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한창이라 노란빛 가는 하늘 마당에 해바라기 꿈결엔 오는 가을 미리내 흐르는 밤은 옛날이 생각나니. * 미리내 : 은하수 여름이 한창이면 곧 하늘 높고 숨바람 맑고 또 빨갛게 물든 아기손 나뭇잎(단풍잎)이 생각나 조용히 스스로를 돌이켜 봅니다.
보훈의 달을 맞아 생존 독립운동가 오희옥 애국지사를 만나러 수원의 보훈복지타운 아파트에 간 것은 2011년 5월 30일이었습니다. 그 며칠 전 수유리 애국지사 묘역에서 있었던 후손 없는 광복군 추모회에서 뵈었던 덕에 아파트 현관문에 나와 서서 글쓴이를 반갑게 맞아주는 올해 86살의 오 여사는 광복군 출신답게 정정했습니다. 열세 평 아파트 안방에는 훈장이 자랑스럽게 걸려있고 부군이 돌아가신 후 혼자 깔끔하게 해놓고 사시는 모습이 광복군 부대의 내무반을 보는 듯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거사 후 일제의 압박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경에 도착할때까지 27년의 유랑길에 오르는데 이때 장사(長沙)로 가는 길에 트럭과 목선을 타고 한 달간 양자강을 힘겹게 거슬러 올라간 이야기며 유주에서 언니 오희영과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이야기, 중경 가까운 토교에서 청화중학교를 다닌 이야기 등은 현지를 답사한 적이 있는 글쓴이에게는 더욱 실감 나게 들렸습니다. 교통이 좋은 오늘날도 광활한 중국 대륙을 이동하기란 쉽지 않은 터에 100여 명이나 되는 임시정부 가족들이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며 피난 생활을 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가곡을 비롯하여 가사, 시조를 정가(正歌)라는 이름으로 통칭하고 있다. 정가란 속가(俗歌)의 대칭개념으로 창법이 점잖은 노래라는 의미인데, 정가를 ‘바른 노래’, ‘점잖은 노래’라고 부르는 일반적인 특징은 첫째 박자가 느리다는 점이고, 둘째는 부르는 사람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절제하여 부른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가곡을 고상한 이름으로는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이라고도 한다. 그 뜻은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가 오랜 시간 길게 기쁨을 누리는 노래라는 의미이다. 반면에 속가는 민요나 판소리, 좌창, 선소리, 병창, 무가 등을 아우르는 이름으로 희로애락의 감정을 최대한 들어내는 노래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표현법을 쓴다. 그래서 속가를 들으며 사람들은 울고 웃고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가곡의 곡조는 남창이 26곡, 여창이 15곡이어서 총 41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곡은 모두 5장으로 나누는 형식을 취한다. 5장형식이란 시조시 초-중-종장의 노랫말을 5장으로 안배함을 말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조 “동창이”를 예로 든다면 다음과 같이 나눠진다. 가곡의 제1장--시조의 초장 안구[內句]--- “동창이 밝았느냐” 제2장------
“긴 이랑 보리를 베었더냐 / 재너머 논에 모를 심었더냐 / 이 알곡들 거둬 / 올망졸망 자식 거두고 / 늙으신 홀어머니 봉양하련다 / 어서 밭을 갈아라 / 어서 논을 갈아라 / 어여 어여 이 황소야” 이 시는 권양순 님의 ‘황소’입니다. 예전 논배미에서 황소들이 바쁜 걸음을 하던 모습이 그려집니다. 어제 곧 6월 6일은 24절기 가운데 아홉 번째인 망종(芒種)입니다. 망종이란 벼, 보리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씨앗을 뿌려야 할 적당한 때라는 뜻입니다. 세종실록 29년(1447) 4월 15일 기록에 보면 “밥은 백성의 하늘이니 농사는 늦출 수 없는 것이다. 