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호박잎 쌈 - 황 경 연 고향서 보내온 호박잎쌈 반가워 강된장 한 숟가락 듬뿍 얹어 볼이 미어지도록 한 쌈을 쌉니다 입안 가득 그리움의 고향 맛이 곰실곰실 맛있게 배어 나오고 그리운 어머니의 정 사무쳐 올 때 까닭 모를 눈물이 눈꼬리를 적십니다. 강된장에 든 고추 핑계를 대며 버무려진 한 쌈 눈물로 삼킵니다. 허기졌던 마음이 순식간에 흐뭇해집니다. ---------------------------------------------------------------------------------------------------------------- 어릴 적 시골에서 살아본 사람은 호박에 대한 한 토막의 추억이라도 있지 않나? ‘호박꽃도 꽃이냐고’ 비웃는 사람도 있지만, 늙은 호박으로 죽을 쑤어 먹거나 호박떡을 해 먹으면 일품인 걸 어쩌랴? 그런데 여기 호박잎도 있다. 어릴 때 비가 오면 호박은 자신의 넓은 잎을 내주어 아이들이 우산 대신 쓰도록 했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의 어머니는 호박잎을 쪄 강된장과 함께 싸 먹도록 해주었는데 그 환상적인 맛이란 지금도 재래시장에서 호박잎을 파는 할머니들을 보면 어머니가 그리워져 왈칵 눈물이 솟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봉사활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취약계층을 위한 면마스크 만들기 나눔 봉사를 앞장서서 펼쳤던 강동구새마을부녀회(회장 한상림)는 6월 26일 서울 송파구 정신여자고등학교(학교장 최성이) 학생들과 함께 취약계층을 위한 필터 삽입형 면마스크 만들기 나눔봉사를 펼쳤다. 이날은 정신여고 2ㆍ 3학년 673명이 바늘을 들었고, 오는 7월 3일에는 낮 2시부터 1학년 334명이 나눔봉사를 할 예정이어서 무려 1,007명의 학생이 함께 하는 것이다. 26일(금) 낮 12시 10분부터 학교 방송실에서는 먼저 강동구새마을부녀회 한상림 회장의 마스크 만들기 시범을 폐쇄회로를 통해 보여주었고, 2ㆍ3학년 24개 학급별로 교실 모니터를 보면서 마스크 만들기 방법을 배운 다음 강동구새마을부녀회 회원이 교실마다 1명씩 배치되어 학생들의 마스크 만들기를 도와주었다. 일제강점기에 항일 여성독립단체인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으로 활동한 정신여고 출신 김마리아 열사의 후예들은 이날 서투른 바느질 솜씨지만 마스크 만들기에 온 정성을 쏟았다. 마치 ‘독립운동은 못 했어도 나눔봉사는 한다.’라는 각오를 다지듯 말이다. 그리고 이 행사에는 퍼포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국방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만이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고, 타인에게도 행복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이는 백범 김구 선생이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겨레의 지도자며, 나라의 큰 어른 김구 선생은 광복 4년 뒤인 1949년 오늘 (6월 26일) 1945년 11월 4일부터 1949년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로 썼던 경교장(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29)에서 육군포병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했습니다. 그런데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6.25전쟁이 한창이던 때 형을 면제받습니다. 그리곤 현역으로 복귀한 뒤 전역하고 군납사업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고 하는데 이는 대단한 배후를 짐작하게 하는 정황일 것입니다. 이렇기에 세간에서는 많은 배후설이 나돌았습니다. 특히 국내에 지지세력이 별로였던 이승만이 가장 큰 위협이라 여겨 선생의 암살을 사주했다는 설과 암살범 안두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백성들이 불행하게도 거듭 흉년을 만난 데다가 돌림병까지 겹쳐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고 몹시 가난하여 잇따라 죽고 있으니, 이것만도 매우 참혹하고 불쌍하다. 그런데 또 제 때에 주검을 묻지 못하여 주검과 뼈가 도로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족히 화창한 기운을 침해하여 재앙을 초래할 만하다. 고요히 그 허물을 생각하면 내 실로 부끄럽고 마음 아프다." 