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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악기를 내 몸처럼 사랑해야 명품이 나온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68]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편종과 편경의 유일한 제작자, 김현곤이 이 길에 들어선 과정을 소개하였다. <연악사>에 입사한 후, 각종 악기의 구조와 발음원리, 재료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왕직아악부 출신의 이병우(李炳祐) 명인을 만나게 되면서 국악기의 종류와 특성, 기초이론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병우(1908~1971)는 국립국악원 전신이었던 이왕직아악부 제1기생 9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피리, 단소, 양금 연주가 뛰어났으며 양악기를 잘 다루어 고려교향악단에 입단했다는 이야기, 이병우의 집안은 전통음악의 명가라는 이야기를 했다.

 

또 김현곤은 편종, 편경을 제작하면서 중국, 일본을 비롯하여 세계의 여러 타악기 공방들을 탐방했고, 제작기법을 터득하며 지금도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는 이야기, 베트남의 궁중음악인 나냑(雅樂)이 200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음에도 베트남의 편종, 편경 제작은 그 전승이 단절되어 있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그래서 2010년, 베트남 후에유적 보전센터에서는 한국으로 복원 요청을 해 와 김현곤 명인이 초청된 바 있었다. 그는 수개월간 그 곳에 파견되어 베트남식 편종과 편경을 완벽하게 제작해 주었다고 하는데, 이는 독자적 자체 기술력이 축적되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우리나라 국악기 제작의 위상을 드높이기도 한 경사였던 것이다.

 

 

과거에는 화재나 전란으로 인해 악기가 손실되면 장악원이나 악기조성청과 같은 임시관청에서 장인들과 악공을 동원하여 이를 만들었을 뿐 개인의 힘으로는 제작이 불가했던 악기가 바로 편종, 편경이었다. 여타 다른 악기들처럼 그 제작과정이나 기술이 어느 개인에게 고스라니 전승되어 온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재 김현곤 명인이 이 악기들을 제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승계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대(前代)의 남겨진 제작기법을 새롭게 연구하고 찾아서 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세종 이후, 조선 후기에도 편종, 편경에 대한 제작이 있었고, 일제강점기 시대에도 이왕직아악부가 이를 만들어 만주국에 보내준 적도 있었다. 1951년에 개원한 국립국악원은 20여년이 지나도록 자체 제작의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민간제작자였던 고(故) 남갑진에게 편종과 편경을 제작 의뢰했었다.

 

남갑진 이후에는 김현곤이 그 뒤를 이어받았는데, 김 명인은 실록(實錄)의 관련기사를 비롯하여 악서, 현존하는 유물악기와 가자(架子) 등을 참고하여 전대에 가깝도록 악기들을 재현,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분의 증언을 참고하였는데, 누구보다도 1933년 당시, 이왕직아악부가 편종 편경을 만들 때, 여기에 직접 참여하면서 조율을 담당했던 김천흥, 김기수, 성경린 등 국립국악원 원로 사범들의 증언과 이론적으로는 박흥수(성균관대)교수의 논문집이 참고가 되었다 한다.

 

그는 편경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중국과 수교 이전인 1989년도부터 중국 각지를 다니면서 경석 재료를 찾았다. 1992년에는 중국 소주시에 있는 공장을 방문하였고, 편종과 편경 제작창(制作廠)을 수차 방문하여 제작 공정을 보면서 또는 직접 작업에 임하기도 하였다. 2009년, 드디어 문헌기록으로만 남아 있던 편경의 원산지인 경기도 남양의 소재지를 파악하게 되었고, 그 곳의 경석을 구하게 되면서 우리나라 원재료를 통한 편경제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평소 이렇게 말한다.

“악기를 내 몸보다, 내 가족보다도 더 사랑하지 않고는 명품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의 신조라 할까? 그가 악기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고, 악기장으로서의 정신적 자세요, 마음가짐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게 한다. 김현곤 장인의 철학은 비장하리만큼 이성적이고 냉정함이 묻어 나온다.

 

이렇듯 명품만을 고집하는 장인의 작품임에도 현재는 절대적으로 수요가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특히 석경 재료를 확보하는 과정에서부터 제작의 과정이 어렵고 까다롭기 때문에 혼자의 힘으로는 이를 생산해 내기가 어렵다.

 

만일 이 작업을 김현곤 개인의 사업으로 치부한다면 제작 기술의 향상은커녕, 이들 악기의 생산은 더 어려운 여건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는 현재 장남 김종민과 차남 김종웅, 그리고 강석에게 장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능과 정신을 전승시키고 있다. 이들이 대를 이어 편종, 편경을 만들기 시작할 때가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이 악기들의 존재감이 드러나리라 믿는다.

 

 

안타까운 현실을 맞이하기 전에, 문화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문화재청에서는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이에 대한 특별 배려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특별배려란 이미 그의 연령이 80대 중반이어서 후계자 양성을 서둘러야 하는데, 전수, 이수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이 없어 직계가족들을 억지로 동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전수조교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편경의 제작은 양질의 재료를 구하기도 어렵고, 또한 고가(高價)여서 재료를 개인이 구입한다는 점이 부담스럽기에 특별배려가 필요하다. 또한 현재는 편종의 금속공예와 편경의 석공예를 통합해서 관리하고 있는데 이는 무리이다. 별도의 분리체계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마지막으로 편종과 편경은 자랑스러운 전통을 지닌 귀중한 악기인 만큼 중앙이나 전국의 대소 박물관, 각 급 학교, 전국의 공연장 등에 교육적이거나 의무적인 전시가 이루어지도록 행정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정리하면, 정부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서 각급 교육기관에 상설전시토록 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자국의 전통악기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해 주거나 문화예술단체, 박물관 등 명소에 설치하여 수요를 확대해 주어야 할 것이다. 김현곤 명인으로 인하여 편종과 편경의 제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너무도 고맙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