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꾸나 사람으로 태어나 옳지 곧 못하면 마소를 갓고깔 씌워 밥먹이나 다르랴." -송강 정철 ‘사람의 도리[訓民歌]’- "우수수 지는 나뭇잎 소리를 성글은 빗소리로 그릇 알고 동자승 불러 나가 보랬더니 시내 앞 나뭇가지에 달만 걸렸다나." -송강 정철 ‘산사에 묵으며 밤에 읊다[山寺夜吟]’- 이는 조선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1536-1593)의 시다. 송강의 대표작〈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은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한국의 시성(詩聖)으로 일컬어지는 송강의 주옥같은 시와 가사들을 서예와 그림 만나 볼 수 있는 ‘제 7회 송강작품유물특별전’이 세종문화회관 한글갤러리 전시장에서 6월 18일 까지 열리고 있어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사단법인 송강문화원 주최, 송강문화선양회 주관, 문화체육관광부 등의 후원으로 열리고 있는 이번 특별전은 하와이 거주 이상윤 화백 등을 비롯한 국내외의 중견 작가들이 송강 정철의 작품을 글씨와 그림으로 빛낸 전시회다. 송강 특별전은 지난 2014년 미국 LA를 시작으로 하와이, 러시아에 이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국보 제166호 “백자철화 매화대나무무늬 항아리”가 있습니다. 이 백자항아리는 조선시대 것으로 높이 41.3㎝, 입지름 19㎝, 밑지름 21.5㎝의 크기입니다. 아가리 가장자리가 밖으로 말렸고, 목 부위의 경사면부터 풍만하게 벌어졌다가 서서히 좁아진 둥근 몸체의 항아리지요. 짙고 옅음이 들어간 검은 물감으로 목과 어깨 부분에 구름무늬와 꽃잎무늬가 돌려 있고 맨 아랫부분에는 연속된 파도무늬를 그렸습니다. 또 몸체의 한 면에는 대나무를, 다른 한 면에는 매화등걸을 각각 그려 넣었기에 “매화대나무무늬 항아리”라고 합니다. 유약은 푸르름이 감도는 유백색으로, 전면에 고르게 씌워져 은은한 광택이 나지요. 이러한 항아리 형태는 16세기 분청사기에서 자주 보입니다. 매화, 대나무의 모양이나 밝은 유약색으로 보아 16세기 후반 무렵 경기도 광주군 관음리 등지의 가마에서 빚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또 매화와 대나무 그림은 솜씨가 뛰어난 것으로 보아 궁중화가가 그린 것으로 보이지요. 이 항아리는 철화백자 항아리로서는 초기의 것이지만, 당당하고 풍만한 모양새에, 짙고 옅음의 변화를 준 매화와 대나무 그림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왔구나 왔소이다. 왔소이다. 불쌍히 죽어 황천 갔던 배뱅이 혼이 혼신 평양 사는 박수무당의 몸을 빌고 입을 빌어 오늘에야 왔구나. 오마니 오마니. 우리 오마니는 어델 가구서 딸 자식 배뱅이가 왔다고 하는데도 모른 체하나요. 살어 생전 같으면 내가 어데를 갔다온다면은 우리 오마니가 나를 보고 동지섣달 꽃본 듯이 화닥딱 뛰어나오련만...“ 우리는 50년대부터 이은관 명창의 “왔구나” 배뱅이굿으로 삶의 애환을 달래 왔다. 그러나 2014년 이은관 명창이 배뱅이 곁으로 간 뒤 우리는 망연자실했다. 이제 어디서 배뱅이굿을 듣고 위안을 받을 건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은관 명창이 그냥 세상을 하직한 건 아니었다. 박정욱이라는 걸출한 제자를 남겨두고 간 것이다. 어제 5월 30일 밤 7시 30분 서울 삼성동 서울국가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 ‘풍류’에서 명창 “박정욱의 서도소리 30년 기념무대”가 열렸다. 공연 전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단국대 명예교수)은 축사를 통해 “배뱅이굿 공연만 무려 500회를 넘게 했다는 박정욱 그는 배뱅이굿을 부르기 위해 태어났는가?”라면서 “서도소리의 진수를 맛보게 될 이번 무대는 전례 없는 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 마을에는 별신당이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이 사당에서는 3년에 1번씩 1월 또는 2월에 “은산별신제(恩山別神祭)”라는 큰 제사를 지냅니다. 이 사당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제9호 “은산별신제”를 지내게 된 데는 특별한 까닭이 있는데 이 은산 마을에는 한 때 큰 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때 마을 한 어른이 꿈을 꾸게 됩니다. 그 꿈에는 백제를 지키다 억울하게 죽은 장군이 나타나 병을 없애 줄 테니, 자신과 부하들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 달라고 했습니다. 이 어른이 꿈에서 깨어 장군이 말한 곳으로 가 보니 오래된 뼈가 잔뜩 널려 있었지요.