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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화보] 여주 고달사터 원종대사 탑비 (보물 제6호)

아쉽게도 귀부와 이수만 남아

   
▲ 귀부의 면모는 용형
   
▲ 귀부와 이수
   
▲ 이수에 새겨진 글씨
   
▲ 귀부의 6각 귀갑문
 
[그린경제/얼레빗 = 조판형 기자] 이 귀부와 이수는 [혜목산고달선원국사원종대사지비(慧目山高達禪院國師元宗大師之碑)]를 받쳤던 귀부(龜趺)와 비신석(碑身石)위에 얹혔던 이수이다. 

비는 일찌기 무너져 신석(身石)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현재는 경복궁 근정전(景福宮 勤政殿) 서쪽 화랑에 진열되어 있으며 이곳 고달선원(高達禪院) 절터에는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비문(碑文)에 의하면 원종대사(元宗大師)는 신라 경문왕 9년(869) 13세에 출가하여 상주 공산 삼랑사(尙州 公山 三郞寺)에서 융제선사에게 사사(師事)하였다. 22세에 [양주삼각산장의사(楊州三角山藏義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고 23세에 입당(入唐)하여 서주 동성현 적주산(舒州 桐城縣 寂住山)에서 자선화상(子禪和尙)에게 사사하였으며 경명왕 5년(921)에 환국하여 봉림사(鳳林寺)에 거주하였다. 

 그후 광주 천왕사(廣州 天王寺)에서 고려광종 9년(958) 8월에 입적(入寂)하니 왕이 애도하여 원종대사 혜진(慧眞)이라 추시(追諡)하고 [진영일정(眞影一幀)]을 그리게 하였으며 입적후 17년에 이 비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귀부는 거대한 단일석으로 조성되어 있고 6각 귀갑문(龜甲文)이 장식되어 있으며장방형(長方形)의 비좌(碑座)는 운문(雲紋)이 새겨져 있는 연화좌(蓮華座) 위에 조출(彫出)되고 상면 둘레에는 복련문(覆蓮紋)이 조출되어 있다. 네 다리와 소톱 끝의 조형은 사실적이며 예리하나 귀두(龜頭)의 면모(面貌)는 흔히 볼 수 있는 용형(龍形)이다. 이수는 구름과 용무늬로 장식되어 있으며 정상에 작은 구멍이 뚫어져 있어 보주(寶珠)가 꽂혔던 흔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