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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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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이 장수 비결임을 알려준 심소 선생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94]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금 우리음악이야기는 궁중(宮中) 악무(樂舞)의 대가였던 심소(心韶) 김천흥(1909-2007) 명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선생은 1922년 14살 때, 5년 과정이었던 <이왕직 아악부원 양성소(李王職雅樂部員養成所)> 제2기생으로 입학하여 정규과정을 밟고 졸업하면서 악사 생활을 시작했다. 하규일(河圭一)에게 정가(正歌), 한성준(韓成俊)에게 민속무를 배웠으며, 1955년도에는 <김천흥 고전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하면서 ‘처용랑(處容郞)’, ‘만파식적(萬波息笛)’과 같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심소 선생에게 악기나 춤을 배운 제자들은 선생은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하였고, 유머가 풍부하였으며 항상 최선을 다하고 겸손하게 사셨다는 것이다. 앞에서 일부 글쓴이와의 대화를 소개하였거니와 심소 선생은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 졸업한 뒤, 곧바로 아악부에 취직을 했고 그로부터 정규직, 임시직을 가리지 않고 국록(國祿)을 받고 살아왔다는 자부심은 참으로 대단했던 것 같다. 특히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으로 받아왔다는 자체가 망극하다는 표현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고, 일하

해금과 전통춤의 대명사, 김천흥 선생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9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었던, 혜강이 <해금>을 연주했다고 하는데, 혜강은 어떤 사람이고, 그가 연주했다고 하는 해금은 어떤 악기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였다. 현재까지도 주요하게 활용되고 있는 악기, 해금은 중국을 통해 고려에 들어 온 이래, 궁중음악과 민속음악 전반, 그리고 근래에는 창작곡 연주에 널리 활용되고 있는 악기라는 점, 일정한 음자리가 없고, 연주자의 음감(音感)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음정 관계가 정확해야 한다는 점과, 연주법에 있어서는 줄을 당겨 연주하면서 다양한 농현(弄絃)이 일품이란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궁중음악 해금 연주자로서 유명했던 것과 겸해서 아쟁과 양금 연주자로도 유명했던, 아니 음악보다는 오히려 궁중정재(呈才)의 명인으로 더 많은 업적을 낸 김천흥 명인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선생의 아호는 심소(心韶)였다. 심(心)이란 곧 마음이고, 소(韶)는 바로 요순시절의 음악을 뜻하는 말이니, 선생의 성품이나 음악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아호일 것이다. 심소 선생(아래 심소)은 1909년에 태어나 2007년에 영면하였으니 99살을 일기로 평생을 궁중음악의

죽림칠현 혜강이 연주했다는 해금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9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장양의 <옥통소> 이야기를 하였다. 장양의 아호가 자방(子房)이기에 ‘장자방의 옥통소’라는 표현으로도 이 대목은 자주 만나게 되는데, 서도의 좌창, <초한가(楚漢歌)>에도 장양이 달밤에 그가 옥통소를 구슬프게 불어 초나라 군사들을 모두 흩어지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통소는 고려 때,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어 당악(唐樂) 계통에 편성되었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향악(鄕樂)에도 쓰였으나 현재는 민간의 시나위나 산조, 탈놀음의 반주음악에 쓰이고 있다. 통소는 취구(吹口, 나팔ㆍ피리 등의 입김을 불어 넣는 구멍)와 지공(指孔), 지공 중간에 청공(淸孔)이 있어 애처로운 느낌을 주는 음색이 일품이란 점과 단소보다는 굵은 대나무로 만들어 다소 거칠면서도 힘찬 느낌을 준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혜강이 연주했다는 <해금>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 보기로 한다. 해금을 연주했다는 혜강은 어떤 인물이며, 또한 그가 연주했다는 해금(奚琴)은 어떤 악기인가? 혜강은 중국 진나라 사람이다. 중국의 위와 진나라의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는 정치권력의 부패가 극심했던 때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장양의 옥통소 이야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9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중국의 금(琴)과 슬(瑟)처럼, 한국에는 거문고와 가야금이 대표적이란 이야기를 하였다. 거문고는 북방, 가야금은 남방의 가야국에서 연주되어 오던 악기라는 점, 가야금이 여성적이라면 거문고는 사대부나 선비 층이 중심이었다는 점, 두 악기가 외형상으로는 비슷하나 줄의 수, 연주방법 등이 다르다는 점, 신라의 진흥왕이 신하들에게 “음악이 어찌 죄가 된다고 하는가! 가야의 임금이 정치를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져서 스스로 망한 것이지, 가야금이 있어 가야가 망했단 말인가!”라며 설득한 것은 훌륭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수궁풍류에 나오는 장양의 <옥통소>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장양의 아호가 자방(子房)이기에 ‘장자방의 옥통소’라는 표현으로도 이 대목은 자주 만나게 되는 구절이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서도의 좌창, <초한가(楚漢歌)>는 장자방이 한(漢)나라의 유방을 도와 초(楚)나라를 칠 때의 이야기로, 장양이 달밤에 그가 옥통소를 구슬프게 불어 초나라 군사들을 모두 흩어지게 했다는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다. “산(算) 잘 놓는 장자방(張子房)은 계명산 추야월에 옥통소

거문고와 가야금은 한국의 대표적인 현악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90]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중국에 금(琴)과 슬(瑟)이 있다면, 한국에는 고구려 시대로부터 전해오는 거문고와 가야국으로부터 연주되어 온 가야금이 있다. 흔히 하는 말로, 부부(夫婦)지간의 정이 돈독할 때 ‘금슬상화(琴瑟相和)’라는 말을 한다. ‘금실이 좋다.’ 또는 ‘금실 좋은 부부’라는 말은, 금이라는 악기와 슬이라는 악기의 어울림이 그만큼 조화롭다는 뜻이다. 거문고와 가야금의 조화를 뜻하는 말로도 인용되고 있다. 그런데 규방(閨房) 여인들의 손끝에서 가야금의 가락들이 이어져 왔다면, 거문고의 주된 향수층은 남성들이었고, 남성 가운데서도 사대부들이나 선비 층이 중심이었다. 예로부터 선비란, 좌서우금(左書右琴)이라고 해서 책과 금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했다. 곧 왼손에는 책, 오른손에는 금을 든다는 말이니, 곧 선비는 책으로 지식을 얻고, 거문고로 마음을 닦는다는 말이 되겠다. 그래서일까? 거문고만큼 상류사회, 또는 지식인 사회에서 애호를 받아 온 악기도 드물다. 17세기 초, 양덕수(梁德壽)가 펴낸 《양금신보(梁琴新譜)》에는 거문고가 음악을 통솔하는 악기라는 점, 그래서 군자의 악기인 거문고를 백악지장(百樂之長)으로 보고 있다. 거문고나 가야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