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뼈들을 잘 묻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굿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 뒤 마을에는 병이 사라졌고, 평화가 찾아왔다고 하지요. 그 뒤 마을사람들은 장군과 병사들을 위로하는 뜻으로 제사를 지내왔는데, 이것이 바로 은산별신제입니다. 이 별신제는 약 100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보통 열닷새(15일) 동안이나 합니다.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은 몸과 마음이 깨끗하고 부정이 없는 사람으로 뽑는데 이들은 대장, 중군, 패장, 사령 등 군대조직의 이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단오, 단오는 단오절, 단옷날, 천중절(天中節), 포절(蒲節:창포의 날), 단양(端陽), 중오절(重午節, 重五節)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우리말로는 수릿날이라고 했다. 단오의 '단(端)'자는 첫째를 뜻하고, '오(午)'는 다섯이므로 단오는 '초닷새'를 뜻한다. 수릿날은 조선 후기에 펴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이 날 쑥떡을 해 먹는데, 쑥떡의 모양이 수레바퀴처럼 만들어졌기 때문에 '수리'란 이름이 붙었다. 또 수리란 옛말에서 으뜸, 신(神)의 뜻으로 쓰여 '신의 날', '으뜸 날'이란 뜻에서 수릿날이라고 불렀다. 이날 부녀자들은 '단오장(端午粧:단오날의 화장)'이라 하여 창포뿌리를 잘라 비녀로 만들어 머리에 꽂아 두통과 재액(災厄)을 막고,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아 윤기를 냈다. 또 단옷날 새벽 상추잎에 맺힌 이슬을 받아 분을 개어 얼굴에 바르면 버짐이 피지 않고 피부가 고와진다고 생각했다. 반면 남자들은 단옷날 창포뿌리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데, '귀신을 물리친다'는 믿음을 가졌다. 단옷날은 양수 “5”가 겹친 원기 왕성한 날인데 그 가운에서도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가 가장 양기가 왕성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에 가면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오래된 절 화암사花巖寺)가 있습니다. 이 절은 금산사에 딸린 절로 절을 지을 때의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원효와 의상이 유학하고 돌아와 수도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 문무왕 이전에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회암사에는 국보 제316호 “극락전(極樂殿)”이 있습니다.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극락전은 1981년 해체ㆍ수리 때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조선 선조 38년(1605)에 중창한 것으로 되어 있지요. 앞면 3칸, 옆면 3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고, 소박하고 작은 규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을 짜 올린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입니다. 건물 안쪽 가운데칸 뒤쪽에는 관세음보살상을 모셨으며, 그 위에 지붕 모형의 닫집을 만들어 용을 새겨놓았습니다. 특히 이 화암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하앙식(下昻式) 구조인 점이 독특합니다. 하앙식 구조란 바깥에서 처마 무게를 받치는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하여 지렛대의 원리로 일반 구조보다 처마를 훨씬 길게 내밀 수 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 승용차에는 뒤에 “초보예요 말이나 탈걸”이라고 써두었습니다. 그걸 본 우리 일행은 “와”하고 웃었습니다. ‘초보운전이니까 잘 봐주세요.’라는 뜻으로 우스갯소리로 표현했으니 이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양보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또 어떤 차에는 “초보라 미안해요 비행기를 살 걸 그랬네요.”, “저도 제가 무서워요.”, “왕초보운전 직진만 오일째”, “뒤에서 빵빵하니 아기도 울고 하늘도 울고 나도 울고”, “버스도 택시도 무섭지만 내가 제일 무섭다.”, “발로 하는 운전이라 미안해유”, “오른쪽이 브레이크죠?”, “ 등 재미난 스티커가 많습니다. 