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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의열단원 김상윤 할아버지의 순국 행적을 찾습니다

손자 김기봉 선생 애타는 호소
국가보훈부 기록 1927년 순국, 하지만 1935년 이후 생존 기록 최근 발견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 박사님께서 조상의 행적과 순국 과정에 대한 유족들의 애타는 의문을 풀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제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은 조부님이신 김상윤(金相潤) 의사(義士)의 순국 과정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순국의 길을 걸었는지에 대한 사실을 알고 싶은 것입니다. 저희 유족들은 조부님이 돌아가신 연도를 1927년(10.19)으로 알고 지금까지 이날을 제사로 모셔왔습니다.”

 

이는 의열단에서 활약한 김상윤 의사의 손자 김기봉 선생(80)의 이야기다. 팔순의 손자 김기봉 선생은 어제(19일) 연구소에 들러 글쓴이가 그동안 찾은 자료의 설명을 듣고 이렇게 가슴속의 한을 다시 한번 쏟아냈다. 요즘 부쩍 김기봉 선생은 잠 못 이루는 날이 많다고 했다. '요즘 부쩍'이라고 했는데 이 이야기의 시작은 75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이전까지 김상윤 의사의 순국일(殉國日)은 1927년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유족들은 이날을 순국일로 알고 제사를 모셔 왔다.

 

 

75일 전인 지난해(2025) 11월 3일 월요일 낮 12시 반, 그날은 독립포럼(대표 최용규, 국립인천대 전 이사장) 모임이 있는 날로 여의도 모 음식점에서 10여 명의 회원이 모였다. 글쓴이도 독립포럼 회원이므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기봉 선생은 음식점에 들어서자마자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조부인 김상윤 의사의 기록으로 보이는 소화 10년(1935) 자료를 입수했다면서 회원들에게 흥분 어린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김기봉 선생이 회원들에게 보여준 자료는 그러나 아쉽게도 출처를 알 수 없는 ‘달랑 2장짜리’ 자료에 불과하였다. 아뿔싸! 요 정도의 근거를 가지고 어떻게 원본을 찾을 것인가! 고민이 깊어졌다. 수사관의 심정으로 이 자료의 원본을 찾고자 동분서주했다. 밑도 끝도 없는 ‘수사’의 시작인 셈이었다. 서울에서 김씨 찾는 격이었지만 과거 이러한 자료의 출처를 찾은 경험을 되살려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간 결과 이 책의 원본이 일본에서 펴낸 《사상정세시찰보고집(思想政勢視察報告集)》(전권 1권~9권>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책의 원본을 찾아내는 데는 일본인 친구 도다 이쿠코(戶田郁子)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제국주의는 본토(일본) 검사들을 중국으로 파견하여 조선인 독립운동 단체와 요시찰인물들을 정탐하고 이와 같은 꼼꼼한 자료를 남겼다. 이 자료들은 소화 10년(1935년)에 극비문서로 일본 사법성형사국(司法省刑事局)에서 제본했으며 이를 다시 교토대학 와타나베 도오루(渡部 徹,1918-1995, 사회문제자료연구회 회장) 교수가 《사상정세시찰보고집(思想政勢視察報告集)》이라는 책으로 일본동양문화사(1976)에서 펴냈다. 이 책은 또다시 한국의 고려도서무역에서 1976년(종로구 돈의동 소재) 펴냈다.

 

글쓴이가 입수한 책은 바로 고려도서무역에서 출간한 판본으로 《사상정세시찰보고집(思想政勢視察報告集)》(전권 1-9권)을 검토하여 이 가운데 <1935년 1936년, 1937년> 자료에서 김상윤 의사가 '요시찰 수배자'로 수배 중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결과에 따르면 김상윤 의사는 적어도 소화 10년~12년(1935-1937)까지는 생존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얻었다. 1927년에 돌아가신 줄 알고 제사를 모시고 있던 유족의 처지에서 1935년까지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되는 이 자료를 알게 된 것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여기서 잠시 의열단원 김상윤 의사<(호, 초산(楚山). 이명, 김옥(金玉, 金鈺), 김억(金億), 김옥산(金玉山), 김차근(金且根), 김진정(金眞丁), 김시중(金時中), 김상화(金相墷)>에 대해 간략히 얘기해 보겠다. 핵심 의열단원이었던 김상윤 의사는 1919년 만주에서 김원봉 등과 의열단을 창단하고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4인 참모부'의 일원으로 단체의 조직 체계와 모든 거사를 기획ㆍ지휘했다. 김상윤 의사는 의열단 창단 직후부터 거단적으로 추진된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일보사, 밀양경찰서 등 국내 주요 일제기관에 대한 총공격 거사를 위해 1920년 3월경 황상규 ・ 윤세주와 함께 안둥현(安東縣)을 거쳐  국내로 잡입하여 폭탄 투척 등 치열한 항일 투쟁을 펼쳤다. 밀양경찰서 투탄후 중국으로 탈출하여 

1924년 상해 청년동맹회 창립 참여하는 등 1925년까지 의열단 간부로 활동하였다.

