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까지 몇 차례 단국대 국악과 동문들이 펼친 음악회와 관련하여 내가 몸담고 있던 당시의 이야기들, 예를 들면 1980년대 초, 타악(打樂) 전공과 경서도 민요 전공을 신설하게 된 배경 이야기, 1999년도에는 서울의 한남동 교정으로 이전을 하면서 학과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으며 뜻을 같이하는 선후배 및 큰 제자들과 함께 <한국전통음악학회>를 설립하고, 국악학 학술대회의 개최, 학술지 발간, 국제적인 학술교류를 해 왔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기억에 오래 남는 활동으로는 미국의 <UCLA>와 공동으로, ‘Korean Music Symposium’을 해마다 개최해 왔으며 여름에는 중국의《연변예술대학》과 정례적인 ‘학술 및 실연(實演)교류회’를 20회 이상 치러 왔다는 이야기, 또한, 2005년도부터 국가적 사업으로 시행되어 온 <국악분야 예술 강사의 지원사업>의 실행 등도 매우 보람 있는 활동이었는데, 이러한 결과는 대학 당국의 관심과 동료 교수 및 몇몇 졸업생들의 헌신적인 동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 졸업생 제자들이 진실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고 이웃을 섬기는 인품까지 갖추고 있다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단국대 국악과에서 1980년대 초, 타악(打樂) 전공과 경서도 민요 전공을 신설하게 된 배경 이야기를 하였다. 일반적으로 대학 국악과의 전공과목은 기악(器樂)이 중심이었다. 이에 견줘 성악 분야는 그 뒤에 가곡(歌曲)과 판소리, 경서도창(京西道唱) 전공들이 신설되면서 해당 분야가 확대되었고, 이어 타악(打樂)이나 국악이론, 국악작곡 등도 전공 교과목으로 개설되었다. 특히, 타악 전공의 중요성은 벌써부터 인지되고 있었으나, 정작 전공분야로는 매우 늦게 선정이 된 셈이다. 서양음악의 지휘 형태와는 달리, 정악(正樂)과 민속악(民俗樂)합주에 있어서 지휘자의 역할은 바로 장고나 북 중심인데도, 타악기가 전공분야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은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모를 일이다. 뒤늦게 타악 전공을 포함하게 된 것은 어쩌면 시대의 요청이 아닌가 한다. 현재, 각 대학에서의 세부 전공 분야는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대체로 기악분야로는 피리, 대금, 해금, 거문고, 가야금 외에 소금과 단소, 아쟁, 타악(장고ㆍ꽹과리)등의 기악 분야 전공과 성악분야의 정가, 판소리, 경서도창, 그리고 국악이론과 작곡 분야가 전공 교과목으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국악과가 신설되고 첫 입학생들과 함께 1984년 10월, 제1회 국악과 정기연주회를 열었을 때, 예상 밖으로 많은 관객들이 객석을 메웠고, 연주 결과와는 관계없이 분에 넘치는 칭찬과 격려가 쏟아졌다는 이야기, 그러나 나와 학생들은 공개적인 발표 무대가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 곳인가를 경험하게 되면서 곧바로 단국대 농장(충남 청양군 소재)에서 여름합숙 훈련(Summer Camp)을 시작하였다고 이야기하였다. 이 합숙 훈련에는 84~85학번 입학생들 70여 명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새로 입학한 타악 전공자들이 밤새도록 북, 장고, 꽹과리를 치는 소리가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특히 꽹과리의 김병곤(대전시립 연정국악원), 김창석(단국대 강사), 이홍구(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전승희(대전시립 연정국악원) 등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여기서 잠시, 타악(打樂) 전공과 경서도 민요창 전공 분야를 신설하게 된 당시의 배경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의 국악계 흐름은 기악(器樂) 위주여서 대학 대부분이 기악 전공자 중심으로 입시가 이어졌다. 그 배경은 당시 국악을 전공으로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