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노해 시인이 5번째 사진에세이집 《아이들은 놀라워라》를 냈습니다. 박 시인은 지난 20여 년 동안 팔레스타인, 아프카니스탄, 미얀마, 남미 안데스, 쿠르드족 지역 등 분쟁지역이나 가난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지역을 다니면서 평화를 전파하며 그들의 삶을 사진에 담아왔지요.
주로 흑백 아날로그 사진으로 담아왔는데, 그동안 이렇게 담아온 사진을 지역별 또는 주제별로 나누어 여러 차례 전시회도 열었고 사진에세이집도 낸 것입니다. 이번에는 이러한 지역의 아이들을 담은 사진에세이집을 냈네요. 물론 사진에세이집 뿐만 아니라, 라 카페 갤러리(종로구 자하문로 10길 28)에서 같은 제목으로 사진 전시회도 열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나눔문화> 임소희 이사장은 감사하게도 저에게까지 책을 보내주었습니다.
박노해 시인이 지난 20여 년간 만나온 세계
아이들의 강인하고 눈물겨운 모습이 담겼습니다.
전쟁터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안아주고,
지구마을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며 기록해온
시인의 이야기가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아이들은 희망이어라. 아이들은 어둠 속 빛이어라.”
인류의 희망인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노동하고 기도하는 부모와 어른들에게 바치는
이 책을 통해 마음의 빛과 힘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임 이사장이 책을 보내면서 책갈피에 끼워 보낸 ‘드리는 글’의 일부입니다. “아이들은 희망이어라. 아이들은 어둠 속 빛이어라.” - 임 이사장이 박 시인의 글을 인용한 것인데, 그렇지요. 아이들은 우리의 희망이요, 어둠 속 빛입니다. 그렇기에 박 시인은 분쟁지역에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지만 그래도 초롱초롱한 희망의 눈빛을 잃지 않고 건강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그 아이들에게 사진기를 들이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진만 찍겠습니까? 꼭 껴안아 주고 뺨을 비벼대며 서로의 사랑의 온기를 전합니다. 박 시인은 아이들 앞에 서면, ‘놀라움’과 ‘두려움’이라는 두 가지 감정에 사로잡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늘같이 맑은 눈의 아이들이. 그 천진한 눈망울이 내게는 가장 떨리고 엄중한 시선이다. 행여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나쁜 길을 선보이지 않을까, 나는 내 삶의 태도와 말과 행동과 걸음을 가다듬는다.
박 시인의 말에 저도 모르게 자세를 가다듬게 됩니다. 박 시인은 아이들이 미래에서 온 빛이고 미래로 난 길이라고 합니다. 반성합니다. 나는 과연 아이들을 이만큼이나 생각을 하였나? 저뿐만 아니라 제 주위에 반성해야 할 어른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도 아이였었는데 말이지요. 그런데 박 시인이 만난 아이들에 견줘 지금 우리들의 아이는 훨씬 풍족한 환경 속에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과잉입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영어학습이니 선행학습이니 하면서 아이들의 심신은 메말라갑니다. 박 시인은 이를 개탄하면서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 과잉 개발되고 있다. 모든 게 짜여지고 계획되고 들어차고 여백과 여지가 남아있지 않아 아이들의 영혼은 숨이 죽어간다. 역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이 과잉의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단 하나가 있다면 아이들에게 ‘존재의 광할함’을 허용하는 일이다. 결여 속에 살아나는 간절함과 강인함, 자연 속에 깨어나는 전인적 감각, 순수한 우정의 친구, 모험과 분투, 침잠과 고독, 시련과 상처까지. 그러니까 자유, 자유의 공기 말이다!!!
박 시인의 사진에세이집 얘기하다 보니, 정작 에세이집에 들어있는 구체적인 사진과 그에 대한 짧은 에세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네요. 이제 몇 가지 사진에세이에 대해 인용하겠습니다.
<간절한 눈빛으로>라는 사진 작품입니다. 아이들은 지금 선생님을 바라보는 건가요? 아니면 칠판을? 그런데 그 어린아이들의 눈빛은 박 시인이 붙인 제목처럼 간절합니다. 그리고 초롱초롱합니다. 이 사진에 대해 박 시인의 에세이는 이렇게 펼쳐집니다.
지도에도 없는 높고 깊은 산속의 아카족 마을.
