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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삶을 부탁받은 이 가을에

후회 없이 사랑하라고 외치고 간 ‘에바 캐시디’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2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다시 가을이 왔구나. 여름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잎들이 하나둘씩 떨어지니 우리 마음도 함께 떨어지는 듯 감정이 예민해지고 처연한 느낌도 생긴다. 우리 주변에서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럴 때 흔히 프랑스의 이브 몽땅. 혹은 줄리에타 그레코가 부른 '고엽(낙엽)'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는 와인이건, 맥주 건, 커피 건 한 잔씩 나누며 센치해지곤 한다. 이런 가을에 나는 최근 그런 노래와는 다른 새 '낙엽'을 즐겨 찾는다. 그리고는 떠나간 그 가수를 생각한다. 노래 제목은 ' Autumn Leaves', 가을의 잎이니 '추엽(秋葉)이라고 할까?

 

​낙엽들이 창가에서 휘날리네요

빨갛고 노란 낙엽들이 말이지요

그 잎에 여름이 키스한 당신의 입술과

햇빛에 거슬린 당신의 손이 보입니다.​

 

당신이 가고 나서 날이 참 오래되었네요

곧 오랜 겨울의 노랫소리가 들리겠지요

그런데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사랑하는 당신이 미치도록 그립답니다.

 

 

왜 이브 몽땅이나 그레코의 노래 대신에 이 노래를 듣는가? 이 노래가 더 쓸쓸하고 사무치고 외로워, 진짜 가을을 타게 하기 때문이다. 여성인 이 가수의 목소리가 더 투명하고 깨끗해서 노란 낙엽들을 땅으로 떨어트리는 차가운 가을하늘보다도 더 차갑고 짙은 감성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가수가 우리 곁에서 떠난 지도 한참이기 때문이다.​

 

바로 에바 캐시디(Eva Cassidy)다. 1963년생이니 필자보다는 열 살이 아래인데 25년 전인 1996년 11월에 세상을 떴으니 겨우 33년을 산 셈이다. 그런데 생전에 그리 유명하지도 않았고 그녀가 부른 노래도 1996년 1월에 워싱턴의 블루스 앨리(Blues Alley)라는 작은 재즈클럽에서 이틀 동안 녹음한 31개 노래가 다였다. 화장도 진하게 안 한 수수한 얼굴에 바로 앞에서 친구들에게 재즈, 블루스, 포크, 가스펠 등의 다양한 쟝르를 자신의 스타일로 멋지게 소화해 내었다.

 

감기에 걸렸지만 온몸을 던진 열창이 돋보였단다. 그 가운데서도 첫날 녹음은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 둘쨋날 녹음한 12곡만이 레코드판으로 발매되었는데, 이후에 비로소 그녀의 목소리가 평가받기 시작했다. 이 음반에 대해 당시의 워싱턴 포스트는 “그녀는 정말 포크, 블루스, 팝, 재즈, R&B, 가스펠 등 어느 영역도 다 노래를 할 수 있고, 그녀는 오직 이렇게 불러야 하는 것처럼 부른다”라고 평을 했다. 그러고서는 이 여성은 그해 11월에 세상을 떴다.

 

 

미국이나 영국의 팝 가수 중에 이런저런 사연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리고 모든 노래에는 일종의 영혼이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여자 에바 캐시디만큼 맑은 영혼과 깨끗한 감성을 일깨우는 가수는 많지 않다.

 

​그녀가 죽은 뒤에 라디오에서 먼저 호평을 받더니 노래 영상이 공개되자 먼저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상으로 올라섰고 비틀스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와 유명한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 등이 그녀의 팬으로 모였다. 영향력 있는 미국의 재즈 평론가 테드 자이오야(Ted Gioia)는 '캐시디 센세이션'이라고 부르고 싶다며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인 그녀가 오랫동안 무명으로 살다 간 것이 때이른 죽음만큼이나 큰 비극이라고 했다.