《순조실록》 34년 1월 24일의 기록으로 흉년에 돌림병까지 겹쳐 많은 백성이 죽어가고 그 주검이 길거리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처참한 상황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조선시대에는 돌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게 되면 조정에서는 한성과 지방에 여제단(癘祭壇)을 설치해 돌림병을 일으키는 귀신을 달래거나 병에 걸린 사람들을 피막에 수용, 격리하고, 돌림병이 지나간 마을을 불태우는 게 고작이었지요. 또 절에서는 비명횡사했거나 억울하게 죽은 귀신을 위해 수륙재(水陸齋)를 지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수륙재를 지낼 때는 ‘감로도(甘露圖)’라는 불화를 걸어놓는데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의 감로도를 보면 한가운데에 아귀(餓鬼)가 등장합니다. 아귀는 먹으려는 음식이 모두 불로 변해버리는 형벌을 받았기에 항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순종비(純宗妃) 윤황후(尹皇后)가 영친왕비(英親王妃)에게 내려주었다는 <영친왕비 쌍학문 자수 두루주머니>가 있습니다. 주머니 가운데에는 두 마리 학이 정면을 향하여 날아들어 긴 목을 서로 부드럽게 감고 있는 모습을 수놓았지요. 학 주변은 구름무늬로 채웠는데, 안은 금사로 메우고 무늬 가장자리를 역시 금사로 마무리했습니다. 주둥이는 주름을 잡고, 좌우로 구멍을 뚫어 남색 끈을 꿰고 거기에 매듭을 장식하여 양쪽으로 늘어뜨려 붉은색 금사로 가락지를 끼워 마무리하였지요. 주머니는 자질구레한 물건이나 돈 따위를 넣고 허리에 차거나 손에 들고 다니는 꾸미개로 옛날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지녔는데, 특히 대한제국 말기에 서양에서 들어온 조끼를 뺀 다른 한복에는 물건을 넣을 만한 호주머니가 없어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 주머니 가운데 아래는 둥글고 위는 모진 것인데 입구에 잔주름을 잡아 오므리는 주머니를 두루주머니라 합니다. 두루주머니 가운데서도 특히 오방색 곧 노랑, 파랑, 하양, 빨강, 검정의 5가지 빛깔을 써서 아름답게 만든 것이 오방낭자(五方囊子) 곧 오방 두루주머니입니다. 여기서 오방색이란 음과 양의 기운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흔한 모습이 아닌 독특한 모양의 석탑이 있는데 바로 국보 제102호 충주 정토사터 “홍법국사탑(弘法國師塔)”이 그것입니다. 흔히 석탑의 몸돌들을 보면 네모난 모양인데 견주어 약간 찌그러진 공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공모양의 몸돌로 인해 ‘알독’이라고 불리기도 한 이 탑은 새로운 기법을 보여주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승탑입니다. 등근 몸돌에는 가로ㆍ세로로 묶은 듯한 십(十)자형의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그 교차점에는 꽃무늬로 꾸몄습니다. 또 삿갓 모양으로 깊숙이 패인 지붕돌 밑면에는 비천상(飛天像)이 조각되어 있지요. 그뿐만이 아니라 가운데받침돌에는 구름을 타고 있는 용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고, 윗받침돌에는 아래와 대칭되는 솟은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높이 2.55m의 이 탑은 고려 목종 때의 승려인 홍법국사의 탑으로, 홍법국사는 당나라에서 수행하고 돌아와 선(禪)을 유행시켰으며, 고려 성종 때 대선사(大禪師)를 거쳐 목종 때 국사(國師)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이 탑은 원래 충청북도 중원군(현 충주시)의 정토사 옛터에 있던 것인데 일제가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박랍회)를 경복궁에서 열면서 같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정혜사터 십삼층석탑 - 이 달 균 친구여 생의 인연 하나 만나지 못했다면 지상에 흔적 하나 남기지 못했다면 서라벌 별밭에 숨은 미인도(美人圖) 보러가자 도덕산 해 기운다고 발길 재촉 마라 왕조 저문다고 눈물 보이지 마라 보아라 허리 곧추세우고 이승의 강을 건너는 경주 옥산서원 지나 도덕산과 자옥산 자락, 국보는 40호 십삼층석탑은 거기 서 있었다. 어떤 담장도, 제어할 누구도 없는 산 녘, 미인은 원래 외로운 팔자인가 보다. 단풍 드는 가을 정경이 이리 아름다운데 전혀 밀리지 않는 탑의 미려함이라니. 맑은 날 찾아간 십삼층 탑은 신라의 하늘을 이고 있었다. 이끼 낀 세월 속에서도 젊은 날의 자태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고개 숙일 일도, 타협할 이유도 없다. 그저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여정이 당당할 뿐이다. 정혜사터 일대의 경작지에는 부서진 기왓장만 어지럽다. 가져오고 싶은 것이 있을까 찾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멀리서 볼 땐 그리 크지 않아 보였지만 가까이 가 보면 한참을 올려다봐야 한다. 