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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청담공원의 “강남녀”는 누구일까요?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9]

[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얼마 전 토크 갤러리 강의를 듣느라고 매주 월요일마다 갤러리 두에 갔습니다. 갤러리 두는 청담동 성당 옆에 있기에 강의가 있는 날이면 제 사무실에서 걸어가지요. 그런데 성당 뒤쪽으로 청담 근린공원이라고 조그마한 동산이 있습니다. 건물에 가려 큰 길에서는 뒤에 그런 공원이 있는지도 잘 모르지요. 

매번 공부하러 갤러리 두에 가는데, 그래도 한번쯤은 뒤편 공원에도 들러주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 지난번에 사무실에서 좀 일찍 출발하여 공원에 들렀습니다. 이 조그만 공원에 뭐 볼 것 있겠느냐 생각하며 공원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래도 제법 숲이 있고, 놀라운 것은 그 조그만 공원에 시냇물도 흐르고 약수터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조선조에서 직산현감을 지낸 권대균과 사헌부 감찰을 지낸 권옹의 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감탄하면서 숲속 길을 걷는데, 한쪽에 비석이 있습니다. 비석에는 큰 글씨로 홍순언과 강남녀의 전설이라고 쓰여 있네요. “? 이게 뭘까?” 내용을 보니 역관 가운데 드물게 광국공신(光國功臣)에 책훈되고 당릉군(唐陵君)에까지 봉해진 역관 홍순언(1530~1598)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제 봤더니 홍순언이 청담동 출신이었네요. 그런데 강남녀 이야기는 뭘까요? 

   
▲ 청담공원에 있는 "홍순언과 강남녀의 전설" 비석

이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한 번 얘기해보지요. 역관이니까 북경에는 자주 가지 않겠습니까? 한 번은 홍순언이 일을 마치고 청루에 놀러갔습니다. 물론 윤창종 대변인처럼 임무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술 마시러 간 것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들어오는 여인이 소복 차림입니다. 여인의 아버지는 북경의 관리인데 부모가 염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부모님의 영구를 모시고 고향으로 가려고 하는데, 돈이 없어 자기 몸을 팔아서라도 이장 비용을 마련하려고 청루에 나온 것입니다. 

홍순언은 여인의 사연을 듣고 여인에게 이장 비용에 쓰라고 300금을 줍니다. 뿐만 아니라 여인의 효성에 감복하여 여인과 잠자리를 같이 하지도 않지요. 여인으로서는 당연히 은인의 이름이라도 알고자 했겠지요? 홍순언은 됐다고 그냥 가려다가, 여인의 재촉에 성만 알려주고 떠납니다. 그런데 이 돈이 다 자기 개인돈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조선으로 돌아와 홍순언은 공금 횡령죄로 투옥됩니다. 그런데 이 무렵 종계변무(宗系辨誣)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선조가 이는 역관이 통역을 제대로 못한 때문이라고 이번에도 해결을 못하면 수석 통역관의 목을 베겠다고 했답니다. 

! 종계변무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겠군요. 명나라 대명회전에 이성계가 이인임의 아들이라고 잘못 기록되어 있고, 또 이성계가 네 왕 씨 임금을 시해하고 나라를 차지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조선 초부터 이 기록을 바로 잡으려고 여러 차례 사신을 파견했는데, 이때까지도 이를 바로 잡지 못하여 선조가 단단히 화가 난 것이지요.

그런데 그 동안 해결 못한 것이 어느 역관이 간다고 해결되겠습니까? 그러자 홍순언의 동료 역관들은 홍순언이 공금을 갚지 못하는 한 어차피 살아서는 감옥에서 나오지 못할 형편이니, 홍순언 대신 이를 갚아주고 홍순언을 보내자고 합니다. 홍순언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승낙하구요. 

