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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다니니까 길이더라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61]

   
▲ 《다니니까 길이더라》,박희채, 책과나무,2014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박희채 전 영사의 책 다니니까 길이더라를 읽었습니다. 책은 저자가 오랜 직업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화나 삶에서의 느낌을 장자(莊子)적 관점에서 풀어본 수필집입니다. 저자는 2001. 12. 캐나다 밴쿠버에 근무할 때에 장자에서 종교를 초월한 인간 삶의 가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후 아예 성균관 대학교 대학원 종교철학과까지 들어가 장자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더니, <장자의 생명적 사유>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까지 받았지요. 잠시 저자의 말을 들어보지요. 

책을 통해 장자의 사상을 알아 가면서, 더 큰 세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정된 의 세계에 빠져 살던 나에게 타자(他者)’, 그리고 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나는 내 생각은 옳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모든 대상을 판단하며 살아왔었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면서도 나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인 줄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가여운 한 마리 우물 안 개구리에게 우물 바깥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책은 내가 그동안 기록한 내용을 장자적 사유를 바탕으로 반추해본 것이다.

(중략)

내 우물만이 전부라고 믿어 온 자신의 세계관을 잠깐 내려놓아 보자. 그리고 장자적 사유를 통해 나비가 되어, 나를 가두고 있는 우물을 벗어나 보자.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면 마음이 변화하고, 마음이 변화하면 삶이 바뀐다.

(중략)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하게 자신의 길을 간다. 인생의 길에 있어서 남이 가지 않은 길, 혹은 없는 길을 만들며 가도 좋겠다. 사람들이 길이라 다니는 게 아니라, 다니니까 길이 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길은 무한대로 열려 있는 가능성의 길이라는 것을, 오늘 이 책을 통해 경험해 보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다니니까 길이더라....!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물 안 개구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모르고 자신의 우물이 이 세계의 전부인양 생각하며 자기와 다른 남의 세계를 무시하고 배척하려듭니다. 인간사 싸움과 불행이 다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편협한 우물의 세계를 벗어난 저자가 지금 익숙한 자기 길만 고집하는 우리에게 다니니까 길이더라라며 속삭이며, 우리에게 다른 길도 있음을 알려주려 하고 있습니다. ‘다른 길하니까, 지난 2월에 열렸던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 생각이 납니다. 그 사진전의 제목도 다른 길이었고, 사진전이 끝난 후 나온 책의 이름은 다른 길 열리다였지요.  

책에는 저자의 삶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나는 총 52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는 각 이야기마다, 이야기 머리에 장자의 글을 짧게 인용하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를 테면, 가봉의 봉고 대통령에게 봉고차를 선물하는데, 차에 봉고(BONGO)' 표시가 없어 급히 스티커를 붙인 일, 전두환 대통령이 봉고를 방문했을 때 공항에서 우리 애국가가 아닌 북한 애국가가 울려 퍼진 일 등을 얘기할 때는 장자 제물론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합니다. “타자가 없다면 자아도 없고, 자아가 없다면 감정이 나타날 수 있는 주체가 없다(非彼 無我 非我 無所取)”  

그리고 자신의 진실한 내면보다는 자동차나 아파트 평수, 최신 명품 등의 물질적 과시로 자신을 나타내려는 한국인들에 대해 얘기할 때는 장자 서무귀에 나오는 돼지털 속의 이와 같다고 합니다. “덧없는 안일에 만족하는 자는 돼지 몸에 붙은 이와 같다. 거칠고 긴 털이 난 곳을 골라 살며 그곳을 스스로 넓은 궁전이나 커다란 정원이라 생각한다.” 

책에는 또 저자가 수단에 근무할 때 만난 이태석 신부 이야기도, 이태석 신부를 통해 알게 된 톤즈의 아이들 이야기도 나옵니다. 저자는 이태석 신부의 부고를 들었을 때 한동안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고, 그 환한 미소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이태석 신부의 죽음을 통하여 장자적 관점에서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합니다. “삶과 죽음이란 결국 물화(物化)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동등한 양면이며, 그 어느 것도 집착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 일시적인 형체가 빚어낸 현상에 감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 책에 나오는 52편의 이야기를 여기서 다 얘기할 수는 없겠지요. ‘참교육 선생님이란 제목의 이야기만 하나 더 보겠습니다. 저자의 둘째 딸 서영이가 중학교 1학년 때 일인데, 딸아이 학교의 존(John)이란 선생이 시험 문제지를 학생들에게 나눠주면서 누구한테 물어보지도 말고 참고서도 보지 말고 반드시 혼자의 힘으로 풀어오도록 했답니다.  

시험성적을 발표하는 날 선생님은 시험 무효를 선언합니다. 선생님은 문제 중에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은 심지어는 고교 과정에도 나오지 않는 문제를 하나 넣었는데, 그 문제를 풀어온 학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선생님의 말이 인상적이군요.

여러분이 지금 수학문제를 하나 더 풀고 안 풀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 성인이 된 후에, 중학교 1학년 수학시험에서 한 문제를 풀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데 아무런 방해요인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문제를 더 풀고자 약속을 어기고 선생님의 눈을 속이려 했다는 사실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고, 여러분은 부정직한 행동을 한 사람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수학시험을 무효로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시험문제를 잘 푸는 것보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알기 바랍니다. 

저는 제목이 참교육 선생님이라 해서 우리나라 선생님 얘기인 줄 알았는데, 저자가 외국에서 근무할 때 딸이 다니던 학교의 선생님 얘기이군요. 이런 참교육 선생님이 많아져야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인데... 저자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인용한 장자의 말은 제물론에 나오는 말입니다. ‘상대방이 그르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하고 싶고, 상대가 옳다고 하는 것을 그르다고 하려면, 시비를 넘어선 지혜에 따라야 할 것이다(欲是其所非而非其所是 則莫若以明)’ 

전에 저자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보강하여 낸 책 장자의 생명적 사유를 읽으면서 직업외교관이 자신의 전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장자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정도가 아닌 그에 대한 박사학위까지 따고 책까지 냈다는 것에 대해 심히 놀라고 경탄하였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저자가 그 장자의 세계를 자기 주변의 인생 이야기와 결부시켜 풀어내는 것을 보고 지난번과는 또 다른 경이스러움을 느낍니다. 다니니까 길이더라! 저도 제 우물에만 안주하지 말고 제가 가보지 않은 세계에 뛰어들어 걷고 걸으면서, 저 역시 다니니까 길이더라라고 얘기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