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주 입에 올리는 말 중에 <전통(傳統)>이란 말이 있다. 전통이란 무슨 말일까? 아마도 과거로부터 전해 오는 ‘문화적 가치’ 혹은 ‘유산’을 일컫는 말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은 과거의 모습을 급속하게 바꾸는 개혁의 사회가 된다거나 혹은 동시 다발적으로 흘러들어오는 외래문화를 만나게 될 경우, 두 얼굴의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다.
하나는 전통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다. ‘오랜 전통은 지켜가야 할 바람직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쪽은 전통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전통이야말로 ‘사회질서의 기반’이라고 믿고 있다. 반대로 과거의 양식은 고리타분한 관습이어서 우리사 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라고 보려는 시각도 있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바로 전통문화에 대한 국민의 긍정적인 인식이 점차 높아지는 점이라 하겠다. 이러한 상황에 중앙이나 지방의 국악계가 전례 없이 고무되어 있다. 그 가운데는 경기소리 노학순 명창이 이끄는 <경서도 창악회> 경기도 지회의 창립도 예외일 수 없다. 앞으로 본 회의 공연 활동이 어떤 방향으로 시작되고 전개될 것인가 하는 점에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년 창단기념 공연을 수원 만석공연 특설무대에서 가졌을 때, 이를 지켜본 수많은 경기도민이나 수원시민들은 크게 만족하면서 동 회의 앞으로의 행보에 깊은 관심과 사랑, 격려와 환호를 해 주었다.
10월, 3일(월), 수원 행궁광장에서 성황리에 막을 올린 제2회 정기공연에서는 경기민요를 비롯하여 언제 들어도 신명나는 산타령, 그리고 살풀이를 비롯한 멋들어진 춤 등이 앞부분에 선을 보였다. 그러나 이날의 주된 레퍼토리는 역시 서울 경기지방의 전통 해학극인 재담 <장대장타령>이었다.
본래 재담(才談)이란 단순한 말재주가 아니다. 소리와 동작을 곁들이며 익살과 해학으로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민속극의 한 장르인 것이다. 이러한 재담은 1900년대 초, 암울했던 시기 에 박춘재와 같은 명창이 있어서 민중을 위로해 주었으나 그 이후에는 거의 단절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벽파 이창배의 제자 백영춘이 백방으로 문헌이나 음반 자료를 찾아서 옛 모습 거의 그대로 재현하게 되었다.
이렇게 백영춘에 의해 재현된 <장대장타령>은 수차에 걸친 검증 공연과 함께 국악학 학술대회를 통해 그 정통성을 인정받았고 드디어는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었던 것이다. 문화재를 지켜가는 후계자의 선두주자가 바로 오늘 공연의 주역인 노학순 명창이다. 노학순 명창은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소유자이다.
겉모습은 미소를 띠고 있어 부드럽게 보이지만 자신에겐 매우 엄격한 편이다. 그래서 나이 많은 제자는 그를 가리켜 ‘대충’이나 ‘적당’이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범이라고 귀띔을 해 준다. 나도 경험을 통해 그가 프로정신이 강한 소리꾼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작년 9월, 서울시 문화원 대회에서 그가 지도하는 성동문화원 민요팀이 월등한 기량으로 대상을 받았다.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의 보이지 않는 열과 성이 담보되지 않았다면 아마추어들을 거의 프로수준으로 만들 수가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올 2월 초, 해외 공연을 동행한 적이 있었다. 미국의 어느 학교 방문 공연에서 단원들의 무대연습이 만족지 않다는 이유로 식사를 포기하고 그 시간에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던 일이 생각난다.
대부분 지도자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을 앞세우는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매일 민요를 부르고 무대에 서는데도 불구하고 직업에 대한 철저한 프로 정신이 아니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번 공연에도 그의 프로정신은 여지없이 발휘되어 재담 <장대장타령>이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받았던 것이다. 성공적인 공연을 통해 <경서도 창악회 경기지회>가 많은 사람의 관심 속에 자리 잡게 되어 반갑기 그지없다. 앞으로의 행보에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