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기민요 <이별가>에 이어 판소리 춘향가에 나오는 이 도령과 춘향의 이별 대목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헤어지기 전날 밤, 춘향은 울부짖으며 “금강산 상상봉이 평지가 되거든 다시 올 것인가? 바다가 육지가 되거든 올 것인가?, 말 머리에 뿔나거든 올 것인가? 까마귀 머리 희어지면 오겠는가?” 등 불가능한 조건들을 열거하며 다짐을 받으려 한다는 이야기, 이에 이 도령은 오나라 정부(征婦)이야기를 끌어 들이며 그녀들이 싸움터에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듯, 자기를 기다려 달라는 주문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뒤로 이어지는 대목이 오리정이 아닌, 춘향의 집안에서 이별을 고하는 느린 진양 장단의 <와상 대목>이다. 이 부분의 사설을 읽어보도록 한다.
“와상(臥床) 우에 자리를 펴고 술상 차려 내여 놓으며 이왕의 가실테면 술이나 한잔 잡수시오. 술 한 잔을 부어 들고, 권군갱진일배주 허니, 명조상이로막막을 여관한등 잠 못 들 제, 권할 사람 뉘 있으며 위로 헐 이가 누 있으리, 이 술 한잔을 잡수시고 <중략> 편안히 행차를 허오”
위 글에서 권군갱진일배주(勸君更盡一杯酒)는 상대에게 다시 술 한 잔을 권하는 시구(詩句)이고, 명조상이노막막(明朝相離路漠漠)은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헤어져 갈 길이 막막하다는 뜻, 여관한등(旅館寒燈)은 여관의 찬 등불 밑에서 잠을 못 이룬다는 이별 후가 상상이 된다.
춘향이 권하는 술잔을 받아든 이 도령은 양반 행실이 원수라며 처음 만났을 때에는 기쁨의 합환주(合歡酒)를 먹었는데, 오늘 이별주가 웬 말이냐고 탄식을 한다. 그러면서 각 종 이별에 관한 이야기들을 끌어대며 춘향을 위로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이별이었는가 살펴보도록 한다.
“소통국의 모자 이별, 정객관산노기중에 오희 월녀의 부부이별, 초가사면 만영월의 초패왕 우미인 이별, 엄무사단봉의 왕 소군에 한궁 이별, 서출양관무고인은 위성조우 붕우 이별, 이런 이별 있건마는 너와 나와 당헌 이별, 상봉 헐 날이 있을 테니, 설워 말고 잘 있거라.”
위에서 이 도령이 열거한 이별들은 각각 어떤 사연을 담고 있는 이별들이었을까?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한다.
첫째는 소통국의 모자 이별에 관한 유래이다. 중국 한나라에 소무(蘇武)라는 사신이 흉노국에 갔다가 19년 동안이나 잡혀 있게 되었다. 그 동안 흉노 여인에게서 통국이란 아들을 얻었는데, 후에 돌아 올 때에는 아들만 데리고 한 나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무의 아들, 통국과 그를 낳아준 어미의 모자 이별이란 말이 전해 오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정객관산노기중에 오희(吳姬)ㆍ월녀(越女)의 부부 이별이다. 오나라와 월나라가 서로 싸울 때, 각기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놓고 초조하게 이들을 기다리는 오나라와 월나라 여인들의 별거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장기간 전쟁터에 나가있는 남편을 기다리는 부인들, 그리고 그 친족들은 승패를 떠나 모두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셋째는 초가사면 만영월(楚歌四面 滿盈月)의 초패왕과 우 미인의 이별이다.
이 이별은 초나라 임금인 항우가 한 나라 군사들에게 포위를 당했을 때, 마침 달 밝은 밤에 군사들이 초나라의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초나라 군사들이 모두 항복한 줄 알고, 체념하며 “우 부인이여, 우 부인이여, 너를 어찌하랴”라는 시를 지어 불렀다고 하는데서 유래한 이별이다. 전쟁에서 진다는 것은 땅과 재산을 잃는 것뿐이 아니다. 사랑스런 아내나 자식, 부모 형제를 잃게 되는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것이 전쟁이란 사실이다.
넷째는 엄무사단봉의 왕 소군에 한궁 이별이다. 한(漢) 나라가 여러 나라와 유화정책을 펴기 위해 혈연관계를 맺어 왔는데, 왕소군이란 여인은 한나라의 궁녀로 특별히 미모가 뛰어나 흉노 우두머리에게 강제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한 나라 궁궐을 떠나는 것도 싫었는데, 마음에도 없는 흉노족 장수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으니 그녀의 이별도 슬픈 이별이었을 것이다. 단봉은 한 나라의 궁궐이름으로 엄무사단봉, 곧 엄루사단봉은 한 나라의 궁궐을 떠나려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뜻이다.
다섯째는 서출양관무고인 위성조우 붕우 이별이다. 서출양관무고인(西出陽關無故人)이란 말에서 양관은 지역이름이다. 양관의 서쪽을 나서면 아는 사람이 없고, 아침비는 내리는데 벗과 이별을 한다는 쓸쓸한 의미의 이별이다.
이처럼 춘향가 사설 속에 이별을 다루는 문장 역시, 어려운 7언 절구나 한자어가 많아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의미가 통하고 나면 이별의 아픔에 더욱 공감이 되는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