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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한 일본 화가의 ‘신라인과 대화’

[맛있는 서평] 《신라인과 대화》, 히라노 교코, 사람in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20]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얼마 전에 온라인 중고서점(www.bookoa.com)에서 《신라인과 대화》라는 책을 주문하여 읽었습니다. 나는 ‘신라인과의 대화’라고 하기에, 신라의 역사나 문화 예술에 관한 책이겠거니 하면서 책을 주문했던 것인데, 배달되어온 책을 받아드니 지은이는 히라노 교코(平野杏子)라는 일본 여자 화가입니다. 이를 정희정씨가 번역하여 2000년에 출판하였네요. 책 표지에는 ‘화폭에 담은 경주 남산 마애불’이라고 작은 글씨로 쓰여 있고, 경주 남산의 마애불도 그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일본 여자 화가가 경주 남산의 마애불에 빠져들게 되었을까?

 

교코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현모양처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정대로 진학합니다. 1930년생인 교코가 대학 들어갈 때인 1950년대에는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모두 여자는 대학을 보내더라도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고 가정대로 보내는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코는 미술에의 꿈을 버릴 수 없어 대학 입학 후 미술 동아리에 가입했고, 졸업 후에도 회화연구소 조수로 일하며 끝내는 일본미술전람회에서 입선을 하여 화가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 아이들이 서너 살쯤 되었을 때 죽을병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면서 생사를 넘는 시간의식에 눈을 떴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극적으로 병상을 털고 일어난 뒤 교코의 그림 세계도 불교 세계로 들어간 것이구요.

 

그럼 불교 미술 세계로 들어온 교코가 신라 불교 세계에는 어떤 경위로 들어오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기막힌 우연이 있습니다. 1969. 6.경 큐수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교코는 운명적으로 김종득이라는 한국 남자를 만납니다. 교코는 옆자리에 우연히 같이 앉게 된 부산일보 기자 김종득과 얘기를 나누게 되는데, 그의 일본어 억양이 약간 이상하여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임을 알게 되면서 얘기는 한국 미술로 발전합니다.

 

김종득은 교코가 화가라는 것을 알고 열정적으로 교코의 한국 미술에 대한 편견을 깨면서 꼭 한번 한국에 오라고 합니다.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된 두 사람은 그 후 수차례 편지를 주고받았고, 끝내 교코는 그다음 해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그러나 교코는 처음부터 경주 남산의 마애불과 마주치지는 못했습니다. 남산의 서쪽 면 선방골 입구에서 배리 삼존불을 만난 교코는 남산의 불국(佛國) 세계로 좀 더 들어가고 싶었으나, 당시 경주 남산의 불국(佛國)은 오늘날처럼 개발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아서 외국인 여자가 안내인 없이 들어가기는 불가능하였습니다.

 

결국 교코는 5번째 한국 방문인 1976년 11 무렵 안내인 윤경렬 선생을 소개받아 드디어 남산 불국 안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 뒤 교코는 완전히 경주 남산에 꽂혀 남산의 모든 골짜기, 능선마다 찾아다니며 사시사철로 변하는 남산의 불국 세계를 모두 화폭에 담았습니다. 아마 한국 화가 중에도 교코만큼 경주 남산을 샅샅이 훑으며 그림으로 남긴 화가는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경주 남산을 화폭에 담았으니, 한국인들에게도 보여주어야겠지요. 교코는 김종득 기자의 주선으로 1976년 9월 16일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이 공동주최하는 <히라노교코 초대전>을 여는 등 몇 차례 한국에서도 전시회를 가졌습니다.

 

책에 보니 교코는 자신의 70번째 생일인 2000년 3월 30일 다시 남산을 올랐더군요. 그때의 심정을 교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의 고향 남산의 땅을 밟으며 하늘을 향해 양손을 뻗었을 때 우주의 리듬과 생명체의 리듬이 일체화되어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날 수 있었다.”

 

그 후의 교코의 행적이 궁금하여 인터넷을 검색해보나, 2000년 이후의 행적은 보이지 않는군요. 아마 나이가 있어 그 후 절대 남산을 오르지는 못한 것 아닐까요? 살아 있다면 지금 90살이 되었을 교코! 우연히 책을 샀다가, 한 일본 여자의 경주 남산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린 과연 이 이방인 여자만큼 경주 남산을 사랑하였던가?’ 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히라노 교코 선생! 아름다운 경주 남산의 부처의 세계를 새롭게 알게 해주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