온갖 곡식을 심고 뿌리는 것이 각각 때가 있는 것이니, 때를 만일 한번 놓치면 일 년 내내 되찾을 수 없는 것이다. (중략) 망종까지만 심으면 추수할 가망이 있다는 것이지, 반드시 망종을 기다려서 종자를 뿌리는 기한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지금같이 빗물이 넉넉할 때에 망종이 멀었다고 하여서 농사의 권장을 급히 하지 아니함은 심히 불가하다.”라는 임금의 걱정이 보입니다. 이 시기는 보리 베기와 모내기에 알맞은 때로 망종까지 보리를 서둘러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하게 되는 지라 농촌에서는 매
"장장채승(長長彩繩) 그넷줄 휘느러진 벽도(碧桃)까지 휘휘 칭칭 감어 매고 섬섬옥수(纖纖玉手) 번듯 들어 양 그네줄을 갈라 잡고 선뜻 올라 발굴러 한번을 툭 구르니 앞이 번 듯 높았네 두 번을 구르니 뒤가 점점 멀었다. 머리 위에 푸른 버들은 올을 따라서 흔들 발밑에 나는 티끌은 바람을 쫓아서 일어나고 해당화 그늘 속의 이리 가고 저리 갈 제"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춘향이가 그네 타는 장면입니다. 단오를 맞아 남성들은 씨름을 했고, 여성들은 그네를 즐겨 탔지요. 또 여성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단오의 '단(端)'자는 첫 번째를 뜻하고, '오(午)'는 다섯의 뜻으로 '초닷새'를 뜻하는데 5자가 두 번 겹쳐 원기가 왕성한 날로 여겼지요. 단오는 예부터 설날, 한식, 한가위와 함께 4대 명절로 즐겼지만 이제 그 명맥이 끊길 처지가 되었습니다. 단오를 맞아 잊지 말아야 할 우리 겨레의 풍속은 “하선동력(夏扇冬曆)”입니다. 이 말은 여름 곧 단오엔 부채를 선물하고, 겨울 곧 동지엔 달력을 선물한다는 뜻입니다. 단오에 부채를 선물하는 것은 이웃이 시원하게
“정겨움 내보이는 삼봉의 빛은 / 다섯 해 이전과 같은 듯하네 / 푸른 이끼 낡은 집에 그대로 있고 / 붉은 잎은 수풀에 물들어 곱네 / 이리저리 떠돈 적이 하도 오래라” 위 시구는 추사의 ≪완당전집≫ 제9권에 나오는 의 일부분입니다. 경기도 과천시 주암동에 있는 과지초당(瓜地草堂)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아버지 김노경(金魯敬, 1766~1837)이 1824년 과천에 마련한 별서 곧 별장입니다. 추사는 183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의 묘를 이곳에서 가까운 옥녀봉 중턱에 모시고 3년상을 치뤘으며 말년에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10년 동안의 제주도 유배와 2년의 함경도 북청에서의 유배생활을 마친 추사는 이곳 과지초당에 와서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습니다. 추사가 죽기까지 4년을 머물렀던 과지초당은 과천시에서 2,055㎡ 터에 한옥 2동(66㎡) 규모로 복원하고, 초당 인근에 있던 항아리로 만든 ‘독우물’도 옮겨놓았으며, 소규모 공원과 함께 2007년11월 29일 준공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주변에는 경성제국대학 교수 출신 추사 연구가 후지츠카(藤塚隣,
현재 복원 중인 경북 군위군 인각사는 일연 스님이 말년에 ≪삼국유사≫를 쓴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2009년 9세기 무렵 통일신라시대 불교공양구 10여 점이 출토되었는데 그 하나하나가 최소 보물급으로 평가된다고 하지요. 그 가운데 특히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금동병향로입니다. 병향로는 병(柄), 곧 손잡이가 별도로 달린 향로를 말합니다. 국내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시대 이전 작품은 인각사 것 말고 두 점이 있습니다. 그중 손잡이에 사자를 장식한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은 비교적 상태가 좋으나 발굴된 장소가 불명하며 경남 고고학연구소가 지난 2003년 경남 창녕읍에서 발굴한 것은 심하게 파손된 상태이지요. 그러나, 인각사 병향로는 두께가 종이처럼 얇지만 금속의 강도가 강하고, 향로의 세밀한 모양새가 뛰어나 통일신라시대 금속공예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평가되는 유일한 향로입니다. 병향로 손잡이 끝 부분에 있는 사자는 7cm 정도의 작은 모양이지만 앞다리를 세우고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자세와 다문 입 사이에 두드러지게 표현된 송곳니, 얼굴 주위의 갈기,
