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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64] 펑펑 운 영화 국제시장 관람기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 현인 선생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를 속으로 되뇌면서 이 글을 씁니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았습니다. 영화는 초반부의 과거로의 회상 장면에서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부두 철수 현장이 나오는데, 이 장면을 보면서 굳세어라 금순아가 떠오른 것이지요. 

1.4 후퇴 때 미 함정에서 내려준 그물망 같은 줄을 필사적으로 기어오르는 소년 덕수, 그의 등에는 어린 여동생 막순이가 꼭 붙어 있습니다. 덕수는 막순이에게 여기는 운동장이 아니다. 꼭 붙잡으래이!”라고 신신당부 합니다. 그러나 거의 함정 위에까지 다다랐을 무렵 막순이는 그만 다른 피난민에 떠밀려 떨어지고 맙니다. 동생을 애타게 부르는 소년 덕수의 피 토하는 아우성. 여기서 굳세어라 금순아’ 1절 후반부 가사가 다시 떠오릅니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던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먼저 배에 올랐던 덕수 아버지는 딸을 찾으러 배를 내려가면서 덕수에게 내가 없으면 장남인 네가 가장이다. 어머니와 두 동생을 잘 보살피거래이라는 말을 남기는데, 그게 그대로 장남에게 남기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덕수 가족은 먼저 내려와 부산 국제시장에서 억척스럽게 장사를 하던 고모를 만나 정착합니다. 저는 부산에 근무하였기에 낯익은 국제시장의 모습이 화면에 나오니 반갑더군요. 여기서 또 굳세어라 금순아’ 2절 가사가 떠오릅니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그리고 또 제 개인적으로는 제 아버님이 떠오릅니다. 제 아버님도 반공포로로 석방된 후, 부산 범일동에서 6촌 형님을 만나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6촌 형님으로부터 네 아버지, 어머니는 군에 간 아들 제 아버지입니다 기다려야 한다고, 내려오지 않으셨단다.”라는 말씀을 들으셨답니다. 사실 제가 영화 첫 장면의 필사적인 흥남 부두 철수 작전을 보면서부터 계속 눈물을 흘린 것은 이런 제 아버님이 더 생각났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소년 덕수는 천막학교 수업이 끝나면 구두통을 들고 거리로 나섭니다. 구두통을 든 덕수의 목에는 헤어진 아버지와 여동생을 찾는다는 글판이 매달려 있습니다. 당시 부산에는 난리통에 헤어진 가족들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굳세어라 금순아노래 가사 중에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가 있지요? 당시 영도다리는 헤어진 가족들을 찾는 이들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흥남부두에서 금순이를 잃어버린 노래의 주인공은 혹시나 금순이를 찾을까 하여 영도다리를 찾아왔다가, 쓸쓸이 발길을 돌립니다. 그리고 발길을 돌리는 남자의 머리 위로 초생달만 외로이 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이 노래를 젊어서부터 많이 불렀지만,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라는 가사에 애타게 가족을 찾는 그런 비통함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이 노래를 입에 올리고서도 한참 세월이 지난 후였습니다. 

전쟁 직후 국제시장통에는 배고픔에 떠도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지프차를 타고 지나는 미군들은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던져줍니다. 아이들은 서로 먼저 주우려고 달려들고, 그러다가 덕수는 힘 있는 아이들에게 얻어맞기도 하고... ! 저도 기억납니다. 저도 어렸을 때 지프차를 타고 지나던 미군이 던져주는 초콜릿을 받아먹으려고 달려든 적이 있으니까요. 미군은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깔깔거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기도 하지만 그때는 그런 것은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아버지가 마지막 헤어질 때 한 말은 평생 덕수의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머리가 좋아 서울대에 합격한 동생이 학비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려고 할 때에, 덕수는 동생을 위해, 가족을 위해 서독행 광부의 길을 떠납니다. 이때 굳이 서독광부가 될 필요가 없는 덕수의 친구 달구는 이런 친구의 사정을 잘 알고 자신은 가슴 빵빵한 서양 여자들 보기 위해 가야한다며 주저하는 덕수에게 지원서를 쓰게 합니다. 이후 이들은 파월 근로자로도 같이 가는데, 이들의 평생 우정이 또한 가슴을 따뜻하게 하더군요. 

덕수는 서독에서 탄광 가스 폭발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파독 간호사 영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에도 골인하지요. 서독에서 검은 탄가루를 마시며 가족들을 위해 일을 한 덕수는 이제 평생 꿈이었던 선장이 되려고 합니다. 그런데 고모가 죽고 술독에 파묻혀 사는 고모부가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모가 평생 일구어온 가게 [꽃분이네]를 처분하려 합니다. 그러나 덕수에게 [꽃분이네]는 단순한 가게 이상입니다.  

덕수는 고무부에게 그 가게 제가 인수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돈을 벌러 월남 기술자로 갑니다. 영화에서 덕수가 그런 결심을 할 때 덕수의 손에 든 해양대 합격통지서가 하늘로 날아 올라갑니다. 그랬습니다. 그 시대에 우리 형님, 누나들은 가족을 위해서 자기 꿈을 희생하던 그런 형님, 누나들이었습니다. 

베트남에서 덕수는 자신이 흥남 철수 현장에서 겪은 것과 똑 같은 상황을 목격합니다. 베트남의 어느 강변 마을의 주민들을 배에 태우는 순간 베트콩이 기습을 하는데, 이 와중에 배에 타던 여동생이 물에 빠지고 오빠가 동생을 향하여 애타게 부르짖습니다. 순간 덕수의 머리에는 흥남 부두에서 물로 떨어진 여동생이 생각났겠지요.  

