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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옛길을 걷다

문화가 없는 나라는 혼이 없는 거푸집과 같아
[산사에서 띄우는 편지 5]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순천 선암사를 가보자. 그곳에 가면 옛 정취가 스멀스멀 피어나고 선인들의 숨결이 가슴에 파고든다. 우리나라 곳곳에 많은 고적지가 있지만, 옛 모습 그대로 선인들의 채취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선암사만 한 데가 없다. 선암사는 옛 모습 그대로 조계산 자락에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유적이란 옛사람들이 남기고 간 자취나 건축물, 생활했던 터, 싸움터,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곳이나 패총, 고분 따위를 이른다. 그리고 유물이란 선인들이 생전에 사용하다 남긴 물건을 말하는데, 넓은 의미로는 옛 선인들이 생활했던 자취나 사용했던 유물들을 총괄해서 말한다. 이처럼 유적과 유물 그리고 옛 선인들이 생활했던 생활방식을 통틀어 고전문화라고 한다면, 현시대에 행해지는 모든 것들을 근대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문화를 두 가지 시대적 분류로 말할 수 있는데, 분명한 것은 근대문화가 아무리 월등하다고 해도 고전문화의 뒷받침 없이는 성립하기 어려울 것이고, 고전문화 없이는 그 나라 민족 가치성을 주장하기 또한 궁색할 것이다. 하여 현대 문물이 눈부시게 발달했는데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옛 문화와 문물을 소중히 다루고 있는 까닭은 나라마다 민족문화가 그 나라의 정신적 모태가 되고, 구심점이 되고, 지향점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모든 나라들이 앞다투어 문화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옛 문화재를 금쪽같이 아끼고 보존할 것이다. 또한 문화의 역사가 오래될수록 값어치 있게 평가하고 겨레의 자존심과 긍지로 삼고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오래된 문화재가 어떤 것이 있을까?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고인돌일 것이다. 고인돌은 우리나라뿐만 아니고 세계 곳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기원전 2,000년~1,000년,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 산발적으로 있기는 하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은, 고창, 화순 강화다. 그다음으로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인데, 암각화 속에는 신석기시대 생활상이 뚜렷하게 바위벽에 선각되어 있는 것이 어느 것보다 문화적 값어치가 높다고 본다. 참으로 중요한 민족 자료로 생각된다.

 

이 두 가지 문화재가 오랜 세월 동안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소재가 단단한 돌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목조나 직물 등 다른 유물들은 내구성이 약하여 변질하거나 부식 또는 파괴되어 오래 남아있지 못하고 손실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문화재가 자연적 풍화 작용으로 산화 부식되어 없어진 것도 많겠지만, 특히나 우리나라는 수많은 외침으로 파괴되거나 유실된 문화재들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외국에도 마찬가지이지만 다른 나라 문화를 살펴보면,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이집트 문화가 눈길을 끈다.

 

이집트 대표적인 문화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라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은 BC 2,600년 무렵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 시대 이집트 문화와 우리나라 문화를 견줘 보면, 우리나라의 문화는 고인돌이 등장한 시기였고, 단군 할아버지가 나라를 세웠다는 때쯤 된다. 그런데 이집트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앞선 문화와 기술력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남겼다.

 

피라미드 건축 공법도 그러하지만, 그 내부에 간직된 유물, 특히 미라의 보관상태 등에서 보듯 그 민족의 우수한 기술력을 보고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유물들을 여러 가지 분석을 통해 우수성이 밝혀지고 있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불가사의한 기술 공법에 현대 과학자들은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또 그보다 앞선 세계 다른 문화유적들을 살펴보자.

 

1) 괴베 클리 테페 : BC 9,500년 무렵 (터키 아나톨리아 / 인류 첫 신전)

2) 바르네 네즈 : BC 4,850년 무렵 (프랑스 피니스테르 주 / 약 14,000톤 석재로 지어진 건축물)

3) 생-미셸 봉분 : BC 4,800년 무렵 (프랑스 꺄흐낙 / 봉분)

4) 부공 봉분 : BC 4,700년 무렵 (프랑스 / 흙더미로 쌓아 올린 둥근 무덤)

5) 몬테 데코띠 : BC 4,000년 무렵 (이탈리아 사르데냐 / 제단, 신전)

5) 냅 오브 하워 : BC 3,700년 무렵 (스코틀랜드 오크니 / 건축물)

6) 간티야 거석 사원 : BC 3,700년 무렵 (몰타 공화국 / 제단, 신전)

8) 웨스트 케넷 롱 배로우 : BC 36,50년 무렵 (영국 윌트셔 주 / 무덤)

9) 리스토힐 : BC 3,550년 무렵 (아일랜드 스라이고 / 선사시대 묘지)

10) 세친 바호 : BC 3,500년 무렵 (페루 카스마 / 제단, 신전)

 

위 문화재에서 보듯 우리나라에도 오래된 고분(1992년에 발견)이라고 말한다면 가야고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약 1~2세기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서양 고분과는 엄청난 시대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가야고분을 보고 가야시대 문화를 확실하게 알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화적 근거인가.

 

이렇듯 현대인들은 옛 유물들을 통해 고전 생활상을 들여다보고 많은 지혜를 얻고 있다. 그래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각기 그 나라의 민족이 살아왔던 문화와 유적, 유물들을 소중히 여기고 간직하고 보호하며 그 나라만의 독특한 민족문화를 자랑하는 것이다.

