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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값진 갑진년이 되었으면

새해, 용과 같은 웅비의 기상으로 살자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3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2024년 되었구나. 곧 설이다. 갑진년이란다. 용의 해란다.

 

갑진년이란 이름은 나에겐 특별하다. 한 해의 간지를 처음 듣고 기억한 것이 1964년 갑진년이었다. 만 11살 때였다. 그 해부터 비로소 갑진년이 어떻고 을사년이 어떻고 병오년이 어떻고 하는 말들을 알아듣고 이해하고 기억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러고는 해를 꼽는 이름이 60가지나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언제 다시 갑진년을 만나게 될까, 했더니 드디어, 마침내 갑진년이 되었다. 갑진년 바로 전 해가 계묘년인 것도 모른 채, 갑진년부터 간지로 해 이름을 배웠다. 그렇게 세상을 알기 시작한 지 올해가 그러니까 60주년이 되는 해이니, 나름대로는 올해 갑진년이 의미가 많은 해라고 하겠다. 말하자면 본격적으로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시간으로 볼 때 회갑을 맞는 셈이다.

 

 

1964년 갑진년, 그때는 초등학교 4학년 겨울이었고 곧 봄에 5학년으로 올라갔다. 그 전 해 여름 4학년 신체검사를 했을 때 키가 125센티, 몸무게 25킬로그램의 좀 작고 연약한 체형이었다. 필자하고 딱 60년 차이인 둘쩨네 아들인 손자는 얼마 전에 재어보니 키 145센티, 몸무게 36킬로라니, 그때의 나와는 키만도 20센티에 이르는 큰 차이를 보인다. 그만큼 우리 자식이나 손주들의 영양상태가 좋아져서 성장이 빠르다는 방증인 셈이다. ​

 

이 갑진년 새해를 맞으며 늘 그렇듯이 할아버지의 영역으로 들어간 우리 같은 사람들은 걱정이 많다. 개인적으로 이제 무엇을 성취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아들 손자, 손녀들이 사는 이 나라, 이 세상이 이들을 혹 너무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나라는 경제상으로건, 안보상으로건, 사회적으로건 국민이 편안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한 해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 주위 가족의 건강은 어떨지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새해를 맞이한 것이다.

 

예전에는 제야의 종 치는 것을 10부터 숫자로 거꾸로 세며 ‘두웅’ 종소리와 함께 환호하며 기대를 가슴으로 활짝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종 치는 것을 굳이 보려고 눈을 비비는 그런 일도 없으니 이런 우리같은 층에게 새해는 또 다른 걱정과 한숨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용의 해가 아닌가?

 

실존동물은 아니지만 용은 가장 신령한 동물이다. 용처럼 변화무쌍한 존재도 없다. 용은 풍우와 번개, 벼락을 동반하여 하늘을 날고 때로는 파괴와 징벌을 내리기도 한다. 용은 춘분이 되면 하늘로 오르고 추분이 되면 개천으로 스며든다고 한다. 그러기에 용은 우물, 연못, 하늘, 궁궐, 산속, 강나루 등 출몰하지 않는 곳이 없다.

 

스스로 용의 후예라 생각하는 중국인들은 용을 갖가지로 분류했는데 그 색깔에 따라 황룡, 청룡, 백룡, 적룡, 흑룡의 이름이 있고, 모양에 따라 비늘이 있는 것을 교룡(蛟龍), 날개가 있는 용은 응룡(應龍), 뿔이 있는 것은 각룡(角龍), 뿔이 없는 용은 이룡(耳龍)이라고 분류하였다. 이런 용이 나타난 곳에는 지형에 따라 용산(山), 용강(江), 용연(淵), 용담(潭), 용추(湫), 용소(沼), 용정(井), 용천(泉), 용포(浦) 등의 이름이 붙는다. 그만큼 용이 거대하고 권위 있고 신령한 힘을 갖고 있으니 그 전설을 이어받고 싶은 것이리라. 그런 용의 힘을 빌려 위세를 희망하기도 한다.

