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기섭 기자] 황희와 함께 영광스러운 세종시대를 일군 허조(許稠)는 요즘으로 치면 쓴소리 잘하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 말 공양왕 때 과거에 급제한 이래 조선의 태조에서 세종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그이지만, 일관되고 한결같은 모습은 깐깐하고 비판적인 원칙주의자의 면모입니다. 그는 해야 할 말이 있으면 거침없이 직언하는 올곧은 신하의 표본입니다. 그의 강직하고 정직한 성품은 가족의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허조의 처제가 일찍이 자식도 없이 홀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허조의 맏아들인 허후를 후계를 삼으면서 노비와 땅, 그리고 집과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제안을 해옵니다. 허조는 내 자식이 비록 재주가 없지만 집을 계승할 만하다.고 말한 뒤 만약 재산을 많이 얻으면 반드시 호사스럽고 사치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라며 제의를 거절합니다. 부자로 살기를 바라는 여느 부모의 바람과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올곧은 신하의 표본, 나의 충신은 오직 허조 뿐이다 ▲ 허조의 영정 허조의 이같은 곧은 성품은 태종 때에 이르러서도 변함이 없었던 모양입입니다. 전에 서연에서 허조를 스승[文學]으로 모셨던 세자는 태종
[그린경제=김기섭 기자] 황희와 함께 영광스러운 세종시대를 일군 허조(許稠)는 요즘으로 치면 쓴소리 잘하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 말 공양왕 때 과거에 급제한 이래 조선의 태조에서 세종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그이지만, 일관되고 한결같은 모습은 깐깐하고 비판적인 원칙주의자의 면모입니다. 그는 해야 할 말이 있으면 거침없이 직언하는 올곧은 신하의 표본입니다. 그의 강직하고 정직한 성품은 가족의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허조의 처제가 일찍이 자식도 없이 홀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허조의 맏아들인 허후를 후계를 삼으면서 노비와 땅, 그리고 집과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제안을 해옵니다. 허조는 내 자식이 비록 재주가 없지만 집을 계승할 만하다.고 말한 뒤 만약 재산을 많이 얻으면 반드시 호사스럽고 사치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라며 제의를 거절합니다. 부자로 살기를 바라는 여느 부모의 바람과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올곧은 신하의 표본, 나의 충신은 오직 허조 뿐이다 허조의 이같은 곧은 성품은 태종 때에 이르러서도 변함이 없었던 모양입입니다. 전에 서연에서 허조를 스승[文學]으로 모셨던 세자는 태종 8년 또다시 그를 스승[右輔
[그린경제=김기섭 기자] 경복궁의 이궁인 창덕궁이 완성된 것은 태종 5년 때의 일입니다. 이때만 해도 아직 궁궐로서의 규모는 갖추지 못한 상태입니다. 주요 시설들이 다 들어서지 못한 탓입니다. 이듬해 태종은 창덕궁 동북쪽 모퉁이에 정자를 짓고, 해온정(解慍亭)이란 이름을 붙입니다. 이 정자는 태종이 재임하는 동안 다목적 공간으로 쓰이는데, 초기에는 명나라 사신을 위한 연회 장소로, 나중에는 종친을 위한 연회의 단골장소로 자주 이용됩니다. 잔치뿐만이 아니라 종친들과 함께 활쏘기나 격구를 구경하고, 이곳에서 삼군의 군사동원 태세를 점검하기도 합니다.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된 해온정 또한 이곳은 외척인 민무휼민무회 형제를 제거하는 논의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태종 16년, 의정부공신육조대간에서 두 사람의 죄를 청하는 상소를 쏟아내자, 태종은 밤에 유사눌을 해온정으로 부릅니다. 민무구와 민무질은 이미 벌을 받았고, 민무휼과 민무회도죄에 걸렸다. 민씨(閔氏)의 네 아들을 잇달아 죽이는 일은 차마 할 수가 없다. 태종은 민무구와 민무질에 이어 나머지 동생까지 죽이는 것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그러자 유사눌은 불충(不忠)한 마음을 가지고 종지(宗支
[그린경제=김기섭 기자]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평소에는 찾지 않던 시장이나 생산현장을 들를 때는 대개 선거철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 표가 중요한 이들에게 민생투어라는 고상한 이름의 이 정기행사는 빠트릴 수 없는 일입니다. 국민의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그들의 충의를 마다할 일은 아닙니다만, 선거 때만 반짝 그러다가 그 뒤로는 나 몰라라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조선시대에도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민생 투어가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행행(行幸)이 그것입니다. 임금이 대궐 밖으로 행차하는 거동 일체를 일컫는 이 말은 왕의 궁 밖 나들이 정도쯤 됩니다. 행행은 화려하고 장대한 의식으로 치러지기도 하지만, 호위군관 몇 명을 데리고 조심스럽게 행차하는 소박한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대궐 밖 행차, 백성들의 억울한 사정 해소 ▲ 정조대왕의 능행차 장면(출처-수원시청 수원화성문화제 홈페이지) 전자의 행행은 왕과 왕비의 무덤에 가는 능행(陵幸)과 후궁이나 세자의 무덤에 가는 원행(園行), 사냥을 겸한 군대 훈련인 강무(講武)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조선 후기 정조의 경우 재위 24년간 66회의 행행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참배하는