당시로선 매우 큰 건축물로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으리라 짐작된다. 13층이란 층수도 예사롭지 않거니와 기단부와 초층탑신의 양식, 탑신과 옥개석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 초기 안평체의 이용(李瑢, 안평대군), 중기 석봉체의 한호(韓濩, 석봉), 말기 추사체의 김정희와 더불어 원교체(圓嶠體)라는 독특한 필체를 이룩한 이광사(李匡師, 1705~1777)는 조선 4대 명필의 한 사람입니다. 전남 구례의 지리산 천은사 일주문에는 그 이광사가 물 흐르는 듯한 수체(水體)로 쓴 ‘智異山泉隱寺’(지리산 천은사)'라는 편액이 걸려있지요. 절 천은사는 원래 이름이 감로사(甘露寺)였는데 숙종 때 고쳐지면서 샘가의 구렁이를 잡아 죽이자 샘이 사라졌다고 해서 ‘샘이 숨었다’는 뜻의 천은사(泉隱寺)로 이름을 고쳤습니다. 그러나 그 뒤 원인 모르게 불이 자주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은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는 구렁이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두려워했는데 이광사 글씨의 편액을 붙인 뒤로는 불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지금도 고요한 새벽 일주문에 귀를 기울이면 현판에서 신비롭게도 물소리가 들린다고 하니 당시 이광사의 글씨는 신비스러운 경지에 다다른 것이 분명하지요. 이광사는 글씨를 쓸 때 소리꾼에게 노래를 시켜 노랫가락이 맑고 씩씩한 우조(羽調)면 글씨도 우조의 분위기로 쓰고, 평조(平調)면 글씨도 평화롭고 담담한 분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느 날 걸망을 메고 - 이 승 룡 가끔은 일상의 껍데기 벗어놓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볼 일이다 흙 내음 들꽃 향기 물소리 들으며 마냥 짙푸른 숲길 걸어볼 일이다 부질없는 세상사 눈물 쏟아질 때면 그저 고요한 산사 한번 찾아볼 일이다 담쟁이 어우러진 물푸레나무 아래서 향 짙은 솔잎차 한잔 마셔도 좋고 잠시라도 바람과 얘기 나눠도 좋다 새소리 물소리 풀벌레 소리 서로 어우러져 하나인 이들에게 그리 살아가는 법을 배워볼 일이다 ------------------------------------------------------------------------------------------------------- 이승룡 시인은 “가끔은 일상의 껍데기 벗어놓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볼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것도 걸망을 메고 말이다. 한국일보 2010년 11월 9일 치에는 서산 부석사 주지 주경 스님의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걸망을 멘 스님은 길을 떠난 스님들의 상징적인 모습이다. 누구든 때가 되어 떠나게 되면 걸망 하나로 짐을 정리한다. (가운데 줄임) 나누어줄 만한 것은 나누어 주고 버릴 것은 버린다. 얼마간이건 살다가 떠날 때, 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모레 일요일은 24절기 가운데 열째 절기인 ‘하지(夏至)’입니다. “하지가 지나면 오전에 심은 모와 오후에 심은 모가 다르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농촌에서는 하지 무렵 모심기를 서두르는데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농사가 나라의 근본이었기에 비가 오지 않아서 농사짓기가 어려워지면 임금이 직접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지요.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기우제”가 무려 3,122건이나 나올 정도입니다. 기우제의 유형은 몇 가지가 있는데 먼저 산 위에 장작을 쌓아놓고 불을 놓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는 산에서 불을 놓으면 타는 소리가 천둥 치는 소리같이 난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하며, 연기를 통해 천신에게 기원을 전한다고도 합니다. 또 신을 모독하거나 화나게 하여 강압적으로 비를 오게 하기도 합니다. 부정물은 개, 돼지의 피나 똥오줌이 주로 쓰이지요. 전라도 지방에서는 마을 여인네들이 모두 산에 올라가 일제히 오줌을 누면서 비를 빌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짚으로 용의 모양을 만들어 두들기거나 끌고 다니면서 비구름을 토하라고 강압하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용서받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