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밤한울 구만리엔 은하수가 흘은다오 / 구비치는 강가에는 남녀 두 별 있엇다오 / 사랑에 타는 두 별 밤과 낯을 몰으것다 / 한울이 성이 나서 별하나를 쪼치시다 / 물건너 한편바다 떠러저 사는 두 별 / 秋夜長 밤이길다 견듸기 어려워라 / 칠석날 하로만을 청드러 만나보니 / 원수의 닭의소리 지새는날 재촉하네 / 리별이 어려워라 진정으로 난감하다 / 해마다 눈물흘러 흔하수만 보태네” 이는 1934년 11월에 나온 《삼천리》 잡지에 실린 월탄 박종화의 <견우직녀> 시입니다. ‘하늘이 성이 나서 별 하나를 쫓으시다’라는 말이 재미납니다. 그런데 까마귀와 까치가 오작교를 만들려고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에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칠월칠석만 되면 유달리 비가 내리곤 합니다. 다만 언제 내리냐에 따란 그 비의 이름은 다릅니다. 칠석 전날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타고 갈 수레를 씻는 '세거우(洗車雨)'라고 하고, 칠석 당일에 내리면 만나서 기뻐 흘린 눈물의 비라고 하며, 다음 날 새벽에 내리면 헤어짐의 슬픔 때문에 '쇄루우(灑淚雨)'가 내린다고 합니다. 칠월칠석 아낙네들은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거나 우물을 퍼내어 깨끗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며칠 전 KBS 텔레비전에서는 “3.1운동 100주년특집 아리랑로드”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방영되었습니다. 프로그램에는 특히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특히 마이클 하울리 씨는 참전 기간 동안에 한국인으로부터 ‘아리랑’을 배웠다면서 아리랑을 직접 들려주었지요. 그러면서 “하루는 우연히 만난 한국인에게 내가 한국 노래를 들려주겠다며 아리랑을 불러주었더니 그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렸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슬기전화(스마트폰)에 자신이 직접 불러 녹음해둔 아리랑이 많다고 했습니다. 또 엘비스키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 사무총장은 “아리랑은 한치 앞을 모르는 전쟁터로 나가는 병사들을 위로해 주었다. 아리랑은 한국인들의 가장 깊은 감정과 자유인으로서 하나됨을 표현하는 희망의 노래며, 사람들의 영혼을 표현한다.”라고 정의했습니다. 아리랑은 이렇게 미국인들까지도 감동으로 기억하고 부르는 사람이 많은 노래임을 프로그램은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아리랑’은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고, 2012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올랐지요.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아리랑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른들은 한방에 대한 상식들이 있지만 아이들은 한방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뿐만 아니라 길가에서 흔히 보던 풀이며 꽃, 열매, 뿌리, 돌 등등 자연이 우리 몸에게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 리가 없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경기도 고양시 ‘유용우한의원’에서는 지난 8월 3일부터 오는 8월 18일까지 어린이 대상으로 제10회 유용우한의원 “허준&대장금[향낭만들기] 한방체험”을 열고 있다. 어린이들은 먼저 어의나 의녀옷을 입고 한약재 설명을 듣는다. 그리곤 향낭 곧 향주머니를 만들게 된다. 유용우 원장에 따르면 14가지나 되는 약재에 대해 다 설명해줘도 지루할 수밖에 없는 어린이들에게 약재를 공부하면서 예쁜 향낭을 직접 만들어 가도록 배려한 것이다. 참고로 겨울 체험에는 향낭만들기 대신 한과만들기 체험을 하게 된다. 향낭을 다 만들면 멋진 한방체험증을 받은 다음 오감홍삼수를 마심으로 체험 행사는 끝을 맺는다. 