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해 여름에는 특별한 뉴스거리도 없이 지구의 공전에 따라 계절은 서서히 바뀌었다. 입추가 지나자, 더위는 한풀 꺾였다. 처서가 지나자, 가을이 완연히 느껴진다. 처서가 지난 어느 금요일, 연구실 창문 밖 오동나무를 바라보던 김 교수는 가을이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미스 최가 생각났다. 미스 최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러기에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옛사람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
커다란 오동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던 그날 밤 8시 30분쯤 김 교수는 용기를 내어 보스에 전화를 걸어 공손한 목소리로 미스 최를 찾았다. 아마 사장님이 전화를 받았나 보다, 누구시냐고 대뜸 묻는다. 엉겁결에 아무개 교수라고 이름을 밝혔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아는 체를 하며, 미스 최가 오늘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양재동으로 이사한 사실을 안다면서 집 전화 번호를 좀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집 전화 대신 손말틀(유대폰) 번호를 가르쳐 준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그날 오후 별다른 약속이 없었고 가을날이었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으리라. 김 교수는 호기심과 약간은 떨리는 마음으로 손말틀에 전화를 하니 미스 최가 나왔다.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양평에서 친구들과 수상스키를 타는 중이란다. 아, 이 아가씨가 잘 나가는 모양이구나. 지난겨울에는 스키 탄다고 나를 기죽이더니, 이제는 수상스키 탄다고 나를 기죽이는구나. 더욱이 나는 아직 삐삐도 없는데 아가씨는 벌써 손말틀까지 있다니, 역시 나 하고는 수준이 맞지 않는구나. 여자와 책은 수준이 맞아야 부담이 없다는데, 아무래도 부담이 되는구나. 김 교수는 “다음에 연락하자”라고 짧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두어 주가 지난 뒤 어느 월요일 오후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손말틀이라는 것이 편리하기는 편리하다. 그전에는 전화해서 집에 없으면 연락이 안 되었는데, 이제는 전화만 하면 통화가 되니 말이다. 한번 만나자고 말했는데 반응이 신통치 않다. 김 교수는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돌아오는 9월 5일이 너와 내가 만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은 그럴듯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나 함께 하자”고 한껏 감성을 자극하면서 제안했다. 여자는 감성적이라는 말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보스 근처의 ‘약속’이라는 커피숍에서 저녁 7시에 만나기로 약속이 되었다.

아가씨를 만난 지 일 년이 되는 날, 9월 5일, 그날은 마침 금요일이었다. 아파트 단지에 주차를 해놓고, 택시를 타고 갔는데 길이 막혔다. 어느 통계를 보니까 퇴근길이 가장 많이 막히는 날이 금요일이다. 요즘에야 차가 늘어서 맨날 막히지만 그래도 가장 한가한 날이 월요일이란다. 그러니까 중요한 약속은 월요일로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김 교수가 따져보니 거의 반년 만에 아가씨를 만나는 셈이다. 가장 최근에 만났던 것이 지난 봄이었다. 그사이 전화로 두어 번 통화를 했지만 만나지는 못했다. 전화를 하면서 감으로 느끼기에는 아직도 자기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정확한 것은 만나 보아야 알 수 있겠지.
김 교수는 한 10분쯤 늦었다. 요즘에는 다방은 하나도 없고 간판이 전부 커피숍이다. 다방과 커피숍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옛날에는 모두 한글로 다방이었는데, 세계화 시대에 맞추어 커피숍이라고 간판을 모두 바꾼 것 같다. 김영삼 대통령 시대에 세계화 열풍이 불었다. 국정 곳곳에 세계화를 갖다 붙였다.
세계화란 원래 호주산(産)이라고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국제회의를 마치고 호주로 가던 YS가 공항에 도착하면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었다. “건강은 빌릴 수 없어도 머리는 빌릴 수 있다”고 말하던 YS가 “기자회견에서 뭔가 한 건 발표할 것이 없는가?”라고 수석비서관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때 옆에 있던 경제수석과 즉석에서 의논하여 ‘세계화’라는 말을 만들어 내고,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세계화’가 탄생했다는 거짓말 같은 실화가 있다. 세계화의 가장 첫 난관은 그때 이미 국정의 지표로 발표되었던 “‘국제화’와는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이었다. 우스갯소리로는 국제화를 세게 하면 세계화가 된다는 말이 있었다. 요즘 말로 하면 가짜 뉴스일 것이다.
대통령이 ‘세계화!’라고 한마디 말하니 온 국민이 세계화를 외치게 되었다. YS가 호주에서 돌아오자마자 ‘세계화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관민군 할 것 없이 온통 세계화의 물결에 휩싸였다. 외신기자들이 물었다. ‘세계화’는 우리가 아는 영어 단어인 ‘globalization'과는 무엇이 다른가? 순발력 있는 비서 한 사람이 ’segyewha'라는 새로운 영어 단어를 만들어 내었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자당의 이름을 세계화에 발맞추어 한나라당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당시 일 잘하고 있던 김종필 당대표는 세계화에 맞지 않는 인물이라는 엉뚱한 모함을 받고 쫓겨났다. 이것은 가짜 뉴스가 아니고 사실이었다.
YS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교육부는 세계화를 위해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보고했다. 세계화를 ‘학실히’ 추진하려면 OECD가입을 해야 했다. OECD 가입에 필요한 선결조건으로서 각종 규제를 풀었다. 금융규제가 풀리고, 외환규제가 풀리고, 나라 밖 +여행 규제가 풀리고, 나라 밖 여행에서 쓸 수 있는 달러 액수의 한도가 높아지고, 수입규제가 풀리고, 등등 이 모든 것이 세계화에 필요한 조치들이었다. 그리고서 1996년에 마침내 대망의 OECD에 가입하고 대한민국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였다. 오호통재라!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허상이었다. OECD 가입 1년 뒤, 한국은 제2의 국치라는 IMF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야기가 빗나가고 말았는데, 요점은 다방이라는 한글 간판이 세계화 덕분에 커피숍이라는 영어 간판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 커피숍이 많아지자, 카페라는 새로운 영어 이름이 등장했다. 세계화 덕분에 광고업자들은 간판을 교체하느라고 신났을 것이다. 세계화에 짓눌려 다방이라는 우리말은 그만 사라지고 말았다. 국어학자 최현배 선생이 지하에서 통곡할 것이다.
아가씨는 이번에도 늦는 모양이다. 여자들은 약속시간에 조금 늦게 나타나는 것이 숙녀로서 지켜야 할 예의라고 생각하는지, 항상 늦는다. 아내를 보면 그게 다 이유가 있다. 집을 나서기 전에 화장하는데, 그 화장이라는 것이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면서 자꾸 찍어 바르고 문지르다 보면 그만 늦게 되는 모양이다. 세상의 남자들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