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양승국 변호사] 얼마 전에 조소현 변호사가 출판기념회를 한다고 하여 참석하였습니다. 조소현 변호사는 저하고는 사법연수원 동기이고, 또 이비엠 포럼에서 같은 자문위원으로 있습니다. 또한 조변호사의 아내는 현재 청주지방법원장인데, 저하고는 또 예전에 북부지원(현 북부지방법원)과 수원지방법원에서 같이 근무를 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로 이웃이지요. 바로 제 아파트 옆 동에 살거든요.
출판기념회에 가니 당연히 출판한 책을 받지 않겠습니까? 책의 제목은 <법치 대한민국의 조건>입니다. 책에서 조변호사는 평소 자신이 생각하던 법치(法治)에 대한 생각을 잘 풀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길도 이야기 해주고 있네요. 읽어보니 제가 모르던 조변호사의 삶도 들어있군요.
▲ 조소현 변호사의 《법치 대한민국의 조건》
조변호사의 고향이 강릉시 유산동인데, 유산동의 원래 이름은 어리뫼라는군요. 강릉의 안산인 모산봉에서 내려온 어머니가 모래재를 거쳐 이곳에 와서 아이를 낳았다고 하여 어리뫼라고 하였는데, 일제강점기 한자로 바꾸면서 유산동(幼山洞)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모산봉도 ‘어머니산’이 모산봉(母山峰)으로 바뀌었을 것 같은데요? 하여튼 전국의 땅이름을 보다 보면 순수 우리말의 좋은 이름이 이렇게 일제강점기에 한자로 바뀐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것도 우리의 혼을 말살하려는 일본놈들의 의도였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인가요?
말이 좀 옆으로 빗나갔는데, 조변호사는 3년 전 고향 어리뫼의 이름을 따서 ‘어리뫼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고향의 인재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군요. 그리고 중앙고등학교 시절에 연극제에 참여하여 몰리에르의 <강제결혼>이라는 작품에 주연으로 활약하기도 했군요. 그게 대학까지 이어져 극단 예맥의 단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에도 티에리 모니예 작 <암야의 집> 공연기획을 맡기도 했네요. 그리고 저는 작년에 신영복 선생님한테 신 선생님의 서예작품 <함께 맞는 비>를 받고 좋아했는데, 조변호사는 이미 1999년 정강법률포럼을 만들면서 신 선생님에게 ‘정의가 강물처럼’이란 작품을 받았군요.
책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품격 있는 대한민국 만들기’란 제목으로 이시형 선생과 대담한 내용입니다. 이시형 선생이 평소 주장하던 품격에 대해 조변호사가 묻고 이 선생님이 대답하는 내용이지요. 이시형 선생은 몇 해 전 이란에 갔을 때 한국 가전제품이 비싸게 팔리는 것을 보고, 점원에게 왜 이리 비싸냐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점원이 아래 위를 훑으면서 “It’s made in Korea.”라고 대답했다는 겁니다. 그 순간 이 선생님은 온몸이 감전된 듯 전율을 느끼셨답니다.
이 선생님도 지적하듯이 사실 우리는 그동안 해방 후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나라를 일으키면서 알게 모르게 우리의 품격을 너무 낮춰 생각해왔습니다. 그렇기에 국산품이 비싸면 “국산이 왜 이리 비싸?” 하면서도, 외제 명품이라면 아무리 고가라도 군말 없이 사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제품들 중에도 세계 명품 반열에 들어가는 것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제 우리도 우리 자신에게 맞는 품격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 선생님은 대담 중에 품격의 7가지 덕목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하나하나가 우리가 음미해봐야 할 것이라 생각하여 소개합니다. 첫째, 감정을 누르고 이성으로 행동하는 절제입니다. 사실 우리 사회가 절제가 부족하지 않습니까? 요즈음은 인터넷에 에스앤에스(SNS)까지 발달하여 조금만 자기와 달라도 벌떼처럼 달려들어 공격하는 것을 심심찮게 봅니다. 신경정신과 박사답게 이 선생님은 이를 뇌과학에서 ‘편도체 과열’이라고 말합니다. 원시생활을 할 때에는 이런 게 잘 발달해야 위기에서 생존할 수 있지만, 오늘날에도 우리나라에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하는 편도체가 과열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둘째,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포용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의식에 젖어 살아와서인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쉽게 인정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이민족을 – 그것도 못사는 나라에서 온 민족을 – 차별하고, 심지어는 동포임에도 탈북자까지 차별합니다. 그리고 같은 민족 안에서도 사람의 생각은 다양한 것인데, 흑백논리가 횡행하고 편 가르기를 강요합니다.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셋째, 약간의 여유로도 함께 즐거울 수 있는 배려입니다. 식당 안에서나 전철 안에서나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안중에 없고 자기 과시에나 돈을 물 쓰듯 쓰는 천박한 부자들……. 이 선생님은 이런 천박함에서 벗어나 ‘품격 자본주의’로 진입해야 한다고 하시는군요.