 

문화는 그만큼 소중하다. 문화가 없는 나라는 빈껍데기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서 혼이 없는 거푸집과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 문화의 근거라고 내세울 만한 것은 신석기 문화부터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마저 자료가 극히 미약하다. 항간에 우리는 천년의 역사를 운운하며 기껏 천년의 역사 속에서 문화와 역사를 논하고 있다. 삼국 시대는 기원전 57년~668년까지를 말하는데 그 기간 발생한 문화유적들이 한국 문화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에 498건이 등재되었다는 것이 괄목할 일이다. 이것을 보더라도 문화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 수 있어서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모든 국민이 더욱 큰 관심을 가지고 문화재를 구심점으로 민족 단결과 화합의 길을 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우리나라가 이러한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은 불과 몇십 년 안 된다. 그 까닭은 문화의 값어치를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잦은 외침으로 많은 문화재가 손실되고 그보다 문화재에 빨리 눈을 뜬 외국인들에 의해 우리 문화재를 헐값에 팔거나, 수탈당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도굴 등 파괴했던 것들이 많고 아무렇게나 방치했던 것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외래 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외래문화를 막무가내 선호하면서 우리 문화를 홀대하고, 알게 모르게 훼손하고 방관하고 살았던 것들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말을 해야 하겠는가. 한마디로 무지했다고 말할 수밖에.

 

그러한 무지와 인식 때문에 우리 문화재가 세계에 흩어지고 숨겨진 중요한 유물이 약 16만 점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항간의 추측으로는 일본 고분 속에는 백제 유물들이 가득 차 있을 거라고 한다.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우리 민족 자존심의 실축이며 아픔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격으로 늦게나마 국가 문화재청에서 문화재에 대해서 소중함을 인식하고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고, 문화재 보존에 지방마다 문화재 발굴과 동시에 보존에 대해서 특별히 마음을 모으고 있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분실되고 자취가 상실된 것들을 어떻게 하겠는가. 또 사실상 자료가 전무한 상태에서 새로이 유적이나 사물을 조성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인위적으로 복원하고 그렇게라도 문화를 재인식시키자는데는 공감이 간다. 그런데 옛 유적과 사물들을 복원하는데 사실과 부합되지 않고, 옛 정서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그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복원과 조성을 해놓고도 관리 부족으로 방치하다 보니 흉물이 되어 눈살을 찌푸리게도 한다. 이것 또한 문제다. 앞으로 문화재를 어떻게 잘 보존하느냐에 대한 행정적 관리도 중요하지만, 특히 국민적 관심이 더 모아져야 하겠다.

 

우리나라 문화재를 보면 대부분 불교문화재가 많다. 물론 관리를 잘하고 있지만, 문화재를 다루는 기술이 부족한 탓으로 옛 고전적 미관이 상실되고 현대식 구조물로 둔갑하여 몰골사납게 변질한 것을 더러 볼 수 있다. 이것 또한 낯 뜨거운 일이다. 그런 가운데 세계문화유산 등재 바람이 불어, 세계문화평가단이 우리나라 곳곳 문화재들을 살펴보고 평가한 결과, 무분별하게 보수 증축으로 문화재가 훼손되어, 문화재로서의 값어치가 떨어져 대거 실격되었다. 그 가운데 다행히 7개의 절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된다. 7개 전통사찰은 다음과 같다.

 

1) 대흥사(전남 해남군) 2. 선암사(전남 순천시) 3. 봉정사(안동시 서후면) 4. 부석사(경북 영주시 부석면) 5. 통도사(경남 양산시) 6. 공주 마곡사(충남 공주시) 7. 속리산 법주사(충북 보은군)

 

이처럼 다른 문화재들도 그 지역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하여 지방마다 앞다퉈 다듬고 고치고 하여 아름답게 치장하고 있다. 그리고 손실된 지 오래되어 형태를 알 수 없는 것들도 옛 역사 기록에 따라 재현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추측으로 조성하기 때문에 문화재라고 하지만 사실 옛 정취나 선인들의 숨결을 느끼기에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잃어버린 선인들의 얼과 훼손되고 손실된 많은 문화재를 어찌할 방법도 없지만, 이렇게라도 복원하고 현재 보유한 문화재라도 잘 지키고 보존에 각별한 시선을 모아야 할 것 같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우리 문화를 바로 알아야 하겠고, 학교에서 문화와 역사교육이 더 강화되어야 하며,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문화 관리도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이라고 한다면 순천 선암사를 꼽는다. 앞서 나열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7대 절 가운데서도 가장 문화재로서의 값어치가 큰 절이 선암사이기 때문이다.

 

선암사 산문에 들어서면 입구에서 절까지 약 1km가량 비포장 너덜길이다. 길을 걷다 보면 계곡을 가로질러 아름답게 모습을 연결된 무지개다리 승선교를 만나게 되는데, 보물 제400호 무게만큼이나 아름답다. 돌로 무지개처럼 싸인 다리 사이로 요염하게 모습을 드러낸 강선루도 또한 일품이다. 절 안에 들어서면 전각들과 부속 건물들이 애써 꾸미려 했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없고 옛 모습 그대로 방치된 것 같은 허술함이 선암사의 독특한 아름다움이다.

 

도량 구석구석 건물과 사물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정겹다.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현재까지 보존됐을까 하는 의문에 그곳에 거주하는 스님들에게 질문을 하면 애써 입을 열지 않으려 하신다. 아마도 선암사가 지금까지 아름다운 자태를 보존한 미화(美化)보다,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는 역사의 아픔이 절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선암사가 아름다운 멋을 지닌 것은, 지난날 쓰라린 아픔을 견디어낸 인고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천년의 도도한 자태는 현대 우리에게 큰 교훈을 남겨주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