 

비로소 미국의 뉴욕타임스도 “넓은 음역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르는 비단과 같은 소프라노의 음성, 정점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멈추게 하는 타고 난 유려한 창법”이라고 최고의 찬사를 보내준다. 2001년에는 미국 ABC의 나이트라인에 그녀의 음악팬 한 사람이 짧은 음악인생을 정리한 다큐멘터리가 방송돼 인기에 불을 붙였다.

 

 

에바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음악의 꿈을 지켜나가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1993년에 등에 작은 점들이 나타나 그것을 떼어냈는데 1996년 초 재즈클럽에서의 앨범을 알리기 위한 각종 행사로 분주하던 중에 엉덩이에 통증이 왔단다. 처음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통증이 심해져 X레이 검사를 하니 이미 흑색종이라는 암이 뼛속으로 진행되고 폐로도 전이된 것으로 나타났다.

 

석 달이나 다섯 달밖에 시간이 없다는 말에 과감한 항암치료를 했지만, 그것으로 건강이 아주 나빠져 그해 9월 17일에 열린 자선 콘서트에 나온 것이 대중에게는 마지막 얼굴이었다. 그리고는 두 달도 안 된 11월 2일에 세상을 떠났다.​

 

25년 전에 세상을 뜬 여자 가수의 삶을 나는 이제 왜 무엇 때문에 다시 조명하는가? 요즈음 음악감상의 주류가 된 유튜브에 에바 캐시디의 노래 12곡 영상이 올해 초에 한데 모여져 올라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사후 25주년을 기념해서 단편적으로 보여지던 영상들을 모아 함께 다 올린 것이다. 노래 부르는 모습을 다시 보니 마치 그녀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야말로 현대의 문명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것이다.

 

에바가 그날 가족과 친구, 팬들이 있는 데서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는 루이 암스트롱이 불러 유명해진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What a Wonderful World)”였다.​

 

I see trees of green, red roses too

I see them bloom for me and you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푸르른 나무와 빨간 장미를 보았네

너와 나를 위해 피어나는 모습이여

나는 생각하네,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I see skies of blue and clouds of white

The bright blessed day, the dark sacred night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저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을 보았네

밝고 축복된 낮과 성스럽고 어두운 밤

또 난 생각하네,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이 여성이 온갖 고생을 이기고 아름다운 노래들을 막 부르기 시작했다가 30대 초반에 떠난 것도 그렇고 더구나 마지막에 부른 노래가 더욱 애틋함을 준다. 우리가 보통 갖는 이 노래의 느낌은 정말로 이 세상이 멋지다는 뜻인데, 에바의 노래는 이 멋진 세상을 더 살지 못하고 떠나는 절박한 심정을 담은 것이어서, 이 노래를 들으면 우리가 늘 주위에서 보는, 암으로 생을 마감하는 그 수많은 분이 그렇게 아쉬워한 삶의 나날들이 이 가을의 낙엽 위에 비치며 교차하는 것이다.

 

먼저 간 사람들이 그리 간절히 소원하던 매일 매일, 우리는 그들이 더 살고 싶어 한 그 날들을 제대로 살고있는 것인가? 우리에게 죽음은 늘 코 앞에 있는 것인데,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자신의 욕심만을 추구하며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이런 생각들을 다시 하게 된다.

 

 

이브 몽땅과 함께 고엽이란 노래를 불러 유명해진 줄리에트 그레코도 지난해 가을에 멀리 떠나갔다. 그보다 훨씬 전에 세상을 뜬 에바 캐시디는 이 가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녀를 비롯한 가수들이 부른 간절한 사랑노래들은 삶이 무엇인지를 아느냐고 묻는다. 그녀의 노래에 대해 아내와 연인, 가족들을 먼저 보낸 애청자들의 눈물 어린 반응들이 유튜브에 줄을 잇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던져 인생의 아픔과 슬픔을 대신 경험하고, 삶을 이어줄 사랑과 소망이라는 소중한 장기를 몸으로 기증하고 간 ‘노래하는 새(Singing bird)'였다. 그녀와 많은 음악가, 노래하는 분들이 이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에게 위탁한 삶은 아마도 후회 없이 사랑하라는 것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