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8 (토)

  • 맑음동두천 23.4℃
  • 맑음강릉 29.9℃
  • 맑음서울 23.6℃
  • 맑음대전 26.4℃
  • 맑음대구 29.0℃
  • 맑음울산 25.9℃
  • 맑음광주 26.5℃
  • 맑음부산 21.8℃
  • 맑음고창 ℃
  • 맑음제주 22.8℃
  • 맑음강화 20.3℃
  • 맑음보은 25.6℃
  • 맑음금산 25.7℃
  • 맑음강진군 23.7℃
  • 맑음경주시 28.2℃
  • 맑음거제 22.3℃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마치 동네 오빠 같은 위대한 화가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65] 《그림, 영혼의 부딪힘》 서평

   
▲ 《그림, 영혼의 부딪힘》, 김민성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큐레이터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헬레나와이즈앤컴퍼니라는 예술과 의료를 연결하여 마케팅 컨설팅을 해주는 회사의 대표로 있는 김민성 대표가 그림, 영혼의 부딪힘이란 책을 냈습니다. 그림, 영혼의 부딪힘? 그림을 본다는 것은 열망하는 화가의 영혼의 부딪힘을 목격하는 매우 특별한 일이어서 이렇게 제목을 붙였다고 합니다.  

김 대표는 저하고는 성공회대 인문공부 11기 동기입니다. 김대표가 이번에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서양화가들에 관한 책을 냈다고 할 때에, 그동안 이런 류의 책은 꽤나 많이 나왔고, 저도 이런 책은 틈틈이 읽어보았기 때문에 솔직히 책을 펼치면서는 그 동안의 미술사 관련 서적에 또 하나의 책을 얹는 정도이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우선 김 대표가 화가에 대해 얘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기존의 책과는 달랐습니다. 김 대표는 한 화가의 인생 스펙트럼에서 한 가지 점을 주제로 잡으면 우선 그에 관한 자신의 경험이나 그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부터 풀어나갑니다. 그러다가 지금부터 그 비밀의 정원 속으로 들어가보자든가, ‘그 시간으로 떠나보도록 하자면서 본격적으로 그 화가의 인생과 그림 속으로 들어가, 우리에게 재미있는 화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화가들의 세계를 해부하면서 나름대로 깨달은 생각이나 지혜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김 대표가 처음 얘기를 풀어나가는 것 중 하나만 얘기한다면, 드가 이야기를 할 때에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김 대표가 대학생일 때 어느 날 버스에 올라타는데 과 얼짱 조교와 눈이 마주쳤답니다. 얼장 조교를 우연히 버스에서 보았으니 김 대표의 가슴도 콩닥콩닥 하였겠지요? 김 대표는 조교의 시선을 의식하며 우아하게 회수권을 요금통에 넣는다는 것이 그만 대일밴드를 통에 넣었다네요. 그 후 사정은 그림이 그려지지요?  

당장 장난하냐는 운전수의 호통을 들어야 했을 것이고, 이를 보며 킥킥대는 승객들의 시선을 또한 느꼈을 테고요. 김 대표는 이후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든 출발하기 직전까지 승차권을 계속 만지작거리며 승차권에 집착하였답니다. 그래서 비행기 탈 때는 보딩패스 절취선이 너덜거릴 정도였다나요. ㅎㅎㅎ 김 대표는 이렇게 자기 얘기를 한 후 드가도 어릴 적 어머니가 삼촌과 외도를 한 사실을 알게 된 충격에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여성을 혐오하게 되었다고 얘기를 풀어나가는 것이지요.  

김 대표가 화가 이야기 말미에 우리에게 던지는 이야기도 해볼까요? 농부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던 밀레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측은지심은 반드시 갖춰야 할 인간의 마음이다. 인문학에도 측은지심은 가장 중요한 감정으로 꼽힌다. 불쌍한 사람을 보고 슬픈 마음이 들어야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되도록 수련하는 학문이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부러 맹자의 사단설을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여운 자를 보고 그에 대해 슬픈 마음이 드는 것은 타인에게로 퍼져가는 나의 관심과 사랑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는 인간과 인간을 잇는 아름답고 숭고한 마음이자 진짜 사랑인 것이다. 열렬한 남녀의 사랑도 좋고 밀레가 품었던 가난한 농부들을 향했던 사랑도 좋다. 그저 사랑의 본질이란 것이 나와 타인을 이어주고 그 사이에서 공감을 만들어내며 서로를 보듬어 동행하려는 인간의 가장 숭고한 감정이란 것만 기억하자. 이제 나와 동행하는 모든 이들이 소중하게 보일 것이다.” 

   
▲ 새갈 - 나와 마을

어떻습니까? 내공이 대단하지요? 또 하나 얘기해볼까요? 평생 자기의 고향 비테프스크에 대한 향수를 그림으로 표현한 샤갈 이야기는 또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요즘 세상에 애향심을 이야기하면 다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단어 정도로 느낄 것이다. 고속도로에 빽빽하게 들어찬 명절의 귀성차량들을 볼 때나 애향심을 생각해볼까? 평소 그리운 내 고향은 찬밥신세다. 하지만 비가 와야 우산을 챙기게 되고 병이 나야 병원을 찾게 되는 것처럼 잊고 살았던 고향의 존재감이 거대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삶이 막다른 골목까지 몰렸을 때 고향은 자신을 위로해주고 심지어 죽음으로부터 구해줄 만큼 구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남녀 사이의 사랑만 아는 사람이라면 감히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기적 같은 또 하나의 운명적 사랑인 향수. 우리에게 향수는 지독한 냉기를 뿜어대는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저항할 수 있는 마지막 감정의 보루이자 안식처이다.” 

