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소리꾼, 노은주가 기억하는 성창순 명창은 실로 가슴이 따뜻한 분이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겐 친구와 같은 다정한 할머니로 기억되고 있을 정도다. 그 배경은 항상 부드러운 말씨와 다정한 웃음으로 아이들을 대하는가 하면, 수시로 과자와 음료수,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 등을 선물 할 정도로 자상하였던 분이었기에 더욱 잊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 한농선 선생과 이별한 뒤, 성창순 선생도 타계하여 더더욱 슬픔이 컸다는 이야기, 한농선의 소리가 동편제의 꿋꿋하고 힘찬 소리제라면, 성창순의 소리는 아기자기한 서편제의 창법이어서 대조적이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대통령상을 받은 노은주가 완창발표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해서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그것도 처음이 아니라, 네 번째 갖는 완창회여서 더더욱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완창(完唱)한다는 말은 곧 <춘향가>나 <심청가>와 같은 소리 한바탕을 처음부터 끝까지 장시간 한자리에서 부르는 형태의 공연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완창 발표회를 열 계획이라던가, 또는 발표회를 열었다고 하면, 누구나 놀라면서 그 어렵고 힘든 공연을 어떻게 준비했느냐, 의아해하는 것이 일반적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한농선 명창이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도 잃은 노은주는 깊은 슬픔에 빠져 판소리와 단절하려 했으나 그에게 있어 판소리와의 결별은 불가능한 일임을 확인하게 되면서 성창순 명창에게 소리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노은주의 소리 공력이나 성실도를 인정한 성창순 명창은 “어릴 때부터 열심히 소리 공부한 실력을 잘 알고 있기에 전수자(傳授者)과정 이후에 이수자로도 당당하게 인정을 해 주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수자(履修者)란 무형문화재 해당 종목의 수련 과정을 마치고, 공식적으로 전문가 길에 들어선 사람이란 뜻이며, 다음 단계가 ‘전승교육사’로 예능보유자(藝能保有者) 반열에 오르기 직전 단계라는 이야기, 문화재법은 이수자들에게도 전승교육사와 함께, 예능보유자 선정에 도전할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포기하려던 소리공부에 다시 불을 붙여 준 성창순은 어떤 명창인가? 노은주의 진심이 담긴 사모가(思慕歌)의 한 부분이다. “성창순 선생께 공부하면서 저는 3명의 아이를 출산했어요, 선생님은 우리 애들을 참 예뻐해 주셨지요. 선생님이 구기동의 4층 빌라에 살고 계셨는데, 어느 날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한농선 명창이 세상을 뜬 이후, 어머니도 동시에 잃은 노은주는 소리를 그만두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으나, 어려서부터 몸에 밴 소리가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 쉽게 될 일인가!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도 모르게 다시 소리를 듣기 시작하고, 때로는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절대 소리를 끊을 수는 없었다. 몸에 배어있는 소리와 단절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도 이미 마음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소리는 노은주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인위적으로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2년여 방황과 망설임 끝에 2004년 여름, 그는 성창순 명창을 찾아가 소리공부를 새롭게 시작했다. 노은주는 예나 지금이나 주위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반듯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성창순 명창도 평소 노은주의 소리 공력이나 성실함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더욱더 관심을 두고 대했으며 소리공부에 있어서도 이론적 배경과 함께 실습과 시범 등, 정성을 다해 소리 지도를 해 주었다고 한다. 그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선배 소리꾼 등과 함께‘국악한마당’을 비롯한 유명 공연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