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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봉정사 고금당 주련에 있는 순치제 게송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60]

[한국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 몸을 받기 전에 무엇이 내 몸이며
세상에 태어난 뒤 내가 과연 누구이던가.
자라서 사람 노릇 잠깐 동안 나라고 하더니
눈 한번 감은 뒤에 내가 또한 누구이런가 

천등산 봉정사 고금당 기둥에 있는 주련(柱聯)으로, 청나라 순치제가 읊은 게송 중 일부랍니다. 이 또한 ‘산사의 주련’에 나오는 주련입니다. 그런데 저는 주련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청나라 순치제가 읊은 게송 중 일부라는 글귀에 눈이 갔습니다. “아니? 청나라 황제가 이런 게송을 읊었단 말인가?” 

순치제라면 청나라 제3대 황제(1643~1661)인데, 어떻게 청나라 황제가 이런 게송을 읊는단 말인가? 이런 의문은 저로 하여금 순치제에 대해 찾아보게 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순치제는 6세 때 황위에 올라, 처음에는 숙부 도르곤과 누르하치의 동생 슈르하치의 6남 지르하랑이 좌우 섭정왕으로서 정무를 대리하였답니다. 그러다가 1650년 도르곤이 죽자 직접 통치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도 10년만인 1660년 총애하는 후궁 동악비가 죽자 정치에 뜻을 잃고 1661년 황위를 황태자 애신각라 현엽에게 물려주고 출가를 하였다는군요. 이 현엽이 바로 그 유명한 강희제입니다.

 

   
▲ 청나라 순치재(완쪽)와 겅희재

그러니까 위 게송은 순치제가 출가한 이후 지은 게송인 모양입니다. 천하의 황제가 그 권력의 자리를 순순히 내놓고 출가하여 스님이 되다니... 그런데 정사에는 순치제가 천연두로 죽은 것으로 나온다는군요. 그러나 정사의 기록에도 순치제 출가설은 여전히 사람들의 귀를 잡아당깁니다. 당시 천연두가 유행도 안 했는데 황제가 갑자기 천연두로 죽었다는 것도 이상하고, 불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강희제가 통치 전반기에 여러 번 머나먼 오대산의 절을 찾아간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이죠. 즉 강희제는 순치제가 살아있는 동안은 순치제를 찾아 오대산을 갔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황제의 게송으로 알려진 것이 흘러흘러 제 시야까지 들어와 그 뜻을 음미하고 순치제를 찾아보게 되다니 재미있습니다. 나머지 게송 일부분도 언급해보죠.

 

   
▲ 천등산 봉정사 고금당(문화재청 제공)

十八年來不自由(십팔년래부자유) 18년간 재위기간 자유라곤 없었노라
山河大戰幾時休(산하대전기시휴) 강산 위한 큰 싸움 그 언제나 그치려나
我今撤手歸山去(아금철수귀산거) 내 이제 손을 털고 산으로 돌아가니
那管千愁與萬愁(나관천수여만수) 천만 가지 근심 걱정 마음 쓸 것 하나 없네
......................

百年世事三更夢(백년세사삼경몽) 백 년의 세상일은 하룻밤 꿈과 같고
萬里江山一局碁(만리강산일국기) 만리 강산은 한판의 바둑이라 

책 읽는 재미는 이렇게 책의 내용만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책의 작은 구절이 계기가 되어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아는 데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