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고교동기 채백 교수가 쓴 책 《민족지의 신화》를 보았습니다. 채 교수는 오랫동안 부산대 교수로 근무하다 2022년 8월 정년퇴임 하였습니다. 내가 부산에 근무할 때 동기들 모임으로 가끔 만났던 채 교수가 책을 냈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에 책을 사두었었지요. 하지만 그동안 앞선 자기 차례를 주장하는 책들을 먼저 보다가 얼마 전에야 이 책을 보았네요. 아참! 책이 세상에 나올 무렵에는 채 교수는 명예교수로 물러나 있었네요.
그동안 교수 정년퇴임은 선배들 이야기이지 우리에게는 아직 미래의 일인 걸로 치부했는데, 어느새 지난해, 올해에 걸쳐 동기들이 다 강단을 떠납니다. 한 친구는 늘 학교 연구실로 향하던 발길이 어느 순간 멈추니, 우울증이 왔었다고도 하더군요. 저도 정년으로 작년에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 업무에서는 은퇴하였지만, 그래도 변호사로서의 업무는 계속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출근하면 기록 보고, 소속 변호사가 써온 서면도 검토해야 하며 재판에도 나가야 하니, 아직은 뒷방 신세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거~ <《민족지의 신화》 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얘기가 엉뚱한 길로 빠져들었네요. 채 교수는 머리말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책은 필자가 겪어온 지성사(知性史)의 한 단면이다. 어린 시절부터 옳다고 믿어왔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부정되어 가는 과정의 기록이다.” 옳다고 믿어왔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부정되는 그런 경험. 이건 채 교수뿐만 아니라 지성인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혼돈이었을 것입니다.
참! 《민족지의 신화》라고 하면 다들 짐작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해둬야겠네요. 자신이 민족지라고 주장하던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민족지의 신화》라는 제목에서 짐작하듯이 이 책은 조선과 동아의 민족지 신화의 허구를 벗기는 책입니다.
‘민족지’라면 일제의 엄혹했던 시절에 민족을 대변하는 정론지로서 일제의 탄압에도 꿋꿋하게 이를 이겨낸 신문을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동안 많은 우리 국민이 조선, 동아를 그런 민족지로 알고 있었지요. 자유언론수호운동의 여파로 1974년 해직당한 언론인 신홍범도 어느 인터뷰에서 말합니다. 자신이 조선일보 다닐 때는 민족지라는 얘기만 계속 들어 일제 강점기 때도 그런 줄 알았다고요. 기자가, 그것도 조선일보 기자가 그랬으니, 일반 국민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물론 일제강점기 조선, 동아는 많은 검열과 정간, 휴간 조치당하는 등 어느 정도 탄압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젊은 기자들의 의기(義氣)와 패기 때문이었지, 신문사 사주들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면서 이런 기자들이 쫓겨나자, 조선과 동아는 친일로 돌아섰습니다. 그것도 소극적 친일이 아니라 적극적 친일로요. 이를테면, 1938년 지원병 제도가 생기자, 조선, 동아는 황국신민으로서 적극적으로 이에 참여해야 한다며 젊은이들을 선동하였습니다.
그리고 1939년 지원병 최초로 이인석이 전사하자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그의 죽음을 미화합니다. 심지어 동아일보는 ‘영예의 전사한 이인석 가정방문기 / 전사는 남자의 당연사’라는 제목으로 이인석의 부인이 “전선에서 도라가섯다는 소식을 드럿습니다마는 남자의 당연한 일이오니 슬픈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고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기사는 그 부인을 만나보지도 않고 날조한 기사입니다.
그런가 하면 조선, 동아는 1938년부터는 1월 1일 치 지면에 일장기 사진과 일왕 부부의 사진을 실었으며, 일본의 개천절에 해당하는 기원절이나 일황의 생일인 천장절에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일본을 찬양하였습니다.
조선과 동아일보가 이렇게 적극적 친일을 하였다면, 광복 뒤에 자신들의 잘못을 통렬히 반성하고, 앞으로 정론지로서 새로 태어나겠다고 국민 앞에 다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조선, 동아는 이를 슬그머니 넘어가더니, 1950년대부터 자신들이 일제의 탄압을 꿋꿋하게 이겨냈다는 민족지 신화를 써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때는 대부분 국민이 조선, 동아는 민족지였다는 허구의 신화를 믿었었지요. 더구나 유신 독재 시절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는 이런 믿음을 더욱 굳게 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신문이 일제강점기 때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적극적 친일로 돌아섰듯이, 1970년대를 거치면서 뜻있는 기자들이 대거 해직당한 뒤 조선, 동아는 독재정권에 영합합니다. 이런 민족지의 신화를 처음 벗겨낸 사람이 최민지입니다. 최민지는 두 신문이 자유 언론 실천을 요구하는 기자들을 대거 해고하는 사태를 목격하면서 책의 집필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최민지 씨가 처음 이 책을 출판하려고 하니, 접촉하는 출판사마다 모두 난감해했답니다.
하긴 출판사로서는 조선, 동아라는 거대신문의 눈치를 안 볼 수 없었겠네요. 그리하여 최민지 씨는 스스로 일월서각이라는 출판사를 등록하고 《일제하 민족언론사론》이라는 책을 출판합니다. 이렇게 의지의 최민지 씨로부터 민족지 신화는 서서히 벗겨집니다. 최민지 씨가 물꼬를 틀자 일부 언론인들이 자기 잘못을 참회하는 글을 냈고, 또 조선, 동아에서 해직당한 기자들이 모여 만든 한겨레 신문사가 조선, 동아의 가면을 벗겨내는 보도를 냈습니다. 그리고 학자들도 이에 관한 연구에 착수하면서 신화는 벗겨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후 동아일보의 사주 김성수와 조선일보의 사주 방응모의 진실한 모습이 드러나면서 이들은 《친일인명사전》에도 오릅니다. 그리고 김성수는 1962년 대한민국 공로훈장 복장이 추서되었으나, 친일 행적이 드러나면서 서훈도 취소됩니다. 물론 조선, 동아일보의 격렬한 반대와 소송 제기가 있었지만, 이들의 친일 행적은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이 책은 조선, 동아의 일제 강점기 비굴한 친일 행적보다는 광복 이후 조선, 동아가 어떻게 치밀하게 민족지 신화를 조성했냐를 다양한 자료를 분석하여 폭로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신화가 어떻게 벗겨졌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결과 지금은 많은 사람이 민족지 신화의 진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래서인지 조선, 동아도 한발 물러서서 자신들의 치부를 어느 정도 인정하기도 합니다.
허나 아직도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느니, 공과(功過)를 비교해보라는 식으로 몸을 틉니다. 그러나 진정한 민족지라면 한번은 통렬하게 자기반성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히려 그러한 통렬한 자기 반성의 모습이 국민으로 하여금 ‘조선, 동아가 진정성을 가지고 민족지로서 거듭나려고 하는구나’하는 믿음을 가지게 할 것입니다.
채 교수! 덕분에 나도 대략적으로나 알던 민족지의 신화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었네. 요즈음 우리나라 언론시장이 너무 혼탁한데, 앞으로도 언론학자로서 우리의 언론에 올바른 길을 제시해주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