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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댁이 김자옥 아니오?

무심거사의 중편소설 <열 번 찍어도> 19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두 사람이 택시를 타고 보스에 도착하니 10시가 약간 넘었다. 이미 밤이 깊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에 골목길에는 이른바 삐끼들이 자꾸 말을 걸었다. 삐끼들은 늦은 밤거리에서 2차를 찾는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회장님, 좋은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회장님, 끝내 주는 곳이 있습니다. 아가씨들도 모두 영계고요.”

 

 

2차를 가는 손님들은 이미 술을 한잔 걸쳤기 때문에 맨정신이 아니고 판단력이 약해져서 자칫 삐끼를 따라갔다가 바가지 쓰기가 십상이다. 그전에는 삐끼들이 남자들을 모두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사장님이 너무 많아졌다. 조그마한 자영업자들이 많아지고 대기업의 자회사가 많아지다 보니 사장님이 흔해졌다. 그래서 모든 술꾼은 어느 사이엔가 슬그머니 ‘회장님’으로 격상되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봉급 받는 사장님이 무슨 힘이 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장이나 사원이나 대주주인 회장이 그만두라고 하면 내일이라도 그만두어야 하는 파리 목숨들인데. 그래서 요즘에는 회장님 정도 되어야 힘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삐끼들도 이러한 세상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무조건 회장님이라고 불러서 사장님들의 기를 살려주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러다 보니 회장님도 너무 흔해 빠진 단어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가다 보니 회장님도 많아졌다. 실제로 주식을 많이 가지고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예전의 회장님은 나이가 들자, 은퇴하지 않고 명예 회장이 되었다. 현대의 정주영 씨나, 럭키의 구자경 씨는 호칭이 명예 회장으로 바뀌었다. 명예 회장이 막후에서 봉급쟁이 회장보다 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호칭마저도 부풀려지고 있다.

 

웨이터가 물수건을 가지고 들어오자, 김 교수는 미스 최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미스 최가 안 나타날까, 은근히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 미스 최와 다른 예쁜 아가씨 한 사람이 들어왔다.

 

“미스 최, 그동안 잘 있었어?”

“오빠, 왜 이렇게 늦었어요? 안 오시는 줄 알고 다른 방에 들어갔는데, 다행히 손님들이 일찍 가서 오빠를 겨우 만났네요.”

“그랬어? 아무래도 우리는 연인이 될 인연이 있는가 보다.”

“말만 하면 무슨 연인이에요? 연애를 해야 연인이 되지.”

“말이 되네. 만나다 보면 연애를 하는 날이 오겠지, 뭐.”

 

조금 있다가 마담이 들어왔다. 상당한 미인이었다. 사십 대 초반의 나이로 보이는데, 아직도 이목구비가 시원하고 매력이 남아 있는 여인이었다.

 

“젊었을 때는 미인 소리를 많이 들었겠습니다.”

“지금은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아니 지금도 미인이지만 이십 대는 대단한 미인이었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아직 스물아홉인데 무슨 섭섭한 말씀을 그리하시나요.”

“내가 잘못 보았네요. 열아홉 아니세요?”

“정말이에요?”

“그럼요. 누가 마담을 보고 이십 대라고 하겠오?”

“아이고, 누가 들어도 알 수 있는 거짓말을 하시네.”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고, 아무튼 마담이 대단한 미인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미인 소리는 이제 지겨워요. 하도 많이 들어서.”

“혹시 댁이 김자옥 아니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