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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개는 없어도 의리는 있는 여자

무심거사의 중편소설 <열번 찍어도> 5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박 교수는 최희준의 ‘하숙생’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 등 옛날 노래를 불렀다. 최성수의 노래를 좋아하는 김 교수는 ‘남남’과 ‘해후’ 등을 불렀다. 아가씨들은 ‘쿵따리 샤바라’, ‘무기들아 잘 있거라’ 등 최신곡을 불렀다. ‘쿵따리’는 우리나라 외교관들이 국제회의에서 불러서 유명해진 노래라는데 중간의 랩은 중년 남자들이 따라 하기가 힘들었다. 김 교수는 특히 후렴 부분이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려웠다. 쿵따리 샤바라 빠빠빠?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은 신곡이 나오면 울산까지 승용차를 타고 갈 때 녹음테이프를 틀고서 배운다고 한다. 정 회장은 후렴 부분을 ‘굴다리 삽으로 파파파’라고 바꾸어 부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런데, 오빠, 저 아가씨를 어떻게 생각해요?”

“누구? 박 사장님 파트너? 네가 모르는 아가씨인가?”

“몰라요. 그렇지만 어쩌면 저렇게 예의가 없어요?”

“무슨 말이야?”

“보세요. 화장도 안 하고 그저 집에서 입는 블라우스를 걸치고 나왔잖아요?”

“그게 어때서?”

“그래도 이런 자리에 나오려면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이 있잖아요.”

“듣고 보니 그러네.”

 

 

김 교수는 아가씨에게 호감이 갔다. 팁을 벌기 위하여 술자리에 나오는 아가씨지만 직업인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아가씨의 마음 씀씀이가 왠지 신선하게 느껴졌다. 김 교수가 궁금하여 미스 장에게 직접 물어보니, 나름대로 사연이 있었다.

 

미스 장은 한 달 전에 보스를 그만두었단다. 몸에 잘 받지도 않는 술을 폭탄주다, 수류탄주다 하면서 약 2년 마시다 보니 몸에 이상이 왔단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진찰받아 보니 간이 나빠졌는데, 특히 과음하면 얼마 못 살 것이라는 기분 나쁜 이야기를 들었단다. 그래서 보스를 그만두고 친구와 옷가게를 열려고 준비 중이란다.

 

오늘은 그동안 살던 원룸 아파트에서 친구와 함께 살 13평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서 짐을 정리 중이었는데, 보스의 사장님에게서 삐삐가 왔단다. 너를 찾는 손님이 모처럼 오셨는데 잠깐만 나왔다가 가라고. 그래서 이렇게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못하고 택시를 타고 나왔단다.

 

박 교수가 미스 장을 대견한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이사하면 피곤도 하고, 또 이제 이곳은 그만두었는데 꼭 나올 필요가 있나. 그냥 못 나간다고 말하면 되지. 나라면 안 나오겠다. 물론 네가 나와서 나는 기분이 좋지만.”

“그래도 남 사장님이 저에게 그동안 잘 해주셨기 때문에 나왔지요. 거 있잖아요. 인정이란 것 말이에요. 막상 부탁하는 말씀을 전화로 들으니 인정상 거절을 못 하겠더라고요.”

 

김 교수가 칭찬하는 어조로 말했다.

“미스 장은 의리가 있는 여자군.”

“그럼요, 절개는 없어도 의리는 있는 여자예요.”

“나는 절개가 없는 여자는 싫은데... ”

“피이, 절개가 있는 사모님과 백년해로 잘하세요.”

 

보스에 늦게 왔기 때문에 시간이 금방 지났다.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 45분이 되었다. 김 교수가 물었다.

 

“미스 최, 여기는 몇 시까지 영업하니?”

“오빠, 우리 가게는 12시면 문을 닫아요. 며칠 전에 재수 없게 단속에 걸려서 남 사장님이 벌금을 물었대요.”

“그래? 모처럼 예쁜 아가씨를 만났는데, 헤어지기가 싫군?”

“정말? 그럼 또 오세요. 오빠.”

“네가 여기 오래 있을까? 너희들은, 자꾸 자리를 옮기더라. 정이 좀 붙을만하면 그만두었다고 하고.”

“저는 안 그래요. 오빠. 여기 나온 지가 1년이 넘는데요.”

“하여튼 두고 보자. 미스 최, 계산서 가져오라고 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