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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들리는 평창강 물소리

평창강 따라 걷기 7-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강을 오른쪽에 두고 걷다 보니 북쪽으로 멀리 성필립보 생태마을이 보인다. 강가의 아카시아나무에서는 이제 막 아까시 꽃이 피기 시작하였다. 이 부근의 평창강 경치도 매우 아름다웠다.

 

 

도돈리 구역도를 보면 북쪽으로 평창강이 반도 모양의 땅을 휘돌아 흘러간다. 아마도 이 부분이 옥녀봉에서 바라보면 한반도 지형처럼 보일 것이다. 내가 사전 답사할 때 차를 타고 들어가 살펴보니 한반도 지형은 둑길이 중간에 끊겨 있다. 한반도 지형의 중간까지만 들어갔다가 둑길 따라 나오는 코스를 차로 미리 답사해 두었다.

 

82번 도로를 따라가다가 오른쪽 숲으로 나 있는 좁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한적한 숲길을 따라 들어가니 외딴집이 나타난다. 저런 집에 살면 외롭지 않을까? 숲길에 이어서 평창강 둑길이 나타난다. 길은 좁고,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봄이 한창이어서 사방이 녹색이다. 소곤소곤 소리 내며 흐르는 강 너머로는 녹색의 산이 가까이 보인다. 이 시기에 이처럼 아름다운 길을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걷는다는 것은 작은 기쁨이자 커다란 축복이다. 흙길 구간이 끝나면서 다시 82번 길로 돌아왔다.

 

 

길 따라 내려가자 대상마을 표시석이 왼쪽에 나타난다.

 

 

대상마을의 행정구역 이름은 대상리며, 대상리(大上里) 아래는 대하리(大下里)다. 대하리까지가 평창군이다. 대상리와 대하리에 걸쳐 있는 대얏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평창강이 이 마을을 빙 돌아 흘러 지형이 대야처럼 되었다. 대상리는 대얏골 위쪽에 있어 웃대얏골이라고도 한다. 대얏골 아래쪽에 있는 마을은 대하리 또는 아랫 대얏골이라고도 한다.

 

《평창강 지명지》에는 “대상리는 20년 전까지만 해도 100여 가호가 넘는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20여 가호의 주민들이 옥수수, 고추, 잎담배 등의 밭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평창강 지명지》가 2015년에 출판되었으니, 6년이 지난 지금은 가호 수가 더 줄지 않았을까?

 

계속 강 따라 내려가자 오른쪽에 대상교가 나타났다. 대상교 건너서 대상리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대상리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향토사학자인 정대원 선생의 말에 따르면 대상리에 폐사터가 있고 돌탑 부스러기가 쌓여 있다고 한다. 다음에 한번 가보아야겠다.

 

 

대상교를 조금 지나 오른쪽 강가로 내려가 갈대밭에 둘러앉았다. 시간은 2시 30분. 점심을 먹은 휴게소를 출발한 지 90분이 지났다. 나는 각시가 아침에 싸준 군고구마와 두유를 꺼내어 하나씩 나눠 주었다. 물가에 앉아 강물 소리를 들으며 간식을 먹었다. 사람들이 간식이 맛있다고 각시를 칭찬한다.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식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가양은 식물 구별하는 방법을 열심히 설명한다. 지칭개와 엉겅퀴의 차이점. 고들빼기와 씀바귀의 차이점. 나물밥의 재료로 사용하는 곤드레나물의 정식 이름은 고려엉겅퀴라는 것. 교과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쌍떡잎식물과 외떡잎식물의 이름 등등, 재미있는 식물 강의가 계속되었다.

