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악은 한국의 대표적인 향토음악이다. 그런데 농악의 기원을 딱히 언제부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옛날 삼국시대 이전에도 5월의 파종 후나 10월의 추수 후에는 천신, 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천의식이 있었는데, 이때는 온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즐겼다고 한다. 그것이 비록 오늘날의 농악과는 다르다고 해도 농사일과 관련하여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에서 농악의 시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려가요인 <동동>의 후렴에 나오는 「아으 동동다리」라는 가사에서「동동」을 농악에 쓰이는 북소리의 의성어인「둥둥」에서 온 말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하여튼 농악의 기원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가 하면 농악의 기원설도 다양하다. 농사와 안택(安宅)을 위한 축원설이 있고, 농군을 훈련 양성하는 방안의 하나로 군악(軍樂)설도 있으며, 사찰건립이나 중수목적의 모금방안과 관련한 불교 관계설 등도 있다. 이중에서는 농사를 위하고 안택을 제신에게 비는 농사안택축원설이 농악을 하게 된 기원으로 설득력이 있다 할 것이다.
농악은 주로 농악대에 의해 연주된다. 농악대의 악기편성은 타악기가 중심이다. 골격리듬은 꽹과리가 이끌어 가며 여기에 잔가락을 첨가하여 화려하게 전개해 나가는 장고(장구)가 있고, 징이나 북은 대체로 원박이나 원점을 쳐주고 있다. 그리고 소고춤을 추면서 치는 소고(벅구)도 있다. 철저하게 타악기 중심이고 선율악기로는 유일하게 태평소(일명-호적)가 포함되어 전체적인 흥을 돋아 준다.
농악대의 편성이나 장단, 진법 등은 지방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대략 기를 드는 <기수>들이 있고, 악기를 연주하는 <잽이>들이 있으며, 그 밖에 여러 배역으로 분장하여 춤추고 연희하는 <잡색>으로 편성된다.
농악대의 연주 형태에 따라 춤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농악대가 단체로 나와 벌이는 농악무로 흔히 ‘진법놀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농악대원 중에서 개인이 나와 갖가지 묘기를 부리는 ‘개인기’이다. 진법놀이나 개인기 역시 지방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호남농악을 예로 들면, 갈 지(之)자 모양을 그리면서 펼쳐지는 ‘을자 진굿’, 소라모양으로 말아 들어가는 ‘방울진굿’, 농악대를 2열로 세워 놓고 상쇠가 온갖 재주를 부리는 ‘성문굿’ 등 여러 가지 진법에서 베풀어지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또한, 개인이 나와서 벌이는 개인춤에는 소고잽이가 소고를 치면서 연풍대, 두루거리, 반지기, 나비상 등 여러 가지 재주를 보여 주는 소고춤이 있고, 장구잽이의 설장구 춤, 그리고 상모놀이 춤, 등 특징 있는 동작이나 춤사위가 지방에 따라 농악대에 따라 하려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농악은 지역적 특성에 따라 경기농악, 호남농악, 영남농악, 영동농악으로 대별하고 있다. 지역마다 말이 다르고, 노래가 다르듯이 각 지역의 쇠가락이나 장구가락, 또는 춤사위 등도 각각 다르게 연주되고 있다. 지방마다 농악의 구성이나 판제, 그리고 쇠나 장고들의 가락, 춤사위 등은 어떠한가? 특징적인 점은 무엇인가? 하는 점 또는 각 지역의 농악이 서로 어떤 공통점과 상이점이 있는가? 하는 상호 비교의 연구도 전문가들의 의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1985년에 무형문화재 제11-가호「진주농악」으로 지정된 영남농악을 보면 계절에 따라 규모나 특징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음력 정월에는 동네굿과 판굿을 치고 5~6월에는 제초기여서 간소한 농악으로 독려하며 7월에는 소 타는 놀이, 8월에는 한가위를 기해 씨름이나 농악대회를 열고, 10월에는 당산굿, 12월에는 절굿 등을 친다.
이러한 갖가지 사실 등을 상기해 보면 농업을 천하의 근본으로 삼아 온 우리 민족에게 있어 농악은 대표적인 향토 음악인 점이 분명하다. 농악은 한국인들의 삶 속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으면서 기쁘거나 즐거울 때는 물론이고, 슬픔이나 절망, 힘들고 고된 생활을 이겨내고 신명을 안겨주는 에너지의 근원이었고 삶의 반려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