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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봄을 맞은 퇴계의 생각

학문과 덕행을 힘쓴 옛 성현들의 삶을 시 속에 녹여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9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오락가락 멈칫멈칫하다가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우리 주위 전역에 초록의 옷을 입은 봄의 아가씨들이 벌써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퇴계가 이런 정경을 묘사한다.

 

霧捲春山錦繡明 안개 걷힌 봄 산이 비단처럼 밝은데

珍禽相和百般鳴 진기한 새들은 서로 화답하며 온갖 소리로 우네

幽居更喜無來客 그윽한 곳 요즘은 찾는 손님이 없다 보니

碧草中庭滿意生 푸른 풀이 뜰 안에 마음껏 났구나

 

 

1565년 봄 퇴계 이황은 4년 전 완공된 서당에서 봄을 맞으며 서당 앞 정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자신이 머물며 수양과 교육에 진력할 좋은 땅을 구해 5년여 공사기간 끝에 마련한 도산서당의 앞뜰에 봄이 왔음을 시(詩)로 표현해 본 것이다. 퇴계는 봄날의 아침 풍경에 이어 한 낮을 묘사하는 시도 지었다. ​

 

庭宇新晴麗景遲 뜨락에는 비 갠 뒤에 고운 볕이 더딘데

花香拍拍襲人衣 꽃향기는 물씬물씬 옷자락에 스미누나

如何四子俱言志 어찌하여 네 제자가 모두 제 뜻 말하는데

聖發咨嗟獨詠歸 시 읊고 돌아옴을 성인이 감탄했나 ​

 

아침이 한낮으로 바뀌면서 살짝 비가 온 마당에 햇빛이 서서히 들고 있고, 비에 씻긴 풀과 꽃향기가 옷자락에 스며든다는 것이다. 앞 두 줄은 그런 뜻인데 뒤의 두 줄은 무슨 뜻일까? 네 명의 제자가 무슨 말을 했는데, 그 가운데 유독 시 읊고 돌아온다는 말에 대한 성인(공자)가 감탄을 했다는 것이고, 그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내용의 시다. 무언가 금방 이해하기 어려운 사연을 담고 있는 것 같다. ​

 

퇴계가 무심코 이런 구절을 넣어 시를 지을 분이 아니다. 무슨 뜻일까?

알아보니 구절의 배경에는 공자가 네 제자와 나는 대화가 있었다. ​

 

공자는 어느 날

자로(子路)와 증점(曾點), 염유(冉有), 공서화(公西華) 네 제자에게 차례로 각자의 포부를 말해보라고 한다.

자로(子路)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전차 천 대의 군비를 갖춘 제후의 나라가 강국 사이에 끼어 군대의 침략으로 인한 전쟁으로 피폐하여 기근이 덮쳐 곤궁에 쳐했다면 제가 그 정치를 맡아 3년 만에 다시 활기를 되찾게 하고, 도의를 존중하는 나라로 키워보고 싶습니다."

염유(冉有)가 대답했다. "사방 6, 7십 리 또는 5, 6십 리 쯤 되는 지역의 정치를 제가 맡아 3년 만에 백성의 생활을 풍족하게 만들어 보이고 싶습니다."

공서화(公西華)가 대답했다. "저는 꼭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희망을 말씀드리면 종묘의 조상 제사와 빈객이 모이는 회동(會同)의 제사 때에 단(端)의 예복을 입고 장보(章甫)의 관을 쓰고 의례를 보좌하는 소상(小相)의 역할을 맡고 싶습니다."

증점(曾點)은 그때까지 슬(瑟)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가볍게 튕기고 있다가 퉁하고 내려놓더니 자세를 고쳐 대답했다. "춘삼월이 되면 봄옷으로 갈아입고 젊은이 대여섯 명과 동자 예닐곱 명을 데리고 나가서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의 광장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며 돌아올까 합니다."

 

 

 

말하자면 자로는 강병(强兵)의 나라, 염유는 부민(富民)의 나라, 공서화는 예악(禮樂)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고 증점(曾點)은 기수라는 데서 물놀이하다가 바람 쐬고 놀단 다음 시를 읊으며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공자가 다른 제자들 말에는 빙긋이 웃기만 하다가 증점의 말은 그것을 인정하고 허락하겠다고 한 것이다. ​

 

그런데 퇴계는 갑자기 그의 시에 왜 이 구절을 집어넣었을까? ​

 

이 부분에 대해 주희(주자)는 다른 제자들이 섣불리 정치에 뜻을 두고 있지만 증점은 참다운 인간으로서의 가치관과 자세에 대해 올바르게 천명을 한 것이라고 말한다.

