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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엄니는 102살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8]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제가 책을 좋아하니까 심심찮게 책 선물을 받게 됩니다. 선물 받는 책 가운데는 평소 제가 관심이 있는 분야의 책도 많지만, 선물을 받지 못했다면 결코 읽어보지 못할 책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책들 가운데 뜻하지 않은 보석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강 대표를 모시고 법률상담을 하러온 구미꼬가 선물해준 책도 그런 보석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바로 《엄니는 102살》이라는 책입니다.

 

《엄니는 102살》은 논현동에 있는 일식접 어도의 배정철 대표가 쓴 책입니다. 배대표는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어머니에게 쓴 2,554통의 편지를 모아 책으로 냈습니다. 원래부터 책으로 내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어도의 단골인 영동고등학교 - 어도 근처에 영동고가 있습니다 - 이진훈 선생이 배 대표 집무실인 어도 1호실에서 배 대표와 대작(對酌)을 하다가, 배 대표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포스트잇에 써 내려간 사모곡의 편지들을 보고 출판을 강권한 것이지요.

 

 

배 대표는 3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났는데, 어머니는 48살에 배 대표를 낳았습니다. 요즘 시대 같으면 배 대표는 세상 빛을 보지 못했겠네요.^^ 배 대표는 4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 때문에 상경하여 세광고등공민학교를 1년 다니다가 그마저 중퇴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문팔이부터 시작하여 식당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조리를 배워 1993년에 어도를 인수합니다.

 

이후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여 어도를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그야말로 일벌레였네요. 배 대표가 편지를 쓰게 된 것도 일벌레에 대한 반성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어도 경영에 몰두하다 보니 가족들과의 대화도 별로 없고 그러다 보니 자녀들과의 관계도 원만치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배 대표가 생각한 것이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2009년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내와 자녀들은 물론이고 모시고 있던 어머니에게도 편지를 쓴 것입니다.​

 

7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는 것만으로 보석을 발견했다고 할 수는 없지요. 이제 봤더니 배 대표는 기부 천사였습니다. 서울대학교 병원에 매년 1억 원씩 기부를 이어오고, 그밖에도 고려대, 카톨릭의대성모병원, 순천향대학교병원, 친구가 재직하고 있는 순천의 효천고, 고향의 장성고 등 수십 군데에 기부해오고 있습니다. 자신이 졸업한 전남 장성의 진원초등학교에는 매년 졸업식 때마다 졸업생 전원에게 10만 원씩 입금된 통장을 전달하고 있다고 하고요. 그리하여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이 60억 원이 넘는다고 하네요.

 

이뿐만 아니라 노인들, 어려운 사람 등 어도의 음식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음식 기부를 합니다. 어도로 초청하여 잔치를 벌여주기도 하고요. 그리하여 이러한 선행으로 2002년에 대통령 표창, 2011년에 국민포장, 아름다운 납세자상 등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배 대표의 선행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가난한 삶 속에서도 유일한 생계였던 고구마밭의 고구마도 이웃 노인들에게 나눠주던 분입니다. 처음엔 배 대표가 하루도 쉬지 않고 어도의 문을 연다고 하여, 인생을 그렇게 워커홀릭(일을 하지 않으면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는 성향)으로 살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악착같이 번 돈으로 아낌없이 기부한다는 것을 알고는 배 대표를 다시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엄니는 102살》을 읽어보면 배 대표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효를 느낄 수 있고, 또 배 대표의 기부 행위가 결코 가식적인 것이 아니라 배 대표의 따뜻한 인간미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에 일기의 몇 군데를 인용해보지요.

 

오늘은 걸레로 방바닥을 훔치고 계시네요. 그러다 저를 보고 환하게 웃으시니 그 웃음이 저를 있게 합니다. 뼈밖에 안 남으신 어머니! 그래도 웃으시는 어머니. 빨래를 개고 계시네요. 부지런함이 몸에 밴 까닭이지요. 그 부지런함으로 저를 키우셨지요. 인제 그만 놓으셔도 되는데...

 

곁에만 있어 주셔도 힘이 됩니다. 어머님 뜻에 따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겠습니다. 설령 빛이 흐려지고 소금이 녹아 없어지더라도 그 속에 어머님의 사랑만은 영원할 것입니다.

 

나물 몇 가지에 작은 공기로 밥 한 공기, 그리고 국 한 공기, 그렇게 맛있게 드시니 참 고맙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하는데, 자식은 늙으신 부모님이 맛있게 드시는 걸 보면 배가 부르다기보다 기쁨이 샘솟는다고 해야 할까요. 엄니, 내일도 모레도 오늘처럼 맛있게 드셔 주세요.

 

아무리 불러도 질리거나 싫증 나지 않는 우리 엄니. 늘 아침에 뵙고 짧은 시간이지만 모자간에 정을 나눕니다. 50이 되어가는 막내아들이 어머니 눈에는 어린아이로 보이시겠죠. 아들인 제 눈에도 울 엄니가 제일 아름답습니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엄니와 제 마음은 변하지 않겠지요. 가을이 점점 깊어갑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밤새 안녕하신지... 그리고 식구들이 떠들썩하고 웃는 소리에 안심합니다. 엄니도 무사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생각해 보면 올 한해 풍성했던 해입니다. 이보다 더 행복하길 바라면 욕심이겠지요.

 

늦동이로 태어나 부모님께 받은 것 없이 혼자 힘으로 일어난 배 대표, 그럼에도 어머님에 대한 사랑으로 이웃에 선한 사랑을 베푸는 배 대표. 이런 모자간의 사랑과 아름다운 기부의 모습을 보게 해준 책이니 제가 보석을 발견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2016년에 배 대표의 어머님은 102살이셨습니다. 그 뒤 어머님은 어떻게 되셨나 궁금하여 찾아보니 어머님은 2018년 오래 전 자기 곁을 떠나간 남편을 찾아 하늘나라로 가셨더군요.

 

어머님은 가셨어도 배 대표의 기부 손길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존경할만한 분이네요. 언제 어도로 찾아가 배 대표를 직접 만나보고 싶네요. 배정철 대표! 그동안 아낌없는 기부를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어도의 문을 열었던 그대를 존경합니다! 배 대표도 이제 60 고개를 넘었으니, 이제는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그대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기부천사 배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