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양승국 변호사] 지난해 연말 코엑스에서 대한민국 화폐 박람회가 열렸습니다. 부제는 ‘돈의 비밀’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박람회는 우리나라 화폐를 중심으로 외국 화폐도 조금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람회장을 따라 다니는 화폐 수집판매상들도 박람회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다양한 디자인의 세계 각국의 돈을 조합하여 만든 작품 전시회도 열리고 있더군요.
세계의 화폐를 비교하면서 보니 재미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나라 화폐에는 다 역사상 유명한 인물과 그 인물에 관련된 것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역사가 길지 않은 나라의 경우에는 정치가나 나라를 빛낸 운동선수가, 관광으로 먹고 사는 아프리카 나라는 동‧식물이, 산업이나 과학을 중시하는 나라는 핵심 산업시설이나 과학시설을 많이 넣더군요.
수리남의 경우에는 엔터니 네스티(1967년생)라는 수영선수가, 스코틀랜드에서는 유명한 골프 선수 잭 니클라우스가 화폐에 들어가 있습니다. 엔터니 네스티는 88 올림픽 때 남자 나비헤엄 100m에서 금메달을 딴 수리남의 국민적 영웅이라 화폐에 들어갔나 봅니다. 한편 유로화의 경우에는 EU 가입한 나라들의 소통을 강조하기 위하여 문과 다리가 들어가 있네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돈은 만원권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싱가포르에는 무려 1만 달러(8,581,000원) 지폐가 있군요. 우리나라는 고액권 발행하려 하여도 이게 검은 돈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기에 반대 여론이 높아 5만원권도 최근에야 발행되었는데, 싱가포르는 깨끗한 나라임을 자부하니까 1만 달러 지폐도 있는 모양이지요?
한편 동전 중에는 오스트리아가 2004년 주조한 31.1kg 금화가 제일 비싼 동전입니다. 비엔나 필하모닉 주화 발매 15주년을 기념하여 주조한 기념주화라는데, 단 15개만 주조하였답니다. 그러니 그 희소성 때문에 현재 가치는 약 20억원 정도가 된다는군요. 오스트리아가 예술의 나라인데다가 비엔나 필하모닉이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오케스트라이니까 이런 기념주화도 만든 모양이군요.
그리고 이번에 봤더니 우리나라 조폐 기술이 세계에서도 알아주더군요. 그래서 후진국에서 우리나라에 화폐를 만들어달라고 주문도 많이 들어온답니다. 그래서 한쪽에서 자랑스러운 조폐공사의 어제와 오늘 이야기도 전시하고 있구요. 이번 박람회의 부제가 ‘돈의 비밀’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아무래도 돈의 비밀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지요. 그래서 돈의 비밀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➀ 이승만 대통령
▲ 자유당 정권 시절 이승만 대통령 샂닝 ㅣ들어간 천원(千圓) 짜리 종이돈, 처음엔 이승만 얼굴이 가운데 들어갔다가 나중에 오른쪽으로 옮겼다.
위에서 우리나라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은 역사 인물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전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더군요. 자유당 때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國父)로 떠받들다보니, 지폐에 이승만 대통령 얼굴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대통령의 얼굴이 처음에는 지폐 가운데에 있다가,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는 지폐를 반으로 접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대통령의 얼굴이 반으로 접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독재자 옆에는 꼭 아부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어떤 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떻게 이대통령의 얼굴을 반으로 접을 수 있느냐 하여 옆으로 자리를 옮겨놓은 것이랍니다. 하긴 이대통령이 방귀를 뀌니까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하였다는 치도 있었으니까, 이런 경우도 있었겠군요. 요즈음 우리나라에는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없겠지만, 아직 3대가 대를 이어 독재를 하고 있는 저 북쪽의 경우에는 아직도 이렇겠지요?
➁ 어머니와 아들
▲ 모자 그림이 들어간 돈, 5.16혁명정부가 저축심을 높이려고 만들었다가 화폐개혁으로 24일만에 사라졌다.