[그린경제=김기섭 기자] 국내에는 수많은 외국의 리더십 이론들이 범람합니다만, 한결같이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외국의 리더십이론이 이성과 논리를 강조한다면 우리는 감성과 직관을 더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외국의 리더십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는 한국형 리더십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순천향대 관광경영학과 이영관 교수가 지은 조선의 리더십을 탐하라은 이 같은 현실비판과 대안을 제시한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가장 가깝고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는 조선의 리더들을 한국형 리더십 차원에서 살펴보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조선을 만든 20여명의 리더십 조명 ▲ ≪조선의 리더십을 탐하라≫, 이영관, 이콘 출판 저자는 20여명의 조선시대 인물들을 '위기관리' '혁신', '심학(心學)', '여가생활' 등 네 개의 키워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기관리 편에서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18년 유배생활 속에서도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 제주도 유배라는 최악의 환경에서 추사체를 완성한 김정희의 리더십을 살핍니다.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 가서도 자신의
[그린경제=김기섭 기자] 정도전을 모르면 조선 전기를 이해할 수 없고, 율곡을 모르면 조선 후기를 알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대로 율곡 이이는 정치가와 학자, 그리고 교육자로 그가 끼친 영향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큽니다. 그런 율곡에게 선조 16년(1583년) 6월에 일어난 전마 사건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혹독한 시련을 안겨줍니다. 사건의 발단은 니탕개가 이끄는 여진족 2만명이 함경도 종성을 포위하면서 시작됩니다. 당시 병조판서였던 율곡은 보고를 받은 즉시 신속하게 대책을 세웁니다. 서울에서 활 잘 쏘는 사람 1만여 명을 뽑아 보내는 한편, 군자감의 면포를 군사들이 쓸 의복자료로 주고, 백관의 녹봉을 줄여 군사의 처자들을 먹이도록 합니다. 또한 국가에 곡식을 바치는 사람들을 모집하여 곡식을 변방으로 보내 식량으로 지급합니다. 그런데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율곡은 3등 이하 군사 중에서 말을 바치는 자에게 북변으로 가는 것을 면제해주는 조치를 취합니다. 율곡으로서는 30여 년 전 을묘왜란 당시 군사들이 전장에 나갈 말을 구하지 못하자 서울에서 말을 약탈하여 타고 간 일을 상기하여 발빠르게 조치한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에게 미리
[얼레빗=김기섭 기자]지난 4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안철수 의원이 기업인으로 활동할 때 유독 소통을 강조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전문능력이 100%인 사람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제로면 그의 능력도 제로라는 것입니다. 조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 소통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지요. 국회의원 배지를 단 현재 그가 이전투구의 한국정치판에서 어떻게 소통의 정치를 펼칠지 많은 이들이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을 보내는 중입니다. 새 정치를 위해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녹록치 않은 정치현실을 감안하면 장애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86%, 즉 열 명 중 여덟은 소통 문제로 고통 받는다고 합니다. 특히 비즈니스 세계는 더 심한 편으로 이 때문에 이직하거나 이직을 꿈꾸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이루 셀 수없이 많을 테지만,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라틴어 어원인 나누고 공유한다는 본래 의미를 살리지 못하는 이유가 가장 크다고 봅니다. 먼저 나누기 위해서는 자기 것을 내놓거나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사로운 욕심을 앞세워 상대가 먼저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기에 바쁩니다. 달리 생각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