저는 여기서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겠구나하는 것을 또 느끼게 됩니다. 솔직히 평소 일에 묻혀 사는 커리어 우먼 정도로만 알았던 김 대표에게 이런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있으리라고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거든요. 

김 대표는 또 고집을 소신으로 밀어붙인 뚝심 있는 사나이 마네 이야기를 하면서는 전에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큐레이터 S씨 이야기도 합니다. 큐레이터를 할 때에 김 대표는 자신은 예일대 박사라며 거짓말을 할 만큼 강심장도 못 되었고, 육탄전을 벌일 만큼 몸매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면서, S씨로부터 명품을 선물 받은 사람들이 S씨에 탄성을 발할 때에 자신은 끝까지 실력으로 승부하고 진심을 통하게 하겠다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네요. 그 결과 몇 년 뒤 그녀는 감옥에 갔고 자신은 일본을 제치고 클림트의 한국 전시회를 기획하고 유치했다고 하는군요. 

클림트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김 대표가 2009년 공을 들여 한국에 클림트 전시회를 유치했을 때에, 벨베데레 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끝으로 앞으로 100년간 클림트 작품의 해외전시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었다는군요. 피로가 쌓인 작품들을 당분간 복원하고 보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는데, 아마 벨베데레 미술관은 김 대표의 제의가 들어왔을 때에도 이를 이유로 거절하다가 김 대표의 실력과 정성에 반하여 마지막으로 허락을 했을 것 같군요. 

   
▲ 고흐 - 별이 빛나는 밤

   
▲ 마티스 - 탬버린과 함께 있는 오달리스크

클림트 전시회는 저도 보았기 때문에 책에서 클림트 전시회 이야기가 나오자 저도 반갑더군요. 당시 전시회 때 한쪽 전시 파트에는 ‘19세 미만 학생은 부모님의 허락 하에 관람할 수 있다.’라는 안내문이 써 붙여 있었지요. 저는 은근히 기대하고 들어갔다가, 누드 드로잉만 보고 ~ 이런 정도 갖고 호들갑떠나하면서 기대(?)에 못 미친 전시물에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보면서 의문이 풀렸습니다. 당시 전시를 할 때에 학부형들로부터 가족단위로 관람해야 하는 전시회에 이토록 망측한 그림들을 걸어두면 어떻게 하느냐는 항의를 받았었다는군요. 

책에 나오는 화가들을 보니 많은 화가들이 아버지가 법률가였거나 본인이 법학을 공부하다 미술로 돌아선 경우가 많더군요. 김 대표는 법 공부를 하다 미술로 돌아선 마티스 얘기를 하면서 이성적인 법이 어떻게 감성과 통하는 지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사실 법이라는 것이 누군가를 심판하며 정의를 실천하는 아주 이성적인 사고 체계가 필요한 분야가 아닌가. 하지만 조금만 시각을 바꾸어본다면 법률처럼 심리적이고 철학적이며 문학적인 것도 없다. 양자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어야 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진실을 담고 있는지 심리를 파악해야 하며 그들이 들고 있는 증거가 얼마나 정확한지를 증명할 잣대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판단과 정보에 맞추어 이해 가능한 문구들로 판결문을 작성해야 하는 문학적 단계도 필요하다. 감성적인 소통과 이성적 인식이 공존해야 하는 것이 법률인 것이다.” 

아니? 김 대표가 언제 이렇게 정확하게 판사의 세계를 들여다봤지? 저는 여기서 감탄사를 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판사를 하면서 열린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면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도 상사중재인으로서 중재 사건을 담당할 때는 다시금 판사의 자세로 돌아가 열린 마음으로 양쪽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올바른 판정을 하려고 노력하지요. 그리고 오늘의 제 글쓰기도 수많은 판결문을 작성하면서 다듬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미켈란젤로 - 아담의 창조

그림, 영혼의 부딪힘에는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총 24명의 화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김 대표가 YTN 라디오에서 김민성 큐레이터가 들려주는 서양미술사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방송한 내용들입니다. 물론 방송한 내용을 훨씬 풍부하게 보태고 다듬은 것이지요. 김 대표는 처음 방송 제의를 받았을 때에 무엇을 들려줄까 고심하다가 미술사를 장식하는 거장들의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들춰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1년간의 라디오 방송에서 서양 미술사를 이끌어온 위대한 화가들의 감정을 여한 없이 파헤쳐보았다는군요. 한마디로 미술사 인간극장이 펼쳐진 것이지요. 김 대표도 방송을 준비하고 또 실제 방송하면서 서양미술사의 대가들이 마치 동네오빠처럼 혹은 먼 친척처럼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답니다.  

그래서 이 느낌을 더 많은 사람들과 좀 더 오랜 시간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쳐,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하네요. 우리 인문공부 11기를 지도해주신 신영복 선생님도 김 대표의 이런 취지에 공감하여 직접 책 표지의 제목을 써주셨습니다.  

김대표가 24명의 화가들만 파헤쳐보았지만, 서양에는 이외에도 파헤쳐보면 동네오빠나 먼 친척처럼 느껴질 화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제는 어엿한 여성 시이오(CEO)가 된 김 대표가 비록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이런 화가들을 더 파헤쳐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바란다면 백남준이나 이응로 같은 우리가 낳은 세계적인 미술가들의 인간적인 면모도 파헤쳐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하여 나오기를 바라는 김 대표의 또 다른 그림, 영혼의 부딪힘을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이만 제 글을 마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