물에 빠진 여자 아이의 얼굴에 여동생 막순이의 얼굴이 겹쳐 보이자, 덕수는 망설이지 않고 강물로 뛰어들어 소녀를 구하여 배에 태웁니다. 소녀를 먼저 배에 태우고 뒤이어 배 위로 몸을 걸치던 덕수의 다리에 베트콩의 총알이 와 박힙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덕수가 절뚝거리며 국제시장을 걷는 장면이 나오던데, 덕수가 바로 여기서 다리를 다친 것이군요. 

   
 
영화를 보는 내내 제 뺨을 흘렀다 멈추었다 하던 눈물은 덕수가 여동생 막순이와 만나는 장면에서 애써 막아놓은 제 뺨의 둑을 넘어 마구 흘러내립니다. 1983KBS 이산가족 찾기 행사 때 덕수도 친구 달구와 함께 방송국으로 달려오지요. 그리고 이미 가족들을 애타게 찾는 벽보로 뒤덮인 KBS 방송국 벽면에 아버지와 여동생을 찾는 벽보를 붙이기 위해 달구의 무등을 탄 채 손을 한껏 위로 뻗치고, 방청석에선 또 하나의 글판을 들고 이제나 저제나 하며 초조하게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으로 입양된 막순이와 화면 위로 눈물 상봉을 합니다. 흥남부두 철수 때 배에서 떨어진 막순이는 다행히 미군의 손에 구조되어 해외로 입양되었더군요. 막순이가 오빠에게 귀 뒤의 점을 보여주고, 유일하게 기억하는 한국말 여기는 운동장이 아니다. 꼭 붙잡으래이!”를 얘기할 때, 제 눈물은 폭풍 눈물로 변합니다. 

사실 이 장면에서 제가 폭풍 눈물을 흘린 것은 제 아버님 또한 당시 아버지 000, 어머니 000, 동생 000를 찾습니다라는 글판을 들고 방송국 방청석에 앉아 있었거든요. 비록 전쟁 직후 부산에서 만난 6촌 형님으로부터 가족들이 내려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기는 들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 아버님도 집에서 텔레비전만 볼 수 없어 방송국을 찾은 것이지요. 결국 찾지는 못하셨지만... 

제가 이렇게 눈물 얘기만 하니까 영화 <국제시장>이 시종일관 무겁게만 흐르는 것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영화에선 이제 막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을 시작한 정주영 회장, 온통 영어를 써가며 새로운 패션 디자인을 찾는 김봉남(앙드레 김), 해병으로 월남전에 참전한 가수 남진 등이 양념식으로 잠깐 등장합니다. 

또 가슴 빵빵한 서양여자를 보겠다며 서독광부로 간 달구가 거구의 간호사 기숙사 사감에게 깔려 혹사당한 후 팬티 바람으로 방 한쪽에서 엄마 찾으며 울고 있는 장면, 식당에서 달구가 거구의 초등학생 씨름단 선수들에게 씨름 기술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으니, 가당치 않다는 표정으로 식당을 나가는 선수들 중 한 선수의 등에 이만기라고 쓰여 있는 장면 등이 나와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합니다. 

영화 마지막에서 덕수 부부는 할머니(덕수 엄마) 제사를 위해 오래간만에 모여든 아들, 딸과 손자, 손녀들에 둘러싸여 단란한 한 때를 즐깁니다. 그런데 손녀가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르자, 아들이 아버지는 왜 그런 노래를 아한테 가르쳤노?”하며 면박을 줍니다. 덕수는 홀로 옆방으로 들어갑니다. 홀로 방안에 앉은 덕수는 벽에 걸린 아버지의 사진을 올려다보면서,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하면서 참았던 눈물을 흘립니다.  

이 때 카메라는 점점 멀어지면서 한쪽 방에선 단란하게 웃음꽃 피는 가족들을, 그 옆방에선 홀로 눈물 흘리고 있는 덕수를 비춥니다. 아마 그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은 영화를 보면서 애써 눈물을 참아오다가도, 이 장면을 보면서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영화는 이렇게 덕수가 아버지와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살아온 일생을 비추다보니, 흥남부두에서부터 광부와 간호사의 서독 이야기, 월남전 이야기, KBS 이산가족 찾기 이야기 등을 다 다루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각 사건마다 깊이 있는 성찰을 하지는 못하고, 이야기 나열식으로만 그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화평론가들에게는 좋은 평을 받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한 시대를 살아온 우리의 형님, 우리의 아버지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영화평론가의 평을 무색하게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는 것일 테구요. 

국제시장... 사실 제가 부산에 근무하는 동안 국제시장을 많이 오가면서도, 국제시장에 얽힌 피난민들의 슬픔과 애환을 제대로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정보를 접하지 못하니, 관심이 없었던 게지요.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국제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평소의 배 이상 늘었다는군요. 요즈음 이야기(스토리 텔링) 시대라 하지 않습니까? 부산시에서 국제시장을 찾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국제시장에 그런 이야기의 옷을 입혀주었으면 좋겠군요. 

저도 부산에 가게 되면 다시 국제시장을 거닐면서 영화 속 덕수 엄마가 남편도 없어 혼자의 힘으로 억척스럽게 세 자녀를 키우던 장면, 덕수가 구두통을 들고 뛰어다니던 장면 등을 떠올려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22살의 어린 청년이던 제 아버님이 포로수용소를 뛰쳐나와 홀로 외로이 자유 대한의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던 모습을 생각하며 국제시장의 그 길을 저도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