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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후쿠오카 관세음사에 있는 담징의 맷돌을 찾아서

 
 

 


 

일명 담징스님의 맷돌로 일컬어지는 맷돌을 보기위해 후쿠오카 관세음사(福岡 觀世音寺)를 찾은 것은 2012년 2월 중순이었다. 후쿠오카는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는 지역이지만 그날은 오전부터 함박눈이 펑펑 내려 그곳 주민들은 몇십 년 만의 서설이라며 반기고 있었다.

관세음사는 큐슈지방의 대표적인 고찰로 창건 시기는 686년으로 추정되며 나라의 동대사(東大寺), 관동의 약사사(藥師寺)와 더불어 일본의 ‘삼계단(三戒壇, 계를 주는 단)’이 설치되었던 주요 절이다. 또한, 이곳에는 698년에 주조된 교토 묘심사의 동종(銅鐘)보다 앞선 일본 최고(最古)의 동종과 함께 국보급 불상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 가운데 담징스님의 맷돌은 단연 돋보이는 유물이다. 절의 주지이자 서남학원대학 문학부교수인 타카쿠라(高倉洋彰) 씨의 《태재부와 관세음(太宰府と觀世音), 1996》에 기록된 내용을 정리하면 “이 맷돌은 610년 고구려에서 온 승려인 담징이 처음 만든 것으로 이것이 그 실물이다. 이 맷돌은 식용의 가루를 가는 용도가 아니라 가람 건립 때 사용되는 적색안료인 ‘주(朱)’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밝히면서 일본의 맷돌 권위자인 미와(三論茂雄)씨의 ‘다자이부 관세음사 맷돌에 대하여’에 자세히 나와 있다고 인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관세음사 창건과 더불어 전해 내려오는 유물로 제분기술 측면에서도 이 맷돌의 연구는 더 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관세음사는 과거 영화와 달리 지금은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한산한 절이지만 가람 규모로 보나 발굴된 승방 터 등으로 볼 때 담징스님이 머물렀던 당시에는 일본에서 손꼽는 규모의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담징의 맷돌을 뒤로하고 본당(한국의 대웅전) 뒤뜰로 나가면 주춧돌이 점점이 박혀 있는 널찍한 승방 터가 나오는데 아직 내린 흰 눈 자국이 곳곳에 남아 있는 주춧돌 사이를 거닐어 보았다. 담징스님이 맷돌을 만들었다면 분명코 이곳 승방에서 묵었을 터였다.

법륭사의 화려한 금당벽화를 50면이나 그린 대화가이자 일본인의 최고 우상인 성덕태자의 스승이기도 한 담징스님에 대한 한국 쪽 기록은 유감스럽게도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일본의 사서인《일본서기 권22》에 보면, 스이코 18년(610) 봄 3월조에 “高麗王貢上 僧曇徵 法定 曇徵知五經 且能作彩色及紙墨 造 蓋造 始于是時歟”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풀어보면 “고구려왕(영양왕)이 승려 담징(曇徵, 돈쵸)과 법정(法定, 호죠)을 보냈다. 담징은 오경(사서오경)에 능통하고 채색(그림)을 잘했으며 종이와 먹 만드는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물레방아와 맷돌을 최초로 전했다)”라는 이야기다. 또한, 1251년의 《일본고승전요문초(日本高僧傳要文抄)》에도 ‘고구려 승 담징은 외학을 섭렵하고 5경에 밝았으며 610년 3월 법정스님과 함께 건너 왔다.’라는 기록이 있다.

담징스님의 법륭사 금당 벽화와 비단옷의 천사 그림 ‘비천도’ 그리고 이와 더불어 후쿠오카 관세음사의 맷돌은 1,4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도 우리 가슴에 고구려인의 뛰어난 예술혼을 보여주고 있다. 후쿠오카에 가는 분들은 고즈넉한 관세음사를 찾아 담징스님의 발자취를 돌아보길 권한다.

주      소 : 福岡 太宰府市 世音寺 五丁目 6番1 (世音寺 ‘간제온지’)
찾아가는 길 : 다자이후역(太宰府)에서 내려 걸어서 1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