그러나 “초보운전 당황하면 후진함(후진전적 2회)”, “판검사가 타고 있어요.” 같은 협박성이라든지, ”R아서 P해라“ 같이 말도 안 되는 영문자를 붙이는 것, ”NEW DRIVER“, ”BABY IN CAR“, ”I’m sorry 초보운전“처럼 완전 영문, ”운전 못하는데 보태준 거 있수?“ 같은 예의 없는 것, ”뒤에서 받으면 나는 좋지만 뭐 ㅋㅋ“ 같은 상식적이지 않은 것 등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시대 서당에 처음 다니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천자문(千字文)》, 《명심보감(明心寶鑑)》, 《소학(小學)》 따위는 기본 교재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리학자인 양반들이 펴낸 책들이지만 중인이 펴낸 어린이 참고서도 있었습니다. 바로 조선 후기의 중인학자 장혼(張混, 1759-1828)이 쓴 《아희원람(兒戱原覽)》이 그것입니다. 《아희원람(兒戱原覽)》은 옛 책의 글과 책 가운데 아이들이 찾아보아야 할 내용을 열 가지 주제로 가려 뽑은 책이지요. 《아희원람》은 기존에 즐겨 썼던 《소학》 따위에 견주어 아동들이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게 동화나 우화처럼 풀어쓴 것입니다. 또 제기ㆍ연ㆍ골패ㆍ쌍륙ㆍ투호ㆍ제기차기ㆍ널뛰기 같은 민간 놀이에 관한 내용도 다루었으며, 답교놀이ㆍ관등행사ㆍ유두(流頭)ㆍ씨름ㆍ 약밥ㆍ팥죽ㆍ기우제 따위 세시풍속에 대한 내용도 들어있지요. 이처럼 《아희원람》은 기존 성리학자들이 쓴 책들과 달리 가르치려 드는 틀을 허물어 버리고, 백성들의 세시풍속을 소개하면서 중인학자답게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는 평을 받습니다 이 책을 쓴 장혼은 조선 후기 으뜸가는 출판편집인이라는 평가를 듣습니다. 그 까닭은 그가 정9품 잡직 사준(司準)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 3월 일본 7개 도시에서 성황리에 상연되었던 <극단 큰들>의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이 드디어 서울 광화문에도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시 주최의 60항쟁 30돌 기념공연이 어제 5월 27일 낮 3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것이다. ‘오작교 아리랑’(연출 송병갑, 극작 임경희)은 어려운 사랑에 빠진 두 청춘남녀의 사랑을 소재로 화해와 소통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마당극이다. 대대로 예능을 하며 자부심으로 살아온 아랫마을 남돌이네와 윗마을 꽃분이네는 원래 한 마을이었으나 뜻하지 않은 사건을 계기로 70해 동안을 등 돌린 채 지내고 있다. 그런데 이 두 마을에 각각 살아가고 있던 남돌이와 꽃분이가 사랑에 빠진다. 두 집안의 갈등과 화해, 두 사람의 혼례까지 고비가 모두 한 시간이 넘는 동안 익살스럽고 신명나게 펼쳐졌다. 원래 마당놀이야 우리 겨레의 해학이 담긴 독특한 연극양식이 틀림없지만 이날 공연은 그야말로 출연진의 맛깔스러운 연기와 풍물굿, 관객과의 소통이 어울리며 뜨거운 땡볕 아래였지만 관객을 꼼짝 못하게 사로잡았다. 더구나 걸쭉한 사투리 속에 장구놀이, 소고놀음, 버나돌리기 등 풍물굿의 요소를 극 속에 결합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는 2009년 5월에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중성리에서 발견된 신라 지증왕 2년(501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국보 제318호 “포항 중성리 신라비”가 있습니다. 이 비는 모양이 일정치 않으며, 12행 20자로 모두 203자의 비문이 오목새김(음각)되어 있는데 위쪽 일부와 오른쪽 일부가 떨어져 나갔을 뿐 비문의 대부분은 판독이 가능할 정도로 양호한 상태입니다. 이 비의 글씨체는 예서로 분류되는데,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와 통하는 고예서(古隸書)로서 신라 특유의 진솔미를 보여줍니다. 또 만든 때도 지증왕 4(503)년의 <포항 냉수리 신라비>보다도 2년이나 앞서고, 법흥왕 11(524)의 <울진 봉평리 신라비>보다도 더 오래된 비입니다. 이 비의 비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신라의 국호 “사라(斯羅)”라는 이름과 눌지마립간(訥祗麻立干)으로 짐작되는 내지왕이라는 인물 그리고 신라 6부 가운데 습비부(習比部)인 것으로 보이는 사피(斯彼)라는 부의 이름이 이 비에서 처음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또 이 시기 개인 재산 소유와 상속에 관한 사항 및 분쟁 때 이를 해결하는 절차를 보여 주고 있으