 

평창강 흘러가는 물소리가 소곤소곤 들린다.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는 강물 소리 사이로 멀리서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들어보니 검은등뻐꾸기 소리다. 응암리 숲속에서도 홀딱새 소리를 들었는데. 오늘은 홀딱새의 날인가보다. 석영이 손말틀(휴대폰)로 검색하더니, 그가 아는 후배 시인이 썼다는 홀딱새를 주제로 한 시를 찾아내었다. 석영은 대학 다닐 때 방송반 아나운서를 했다. 홀딱새 소리가 들리는 강가에 앉아 석영이 굵직한 바리톤 목소리로 시를 낭송하였다. 우리는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한 가운데에서 시를 듣는다. 석영의 시 낭송은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계절적으로 주변과 완벽하게 어울렸다. 시 낭송을 녹화하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다.

 

                   검은등뻐꾸기의 전언

 

                                                              복효근

 

5월 봄밤에 검은등뻐꾸기가 웁니다

그놈은 어쩌자고 울음소리가 홀딱벗고, 홀딱벗고 그렇습니다

다투고는 며칠 말도 않고 지내다가

반쯤은 미안하기도 하고

반쯤은 의무감에서 남편의 위상이나 찾겠다고

처지기 시작하는 아내의 가슴께는 건드려보지도 않고

웟도리는 벗지도 않은 채 마악 아내에게 다가가려니

집 뒤 대숲에서 검은등뻐꾸기가 웁니다

나무라듯 웁니다

하려거든 하는 것처럼 하라는 듯

온몸으로 맨몸으로 첫날밤 그러했듯이

처음처럼, 마지막일 것처럼 그렇게 하라는 듯

홀딱벗고 홀딱벗고

막 여물기 시작하는 초록빛깔로 울어댑니다

 

강가에서 30분 정도 쉬었다가 우리는 3시에 다시 출발했다. 이제는 대하리를 지난다. 대하리는 평창군의 가장 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강의 왼쪽은 대하리이고 강의 오른쪽은 영월군이다. 카카오맵에서 대하리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구역도가 나온다.

 

 

대하리 마을 뒷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거슬갑산(540m)이라고 한다. 대하리 구역도에는 오도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여지도》에서는 거슬산(琚瑟山), 《대동여지도에》는 거슬갑산(琚瑟甲山), 《팔도여지도》에서는 거슬갑산(琚瑟玾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거슬갑산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강원도의 7대 명산이며, 오대산과 함께 평창군의 2대 명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1620년경 평창이씨 이진흡(李進洽)이 이곳에서 도를 깨우쳤다고 하여 오도산(悟道山)이라고도 부른다. (답사 뒤에 옥녀봉을 거쳐 오도산 정상까지 등산하였다. 오도산 정상에서는 나무들이 많아서 전망이 좋지 않았다. 오도산이 거슬갑산이라고 표기된 매우 낡은 팻말이 꽂혀 있었다.)

 

대하리는 곤드레나물 농사를 많이 지어 마을 소득을 올리며 산채으뜸마을로 꼽혔다. 대하리에서는 매년 6월에 ‘곤드레 축제’가 열린다. 올해에는 아마도 코로나 때문에 취소되었을 것 같다. 내년에는 코로나가 잠잠해질 텐데 그러면 한번 구경하러 와야 하겠다.

 

길은 평창강 따라 계속해서 남쪽으로 뻗어있다. 강 양쪽으로는 산봉우리가 이어진다. 답사 종착지점에 거의 다 가서 우리는 길 왼편에 있는 매봉쉼터에서 잠간 쉬었다가 갔다.

 

우리는 4시 10분에 오늘 답사의 종착지인 연화사 입구에 도착했다. 연화사는 길에서 200m쯤 산 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연화사는 1970년에 창건한 비구니절이라고 한다. 우리는 절에 올라가지는 않았다. 나는 멀리 보이는 지장보살을 사진 찍었다.

 

 

 

오늘 답사 인원이 6명이기 때문에 승용차 한 대로는 이동할 수 없다. 은곡이 운전하는 트럭의 짐칸에 4명이 타고서 출발지로 이동하였다. “우리가 예비군 훈련받는 것 같다”라고 석영이 말했다. 예비군 출신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적절한 비유이다.

 

 

오늘 평창강 따라 걷기 제7구간 12km를 4시간 40분 동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