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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의 음악에세이] 천천히와 빨리빨리 (Piano & Presto)

지름길과 먼 길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지름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지름길로 가면 빨리 갈 수 있기에 대부분 지름길을 좋아한다. 현대의 경쟁사회에서 지름길은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그래서 그런지 요즘 학생들과 부모들은 바쁜 세상이니 빨리빨리 배워서 바로 유학 가서, 빨리빨리 전문의사, 전문변호사, 박사가 되고 …..일정기간을 거치면 빨리빨리 개업하여 돈 벌어서 점점 더 크게  …..

아마도 빨리빨리는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중에 하나가 아닐까. 그런데 나는 학생을 가르치면서 지름길이 보이는데 그 길을 빨리빨리 알려주어야 할지 아니면 더 있다가 알려주어야 교육자로서 옳은 것인지 갈등하곤 한다. 왜냐하면 지름길만이 최상의 길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지름길에 대한 고민은 아이 이름을 짓는데도 은근한 영향을 주었다.  이태리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의 이름을 수로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 이유는 첫째로 받침이 없는 이름이어야 이태리학교 선생님들이 쉽게 발음할 수 있고 선생님도 아이의 이름이 쉽게 각인되어야 부담감 없이 빨리빨리 익숙해져서 우리 아이의 이름을 더 많이 불러줄 것이라는 이태리 교사친구의 충고를 따른 결과였다.

 아이의 돌림자는 섭燮자였고 이태리사람들이 Seop (세옵)으로 읽을 것을 생각하니 받침이 없는 것이 읽기가 편하겠다는 생각에서 수로(Su Ro)라는 쉬운 이름을 짓게 되었다. 실제로 이태리사람들은 길거리에 있는 우리기업 ‘현대Hyundae’의 간판을 ‘윤다이’ 라고 읽으며 우리의 지휘스타 정명훈(Jung Myung Hun)을 ‘융그 미융그 운’ 이라고 발음한다.

콩쿨 시상식에서 진행자가 자신의 이름을 하도 요상하게 읽는 바람에 1등을 하고도 앞으로 나가 상을 받지 못하는 사례까지 있었으니 이럴 때는 아들을 위해서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하나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아니면 반대로 발음하기가 아주 힘든 이름을 지어주어 아예 어려운 이름으로 어필하는 것도 지름길이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개인적인 바람도 있었다.  김해 김씨의 시조 김수로 왕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기 보다는 수로(빼어날 수秀, 길로路)라고 하여 이태리어로는 La strada splendida (아름다운 길, 멋진 길)이라는 뜻으로 지었고 내 아이가 인간으로서 멋지고 아름다운 길을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택한 것이다. 또 지인의 자녀 중에 ‘여리’ 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이름때문인지 몸이 몹시 허약한 것 같아 우리는 튼튼하고 크게 자라주길 바라며 ‘김탄탄(TanTan)’ 으로 할까 고민도 하였었다. 그런데 만화의 주인공 이름 같아 혹시나 커가면서 놀림의 대상이 될까 걱정되어 그냥 아명으로만 쓰기로 하였다.

자식이 이름 그대로 탄탄대로 지름길로 가기를 원하는 것이 부모 마음이겠지만 내 아이는 좁고 굽이져있고 숲이 우거져 때로는 비포장에 약간 험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멋지고 아름다운 길이라고 찾아와 여유를 가지고 드라이브를 즐기며 쉬고 가는 그런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주면 좋겠다. 뻥 뚫린 지름길은 의례 달리게 되고 가속을 내다보니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르고 달리기 쉽지 않겠는가. 하지만 천천히 돌아가는 먼 길에서는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도 돌아가야 하기 마련이고 돌면 돌수록 주위에 더 많은 것들을 보며 갈 수 있어 좋다.

 나는 예술가로서 지름길보다는 답답하지만 먼 길을 택하고 싶다.

빨리 달릴 수 있는 아스팔트보다는 생명이 돋아나 살 수 있는 비포장 흙 길을 가고 싶다. 또 떠밀려 자동으로 올라가야만 하는 에스카레이터 보다는 내가 속도를 조절하며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이 더 좋다.

그래서 빌딩이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계단을 사용하면 건강도 좋아질 텐데, 승강기는 항상 만원이고 옆의 비상계단은 거의 폐쇄수준이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침 저녁으로 시간을 내어 돈내고 헬스장에 가는 걸 보면 뭔가 잘 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평소에 먼 길, 느린 길에 좀 더 익숙해진다면 좋겠다.
그러면 빨리 가야된다는 스트레스도 없어지고 자신의 생활과 마음에 여유가 생겨 주변 사람들까지 마음이 느슨해질 것이 아닌가.