넷째, 결과보다 과정의 가치를 알게 하는 정직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결과만 좋으면 과정이야 어쨌든 다 괜찮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표를 위해서라면 부정, 비리를 저지르는 것도 서슴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선생님은 비록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이 정직하고 건강했다면 박수를 쳐주는 사회가 되어야 하며, 얼마나 벌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벌었냐가 중요한 사회, 원칙과 기본이 지켜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다섯째, 사람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신의입니다. 예전에 우리는 신의를 중시하는 선비 정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신의보다는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경우가 너무 많아져, 이제는 오히려 정직하면 바보 취급받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여섯째, 현역으로 새롭게 등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배움입니다. 공부도 때가 있다는 말은 옛말입니다. 이제는 평생공부입니다. 공부라고 하니까 당장 먹고 살기 위한 공부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하고 싶은 공부입니다. 이 선생님은 공부도 이젠 레저라고까지 말하시는군요. 여기서 이 선생님은 또 뇌과학의 ‘아하(Aha) 체험’ 용어를 말합니다. 모르는 걸 알게 될 때, ‘아! 이래서 그랬구나!’ 하고 무릎을 치는 순간 우리 머리엔 불이 번쩍 켜지는 것, 이것이 아하 체험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지적 자극, 지적 쾌감이 우리 뇌를 젊고 건강하게 해주고, 당연히 몸도 젊고 건강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 선생님은 공부는 젊음과 건강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뇌는 활성화된다고 강조하십니다. 그러기에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한계를 설정해서는 안 되며, 그 생각만으로도 당신의 인생도 한계가 온다고 예일대학 베카레비 박사팀의 연구가 말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주위에서 저보고 나이보다 젊다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바로 제가 이런 공부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군요. 저는 아하 체험을 많이 경험해봤습니다. 단지 무릎만 친 것이 아니라, 어떨 때는 오르가즘 비슷한 것도 느껴봤으니까요.
▲ 한 프랑스 호텔, 제멋대로 떠드는 "한국 단체손님 사절" 간판 내걸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일곱째, 한국인다운 세계인으로 나아가기 위한 글로벌 마인드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어느 호텔에서는 한국 단체 관광객들이 제멋대로 떠드는 통에 ‘한국 단체 손님 사절’이라는 간판을 내걸기까지 하였다는군요. 이 선생님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고 합니다. 딱 한 가지, ‘남에게 방해되는 짓은 하지 말자.’ 이것 하나만 지키면 된다고 합니다.
이 선생님은 글로벌 마인드를 강조하면서도 세계가 한 가지 색깔로 통일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장미가 아름답지만, 온 세상이 전부 장미로만 꾸며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한국인은 한국인다워야 하고 아프리카인은 아프리카인다워야 하는 것이 국제공동체(글로벌리즘)으로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온 신조어가 ‘글로컬’이란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이시형 선생의 주장에 동의하십니까? 마지막으로 대담의 제목이 ‘품격 있는 대한민국 만들기’이니, 이 선생님이 말하는 품격 있는 국가의 조건을 말씀드리고, 제 글을 맺겠습니다. ➀ 질서를 지키며 서로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➁ 나눔과 봉사의 따뜻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➂ 배려와 조화의 열린사회가 되어야 한다. ➃ 소통과 사회통합으로 격차사회를 해소해야 한다. ➄ 안정되고 품격 있는 생활환경이 갖춰진 사회가 되어야 한다. ➅ 세계와 같이 성장하는 국가경제가 되어야 한다. ➆ 21세기 미래형 창의적 인재와 기술이 육성되어야 한다. ➇ 국제질서와 한반도 평화를 주도하는 핵심국가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