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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이별 후 삼 년이 - 별후광음, 우금삼재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7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판소리 춘향가의 시작 부분이 제(制)에 따라서는 조금씩 다르다는 점, 춘향가의 앞부분은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 노래, <이별> 노래, 그리고 <신연맞이>로 이어지는 점에서 감정과 소리가 달라진다는 점, 이처럼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즐겁고, 슬프고, 기쁘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물이나 상황에 느껴 감정이 달라지고, 그 달라진 느낌이 마음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서 소리가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얘기했다.

 

한 예로 마음이 슬프면 그 소리는 초이쇄(噍以殺), 곧 그 소리가 타는 듯 하면서도 힘이 없고, 즐거운 마음이 느껴질 때는 그 소리가 명랑하면서도 여유가 있고, 기쁜 마음이 느껴질 때는 그 소리가 높아져서 흩어지며, 분노의 마음을 느낄 때는 그 소리가 거칠고도 사납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이별 후 삼년이 지났네요”로 시작되는 춘향의 편지내용을 소개한다. 십장(十杖)가를 비롯하여 몇 대목은 이 난에 소개한 바 있거니와 춘향가 가운데는 다시 한번 듣고 싶거나 음미해 볼 만한 문장이 많은 편이다.

 

 

옥에 갇힌 춘향이가 이 도령에게 편지를 써 보내는 내용으로, 시작은 <별후(別後) 광음(光陰), 우금(于今) 삼재(三載)> “이별 후에 세월이 지금 3년이 되었네요”로 시작하고 있다.

 

꽃피는 봄, 이 도령과 춘향은 광한루에서 만나 사랑을 속삭이고, 곧 이별을 맞게 되고, 부임해 온 사또는 지위와 권력으로 춘향의 수청을 끈질기게 강요하는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다. 결국, 춘향의 정절과 사또의 사욕이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면서 현직 사또에 대항하다가 지친 춘향이가 옥중에서 편지 한 장을 쓰게 되고, 이 편지를 이도령에게 보내는 내용이다.

 

이 부분은 노래라기보다는 송서(誦書)체, 곧 책을 읽듯이 읽어 나가는 형태로 한자어가 많이 들어 있어서 그 대강만을 짐작할 뿐,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김세종제의 사설로 그 의미를 풀어보기로 한다.

 

“별후(別後) 광음(光陰)이 우금(于今) 삼재(三載)어,

척서(尺書)가 단절하야 약수(弱水) 삼천리에 청조(靑鳥)가 끊어지고,

북해(北海) 만리에 홍안(鴻雁)이 없암애라.”

 

<풀이>

이별 후, 3년의 세월이 흘러갔네요.

편지가 단절되어 약수강을 건너 서왕모의 편지를 전달해 주던 파랑새의 모습도 끊어지고, 북해 만리에는 편지 나르던 기러기도 없군요.

 

 

윗글에서 파랑새는 반가운 편지나 반가운 소식을 가지고 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북해라고 하는 먼바다는 한나라 사신 소무가 흉노족에 사신으로 갔다가 잡혀 있던 곳으로 여기서 그는 기러기 다리에 편지를 매달아 고향으로 날려 보냄으로써 제 처지를 전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한 뜻에서 기러기를 홍안으로 표현하고 있다.

 

“천애(天涯)를 바라보니 망안(望眼)이 욕천(欲穿)이요,

운산(雲山)이 원격하니 심장(心腸)이 구열(俱裂)이라.

이화(梨花)에 두견 울고, 오동에 밤비 올 적, 적막히 홀로 앉아

상사일념(相思一念)이 지황천로(地荒天老)라도

차한(此限)은 난절(難絶)이라.

무심한 호접몽(胡蝶夢)은 천리의 오락가락,”

 

<풀이>

하늘 끝 먼 곳을 바라보니, 눈이 하늘을 뚫을 듯하고,

구름 덮인 산에 가리어 멀리 떨어져 있으니, 심장이 모두 찢어지는 듯하네요.

이화에는 두견새 울고 오동나무에 밤비가 내릴 때, 쓸쓸히 혼자 앉아

님을 생각하는 내 마음은 땅이 황폐해지고 하늘의 기운이 쇠약해진다고 해도,

지금의 내 한은 끊어지기 어렵다오.

내 마음 몰라주는 나비의 사랑 꿈은 천리를 오락가락 하네요.

 

“정부지억(情不止抑)이요, 비불지성(悲不自省)이라.

오읍장탄(嗚泣長歎)으로 화조월석(花朝月夕)을 보내옵더니

신관사또 도임 후에 수청들라 허옵기에,

저사모피(抵死謀避) 허옵다가 참혹한 악형을 당하여,

모진 목숨이 끊지는 아니하였사오나,

미구(未久)에 장하지혼(杖下之魂)이 되게 삼겼으니,

바라건대 서방님은 길이 만종록(晩鐘祿)을 누리시다

천추(千秋) 차생(此生)의 미진한(未盡限)을 이별 없이 사사이다.”

 

<풀이>

사랑하는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슬픔에 젖어 스스로 살피지 못함이라.

눈물과 긴 한숨 속에 꽃피던 아침이나, 달 뜨던 저녁과 같은 좋은 시절을 보냈건만, 신관사또의 수청 요구에 이를 피하다가 참혹한 악형을 당해서 아직 죽지는 않았서도 오래지 않아 매를 못 견뎌 죽을 것 같게 생겼으니, 서방님은 부디 높은 벼슬을 누리시다가, 이 세상에서 누리지 못한 사랑의 한스러움을 이별 없이 사시기 바랍니다.

 

춘향의 편지는 구구절절이 아름답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상대를 원망하는 문장이 아니라 이 도령의 앞날을 축복해 주는 내용이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