오감홍삼수란 더운 여름에 몸과 마음이 더위에 지쳐 늘어졌을 때 정체된 기혈 순환을 풀어주는 ‘생맥산’이라는 차(茶)가 있는데 그 차를 바탕으로 하여 발효홍삼을 넣은 것으로 저하된 세포에 활력을 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밀양 만어사 삼층석탑 - 이 달 균 바다로 가지 못한 고기떼의 주검들 산이 부서지고 하늘이 기우는 날 통곡의 빛줄기 따라 나는 돌아가리니 기원이 간절하면 전설도 깨어날까 만어사 석탑은 오늘도 기다린다 아득히 밀려들어 올 남해 포말(泡沫)의 아우성 만어사(萬魚寺)는 절보다 너덜겅이 더 유명하다. 만어(萬魚)라는 이름대로 수많은 크고 작은 검은 너덜바위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 너덜겅 위에 작은 암자가 들어섰고, 지금은 차들이 편리하게 다니게 길이 좋아졌다. 이 바위들은 흡사 바닷물을 따라 들어온 물고기들이 돌아가지 못하고 누운 형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언젠가 바닷물이 찾아오면 고향으로 떠나려는 몸짓을 하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삼층석탑은 그런 염원을 안으로 삭이는 듯 고요히 절 마당에 서 있다. 안정감과 절제미가 돋보이는 고려시대 탑이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일반적으로 그 논조는 총독부의 시정을 비난, 공격하고 세계 약소민족의 독립운동을 빙자하여 조선이 독립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풍자하고, 매사를 편견과 중상을 바탕으로 한 집필을 강행함으로써 멋모르는 민중으로 하여금 총독정치를 오해하게 하였다.” 이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중외일보에 대해 기록한 내용입니다. 중외일보는 시대일보를 백산 안희제 선생이 동지들과 함께 인수하여 발행했는데 선생은 사장, 발행인 겸 편집인 등으로 활동하면서 잦은 압수와 정간처분 등 일제의 언론 탄압을 뿌리치고 젊은 기자들과 편집진의 항일 언론투쟁을 지원하였습니다. 134년 전 어제(8월 4일)는 백산 안희제 선생이 태어나신 날입니다. 백산 선생은 1916년 무렵 고향의 논밭 2천 마지기를 팔아 자본금을 마련하고, 부산 중앙동에 포목과 건어물 따위를 파는 백산상회(白山商會)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1918년 주식회사로 바꾸었는데 백산무역주식회사는 독립운동자금을 위한 나라 안 독립운동기지로 삼기 위해 영남지역 지주들이 여럿 참여해 조직한 대규모 무역회사였습니다. 이때 함께한 이들은 경주 최부자집 주손 최준, 경상우도관찰사를 지낸 윤필은의 아들 윤현태 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치장하고 모양을 내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저기 저 거울 속에 시시때때로 변덕을 부리는 놈 나도 모르는 사이 또 언제 등 뒤에서 나타나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저 도둑놈 얼굴의 나 호시탐탐 기회가 되면 꽃밭으로 뛰어드는 저 불한당 거울을 볼 때마다 문득 문득 나타나서 또 나를 놀라게 하는 더럽고 치사한 내가 무섭다. 얼마나 더 늙고 병들어야 저 욕심 놓아 버릴까.“ 허홍구 시인은 그렇게 고백한다. 도둑놈의 얼굴을 한 자신을 불한당이라 하고, 거울 볼 때마다 문득 문득 나타나서 또 나를 놀라게 하는 더럽고 치사한 자신이 무섭단다. 그러면서 “얼마나 더 늙고 병들어야 저 욕심 놓아 버릴까”라면서 혀를 끌끌 찬다. 그는 시에서 뿐만 아니라 평소의 삶 속에서도 늘 주위 사람들에게 그렇게 고백하곤 한다. 그렇게 소탈함을 지니고 사는 시인이다. 그 허홍구 시인이 북랜드를 통해서 아홉 번 째 시집 《사랑하는 영혼은 행복합니다》를 내놓았다. 시집에는 그는 일흔이 넘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다짐하는 <나이 일흔>이라는 시도 선보인다. 시집에는 그렇게 자신의 삶에 대한 고백만 하는 게 아니다. 나긋나긋 노년 친구들에게 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요즘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그런데 한여름 에어컨이 없었던 조선시대엔 부채가 사람들의 유일한 위안거리였지요. 