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5 (목)

  • 구름많음동두천 8.8℃
  • 맑음강릉 11.8℃
  • 연무서울 9.4℃
  • 맑음대전 12.1℃
  • 맑음대구 11.8℃
  • 맑음울산 13.7℃
  • 맑음광주 12.5℃
  • 구름많음부산 12.7℃
  • 구름많음고창 11.5℃
  • 맑음제주 12.9℃
  • 흐림강화 4.9℃
  • 맑음보은 10.6℃
  • 구름많음금산 11.0℃
  • 맑음강진군 14.5℃
  • 맑음경주시 13.9℃
  • 맑음거제 13.1℃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문화유산

부여 관북리 유적서 궁중 악기와 목간 출토

왕궁 화장실 추정 구덩이에서 7세기 실물 관악기(가로피리) 최초 확인
부여(사비) 천도 직후 백제의 인사(人事), 재정 장부, 행정체계 기록한 목간 다수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지난 2년 동안 진행한 16차 발굴조사에서는 삭설(목간에 적힌 글씨를 삭제·수정하기 위해 표면을 깎아내며 생긴 부스러기)을 포함하여 모두 329점의 목간과 가로로 불어 연주하는 관악기인 횡적(橫笛, 가로 피리) 1점이 출토되었다.

 

 

 

백제 조당(朝堂)* 건물로 파악되는 7세기 건물터 인근의 직사각형 구덩이(가로 2m, 세로 1m, 깊이 2m 크기)에서 출토된 횡적은 대나무 소재로, 네 개의 구멍이 일렬로 뚫려 있었으며, 일부가 결실된 채 납작하게 눌린 상태였다. (남은 길이 224mm) 횡적이 발견된 구덩이 내부의 유기물을 분석한 결과 인체 기생충란이 함께 검출된 것으로 보아 조당에 부속된 화장실 시설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 조당 : 왕과 신하들이 국정을 논의하고 조회와 의례를 행하는 정치적, 상징적 공간

 

재질이 대나무인 점과 인위적으로 가공된 구멍이 있고, 엑스레이 분석 결과 입김을 불어 넣는 구멍이 있는, 한쪽 끝이 막힌 구조라는 것이 판명되어,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백제 금동대향로에 조각된 세로 관악기가 아닌, 가로피리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사비백제 왕궁의 핵심 공간에서 악기가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백제 궁중음악과 악기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이며, 백제의 음악과 소리를 실증적으로 복원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유물이다.

 

 

 

 

또한, 횡적은 중국과 일본의 사례와 견줘 연구한 결과 오늘날의 소금(小笒)과 유사한 악기인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번 발굴은 백제 횡적(橫笛)의 실체를 처음 확인한 사례자, 삼국시대(7세기)를 통틀어서도 실물 관악기가 발견된 첫 사례이자 유일한 사례다.

 

발굴된 목간은 국내 단일 유적에서 확인된 가장 많은 수량이자 백제 사비기의 가장 이른 때 자료로 평가되는데, 사비 천도 초기 단계의 수로에서 집중하여 출토되었으며, 간지년이 기록된 목간을 통해 제작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경신년(庚申年)’은 540년, ‘계해년(癸亥年)’은 543년에 해당하며, 이는 백제가 공주(웅진)에서 부여(사비)로 천도한 538년 직후의 시기다.

 

 

 

이 밖에도 국가 행정 문서인 인사 기록 목간, 국가재정과 관련된 장부 목간, 관등ㆍ관직이 적힌 목간과 삭설*이 다수 출토되어, 해당 공간이 백제 중앙 행정 관청인 22부사(部司)와 관련된 곳이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편철(編綴) 목간 가운데, “功四爲小將軍刀足二(공사위소장군도족이)”가 적힌 목간은 ‘공적이 4개인 도족이를 소장군으로 삼다’라는 뜻의 인사 관련 문서다.

* 삭설 : 목간을 다시 쓰거나, 글씨를 고치려고 깎아낸 찌꺼기

* 편철 목간: 목간을 발처럼 끈으로 엮어 만든 것, 행정 문서 목간을 관리ㆍ보존하기 위함

 

출토 목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삭설 가운데는 인사 관련 문서 외에 월 단위의 식량을 기록한 국가 재정 운영과 관련된 장부 목간도 있다. 그리고 사비도성의 중앙 행정 구역인 5부(部)와 방(方)-군(郡)-성(城) 지방 행정 체계 재편 과정을 보여주는 목간도 여럿 출토되었다. 도성 행정 단위인 ‘상ㆍ전ㆍ중ㆍ하ㆍ후부(上ㆍ前ㆍ中ㆍ下ㆍ後部)’ 5부를 기록한 목간, 지방 행정 단위인 ‘웅진·하서군(熊津·河西郡)’, ‘나라ㆍ요비성(那羅·徼比城)’ 등 새로운 지명이 확인되어 당시의 국가 운영 체계를 엿볼 수 있다.

 

 

 

한편, ‘입동(立冬)’, ‘인심초(人心草)’, ‘현곡개(玄曲愷)’,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로 여겨온 ‘전(畑)’자 등이 적힌 목간은 백제의 선진적인 문화와 동아시아의 활발한 대외 교류를 보여준다.

 

이번에 공개하는 발굴조사 성과는 약 1,500년 전 백제의 국가 운영 방식을 파악할 수 있는 문서 행정 실태와 당시의 음악 문화와 소리 복원에 이바지할 실물 자료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