 

곧 다른 제자들이 남을 부리고자 하는 의욕을 이야기했지만 증점은 자기를 다스리고 싶은 그 마음이 표현한 것이며, 그것을 공자가 높이 인정한 것은 증점이 자기 자신이 처한 위치를 알고 그 속에서 자신이 취할 태도를 정해 자기완성의 길로 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어서 그것이 곧 올바른 군자의 길이라고 풀이한 것이다.

 

 

퇴계가 봄날의 시에다 이런 뜻을 담은 것은 퇴계가 고향인 안동 도산에 내려와 서당을 열고 생활할 때의 생각이었음을 알게 된다. 퇴계는 친형님인 온계(溫溪) 이해(李瀣, 1496~1550)가 간신들의 모함으로 목숨을 잃자 벼슬을 마다하고 학문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완전히 굳혀 1561년에 서당 건물을 완성했고, 서당 주변에는 집 옆의 샘을 살리고 연못부터 울타리, 화단까지 직접 디자인했고, 집 앞 오솔길의 입구와 낙동강 변의 천연대와 천광운영대까지를 찾아 다듬어놓음으로써 서당 일대를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정리해놓았다.

 

그리고는 그 속에서 학문과 수양과 교육을 시작했다. 퇴계는 그렇게 도산서당을 세워 거기에서 증점이 말하고 공자가 인정한 학문의 방법론을 일상생활에서 구현한 것이라 하겠다. ​

 

증점의 일화는 세상을 자기가 다스리겠다고 호기를 부리는 것보다는 먼저 자기부터 갖추어야 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퇴계는 선비들이 ‘도를 밝히고 세상을 구하다(明道救世)’의 삶을 치열하게 사는 것은 반드시 관료의 삶을 사는 데 있지 않고, 자기 수양을 해서 세상을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다시 인용한다. 그것이 도산서당으로 들어와 서당을 짓고 제자를 가르치려 한 그의 속마음이었다. 참된 수양과 학문과 교육으로 진정한 인간을 만들어 세상을 올바르게 만들자는, 이른바 ‘물러섬(身退)의 학문’이 퇴계의 속뜻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조 학자들도 모두가 논어를 읽고 주희를 공부했기에 공자가 증점에 대해 평가한 이 부분을 다 공부하고 주희가 말한 이런 경지를 추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삶을 산 인물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은일의 삶을 항상 즐기면서 산다는 것은 때론 관료적 삶을 포기한다는 것이기에 세속에서의 성공과 명성의 유혹을 넘어서기가 어렵다.

 

그러나 퇴계는 겉으로만 물러가는 척하는 풍토를 아쉬워하며 진정으로 자연으로 돌아와 공자의 속뜻, 공자가 말한 요순의 세상을 위한 방편을 몸으로 체현하자는 것이며, 그 말을 봄에 대한 시의 두 번째 연(聯)에서 말한 것이다. 겉으로 보면 하루가 지나는 과정을 쓴 것 같지만 실상은 그 속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공부와 수양의 길을 제시하고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퇴계는 학문과 덕행을 힘쓴 옛 성현들의 삶을 시 속에 녹여 그들의 길을 함께 할 것을 권하는 것이다. 그래야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오고 거기서 백성들을 위한 진정한 정치가 시작된다고 본 것이다. ​

 

그것이 곧 퇴계가 도산에 들어온 까닭이라고 생각하고 필자의 최근 저서 《퇴계가 도산으로 간 까닭은》에서 밝혀보았다. 많은 분이 학문을 하고 있지만 세상은 왜 이리 어지럽고 혼란스러운가? 학문은 진실을 탐구하는 과정이라면, 학문을 하신 분들은 진실해야 하는데 왜 온갖 요설과 사설이 난무하고 세상이 어지러워도 학자들이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가? 학문을 하는 분들이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완성을 추구한다면 세상이 밝아질 것이고, 그것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하다는 퇴계의 생각을 이 멋진 봄에 다시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