 

올해는 청룡의 해라고 한다. 60갑자를 만드는 10개의 천간(天干) 가운데 갑(甲)과 을(乙)은 나무에 비유되며 나무인 만큼 푸른색(초록색도 푸른색)으로 보는데 올해가 갑진년이기에 푸른색의 용의 해가 되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만은 사실 푸른색은 동쪽을 의미한다. 우리가 고구려 사신 벽화에서 보면 동쪽에는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를 그리는데, 이때 동서남북 각각의 방위는 푸른색, 흰색, 붉은색, 검은색을 각각 상징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기왕에 용의 해라면 푸른 용의 해가 가장 좋다고 하겠다. 봄이 오는 입춘에 동쪽의 새 아침의 푸른 기운을 받아 용이 승천하는 형상이 아니겠는가? ​

 

12지의 동물 가운데 용은 실재하는 동물이 아니라 상상의 동물이다. 용만 그렇다. 상상 속의 용이기에 자유자재다.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마음대로 날 수 있는 존재다. 부릅뜬 눈과 날카로운 발톱, 번쩍이는 비늘이 달린 긴 몸에다 입에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의 모습은, 사실 아무도 본 적이 없지만 마치 모두 본 듯이 그려낸다. 그러한 용맹한 기상을 하고 있기에 가정보다는 나라에 큰 기운을 내려달라는 기원의 대상이 되어 왔다. ​

 

용은 언제나 신성의 상징으로서 우리의 희망과 바람을 지켜주고 우리에게 희망과 희열을 준다. 왕중왕의 위세와 신통력으로서 사람들 또는 나라의 절망과 우려를 씻어줄 수 있고 우리들의 용기를 드높일 수 있다. 결국 용의 해는 우리에게 그런 소망과 희망을 주고 절망 속에서 떨쳐 일어날 기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용의 해는 국가적으로도 과거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난 해이기도 하다.

 

신라 진흥왕 14년 2월에 나타난 황룡은 외적으로부터 신라를 지켜준 호국룡이었다. 문무왕도 죽어서 호국의 큰 용이 되고자 발원했다. 포항 구룡포도 용이 된 왕자가 꼬리를 쳐서 산을 갈라 경주를 위협하던 물을 빼내어 살렸고 이때 날아간 토사들이 꼬리처럼 이어져 구룡포가 되었다.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신라로 돌아올 때 선묘낭자가 몸을 던져 서해의 큰 용이 되어 의상을 지켜 주었다. 이런 전설은 수도 없이 많다.

 

 

이렇게 좋은 해에 나이 든 사람이라고 자손들의 안위에만 신경을 쓰고 있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과거 지향적인 생각만을 하고 있는가? 우리들이 청룡의 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하겠다.

 

양의 기운이 강한 올해, 특히 이해의 봄은 생명력이 두드러지고 강해지는 때라고 다들 이야기한다. 이때는 용띠 아니라도 누구라도 그 기운을 받으면 그것이 자기 것이 되는 것이고 자기 집안과 나라의 것이 되는 것이리라. 다만 문제는 기운이 넘친다고 이를 함부로 사용하면 곧 낭패가 닥치니 이를 조심스레 현명하게 슬기롭게 써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그런즉 개인도 사회도 나라도 꿈을 갖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해가 되는 것이 최선이다. 꿈을 놓친 인생은 날개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새와 같다고 한다. 나이 들었다고 방안에 갇혀서 뒷사람들 걱정만 하지 말고 그 걱정을 뭔가를 해내겠다는 의지와 각오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용과 같은 웅비의 기상으로 가정과 사회, 나라를 위한 좋은 일을 해나가며 여기에 행운이 곁들여져 소원하는 바가 성취되기를 다 같이 기원해 본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