보아주는 이 없어도 정성껏 전통 의상을 차려입고
판자로 지은 한 칸짜리 학교에 모여든 아이들이
아빠들이 짜준 나무 책상에 앉자마자
간절한 눈동자로 공부 삼매경에 빠져든다.
배움은 간절함이다.
결핍과 결여만이 줄 수 있는 간절함이다.
그 간절함이 궁리와 창의, 도전과 분투,
견디는 힘과 강인한 삶의 의지를 불어넣는다.
우리가 아이들에게서 빼앗아버린 것은
그 소중한 ‘결여’와 ‘여백’이 아닌가.
간절한 마음에 빛과 힘이 온다.
이 사진은 뭔가요? 아이들이 탱크 위에 올라가 있다니. 아이들이 어울리지 않는 탱크 위에 올라가 깃발을 흔든다는 것은 뭔가 비정상적인 것 아닙니까? 제목이 <파괴된 이스라엘 탱크 위에서>입니다. 박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2006년,
국경 마을 빈트 주베일은 폐허의 무덤이었다.
목숨 건 항전으로 멈춰 세운 이스라엘 탱크 위에서
레바논 국기와 헤즈블라 깃발을 흔들며
울먹이는 열 살 알리와 일곱 살 가디르 남매.
피난 갓따 돌아오니 집도 학교도 친구들도 사라져버렸다.
“왜 탱크 위에서 그러고 있니?”
“죽은 친구들이 하늘나라에서 보라구요.
사라, 후세인, 하산... 편히 잠들어.
폭탄소리에도 깨어나지 말고, 무섭다고 울지 말고...
잊지 않고 기억할게. 우리 다시 만나자.”
죽지 않고 사는 게, 살아있는 게 꿈인 아이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작품만 더 보겠습니다. 바로 사진에세이집 제목과 같은 <아이들은 놀라워라>입니다.
검은 옷을 입은 형이 하얀 옷을 동생의 손을 붙잡고 들판을 걸어갑니다. 지금 아이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런데 아이들 뒤의 식물은 풀 종류 같은데, 아이들 키의 몇 배나 되네요. 이렇게 큰 풀이 있나요? 사진을 보여주며 박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린 형제가 일 나간 엄마를 마중하러
거센 바람 부는 황야를 가로질러
믿음의 손을 붙잡고 나아간다.
아, 우주 가운데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한 톨의 지구에서 짧고도 괴로운 생을 사는 ‘인간의 비참’
그럼에도 서로 사랑하고 헌신하고 사유하는 ‘인간의 위대’
그 사이에서, 지구에 온 아이들은 흔들리는 별빛이다.
이토록 위험 가득한 세계 속에서
이렇게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 속에서
인간의 비참과 위대 사이를 가르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아이들은,
아이들은 놀라워라.
가장 먼저 울고 가장 먼저 웃고
가장 연약하고 가장 강인하고
자신들만의 길을 찾아서 거침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버리는 아이들은,
아이들은 놀라워라.
아이들은 시대의 전위여라.
아이들은 인간의 희망이어라.
아이들은 어둠 속 빛이어라.
박 시인은 이 사진에서 희망을 보았군요. 이 아이들이 미래에서 온 빛이군요. 더구나 아이들은 묘하게도 흑과 백으로 대비되는 옷을 입고 걸어오고 있고요. 형의 눈빛에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헤쳐나가고 말겠다는 굳셈이 보입니다. 그리고 형의 손을 잡고 따라가는 순백의 동생의 눈에서는 형을 굳게 믿는 무한한 신뢰가 보입니다. 그래서 은 이 사진의 제목을 에세이집 대표 제목으로 뽑은 것인가요?
그런데 시인이 낸 에세이집이니 시 한 편은 있어야겠지요? 박 시인은 에세이집의 서문을 ‘뜨거운 믿음의 침묵’과 눈물의 기도로 바친 시로 마무리합니다. 저도 이 시를 인용하면서 《아이들은 놀라워라》를 본 제 소감을 마칩니다. 아! 참! 전시회는 내년 10월 1일까지(월요일 쉼)입니다. 광화문에 나가실 일 있으면 조금 발품을 팔아 ‘라 카페 갤러리’에서 의 사진을 통해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지 않으시렵니까?
아이야, 착하고 강하여라.
사랑이 많고 지혜로워라.
아름답고 생생하여라.
맘껏 뛰놀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네 삶을 망치는 것들과 싸워가라.
언제까지나 네 마음 깊은 곳에
하늘 빛과 힘이 끊이지 않기를.
네가 여기 와주어 감사하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