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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주상관매도가 떠오른 그림 ‘매물도에서’

진의장 초대전 <그림은 바다를 품고>를 보고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06]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흰물결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진의장 초대전 <그림은 바다를 품고>에 다녀왔습니다. 진의장 화백이 서울법대 선배, 더 범위를 좁힌다면 서울법대 문우회(文友會)의 선배이기에 더욱 시간을 내어 전시회에 갔다 온 것입니다. 진 화백은 서울법대를 나와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오랜 세무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제5대, 6대 통영시장(2003 – 2010)을 지냈습니다. 진 화백의 이력으로 보아, 진 화백이 처음부터 화가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겠지요?

 

그래서 문우회 단톡방에 진 선배님 전시회 소식이 올라왔을 때, 솔직히 의무감에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진 선배님이 은퇴하고 노후 소일거리로 그림을 그리는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시장에 들어가 그림들을 보는 순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단순한 소일거리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그림에서는 웅혼한 기백이 뿜어져 나오고, 자유로운 영혼이 춤추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게 뭐야?” 이건 내가 알고 있는 전문화가의 그림 그 이상이었습니다. “어떻게 평생을 공무원으로, 정치인으로 살아오신 분이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알고 봤더니 진 선배님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취미와 소질이 있었으며, 공무원, 정치인으로 있으면서도 틈틈이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여러 차례 전시회도 가지셨네요. 그래도 그렇지...

 

 

전시회 제목은 <그림은 바다를 품고>입니다. 통영이 고향인 진 화백이 고향 통영을 그린 그림들로 전시회를 열고 있기 때문이지요. 제가 그림을 평할 실력은 도저히 안 되지만, 강렬한 그림에 매료되어 몇몇 작품에 대해서는 제가 느끼는 대로 횡설수설해볼까 합니다.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한쪽 벽면을 전부 채우고 있는 길이 6.6m의 <통영교향악>이 먼저 눈에 띕니다. 진화백은 한지에 먼저 푸른색으로 바탕을 칠한 다음, 굵은 붓에 먹을 듬뿍 묻혀 한지에 힘차게 붓질하였습니다. 붓이 지그재그로 휘갈기듯이 나아가는가 하면, 붓을 힘차게 한지에 찍자 사방으로 먹방울이 흩뿌려집니다. 제목 그대로 그림에서 교향악이 웅혼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혹시 진 화백이 이 그림을 그릴 때 교향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듯이 신들리게 그림을 그리신 것이 아닐까요?

 

 

<통영바다>라는 그림에서도 웅혼한 붓질은 계속됩니다. 바탕에 통영 바다를 나타내듯 푸른색과 녹색이 찰랑이는 가운데에, 두툼한 붓의 획이 힘차게 솟구치다가 꺾여 내려갑니다. 그리고 다 내려갔다 싶을 때 다시 한번 솟구쳤다가 급하게 꺾여 바다로 자맥질합니다. 통영의 산을 나타내신 것 같은데, 자맥질하는 붓선은 이미 앞에서 먹을 많이 사용하여선지 갈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갈필이 오히려 산의 단단한 뼈를 드러내는 것같이 강렬합니다.

 

이러한 산의 모양을 보다 보니, 이종상 화백의 그림 <독도>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그리고 통영 바다 위로는 한 마리 용이 바다로 몸을 숙이다가 고개를 들고 갑자기 노란 광선을 뿜어내는 듯합니다. 구름을 나타낸 것처럼 보이는데, 용이 되고 싶은 구름인가? 이외에도 통영바다를 그린 그림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 화백의 이 그림처럼 통영바다를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게 추상화시킨 그림이 있을까요?

 

 

<봄은 밤으로부터 오는가>에서도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그림 속에서는 파란색이 녹색을 동반하며 화면 저편에서부터 다가오는 듯하고, 화면 왼쪽 위로는 푸름이 밴 붉은 색이 이들의 뒤를 은밀히 따라오는 듯합니다. 그리고 봄의 광선이 앞서가는 푸름을 헤집고 앞으로 나오려는 듯하고요.

 

이렇게 색채가 어울리는 그림을 보면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봄이 밤으로부터 오다니? 저는 이 그림을 보기 전에는 봄이 밤으로부터 온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그림 앞에서 멍하니 봄의 색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봄이 밤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화가도 진 화백 말고 누가 더 있을까요?

 

 

도대체 그림을 모르는 제가 그림에 관해 얘기해보려고 머리를 쥐어짜다 보니, 이미 기진맥진입니다.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내가 입을 벌리며 감탄하게 하였던 그림 하나는 더 얘기해야겠습니다. 그림의 중앙에서는 파란색으로 붓질이 세로로 쭉쭉 내려가고, 화면 아래쪽에서는 짙푸른 붓질이 가로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화면 오른쪽 위에서는 붓을 짓이기듯이 하여 거치른 점이 찍혀있습니다.

 

이것만 보면 하나의 추상화인데, 세로와 가로의 붓질 사이에서는 작은 배 하나가 떠 있고, 그 위에서는 초립을 쓴 한 남자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림 제목을 보니 <매물도에서>입니다. 그럼 세로로 죽죽 그어진 선이 매물도인가? 저는 갈필로 거칠게 내려간 선은 매물도의 바다 절벽으로, 가로로 두텁게 그어진 선은 매물도 앞의 큰 암초로 내 멋대로 상상해봅니다. 그럼 짓이겨진 거친 점은 창백한 푸른 태양?

 

매물도를 단순히 거친 붓질로만 나타냈다면, 그저 ‘매물도를 이렇게도 추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구나’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사이에 배 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는 남자를 간결한 구상화로 나타내니, 그림의 멋이 한결 증폭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을 보다 보니 단원 김홍도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주상관매도>에서는 절벽 밑을 지나는 배 위에서 약간의 술이 들어갔는지 얼굴이 불그스름해진 한 노인이 절벽 위의 매화를 바라보고 있지요. 그런데 왜 <매물도에서>를 보는 순간 <주상관매도>가 떠오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단원도 절벽의 밑둥을 생략하고 단지 매화가 핀 절벽 부분만 허공에 떠 있듯이 표현했기에,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매물도 절벽을 보면서 <주상관매도>가 떠오른 것일까?

 

 

전시장에 진 선배님이 계셨었다면 진 선배로부터 그림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을 텐데, 그저 무식한 상상의 나래만 펼치다가 전시장을 나옵니다. 문득 진 선배님이 통영시장으로 재직할 때, 동피랑의 달동네가 재개발 붐에 사라지지 않고 벽화마을로 재탄생했다는 얘기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통영시장이던 진 선배님이 박경리 선생을 통영으로 모셔 왔다는 기사도 생각납니다. 박경리 선생은 고향 통영에 대한 원망에 오랜 세월 일절 통영을 찾지 않았는데, 진 선배님의 정성 어린 삼고초려로 다시 고향 통영을 찾으신 것이지요. 지금 통영에 박경리 문학관이 있고, 박경리 선생이 문학관 앞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는 것도 다 진 선배님 덕분이지요. 이게 모두 혼이 살아있는 듯한 그림을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진 선배님이 시장으로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향(藝鄕) 통영에는 내가 좋아하는 박경리, 윤이상, 유치환, 김춘수, 전혁림 등 많은 예술인이 있습니다. 이제 그런 예술인에 진의장 선배님도 있다는 뿌듯한 생각을 하며 전시장을 나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