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작년 내란의 밤 때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비상계엄을 뒷받침하는 법적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심야 법무부 간부회의를 소집하였었지요? 그때 류혁 감찰관이 자신은 이런 계엄 대책회의에는 참여할 수 없다며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회의장을 뛰쳐나와, 언론의 조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법무부나 검찰에서 계엄에 반대하며 사표를 던진 사람은 오직 류 감찰관 한 명이라, 그 뒤에도 류 감찰관은 인터뷰, 대담 등으로 계속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요.
류 감찰관이 이번에 《단 하나의 사표》라는 수필집을 냈습니다. 그래서 수필집 1부의 제목은 당연히 <계엄 그날>이고, 2부는 <그날의 나를 만든 것>이라는 제목으로 류 감찰관의 삶에 영향을 미친 책이나 인물, 류 감찰관의 독특한 취미생활을 이야기하고, 3부는 <내가 살아온 길>이라는 제목으로 아내를 만난 이야기, 검사의 삶과 잠깐 근무하였던 삼성전자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수필은 아니고 일종의 자서전이라고 하겠습니다.
류 감찰관이 저에게도 책을 보내왔습니다. 표지 다음 쪽에는 ‘양승국 대선배님께’라는 제목으로 한쪽 가득 친필로 인사말을 써서 보냈네요. 제가 류 감찰관 연수원 13년 선배기수이니까, ‘대선배님’이라고 한 모양인데, 좀 낯간지럽기는 하네요. 책 선물은 많이 받아봤지만, 이렇게 한쪽 가득 저와의 인연을 들면서 인사말을 쓴 책은 처음 받아봅니다. 류 감찰관이 책이 나오자마자 이렇게 긴 인사말과 함께 책을 보내온 것은, 예전에 제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형사재판장을 할 때 류 감찰관이 공판 관여검사로 맺은 인연 때문입니다.
서두가 길어졌네요. 책을 펼치니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추천사를 썼습니다. 문재판관은 창원지방법원에서 형사재판장을 할 때에 류 감찰관이 공판 관여검사로서 맺은 인연으로 추천사를 썼군요. 그다음에 이어지는 머리말에서 류 감찰관은 불법계엄의 그날을 “평범하기만 했던 초겨울의 그날은 우리 사회가 하루하루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내 믿음이 순식간에 무너진 날”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정치적 이해관계나 사리사욕을 앞세워 개인의 일상과 자유를 함부로 짓밟아도 된다는 폭력적 심성이 엿보여 소름이 돋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정말 힘들게 했던 것은 불법적 계엄 선포로 국민의 일상을 파괴한 주모자와 그 옹호 세력들이 보여준 후안무치함이었다고 합니다. 또 이런 행태를 보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한때는 우리 사회의 엘리트로서 높은 지위는 물론 여러 사회적 혜택을 누려오던 최고 고위직 인사들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실망스러웠다고 합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저 역시 이번 내란사태로 드러나는 우리 사회 지도층 사람들의 민낯을 보면서 실망하다가 경멸하다가 분노하다가 하였습니다. 류 감찰관은 자신이 사표를 내게 된 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계엄 당일, 나의 항의성 질문을 묵살하고 회의를 주재하려 드는 장관의 모습을 보며, 내가 믿고 신뢰했던 시스템 그 자체에 본질적 배신감까지 느꼈다. 그 순간 ‘나 자신은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겠다’라는 절박함도 밀려왔다. 서글픈 일이지만 짧은 그 순간, 사직의 결심은 더욱 확고해질 수밖에 없었다.”
1부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곽종근 사령관 이야기입니다. 2025년 2월 4일 국회 내란 관련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류 감찰관은 증인으로 출석하였는데, 옆자리에는 곽종근 사령관이 앉아 있었답니다. 당시 곽 사령관은 구속 상태라 아무도 물을 챙겨주지 않아, 제일 많이 증언대에 서면서도 물이 없어 고생하더랍니다. 그래서 류 감찰관은 점심 먹고 다시 국회로 들어올 때 곽 사령관을 위해 생수 한 병을 더 사서 들어와 곽 사령관에게 줬습니다.
그런데 곽 사령관도 다시 들어오며 생수 한 병을 들고 들어왔기에, 1병은 군사경찰관에게 창가 안쪽에 앉아 있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에게 갔다 주라고 하더랍니다. 곽 사령관이 자신도 처음 겪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을 챙기는 따뜻한 모습이 류 감찰관에게는 인상적이라 책에까지 쓴 것이지요. 류 감찰관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선한 면을 간직한 사람이 고약한 윗자리 사람에게 충성을 강요당하며 내란 주요 가담자가 되어 그 자리에 불려 와 고초를 겪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랬군요. 저도 곽 사령관이 국회나 법정에서 증언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군인이 윤석열 때문에 내란에 끌려 들어가 고초를 겪는 것에 안타까웠습니다. 2부에서 류 감찰관은 자신의 인생관에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조루다노 브루노와 소피 숄 그리고 칼 세이건을 꼽습니다. 브로노는 지동설과 다원 우주론을 주장하다가 화형을 당한 수도사이고, 칼 세이건은 베스트셀러 《코스모스》를 지은 과학자이기에 아는 사람이 많겠지만, 소피 숄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소피 숄은 오빠 한스와 함께 나치 정권에 반대하는 지하 저항조직 ‘백장미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22살의 짧은 나이에 사형당한 대학생입니다. 류 감찰관이 과감하게 사표를 내던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사람들의 영향이 있었겠네요.