실제로 우리가 휴가를 내어 거름냄새가 나는 우거진 숲길을 지나 첩첩 산중과 망망 바다를 향하여 굽이진 길로 먼 길을 돌아다니며 뿌리는 시간과 돈을 계산해보면 휴가길은 멀지만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사실 가장 비싸고 가치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보기에는 지름길이 오히려 싸구려 길일 수 있고  비록 느리겠지만 먼 길이 바로 값진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로를 고민하며 이과에서 문과로 바꾸려고 고등학교를 4년씩이나 다닌 나는 문제아였으며 불효자였다. 종교철학자가 되기를 희망하기도 했었지만 나는 결국 성균관대학교 에서 산업심리학(조직 및 경영심리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시절에 와서야 비로서 내가 엉뚱하게도 음악에 대한 소양이 있는 것을 깨닫게 되어 우여곡절 끝에 대학원과 삼성입사를 포기하고 경원대학교 성악과에 학사편입 하고 졸업하였다. 미국에 가서 음악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존경하는 은사님의 권유로 갑자기 이태리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하고 10년을 살았다. 그야말로 나는 일부러 돌아가려고 작정을 해도 돌아가기 힘든 길을 지금까지 돌아온 것 같다.

 이태리 여행가이드를 하며 한국 관광객들이 식당에서 천천히 나오는 후식을 기다리지 못하고 모두 나가버리는 것을 보고 몹시 황당해하는 종업원에게 나는 여러 번 창피한 해명을 해야했었다.
저 멀리 동양에서 귀중한 시간을 쪼개어 관광을 왔는데 빨리빨리 많은 것을 보고 가려는 마음에서 저렇게 빨리빨리 서두르는 것이라고 ...

그랬더니 종업원은 항상 천천히 먹고 즐기며 여유를 부리는 이태리 사람들의 성향이 자신들에게도 불만이라고 말하며 오히려 공감을 하는 것이었다. 다음에 관광객들을 데리고 가보니 종업원은 어디서 배웠는지 우리말로 ‘빨리빨리’를 연실 외치며 신나게 서비스를 하였고 한국손님들도 기분이 좋았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그들의 ‘천천히 (Piano Piano)’ 를 배워야 하며 그들은 우리의 ‘빨리빨리(Presto Presto)’ 를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길은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긴다. 그러면서 아스팔트 없던 길에 흙먼지 날리고 음악이 없이도 흥으로 춤출 수 있었던 시절의 향수가 떠오른다.  그 시절의 이태리 영화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La Strada)’의 영상과 음악도 다시 그리워진다.

돈도 명예도 좋지만 사람은 휴가온 사람처럼 삶을 천천히 여유롭게 즐기다 갈 줄도 알아야할 것 같다. 
모두들 몸과 마음이 편하게 살려고 열심히 일하지만 막상 경제적으로 편할 정도가 되었는데도 마음 편하게 즐기는 여유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Piano Piano(천천히, 살살, 여리게)는 음악용어이면서 이태리사람들이 일상에서 많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진한 곰탕 국물 한 모금만 입에 넣어도 우리는 금방 알 수 있지않은가. 이 국물을 얼마나 오랜동안 천천히 정성으로 우려냈는가를.
Piano Piano... 우리의 삶도 이제는 좀 여유롭게 나 자신을 위해 정성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해본다. 빨리빨리 벌컥 곰탕 국물을 마시기 보다는 조금씩 천천히 음미하는 맛도 좋지 않겠는가.


<관련음악상식> 우리가 알고 있는 악기명 피아노는 이탈리아어 피아노포르테 pianoforte(여리게, 강하게)의 줄임말입니다. 피아노 이전의  건반악기인 하프시코드가 건반터치로 셈여림을 줄 수가 없었던 반면, 피아노포르테는 셈여림의 강약을 줄수가 있었기에 이태리사람들은 피아노 악기를 pianoforte(피아노포르테)라고 부르게 된 것이지요.

 

   
▲ 주세페 김동규


*** 김 동규 (예명_ 주세페 김)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팝페라테너, 예술감독, 작곡가, 편곡가, 지휘자, 음악칼럼리스트)로 아내 김구미(소프라노)와 함께 ‘듀오아임’이라는 예명으로 팝페라-크로스오버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www.duoa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