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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8. 중·한 교류음악회의 진정한 의미

한·중 전통음악 학술 및 실연교류회 Ⅱ

 

 

지난주에는 30여 명의 한국전통음악학회 회원들이 중국 연변예술대학을 방문하여 열네 번째 한-중 전통음악 학술 및 실연 교류회를 했다는 이야기와 이 행사는 한국의 전통음악과 중국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동포들이 지키고 있는 음악을 상호 이해하고 서로 교류하는 행사라는 점을 소개하면서 올해의 발표내용과 발표자들을 소개하였다.

이 행사를 준비한 중국의 연변예술대학에서는 강광훈 학장, 신호 부학장, 김성삼 전학부장, 전화자 교수, 중국음악가 협회 박장수 주석, 표현전업의 리훈 주임, 최성룡 교수 등 그 외에도 여러 교수와 학생들이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그 중 리 훈 주임교수의 “중·한 교류음악회의 진정한 의미”라는 제하의 환영사 일부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연변대학예술학원과 한국의 전통음악학회가 매해 여름에 만나 공동으로 개최하는 <중한 학술 및 실연 교류회>가 벌써 금년으로 14회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이번에도 저희 연변대학 예술학원을 찾아주신 한국전통음악학회 회장 서한범 박사님을 위시한 모든 가족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하나 되는 환영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뿌리가 없는 나무에 열매가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조선민족의 전통음악은 음악예술의 기초가 되어서 여타 문화예술의 창조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새롭게 변하고 있는 오늘, 현대적인 것이 전통문화에 강력한 충격을 주고 있으며 그러한 영향으로 인하여 전통음악 예술의 귀중함이 점차 망각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환경하에서 열리게 되는 이번 행사가 저희 음악표연 전업뿐만이 아닌, 전반 중국 조선족 음악사회에서 조선민족 전통음악을 보다 훌륭히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더없이 중요한 현실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은 물론, 역사적인 가치가 지대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바입니다. (중략)

찾아주신 전통음악학회 회원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교류가 자랑스럽게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정례적인 만남이 우리 민족문화 유산을 후손들에게 전승하는 길에서 더욱 공고한 초석이 되고 있다는 점은 자랑스러운 일이고, 더하여 우리의 전통문화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계기가 될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중략)

금번 제14회【중한 학술 및 실연 교류회】의 중국 측 학술발표는  리 정 교수의 ‘왜, 일부 전통음악형식이 소실되는가’와 최성룡 교수의‘남북한과 연변지역의 민요 비교연구‘를 발표할 예정이며 실연교류에는 박춘희 교수의 노래‘하늘길 바닷길 모두 열렸네’와 신광호 교수의 ‘아버지 산 어머니 강’김다의 양금독주로 ‘나의 어머니’ 유해의 가야금 독주 ‘물레타령’ 등을 준비하였습니다. 진정한 교류가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중국에 체류하시는 동안 무탈하시고 신체건강과 만복만이 깃들기를 충심으로 기원드립니다.   2012년도 제14회【한중학술 및 실연 교류회】의 원만한 성공을 위해 다함께 손을 굳게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열렬히 환영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리훈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표연전업 주임)


한국전통음악학회와 연변예술학원 간 이러한 전통음악의 학술 및 실연 교류회는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교류 행사가 시작된 계기는 참으로 우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 봄으로 기억된다. 죽(竹)의 장막으로 알려져 있던 중국과의 수교가 되기 이전이었으니 당시 공산국가에서 우리나라를 방문한다는 것이 상상 밖이었는데, 뜻밖에 연변예술대학에서 민족성악을 가르치고 있는 전화자 교수가 유학을 온 것이다.

그는 국립국악원의 배려로 경기민요며 서도민요를 당대의 최고 명창들로부터 배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국립국악원의 거문고 수석이었던 황득주 명인이 전화자 교수와 함께 우리집을 찾아와 인사를 나누면서 그와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결국은 그녀를 통하여 연변대학의 교수들을 소개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교류가 가능해 진 것이다. 그래서 이 난에 전화자 교수를 조금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