그리고 류 감찰관은 자신의 우상으로 뉴턴, 아인슈타인, 전자기학을 정립한 맥스웰을 꼽습니다. 법률가가 과학자들을 우상으로 꼽는 것이 좀 독특하지요? 류 감찰관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전자공학도가 법률가로 인생을 완전 180도 전환한 것이지요. 그렇지만 전자공학과를 나왔기에 사법시험 합격 전 먼저 삼성전자에 입사하였었고, 또 이런 인연으로 검찰에 사표 내고 나왔을 때도 다시 잠시 삼성전자에 몸을 담았던 것입니다.
참, 아인슈타인의 다음과 같은 말이 류 감찰관의 삶에 영향을 미쳤으며, 더욱 아인슈타인을 우상으로 삼은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나의 정치적 신념을 고백합니다. 국가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책에서 류 감찰관은 브루노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하는데, 그런 브루노를 좋아하는 류 감찰관 역시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그래서 그의 취미는 법률가 가운데는 아주 독특합니다. 류 감찰관은 2011년 5월부터 달리기를 시작하여 마라톤 풀코스를 뛰더니, 아예 철인 3종 경기까지 나갑니다. 그리고 이것으로도 부족하였는지 울트라 마라톤에도 도전합니다. 그러다가 2014년 여름에 출전한 킹코스 철인 3종 경기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합니다.
당시 대퇴부 부상이 너무 심해서 서울로 후송되어 장시간 응급수술을 받았다네요. 지금도 다리에는 철심을 그대로 박고 있고요. 허! 참! 주최 측이 얼마나 교통 통제를 제대로 못 했으면 이런 큰 사고를 당하노. 그러나 류 감찰관은 그 뒤에도 꾸준한 재활훈련으로 2017년 설악국제트라이애슬론대회에 참가하여 완주하였습니다. 이를 지켜본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고요.
이것만 해도 대단한데, 류 감찰관은 2003년 미국 장기연수 시절 천체관측에 매료되었고, 나아가 아예 망원경 제작에 관한 책을 섭렵하고 직접 천체망원경을 제작하기도 합니다. 이뿐입니까? 코로나 사태로 마라톤, 철인3종경기가 줄줄이 취소되고, 천체관측관도 문을 닫으니, 새를 관찰하는 탐조(探鳥)에도 취미를 붙입니다. 그리하여 아내와 함께 새를 찾아 전국을 누비고 다니네요. 저는 산을 좋아하여 히말라야도 찾고 스킨스쿠버로 필리핀도 가고, 4,000미터를 넘는 고공에서 탠덤스카이다이빙으로 뛰어내리기도 하였으며, 초경량 항공기 조종 면허까지 취득했었지만, 류 감찰관 앞에서는 납작 엎드려야겠네요.
류 감찰관은 또 건담이나 스포츠카 같은 모형 제작 취미도 있어, 지방 근무시절에 모 지청장으로부터 ‘우리 류 검사는 아직도 애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소년 취미를 가지고 있다’라며 놀림을 받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류 감찰관의 모형 제작 실력은 단순한 아마추어 정도가 아니어서, 한번은 자신이 제작한 모형의 사진을 인터넷 누리집에 올려놓았더니, 어떤 외국인이 자기에게 팔라며 연락이 오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손위 처남은 류 감찰관이 아내에게 선물한 모형을 보고, ‘직접 만들었을 리가 없다. 그 모형은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완성품을 사온 것’이라며 믿지 않더라나요. 그리고 진짜 류 감찰관이 만든 것을 알고, 스스로 모형 제작에 재주가 있다고 자부하던 손위 처남은 그날로 모형 취미를 끊어버렸답니다.
3부에는 류 감찰관 검사 시절 그가 거쳐 간 여러 검찰청에서의 흥미진진한 수사 이야기,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 책에서는 3부가 제일 많이 차지하는데, 이 가운데서는 한 가지만 얘기하겠습니다. 바로 류 감찰관이 제 형사재판에서 공판관여 검사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류 감찰관은 저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비평준화 시절에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쾌활한 성격의 수재형 법조인이셨다. 재판 진행 등 실력도 출중하신 분이라 형사소송 절차 전반에 대해서도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아이고! 저를 이렇게 평해주니 부끄럽네요.
류 감찰관이 언급한 사건은 사기 사건인데, 이 사기꾼은 자신이 경기고, 서울공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유명 공대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은 화학 분야의 전문가라고 속이고, 화학 관련 사업 투자금 등 명목으로 사기를 친 것입니다. 그래서 류 감찰관은 사기꾼의 학력, 경력을 다 조사하여 다시 법정에서 뻥을 치려는 사기꾼의 입을 봉해버렸습니다.
류 감찰관이 이 얘기를 하니 저도 어렴풋이 이 사건이 기억나는데, 이 사기꾼에게 내가 형을 얼마나 선고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류 감찰관에게 전화하여 선고형을 물어보니, 류 감찰관도 내가 얼마 형을 선고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 실형을 선고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류 감찰관 덕분에 저도 예전 형사재판장 할 때의 이런저런 추억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흐릅니다. 류 감찰관이 던진 단 하나의 사표! 그건 한 개인의 사소한 사표 한 장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특히 이번 내란사태로 민낯이 드러난 뻔뻔한 녀석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귀중한 단 하나의 사표입니다. 류 감찰관! 책 잘 읽었습니다. 책을 통해 류 감찰관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되었으며, 류 감찰관의 삶에 존경과 부러움을 느낍니다. 언제 한 번 소주 한 잔 기울이면서 책에서 쓰지 못했던 이야기도 마저 들어봅시다그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