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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색채 마술사 김두례와 역관 홍순언의 보은단골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67]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지난주에 롯데백화점 12층에 있는 롯데갤러리에서 개막한 김두례 화가의 개인전에 다녀왔습니다. 2012년에도 같은 장소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 때는 화려한 색채가 단지 추상의 세계에서만 춤을 췄다면, 이번에는 그 추상의 색채 속에 인물이 걸어 들어갔네요. 추상의 세계에 인물이 들어가 있으려니, 인물들도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그냥 색채의 덩어리로 서 있기도 하구요. 롯데갤러리에서는 이번 전시회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주로 한국적인 색채로 추상과 구상 색면을 활용한 빛을 표현합니다. 오방색으로 표현한 화면 자체는 단순하지만 대담하고 역동적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작가의 최근 작품에서는 가벼운 붓질로 표현된 인물상들이 색채의 장 위에 등장합니다. 작가는 한국의 전통 오방색을 통해 한국적 영감을 시각화하였으며, 색면의 아름다움을 공감할 수 있는 미를 완성시켰습니다. 작가의 작품이 들려주는 한국적 모성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가 될 것입니다.” 


   
 
한국 전통의 오방색으로 색채를 눈부시게 뿜어내는 김화백의 그림을 보노라면 우선 당장 색채의 마술사 마티스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림 속의 인물이 자리를 비켜준다면 단지 색채로 화면 분할하여 추상의 세계를 표현하는 마크 로스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정도는 누구나 공유하는 느낌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김 화백 그림의 인물들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뭐랄까, 김화백의 인물들이 비록 화려한 색채의 세계를 거닐고 있지만, 그런 화려함 속에서 언뜻 호퍼의 그림에 나오는 인물들에서처럼 어떤 고독감이나 외로움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 작품에서 느끼는 감정은 각자의 주관적인 것이니까, 제가 김 화백의 그림에서 김 화백의 그림과는 전혀 이질적인 호퍼의 그림과 어떤 동류감(同類感)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큰 잘못은 없는 것 아닙니까 

김 화백도 관람객들이 그림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도록 모든 그림에 제목을 달지 않았고,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도 지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같이 엉뚱한 느낌을 얘기하는 것도 어느 정도 김 화백의 의도에 들어맞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가 하면 문화사회학자 강득희는 도록에 실린 글에서 김화백의 작품이 김환기 선생이 한국의 선과 색을 세계화로 수렴하여 점화(點畵)로 완성했던 1970년 직전 몇 년간의 작품의 세계와 공통점이 있다고 평하고 있네요 

 

   
 
도록을 담은 봉투에는 한 청년이 오른 손을 입에 대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하얀 점박이 개가 그의 품에 달라붙어 있는 그림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즉 이번에 전시된 작품에서는 이 작품이 김 화백이 대표로 내세우는 작품이라는 얘기이겠지요. 

알고 봤더니 이 청년은 김화백의 큰아들이고, 개도 집에서 천방지축 날뛰며 돌아다니는 김화백의 가족이랍니다. 전시 작품에는 이 청년보다 어린 청소년이 같은 하얀 개와 함께 소파에서 자고 있는 그림도 있는데, 이 청소년은 또 둘째 아들이라네요. 하하! 김 화백이 이번 전시회에서는 자기 아이들과 사랑스러운 개를 등장시켰군요. 원로화가 김영태 선생의 딸이기도 한 김두례 화가의 개인전은 4. 14.까지 열린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다녀가시지요. 

그런데 전시회를 보고 나오는데, 롯데호텔 앞 인도 한쪽에서 한 표석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근처가 조선시대에 보은단골 또는 고운담골로 불렸음을 알리는 표석입니다, 이 동네에 역관 가운데는 드물게 광국공신(光國功臣)에 책훈되고 당릉군(唐陵君)에까지 봉해진 역관 홍순언(1530~1598)이 살았는데, 동네 이름은 바로 홍순언에게서 유래된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유래가?? 궁금하시지요? 지금부터 홍순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지요.  

홍순언은 선조 때의 역관입니다. 역관이면 중국 가는 사신의 통역으로 북경에 자주 가지 않겠습니까? 어느 해인가 홍순언이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북경의 청루에 놀러갔습니다. ~ 사신으로 간 일행들이 그저 외교에만 전념하였겠습니까? 밤에는 또 밤의 역사가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날따라 홍순언에게 온 여인의 얼굴에는 어딘가 모르게 깊은 수심이 담겨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인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홍순언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여인에게서 이야기를 이끌어냅니다. 여인의 아버지는 북경의 관리였는데, 그만 부모 모두가 갑자기 염병에 걸려 죽었답니다. (홍순언의 고향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청담공원에 가면 홍순언과 강남녀의 전설이라는 제목의 비가 있는데, 저도 이 비의 제목을 따라 앞으로 이 여인을 강남녀라고 부르겠습니다.)  

