듯 차분한 어조로 조근조근 들려주어 참석자들의 큰 손뼉을 받았다.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