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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리더십은 무엇일까?

[서평] 이영관의 ≪조선의 리더십을 탐하라≫

[그린경제=김기섭 기자] 국내에는 수많은 외국의 리더십 이론들이 범람합니다만, 한결같이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외국의 리더십이론이 이성과 논리를 강조한다면 우리는 감성과 직관을 더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외국의 리더십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는 한국형 리더십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순천향대 관광경영학과 이영관 교수가 지은 <조선의 리더십을 탐하라>은 이 같은 현실비판과 대안을 제시한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가장 가깝고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는 조선의 리더들을 한국형 리더십 차원에서 살펴보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조선을 만든 20여명의 리더십 조명 

   
▲ ≪조선의 리더십을 탐하라≫, 이영관, 이콘 출판
저자는 20여명의 조선시대 인물들을 '위기관리' '혁신', '심학(心學)', '여가생활' 등 네 개의 키워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기관리 편에서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18년 유배생활 속에서도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 제주도 유배라는 최악의 환경에서 추사체를 완성한 김정희의 리더십을 살핍니다.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 가서도 자신의 신세를 원망하기보다는 후학들을 양성하며 실학을 집대성하는 위업을 달성했고, 김정희는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려 제주도로 유배 갔지만 좌절하지 않고 자신만의 글씨인 추사체를 완성하여 그의 예술적 재능을 승화시켰다고 평가합니다.  

위기관리 편에서는 김종직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김종직은 성종의 총애를 받아 훈구세력을 견제하는 한편 사림을 중앙에 진출시킨 사림의 대부입니다. 1인자였던 성종의 의중을 정확히 간파하고 주군이 뜻하는 정치의 구현에 최선을 다한 그는 훈구세력과 자유롭게 어울리면서도 자신의 제자들에게는 이들을 견제토록 하는 놀라운 처세술을 보입니다. 비록 사후를 대비하지 못해 부관참시를 당합니다만 원리원칙을 지키면서도 정적을 아우르는 김종직의 삶의 방식은 현대의 리더들이 본받을 만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혁신 편에서는 한글창제 등 민본정치를 구현한 세종대왕과 연전연승의 리더십으로 임진왜란을 극복한 이순신, 조선의 문예부흥을 이끈 혁신 군주 정조의 실용주의에 주목합니다. 이외에 세계열강들의 각축장이 된 조선 말기에 홀연히 나타나 세상을 바로세우는 혁신을 실천한 선구자적 인물로 전봉준을 소개합니다.  

전봉준의 동학혁명군은 가는 곳마다 백성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습니다.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농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덕분입니다. 이렇게 농민들이 물질적인 대가없이 전폭적인 신뢰를 보여주었다는 것은 현대경영에서 부하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인터널 마케팅(Internal marketing)과 똑같습니다. 저자는 그러한 전봉준을 인터널 마케팅의 귀재라고 부릅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심학(心學) 편입니다. 심학은 인간의 마음을 우주 만물의 근본으로 삼고 마음을 수양하고 실천하여 성인의 경지에 이르려는 사상입니다. 조선의 임금들과 관료들은 정치철학과 함께 리더가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지식으로 심학의 실천에 혼신을 힘을 다했는데, 저자가 심학을 실천한 인물로 꼽은 사람은 네 사람입니다.  

세종과 더불어 태평성대를 일궈낸 원칙의 리더십을 보인 황희 정승과 정치와 일정 거리를 두면서 학문에 매진한 퇴계 이황, 시대와 불화했지만 혁혁한 학문적 업적을 세운 율곡 이이, 그리고 임진왜란을 진두지휘하며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안민보국(安民保國)의 리더십을 발휘한 류성룡이 그들입니다. 정신적인 삶에 가치를 두는 심학은 물질만능주의에 휘청거리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귀한 가르침을 줍니다.  

마지막 여가생활 편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리더들, 즉 왕족과 선비들이 즐긴 품격 있는 여가문화를 소개합니다. 맹사성은 음악을 사랑하며 정치적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웠고, 정철은 담양 식영정에서 지인들과 교류하면서 우리 민족 고유의 가사문학을 정립했습니다. 유배를 당한 윤선도는 정치에 환멸을 느낀 뒤 해남의 보길도에 조선 최대 규모의 정원인 부용동원림을 꾸며놓고 신선처럼 생활합니다.  

선비들뿐만 아니라 조선의 임금들도 창덕궁 후원 등에서 정치적 번뇌를 치유하며 재충전한 삶의 에너지로 신하들을 위로하고 배려하는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조선의 선비들과 임금들이 향유한 여가문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여가문화의 모델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이 책에서는 무능력한 조선의 권력자에게도 시선을 던집니다. 이들은 자신뿐 아니라 국운에 큰 해를 끼쳤는데, 제왕학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임금이 된 단종, 명분 없이 무력으로 조카를 몰아내고 권좌에 오른 세조, 명종 대 부정부패의 만연으로 나타난 의적 임꺽정, 그리고 청나라와의 외교관계에 실패하여 병자호란을 자초한 인조의 무능력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역사입니다.  

역사 속 리더십은 어려움 극복하는 지혜의 보고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네 개의 키워드로 나눈 뒤 인물과 관련된 명소를 찾아 사진과 함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준다는 점입니다. 저자가 직접 취재한 인물들과 유적에 대한 세세한 설명은 조선시대 영웅들의 멋과 풍류, 한숨과 고통을 가까이서 만나도록 해줍니다. 예를 들면 세종대왕의 휴양지 온양행궁, 정약용의 다산초당, 정조의 융릉, 전봉준의 황토현 전적지, 이황의 도산서원, 윤선도의 녹우당부용동원림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단순한 문화유적 해설이 아니라 인물들의 체취를 느끼게 하는 길잡이 구실을 합니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은 한 강연에서 경제적인 문제를 경제만으로, 정치적인 갈등을 정치로만 풀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하며, “우리 역사 속 지도자들이 보여준 리더십을 통해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교훈과 지혜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링컨의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런 위인과 리더가 필요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리더들을 홀대해왔던 게 사실이니까요. 이 책은 다음과 같은 긴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로마의 리더십은 로마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졌고, 로마인에게 어울리도록 진화되어 왔다. 우리는 지금 누구의 리더십을 따르고 있는가?” 우리는 이 물음에 어떤 식으로든 답해야 합니다  

 

   
 
 ** 김기섭(세종연구가/한국형리더십교육센터 대표)

 세종대왕의 능(영릉)이 있는 여주에서 태어나, 경희대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세종의 의사결정 연구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오래 전부터 일선 학교와 교육청에서 교육토론과 고전읽기지도법을 강의하고,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며 한국적 회의와 소통문화, 한국형 토론과 리더십을 개발하고 보급하는데 온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