효심이 깊은 강남녀는 부모님을 멀리 고향 절강성의 땅으로 모셔가고 싶은데, 돈은 없고... 그래서 궁리 끝에 청루에 나왔는데,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처음 만난 남자가 홍순언이었습니다. 강남녀의 효심에 감동한 홍순언은 갖고 있던 거금 300금을 강남녀에게 주고, 은인의 이름을 가르쳐달라는 강남녀의 요청에도 단지 성만 알려주고 나옵니다. 강남녀와 잠자리도 같이 안 하고요. 이 대목에선 저는 조금 의심의 눈초리를 올립니다. 과연 홍순언이 거금 300금이나 주면서 눈앞의 먹이를 그냥 곱게 두고 나왔을까??? ~ 홍순언이 그냥 나왔다고 하니 믿어주어야겠지요. 

 

   
▲ 이곳이 조선시대에 보은단골 또는 고운담골로 불렸음을 알리는 표지석

그런데 홍순언이 강남녀에게 준 돈은 공금이었습니다. 공금을 이런 효성이 지극한 여인을 도와주는데 썼다고 하여, 그런 변명이 통하겠습니까? 조선으로 돌아와 홍순언은 공금횡령죄로 투옥됩니다.  

그럼 강남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강남녀는 홍순언이 준 돈으로 부모님을 고향에 잘 모셨고, 이런 효성이 알려졌는지, 명나라 재상 석성의 후처로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부인을 잃고 외로웠던 석성의 눈에 미모의 강남녀가 눈에 띈 것입니다. 강남녀는 석성에게 은인 홍순언에 대해 얘기합니다. 석성도 그런 은인이 다 있느냐며 감동을 하겠지요. 그리고 해마다 조선에서 사신 일행이 오면 홍씨 성을 가진 사람을 찾습니다. 그렇지만 홍순언은 감옥에 들어가 살아서 나올 수 있을 지도 불확실한 상태였으니... 

그러다가 조선에서는 종계변무 문제가 다시 터졌습니다. 선조가 종계변무 문제를 여태 해결하지 못한 것은 역관들이 통역을 제대로 못해서 그런 거라며, 이번에도 해결을 못하면 수석 통역관의 목을 베겠다고 한 것입니다. , 종계변무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겠군요. 명나라 대명회전에 태조 이성계가 이인임의 아들이라고 잘못 기록되어 있고, 또 이성계가 고려의 네 왕씨 임금을 시해하고 나라를 차지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조선은 당연히 건국 초부터 이 기록을 바로 잡으려고 여러 차례 사신을 파견했는데, 명나라에서는 그거나 이거나, 도찐개찐이라고 생각하였는지 이때까지도 고쳐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조선 초부터 그렇게 해결하려고 해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어찌 역관이 통역을 잘못해서 그렇단 말입니까? 선조가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는 것인데, 어쨌거나 역관들에게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입니다. 어느 역관이 가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이 때 역관들은 홍순언을 생각합니다. 홍순언도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마찬가지라 생각하였는지, 자신이 북경에 가겠다고 합니다.  

홍순언이 다시 오래간만에 북경에 도착했을 때에도, 강남녀는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홍씨 성의 조선인을 찾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홍순언이 북경에 온 것을 알게 된 강남녀. 예쁘게 단장한 강남녀가 홍순언을 찾아와 큰 절을 합니다. 영문을 모르는 홍순언은 당황하여 강남녀를 만류하지만 강남녀는 평생 은인을 잊지 않고 있었다며 기어이 홍순언에게 큰 절을 합니다.  

강남녀가 명나라 재상 석성의 부인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홍순언은 이거야말로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했겠지요. 석성 또한 아내 은인의 부탁이니, 자기 일처럼 나서서 해결해주고요. 이렇게 되니 홍순언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 처지에서 광국공신으로 하루아침에 운명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강남녀는 귀국하는 홍순언에게 은혜를 갚는 비단이라며 보은단(報恩緞)’이라고 새긴 비단을 선물로 줍니다. 그리고 금의환양한 홍순언에게 선조는 지금의 롯데호텔 부근에 큰 집을 하사합니다.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는 당장 사람들 입을 타지 않겠습니까? 홍순언의 이야기가 사람들 입을 타면서 사람들은 그때부터 홍순언이 사는 동네를 보은단골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게 시간이 지나면서 와전이 되어 보은단골이 고운담골로 바뀝니다. 그리고 조선말에 와서 한자 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동네 이름의 유래도 모른 채 고운담이 아름다운 담장이란 뜻인 줄 알고 미장동(美墻洞)’으로 바꾸었고, 또 이를 줄여서 미동(美洞)’이라고도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연이 저 표석에 담겨 있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 동네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지도 모르고 무심하게 표석 옆을 지나다니기만 합니다. 

하하! 김두례 개인전을 보러 와 색채의 향연 속에 취한 것도 행복한데, 덤으로 고운담골의 숨은 이야기까지 알게 되었습니다그려! 이래저래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에는 콧노래도 나오는데, 내 눈 앞으로는 김 화백의 그림들이 다시 전시되는가 하면, 홍순언과 강남녀가 왔다 갔다 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