 

 

각종 자료에서 확인되는 김상윤 의사의 기록은 당시 김구 선생을 포함한 불령선인(不逞鮮人, 일제 강점기 때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으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자기네 말을 따르지 않는 한국 사람을 이르던 말) 우두머리 10인에 속하는 인물로 조선 총독부 경무국에서 하루라도 빨리 잡아들이지 못해 안달이 난 <요시찰인물> 가운데서도 핵심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거물급 조선인 요시찰인물이지만 현재도 김상윤 의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20년 11월 10일, '의열(義烈)의 고장 밀양'에서는 <밀양경찰서 폭탄의거 100주년 학술회의>가 열렸는데 이날 글쓴이도 참석하여 김상윤 의사의 투철한 독립활동을 취재한 바 있다. (오마이뉴스. 2020.11.11., "독립운동가 유해 송환,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그날 학술회의장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글쓴이에게 조부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김기봉 선생의 말이 아직도 귓가를 맴돌고 있다.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저의 조부님(김상윤 의사)과 관련된 의열단 관련 학술회의를 지켜보면서 회의 내내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조부님이 의열단 간부 4명에 속했으면서도 그간 공적이 저평가되고 서훈조차 다른 의열단원에 견주어 가장 낮은 등급인 애족장에 그치고 있는 것도 가슴 아프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조부님의 죽음과 그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일입니다.”

 

 

손자인 김기봉 선생은 할아버지께서 '31살에 중국 상해에서 사망하였고, 복건성에 묘비가 있다'라는 국가보훈부의 기록을 믿고 조부의 행적을 찾기 위해 중국에도 여러 번 갔지만 모두 허사였다면서 자신의 평생소원은 조부께서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돌아가셨는가 하는 의문을 푸는 일이며 이 소원이 풀려 조부님의 유해를 고국에 모시고 올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강조했다.

 

학술회의가 있던 해도 올해로 벌써 6년이 지났다. 여전히 할아버지 김상윤 의사의 죽음과 관련된 정보는 오리무중인 가운데 1935년, 1936년, 1937년 자료에서 김상윤 의사가 살아있음을 입증하는 내용이 나왔으니, 유족들이 ‘흥분과 기대’를 이해할 것 같다.

 

유감스러운 것은 그 어느 기관도 김상윤 의사의 정확한 순국일을 알려주는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가장 공신력이 있는 국가보훈부조차 순국일을 1927년으로 기정화하고 있을 뿐이다. 풍부한 자료를 입수할 수 있는 국가보훈부가 <김상윤 1927년 사망>에 의문을 품고 있는 유족의 이야기에 시원스러운 답변을 해주고 있지 않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고 김기봉 선생은 말했다.

 

 

다만, 여기서 숙제가 남아 있다. 글쓴이가 밝혀낸 김상윤 의사의 1935년~1937년까지 3개년 기록 외의 기록들이다. 쟁점은 현재 1927년 사망설(국가보훈부) 이후의 모든 기록과 사망일에 대한 최종 기록을 찾아내는 일이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공개하고 있는 <김상윤 의사 관련 자료의 상한은 1925년도 자료> 뿐이다. 글쓴이가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1925년 이후 자료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국사편찬위원회가 1925년 자료 외에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하루속히 1925년 이후 김상윤 의사 등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공개해 주길 바란다. 개인이 일제 강점기 때의 자료를 입수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작업이다.

 

1927년 사망설에 의구심을 가진 채 제사를 모셔 오고 있는 유족들이 1935년 이후의 자료에서 할아버지(김상윤 의사)의 생존 가능성을 확인한 이 시점이 되고 보니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국가보훈부를 비롯한 국사편찬위원회 등의 관계기관에서는 김상윤 의사의 순국 일자와 순국 장소 등에 관한 정확한 자료를 찾아 밝혀주거나 관련 자료들을 일반 공개해 주길 바란다. 물론 글쓴이도 후속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