본래의 고유한 이름인 옷이나, 음식, 집이란 이름을 내주고 한복이니 한식이니 한옥이니 하는 불필요한 이름을 새로 얻은 것처럼, 가곡도 새로운 서양스타일의 가곡과 구별하기 위해 전통이란 불필요한 이름을 앞에 붙여 전통가곡으로 부르기도 한다. 참고로 이 난에서도 때로는 가곡, 또는 전통가곡 등의 이름이 혼용되기도 할 것임을 양해 바란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3대(三大)성악으로는 가곡, 판소리, 범패를 꼽아 왔다. 왜 이들을 꼽아왔는가 하는 근거는 분명치 않다. 다만, 역사가 오래되었고 규모가 방대하며 예술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전문인들의 노래”라는 점이 주된 이유가 아닐까 한다. 전통가곡은 조선조의 선비들이나 유명 학자, 상류계층의 인사들이 애호하던 점잖은 노래이며, 판소리는 일반대중들이 즐기던 남도 지방의 극적인 긴 노래이고, 범패는 사찰에서 크고 작은 의식이 있을 때 승려들이 부르는 장엄한 불교의 성악이다. 이 중 판소리는 미(美)적 가치도 높을 뿐 아니라, 재미도 있어서 판소리가 있는 공연장이나 판소리를 기본으로 만든 창극은 언제나 많은 청중으로 성황을 이루고
많은 이가 국악기 가운데 해금과 아쟁을 헷갈려 합니다. 분명히 모양새도 다르고 음역도, 연주법도 다르지만 왜 그렇게 혼란스럽게 생각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특히 요즘은 해금이 부쩍 인기를 얻고 있어 이참에 확실히 공부를 해두면 좋겠습니다. 두 악기 모두 줄을 사용하여 소리를 내는 현악기이며 특히 줄을 활로 마찰시켜서 연주하는 찰현악기(擦弦樂器)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현악기는 찰현악기 말고도 손가락이나 다른 물체로 퉁겨 소리를 내는 현악기인 발현악기(撥絃樂器, 비파ㆍ기타), 줄을 망치로 두들겨 소리 내는 타현악기(打絃樂器, 피아노)도 있지요. 두 악기가 같은 찰현악기지만 깡깡이, 앵금이라고도 부르는 해금은 두 줄로 되어 있으며, 세워서 연주합니다. 해금(奚琴)은 고려시대에 들어온 뒤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연주됩니다. 말총으로 만든 활을 안줄과 바깥줄 사이에 넣고 문질러서 소리를 내는데, 일정한 음자리가 없이 다만 줄을 잡는 손의 위치와 줄을 당기는 강약에 따라 음 높이가 정해지는 독특한 악기지요. 따라서 해금은 화려한 소리를 낼 줄 알기에 서양악기와도
"어느 효자가 애달피 지키던 무덤 / 햇살 고운 아침 새악시 처럼 / 연붉은 자태로 피고도 드러나지 않는 꽃 / 화려하고 큰 것만이 어찌 아름다우랴 / 작고도 야무지게 피어난 꽃 / 다 자라고도 언제나 겸손한 애기풀 꽃." - 김신조 '애기풀 꽃'- 다 자라도 언제나 애기풀 꽃이라 불리는 꽃을 시인은 '겸손'하다고 합니다. 애기풀은 산과 들의 볕이 잘 드는 풀밭에서 자랍니다. 할미꽃과 함께 이 가녀린 애기풀은 이름 모를 무덤가에 피어나지요. 꽃은 4∼5월에 연한 붉은색으로 피고, 키가 10∼30cm 정도로 작습니다. 한방에서는 애기풀을 과자금(瓜子金)이라고 하여 약재로 쓰는데, 기침을 멎게 하고 가래를 삭여주며, 불면증ㆍ인후염ㆍ부스럼 등에도 쓴다고 합니다. 한국ㆍ일본ㆍ중국ㆍ필리핀ㆍ인도차이나 등에서 자랍니다. 꽃말이 “은자(隱者)” 곧 숨어지내는 사람인 애기풀 꽃은 잔디 사이에서 자라 키가 그리 크지도 않을뿐더러 꽃도 작고 화려하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은자라고 하면 숨어지내는 이의 대명사인 중국 요순시대 허유(許由)가 생각납니다. 허유가 숨어 지낼 때 임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