그리고 한 어머니와 색동옷 입은 아들이 같이 저축통장을 보고 있는 모자상이 들어가 있는 백환 짜리 지폐도 있었습니다. 5.16. 혁명정부가 국민들의 저축심을 높이기 위해 채택한 화폐라는군요. 그런데 이 화폐의 모델은 유명한 인물이 아니라 이름 없는 모자입니다. 그리고 이 모자는 단 24일만 세상에 나왔다가 사라져야 하는 비운을 겪게 됩니다. 바로 1962년에 화폐 개혁이 단행되면서 사라지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이름 없는 모자가 24일 만에 사라졌고, 또 이 지폐를 디자인한 디자이너가 죽어 이들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그대로 역사에 묻혀버리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2005년 화동 옥션에서 모자상 화폐를 모두 가져가겠다는 인물이 나타나면서 그 베일이 벗겨졌답니다. 바로 화폐 속 아기가 자기라고 밝힌 윤재순씨가 등장하였던 것이지요. 윤재순씨는 지폐 속에 등장하는 자신의 어머니가 당시 조폐공사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권기순씨라고 밝혔지요. 이들 모자처럼 한 지폐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나, 오늘날에도 모자가 우리 지폐에 등장하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5만원권에는 신사임당이, 5천원권에는 율곡 이이가 나오지요.
➂ 천원 속의 다빈치 코드
▲ 1983년 발행된 우리나라 천원권 돈, 디자이너 민병휘 씨가 "min"이란 글씨를 숨겨 놓았다.
모나리자 그림을 배경으로 한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이 인기였었지요? 그런데 모나리자 눈 속에 다빈치 코드가 있답니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 눈 속에 자기의 이니셜 ‘LV’를 숨겨놓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1983년 발행된 우리나라 천원권에도 그런 다빈치 코드가 있었네요. 당시 디자이너 김광현씨가 지폐 디자인을 했고, 그 중 천원 지폐의 표면 종판 조각은 민병휘 조각사가 하였답니다.
그런데 민병휘 조각사가 ‘min’이라는 글자를 지폐에 숨겨놓았다는구요. 어딘지 아십니까? 퇴계 이황의 왼편에 투호(投壺)가 도안되어 있었는데, 확대경으로 자세히 보면 투호를 감고 돌아가는 끈에서 ‘min’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물론 지금 유통되고 있는 크기가 좀 작아진 천원 지폐에는 투호 대신 명륜당과 매화가 들어가 있어서 다빈치 코드는 없어졌습니다. 원래 우리나라 지폐에는 디자이너나 조각사의 사인이 들어가지 않도록 되어 있답니다. 그럼에도 민병휘 조각사는 역사적인 작업에 참여한 흔적을 그렇게라도 남기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➃ 퇴계 이황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얘기한다면, 현 천원 지폐에 매화가 있는데, 매화가 들어간 이유를 아시나요? 퇴계가 얼마나 매화를 사랑하였습니까? 그런데 다 아시겠지만 퇴계가 매화를 사랑하게 된 것에는 단순히 매화 그 자체만의 아름다움만을 사랑한 것은 아니지요. 퇴계는 단양군수로 있다가 풍기군수로 발령받아 떠날 때 선물 받은 매화를 평생 아끼고 사랑하였습니다. 매화를 선물한 이는 퇴계를 사랑한 기생 두향입니다.
퇴계는 이 매화를 늘 곁에 두면서 매화를 볼 때마다 두향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떠날 때에 마지막 유언도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였지요. 두향과 퇴계는 한 번 헤어진 후 평생 만나지 못했지만, 두 사람의 정신적 교감의 끈은 늘 이어져 있어서, 퇴계가 죽자 두향은 소복 차림으로 도산서원까지 걸어가 멀리서나마 퇴계에게 절을 합니다. 그리고 단양으로 돌아와 남한강에 몸을 던졌다고 전해지지요. 지금도 남한강가에 가면 두향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왕 천원 지폐 얘기 나온 김에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1,000원 지폐 뒷면의 그림이 누구 그림인 줄 아십니까?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입니다. 그럼 퇴계 이황이 나오는 지폐에 왜 정선의 그림이 들어가 있는 것일가요? 바로 그림의 배경이 퇴계 이황 생존시의 서당 건물과 그 주변 풍경을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지요.
이 그림은 한 때 위작 논란이 있었으나, 정밀한 과학적 검증을 통하여 진품으로 결론이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가? 계상정거도가 들어가 있는 보물 제585호 <퇴우 이선생 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 퇴계 이황과 우암 송시열의 글씨에 겸재 정선의 그림이 곁들인 화첩)>이 국내 고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34억 원에 삼성문화재단에 낙찰됐다고 합니다.