특히 궁궐에서는 부채를 만들어 임금께 바치는 첩선장과 원선장이란 장인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 제14호(1928년 07월 01일 펴냄)에는 송작(松雀)이란 사람이 쓴 “붓채와 애첩(愛妾)”이라는 다음과 같은 글이 보입니다. “붓채는 친할수록 시원하고 상쾌하며 품 속에 느어도 실치 안코 손에 잡을사록 정이 붓는다. 산아운 더위를 쫏고 청량한 바람을 주며 타는 햇빗을 가리우고 모긔, 파리 등을 다 모라낸다. 잠자는 민중을 깨워주고 고적한 사람을 위로하여 준다. (중간 줄임) 신랑은 도홍선(桃紅扇)을 가지고 상제는 포선(布扇)을 가지며 무당과 광대는 채색선(彩色扇)을 가지고 기생은 화초선(花草扇)을 가진다. (중간 줄임) 현재 시중에서 판매하는 것만 하야도 종류가 약 50여종이 되는데 그중에는 태극선(太極扇), 비취선(翡翠扇), 도홍선, 파초선(芭蕉扇), 홍일선(紅日扇), 반월선(半月扇), 백운선(白雲扇), 합죽선(合竹扇), 미선(尾扇), 상아선(象牙扇), 공작선(孔雀扇), 칠선(漆扇) 등 별의별 붓채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 겨레가 소나무를 무척 좋아했다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이 조선시대 그림에는 소나무가 참 많이 등장합니다. 소나무 한 그루만 우뚝 서 있는 그림은 물론 수많은 나무들이 뒤섞여있는 산을 그릴 때도 소나무는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요. 역시 나라에서 송목금벌(松木禁伐)이라 하여 소나무를 보호했던 것과도 무관치 않을 것입니다. 조선 후기 수많은 진경산수화가들은 금강산도에서 또 인왕산이나 남산 따위 그림에도 모두 잘 생긴 소나무들을 그려 넣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소나무 그림들을 보면 먼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가 떠오르며, 정선의 “노송영지도(老松靈芝圖)” 이인상의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 윤두서의 “무송관수도(撫松觀水圖)”, 강세황의 “송하인물도(松下人物圖)”, 윤덕희의 “송하탁족도(松下濯足圖)” 같은 그림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여기 조선 후기의 화원 화가 이재관(李在寬, 1783~1837)의 “송하처사도(松下處士圖)”도 빼놓을 수가 없지요. “송하처사도(松下處士圖)”를 보면 그림 위아래를 가로지르며 우뚝 솟은 한 그루 소나무가 있고 그 아래로 시냇물이 졸졸 소리 내며 흐릅니다. 소나무의 둥치 부분은 짙고 깊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영조 때의 중인 신분이었던 역관 이언진(李彦瑱)이 통신사 조엄을 따라 수행원으로 일본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언진은 일본인들에게 글씨와 문장으로 이름을 크게 떨쳤습니다. 특히 이언진처럼 시를 단숨에 짓고 글씨를 빨리 쓰는 사람이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지요. 그러자 일본인들은 이언진을 시험해보고 싶다고 제안합니다. 부채 오백 자루에 시를 써 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구름처럼 모여든 가운데 이언진은 순식간에 오백 자루의 부채에 시를 써주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이런 이언진을 천재라 하면서 떠받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언진은 일본인들에게 많은 글을 써주고도 추호도 재물을 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네가 공부를 아무리 한다 한들 역관이 아니더냐?"라며 주위에서는 그가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비아냥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모든 이치가 책에 있다.“며 오로지 공부에 매달려 천재 소리를 들었는데 그런 그는 27살의 나이에 병으로 요절하고 말았지요. 이에 많은 사람들이 애통해했는데 특히 영조 때의 실학자 이용휴(李用休)는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아래와 같은 시를 지었습니다. 이용휴는 이언진을 하늘에서 빌려온 천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