그리하여 홍순언이 북경으로 갑니다. 북경에 들어갈 때에 홍순언은 이번에 돌아가면 자신은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기막힌 반전이 일어납니다. 명나라의 실권자인 예부의 시랑 석성이 부인과 함께 홍순언을 찾아오더니, 부인이 홍순언에게 큰 절을 합니다. 홍순언은 당연히 깜짝 놀랐겠지요. 알고 봤더니 그 부인은 예전에 홍순언이 조건 없이 이장 비용을 주었던 그 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석성 시랑의 재취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사실 그 동안 이 여인이 석성의 부인이 된 후, 조선에서 사신 일행이 오면 홍씨 성을 가진 역관을 계속 찾았습니다. 그러나 투옥된 홍순언이 북경에 올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여인은 단념하지 않고 계속 찾다가, 마침내 은인을 만나 홍순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큰 절을 올린 것입니다. 

이러니 석성 부부는 홍순언의 일이라면 발을 벗고 나서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오랫동안 풀지 못하던 종계변무 문제가 홍순언에 의해 풀린 것이지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조선은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지만, 명나라는 이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때에도 석성이 앞장서서 조선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여 명의 구원병이 조선으로 왔던 것입니다.  

이런 공으로 일개 역관이었던 홍순언은 광국공신에 당릉군까지 된 것이지요. 사실 명나라로서도 만주에서 신흥세력 후금이 일어나고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등으로 조선을 도울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가뜩이나 약해진 명나라는 조선 출병으로 국력이 더욱 약해져 멸망에 이르게 되는데, 조선 출병을 주장하였던 석성도 이 때문에 처형을 당하지요.  

이쯤에서 소설가 최인호씨의 소설 상도를 읽은 분이라면, 이 이야기가 상도의 주인공 임상옥의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최인호씨가 의주 상인 임상옥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서 홍순언의 이야기를 임상옥의 이야기로 소설 속에 집어넣은 것이지요. ~~~ 이런 조그만 공원에 이런 역사적인 인물이 숨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건 그렇고 강남녀는 또 무엇입니까? 석성 부인의 고향이 중국 양자강 이남인 절강성이기에 강남녀라고 한 것입니다. 청담동이 강남이라 특히 홍순언과 강남녀의 전설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신라 시대 최치원의 시에도 강남녀라는 시가 있다는 것입니다. 홍순언의 강남녀는 효녀요 은혜를 잊지 않는 훌륭한 여인인데, 최치원의 시에 나오는 강남녀는 음탕하고 사치스러운 여인입니다. 한 번 최치원의 시를 볼까요? 

강남의 풍속은 예의범절이 없어서 / 江南蕩風俗
딸을 기를 때도 오냐오냐 귀엽게만 / 養女嬌且憐
허영심이 많아서 바느질은 수치로 / 性冶恥針線
화장하고는 둥둥 퉁기는 가야금 줄 / 粧成調管絃
배우는 노래도 고상한 가곡이 아니요 / 所學非雅音
남녀의 사랑을 읊은 유행가가 대부분 / 多被春心牽
자기 생각에는 활짝 꽃 핀 이 안색 / 自謂芳華色
길이길이 청춘 시절 누릴 줄로만 / 長占艶陽年
그러고는 하루 종일 베틀과 씨름하는 / 却笑隣舍女
이웃집 여인을 비웃으면서 하는 말 / 終朝弄機杼
베를 짜느라고 죽을 고생한다마는 / 機杼縱勞身
정작 비단옷은 너에게 가지 않는다고 / 羅衣不到汝

                                                - 이상현 번역 

하하! 재미있지 않습니까? 최치원 당시에 중국 강남의 여자들이 이랬군요. 혹시 요즈음 우리나라의 강남녀와 비슷한 점은 없나요? 저는 처음에 최치원의 이 시를 보면서 중국 강남은 생각하지 못하고, 최치원이 어떻게 강남녀라는 시를 지었을까 생각하기도 했었지요. 하여튼 뭐~ 특별한 것이 있겠냐며 들어간 청담근린공원에서 홍순언을 알게 되고, 또 강남녀까지 알게 되니, 토크 갤러리 덕분에 더욱 행복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