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구는 쉬지 않고 태양 주위를 돌고 세월은 계속 흘러갔다. 어제는 처음으로 산수유가 핀 걸 보았다.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오면서 꽃이 피는 순서가 있다. 제주도에서는 겨울에도 동백꽃을 볼 수 있지만 중부지방에서는 동백나무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중부지방에서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꽃은 어름새꽃(복수초)이다.
어름새꽃은 나무가 아니고 풀인데, 흔히 볼 수 있는 꽃은 아니다. 어름새꽃은 키가 아주 작고 꽃잎은 노란색인데, 겨울의 끝자락에 눈이 녹을 무렵 눈 속에서도 피어난다. 어름새꽃에 이어 매화가 핀다. 매화는 눈 쌓인 가지에서도 피어서 설중매라는 말도 있지만 김 교수가 사는 서울에서는 흔하지 않다. 춘분 무렵 전남 광양의 매화마을에 가면 하얗게 핀 매화꽃을 원 없이 볼 수 있다. 약간 푸른 빛이 도는 청매화도 매화마을에는 많이 있다.
봄이 되어 산에 가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꽃이 생강나무다. 작은 노란색 꽃이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달려있다. 아직 다른 나무들은 헐벗은 상태로 있고 나뭇잎이 나오기 전이라서 노란 꽃이 핀 생강나무는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띈다. 생강나무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생강나무 꽃과 비슷하게 산수유가 피어난다. 산수유도 작은 꽃이 가지에 줄줄이 붙어서 노란색으로 꽃이 핀다. 생강나무는 대개 산에서 볼 수 있는데, 산수유는 정원수로 개발하여 주로 도시의 공원이나 정원에서 볼 수 있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김 교수가 최근에 관찰하여 보니 풍년화(豊年花)라는 나무가 산수유보다 약 2주나 먼저 꽃이 피는 것을 발견했다. 집 근처 공원에서 풍년화를 처음 발견하고서 그 이름을 알아내는 데에 한참 걸렸다. 풍년화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노란색 꽃이 생강나무꽃 모양으로 피어난다.

산수유에 이어 피어나는 꽃이 진달래와 개나리. 진달래는 그늘을 좋아하여 산의 북쪽 비탈에 많이 핀다. 연분홍빛 꽃잎이 여간 예쁘지 않다. 도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꽃이 개나리. 개나리는 울타리로도 많이 심는데, 네 갈래로 갈라진 노란색 십자꽃이 늘어진 가지에 잔뜩 피어난다. 진달래와 개나리는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먼저 핀다.
그다음에 피는 꽃이 목련. 마른 나뭇가지에 탐스러운 하얀 목련이 핀 모습을 보고서 감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감수성이 약한 사람이다. 목련꽃을 보고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반성할 일이다. 그런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없이 세파에 너무 찌들어 있는 사람이다. 세상을 잘못 사는 것이다. 목련의 단점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쉽게 지는데, 나무 아래 땅위에 떨어져 시든 꽃잎의 모습이 너무 허망하다. 때로는 지저분하며 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떨어진 목련꽃잎은 차라리 얼른 쓸어버리는 것이 시각적으로 좋을 것이다.
목련꽃잎이 질 즈음에 온갖 나뭇가지에서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자세히 관찰하면 마른 가지에서 돋아나는 새잎 자체가 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찌 그리도 싱싱하고 귀여운지! 피어나는 새잎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깨끗해지는 갓난아기가 연상된다. 아무 욕심도 없고 천진난만함 그 자체인 모든 아기가 예쁘듯이 피어나는 모든 새잎은 예쁘다. 그렇지만 우는 아기는 예쁠 리가 없지. 그러므로 피어나는 새잎은 웃는 갓난아기와 같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목련에 이어서 철쭉이 핀다. 철쭉은 진달래와 비슷하나 꽃 색깔이 더 진하고 약간 크다. 진달래꽃잎을 소주에 담그면 진달래술이 된다. 그러나 철쭉꽃은 독이 있어서 술을 담글 수가 없다. 그래서 지방에 따라서는 진달래꽃을 참꽃, 철쭉을 개꽃이라고도 말한다. 더 미세한 차이점으로 철쭉꽃잎 안쪽에는 검은색 점들이 있지만 진달래꽃에는 없다. 가장 확실한 차이점은 철쭉은 잎이 나온 뒤에 꽃이 핀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진달래가 진 뒤에 철쭉이 핀다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조금 지나면 라일락이 핀다. 라일락은 외래종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우리 꽃이다. 우리 이름으로는 수수꽃다리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라일락은 작은 꽃 자체는 별 특징이 없는데, 대신 향기가 진하여 시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트 모양의 잎을 이빨로 물어보면 매우 쓴 맛이 난다. ‘베사메무초’라는 노래 가사에 나오는 리라꽃 역시 라일락을 말한다.
산과 들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 꽃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라일락까지를 봄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라일락이 필 때쯤이면 코트는 이미 장롱 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고, 내복도 벗어버린 사람이 대부분이다. 음양으로 따져서 양 체질인 사람은 반소매를 입기 시작한다. 그 뒤에 장미가 피고, 아카시아가 피어난다. 장미 역시 꽃 자체는 아름답지만 시들어 땅에 떨어진 꽃잎은 보기 싫다. 아카시아는 가시가 있고 목재로는 환영받지 못하지만, 꽃향기가 멀리 퍼지고 또 꿀이 많아서 양봉업자들이 좋아한다.
여자의 일생과 꽃의 일생을 비유한다면 어떨까? 김 교수는 막 피어나는 목련을 보면서 18살 처녀와 같다고 생각하였다. 다음 날 탐스럽게 피어난 목련을 보면서는 여자 나이로 따져서 20살 정도라고 생각을 하였다. 미스 최를 목련과 견주면 어떨까? 활짝 핀 지 하루가 지난 목련이라고나 할까? 며칠 뒤 시들기 시작하는 목련을 보면서는 이미 40대에 들어선 자기의 아내를 연상하였다. 아, 젊음이란 얼마나 짧고, 또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그런데, 김 교수도 그랬고 아내도 그랬었다. 젊었을 때는 젊음의 값어치를 깨닫지 못하였다. ‘젊은 날의 고뇌’라는 말이 있듯이 김 교수가 젊었을 시절에는 제대로 젊음을 즐기지 못하고 힘든 나날을 보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라는 것이 제일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밥을 배불리 먹지 못하였다. 김 교수 역시 그 시절에는 가난했다. 돈이 없어서 심지어는 우표값을 아껴야 할 정도이었으니 말이다.
그에 견주면 요즘 젊은이들은 참으로 축복받은 세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들 역시 젊음이 좋다는 것을 느끼며 사는 것 같지 않다. 김 교수가 그랬듯이 그들도 무언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말하지 않는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