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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0. 역동성이 돋보이는 노경미 명창의 공력

   

 

 

경기민요의 대명사 이은주 명창의 제자인 노경미 씨가 경기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12좌창 전곡을 음반에 담아냈다. 좌창(坐唱)이란 글자 그대로 앉아서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이다. 이는 서서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의 입창(立唱)과 구별 짓기 위한 이름이다. 입창을 순 우리말로 선소리라 부르는 것은 한자의 입(立)이 설 “입”이어서 같은 의미이지만, 좌창을 달리 잡가라고 부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하여튼 좌창이나 입창, 이들은 줄곧 <잡가>라는 이름으로 전해 온 노래들로 상류 지식인 사회에서 즐겨 부르던 정가(正歌)의 대칭개념인 것이다.

좌창 중에서 12곡으로 선정하고 있는 곡들은 다음과 같다.

1) 유산가(遊山歌) 2) 적벽가(赤壁歌) 3) 제비가(燕子歌)  4) 소춘향가(小春香歌)
5) 선유가(船遊歌) 6) 집장가(執杖歌) 7) 형장가(刑杖歌)  8) 평양가(平壤歌)
9) 십장가十杖歌 10) 출인가(出引歌) 11) 방물가(房物歌) 12) 달거리(月令歌)  

일반적으로 앉아서 부르는 연창형태는 적극적인 표현을 절제하는 노래들이다. 가곡이 그렇고 가사와 시조가 그렇다. 그래서 대부분의 속가는 서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도 잡가란 이름으로 오랜 기간 대중의 사랑을 받아 온 12좌창은 반드시 정좌해서 부른다. 속가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지만, 그만큼 감정을 절제하고 적극적인 표현을 자제하는 소리이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노래를 잡가로 불러왔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기야 조선시대 말엽의 <잡가>라는 이름은 판소리, 입창, 민요 등 모든 민속노래들을 가리키는 범칭이었다. 잡가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1910년~1920년대 “증보신구잡가(增補新舊雜歌)”를 비롯한 “고금잡가편(古今雜歌編)” 외 이 시기의 잡가집 대부분은 가사, 시조, 서도소리, 육자배기, 유산가, 민요, 단가나 회심곡, 산타령 계열의 음악 등 성악의 전 장르를 망라한 노래들이 잡가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다.

그러므로 잡가란 노래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느 특정 장르의 노래가 아닌, ‘여러 노래의 모음집’이란 뜻에서 잡가로 이름 지은 것이 분명하다.

12좌창 전 바탕을 음반에 담아 낸 노경미가 소리꾼이 된 배경은 부친이 불러주던 시조창이나 상엿소리의 가락, 또는 할머니가 불러 주던 민요 가락 등을 들으며 자란 가정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하겠다.

그는 이미 나이 20에 대중가요 음반을 취입할 정도로 음악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던 사람이다. 20 중반부터 김경희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웠고, 박상옥 명창에게는 휘모리잡가를 배워 서울시무형문화재 <휘모리잡가>의 이수자가 되었다. 그리고 중요무형문화재 경기민요의 예능보유자인 이은주 명창께는 경기12좌창을 사사 받아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다. 노경미는 실기뿐 아니라 학구열도 높아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졸업하기도 했다.

이 음반에 실려있는 좌창 12곡은 12가사와 같이 긴 사설을 도드리장단이나, 혹은 세마치 장단으로 짠 노래들이며 사설의 분위기는 서정적이며 통절형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각 노래의 선율구조는 상 하행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쉬운 형태이며 시김새가 서도소리보다 짙지 않고, 경기민요에 보이는 경토리가 섞여서 특이한 음조로 차분하고 구수한 느낌을 준다.

노경미의 소리는 언제 들어도 높고 시원한 발성이 인상적이다. 특히 긴 호흡으로 역동성을 살려나가는 모습은 가히 일품이다. 전주대사습에서 장원, 대구 전국대회에서의 대상, 그리고 그의 이름을 걸고 꾸준히 열어 온 개인발표회 등이 그의 공력을 알게 한다.

12좌창 전곡을 무대 위에서 부를 수 있는 명창이 몇 안 되는 경기 민요계의 현실을 돌아볼 때, 이번 그의 음반 출시는 경기소리의 앞날을 밝혀 줄 쾌사가 아닐 수 없다.

전국에서 우리소리, 특히 경기좌창이나 민요를 전공하려는 학생, 관심이 있는 애호가 여러분이 노경미 명창의 소리를 애청해 주기 바라마지 않는다. 거듭 큰 박수와 함께 이 글로 축하를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