➄ 종교 문제가 논란이 되었던 화폐
1973년에 만원권 지폐가 발행이 되지요. 처음에 만원권 지폐 디자인은 석굴암과 불국사였답니다. 그런데 이 디자인이 특정 종교를 의미한다는 반대 여론이 많아, 결국 석굴암 대신 세종대왕을, 불국사 대신 경복궁 근정전으로 바꾸었답니다. 그런데 은화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은화는 숨어있는 그림으로 빛에 비추면 용지의 두께와 밀도 차이에 따라 명암의 차이로 그림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위조 방지를 위해 넣는 그림이지요. 당시 조폐공사는 은화에도 석굴암을 넣기로 하였는데, 아직 은화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 특별 용지를 수입하였답니다.
그런데 표면에 보이는 석굴암과 불국사 디자인은 바꿀 수 있지만, 은화는 이미 석굴암 디자인으로 수입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우리 기술로는 바꿀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발행된 만원권 지폐는 눈에 보이는 그림은 세종대왕과 근정전이지만, 은화는 그대로 석굴암으로 발행되는 해프닝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만원권에는 세종대왕은 그대로 계시지만, 뒷면에는 근정전 대신 천문관측기구인 혼천의와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가 들어가 있지요? 과학 기술을 발달시킨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넣은 것이겠지요.
➅ 서양인 율곡
▲ 1972년 발행 율곡 이이의 초상화가 들어간 5천원권 돈, 영국인 토마스 드 라루사가 디자인하여 서양인의 얼굴이 되어버렸다.
1972년에는 율곡 이이의 초상화가 들어간 5천원권 지폐가 나왔지요. 그런데 처음 나온 5천원 지폐의 율곡은 암만 보아도 서양인처럼 생겼습니다. 당시 율곡 초상의 조각을 영국의 토마스 드 라루사의 조각사에게 맡겼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영국인 조각사도 자기 멋대로 조각하지는 않았을 텐데 웬일일까요?
당시까지도 율곡 이이의 표준 영정이 없어서 김정숙 조각가가 조각한 율곡의 동상을 사진으로 찍어 영국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설마 김정숙 조각가가 율곡의 얼굴을 서양인처럼 조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서양인에게 조각을 맡기니까, 우리가 보낸 사진을 보고 디자인할 때 의식하지 않았어도 자기네 서양인 모습처럼 디자인한 것이 아닐까요? 설마 의도적으로 그렇게 디자인하지는 않았겠지요?
외국의 경우에도 2003년에 탄자니아에서 발행된 1,000실링 지폐 속의 니에레레 대통령의 웃옷 단추가 여성용 단추로 디자인 되었답니다. 아마 탄자니아도 선진국에 화폐 디자인을 맡겼는데, 니에레레 대통령을 잘 모르는 디자이너가 탄자니아에서 보내온 인물 사진을 여성으로 착각하여 여성용 단추로 디자인 한 것일테지요.
당연히 지금은 5천원 지폐 속의 율곡이 제 모습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5천원 지폐 뒷면에는 원래 율곡의 외가인 오죽헌이 들어가 있다가 지금은 율곡 어머니 신사임당의 벌레와 풀 그림(草蟲圖)가 들어가 있습니다. 전에 파주시에서 주장하길, 오죽헌은 단지 율곡의 외가일 뿐이므로 율곡이 자신의 학문을 세우고 제자들을 가르친 파주의 자운서원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는데, 논란을 피하기 위해 초충도로 바꾼 것인가요? 그렇지만 오죽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지폐 앞면의 율곡 초상화의 배경으로 오죽헌의 몽룡실이 남아 있습니다.
오만원권 지폐에는 신사임당의 초상화가 들어가 있지요? 우리나라에 훌륭한 인물이 많은데, 아무리 신사임당과 율곡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4종류 지폐 중 2종류의 지폐에 어머니와 아들을 넣을 게 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런데 5만원 지폐 뒷면에도 그림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 중에는 이 그림이 당연히 신사임당 작품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전면에 나타나는 그림은 어몽룡(1566~?)의 월매도(月梅圖)이고, 배경에서 바람에 날리는 그림은 이정(1541~1622)의 풍죽도(風竹圖)입니다. 어몽룡의 매화와 이정의 대나무 그리고 황집중(1533~?)의 포도를 삼절(三絶)로 쳤다고 하는데, 3절중의 매화와 대나무가 한 지폐에 들어가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째 좀 이상하네요.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신사임당 자신이 나오는 5만원권 지폐에 넣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하여튼 점심 먹고 소화시키러 화폐 전시회에 들어갔다가, 화폐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알게 된 하루였습니다. 특히 그 동안 몰랐던 화폐의 비밀까지 알게 되니 더욱 뜻 깊은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